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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앨런 Jan 11. 2020

방울토마토와 술잔

[NETFLIX] 멜로가 체질, 기억에 남은 두 장면

*주의

아래 모든 내용은 100% 개인적인 의견일 뿐, 원작자의 의도와 1%도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더불어 '멜로가 체질'의 주요 내용이 조금 포함되어 있습니다. 혹시라도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읽어주세요.



뒤늦게 넷플릭스로 '멜로가 체질'을 정주행했다. 마음에 드는 구석이 한둘이 아닌 드라마. 아직 14~16화가 남았지만, 기억에 남은 장면에 대해 (까먹기 전에) 조금 적어본다.




대본과 방울토마토


잠자리에 누웠다가 도로 일어난 범수. 대본을 침대로 가져와 펼친다. ‘서른 되면 괜찮아져요’ 대본에는 여러 번 읽은 흔적으로 구김이 생겼다. 그중에도 유독 눈에 띄는 것은, 대본 표지의 오른쪽 아래 귀퉁이의 접힌 자국. 그곳엔 작가의 이름이 적혀있는데, 주름대로 접으면 진주의 이름이 가려진다. 따라서 이 장면은 작품에 대한 범수의 관심 뿐 아니라, 그것을 편견 없이 보고자 하는 그의 태도를 보여주는 듯하다.

자신이 까버린 작가의 보조작가가 쓴 글이란 생각을 지우고, 공평한 마음으로 작품을 대하기 위한 노력. 이를 통해 그가 그저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싸가지 없는 인기 감독이 아니라, 정말 진지한 태도로 일하는 프로라는 것이 드러난다. 다음 씬에서 그가 직접 말하듯, 그는 메뉴판을 보거나 택배를 받는 것보다 자기 일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얼마 전까지 보조작가에 지나지 않았던 진주의 온갖 조롱(기타 치는 장면 압권!)에도 굴하지 않고 삼고초려의 정성을 보인다.

다음 씬으로 넘어가기 전, 카메라는 범수가 거실에서 기르는 방울토마토를 비춘다. 잘 익은 열매 곁, 아직 덜 익은 토마토 몇 알. 진주의 작품이 아직 부족하지만 잘 기르면 좋은 결실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동시에 범수가 그것을 알아보고 길러낼 줄 아는 인물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


방울토마토는 바로 다음 씬(방송국에 온 작가에게 불쑥 선물이라며 방울토마토를 내미는 것)을 포함하여 이후에도 여러 차례 등장하는데, 알고 보면 정 많고 사려 깊은 범수의 성격을 상징하는 것도 같다. 자기가 키운 조감독에게 자신의 베스트 스태프를 뺏기고도, (물론 다양한 이유와 사정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면도 있었지만) 전부 이해해주는 것을 보면 범수는 참 싸가지 있는 사람이다.




술잔 그리고 눈빛


한주와 제작사 대표 그리고 진주와 범수의 저녁 식사. 이 장면에서 단연 눈에 띈 것은 자기 부하직원에게 먼저 술을 따라주는 대표의 태도와 그것을 바라보는 범수의 눈빛. 진주 역시 그것을 놓치지 않고 차분히 바라본다. 특별한 대사가 없이도, 함께 모인 이들의 수준을 한 번에 담아내는 장면. (캬하!)

담백하게 자기 회사의 장단점을 이야기하는 대표의 말에 눈물이 났다.


"아휴, 고충이야 창작자들만 하겠어요. 그리고 저는 부하직원이 작가님과 친구라는 이유로 많은 것을 선점했죠. 황실장 덕으로 얻을 수 있는 배려는 오늘 저녁, 이 자리까지만 하겠습니다. 작가님, 감독님이 하는 고민에 친구니까 라는 생각은 빼주세요. 이미 늦은 감이 있지만, 다른 고민이 개입되게 하는 게 죄송한 마음도 들고. 사실 그쪽이 저희도 일하기 좋습니다."


"한 잔 더 드릴게요." 대표는 두 번째 잔을 권하며, 이번에도 인기 감독이 아닌 신인 작가에게 먼저 술을 따라준다. 작품에 대한 애정과 아쉬움을 담아. (그 와중에 옆에서 재빨리 잔을 비우는 안재홍.. 디테일한 연기!)

자리를 파하고, 진주와 범수는 함께 걸으며 제작사 대표를 칭찬한다. 사실 처음엔 그것을 모두 대사로 풀어낸 것이 조금 아쉬웠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많은 시청자들이 오해할 여지도 있었을 것 같다. 진주는 그저 친구가 일하는 제작사여서 선택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작품을 정말 솔직하게 보고 인정해주는, 그리고 좋은 태도를 가진 제작사와 함께하고 싶었다는 사실이, 길을 걸으며 나눈 두 사람의 대화에서 드러난다.


같은 시각, 한주와 대표는 바에서 독한 술을 마신다. 한 번도 흐트러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대표는 이 장면에서 전혀 다른 면을 보여주는데, 덕분에 그녀의 캐릭터가 더욱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그저 똑똑하고 독한 사람이 아니라, 힘들 땐 울고 싶은 사람. 우는 법을 잊어버려, 독한 술을 마셔야 울 수 있는 사람. 너무 현실적인 눈물로 웃음을 자아내는, 그녀들의 슬픈 2차.





14~16화도 빨리 봐야징.




ㄲㅡㅌ.



- 내용에 포함한 이미지는 '멜로가 체질'에서 캡쳐한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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