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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앨런 Nov 09. 2019

클레이가 머리를 다친 이유 (feat.제시)

[NETFLIX] 루머의 루머의 루머 13 Reasons Why

*주의

아래 모든 내용은 100% 개인적인 의견일 뿐, 원작자의 의도와 1%도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더불어 '루머의 루머의 루머'와 '엘 카미노' 그리고 '워킹데드'의 내용이 조금씩 포함되어 있습니다. 혹시라도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읽어주세요.




대학교 ‘시나리오 작법’ 수업에서 딱 하나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바로 장면 연출에 관한 이야기다.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흰 이제 영화를 진짜 재미있게 보든지, 정말 재미없게 보든지, 암튼 전이랑 똑같이 볼 순 없을 거다. 그의 말처럼, 그때 이후 난 어떤 영상을 보든 각 장면의 의미에 관해 (때로는 필요 이상으로) 골몰하게 되었다.




사건과 대사 그리고 장면


모든 사건에는 이유가 있고, 모든 대사에는 의미가, 그리고 모든 장면에는 의도가 있다. 물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데, 그건 성의가 없거나 실력이 없거나 둘 중 하나가 아닐까. (노오펜스!)


몇 달 전, 루머의 루머의 루머(이하 루루루) 시즌3가 나온다는 넷플릭스 앱 푸시를 받고 시리즈를 정주행하기 시작했다. 루루루 시즌1은 클레이가 해나의 죽음에 얽힌 흔적을 찾는 이야기인데, 첫 번째 에피소드에는 노골적으로 (그리하여 흥미를 잃을락 말랑 할만큼의) 다양한 시각 장치들이 등장한다.




클레이의 반창고


그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클레이의 반창고다. 해나의 목소리를 들으며 한밤중에 미친 듯이 자전거 페달을 밟던 클레이는 갑자기 우당탕 넘어지면서 이마가 크게 찢어지는데, 이것은 사실 그의 이마에 반창고를 붙이기 위한 사고이다. (물론 클레이의 멘탈이 나간 것은 알겠지만, 매일 타는 자전거에서 너무 갑자기 떨어져…)

많은 작품이 그렇듯 초반엔 시청자들에게 설명할 내용이 많은데, 루루루 역시 그러하다. 등장인물도 많고 그들의 관계 또한 단순하지 않은 루루루는 무엇보다 해나가 이미 죽은 상태에서 과거와 현재 두 시점이 교차 편집하여 보여주기 때문에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기 쉽지 않다.


교차 편집의 효과는 해나가 여전히 살아있는 듯한 분위기와 그녀가 죽게 된 계기가 눈앞에서 펼쳐지는 듯한 생동감을 자아낸다는 것. 반면 부작용은 과거의 일과 현재의 일이 심각하게 헷갈린다는 점. 특히 클레이를 중심으로 시점이 오버랩되는 경우가 많은데, 가까운 과거의 클레이는 현재의 클레이와 외관상 다른 점이 없기 때문에 둘을 구분하는 것이 어렵다.


하지만 이야기의 재미를 담당하는 이 구조를 버릴 수는 없다. 그리하여 연출자는 클레이의 이마를 찢고, 반창고를 붙여준다. 반창고를 붙인 건 현재의 클레이, 없는 건 과거의 클레이.




제시 핑크맨의 삭발


'브레이킹 배드’ 이후 6년 만에 ‘엘 카미노’라는 넷플릭스 영화로 돌아온 제시 핑크맨. 애증의 캐릭터지만 어쨌든 전반적으로 너무 불행했던 제시이기에 시즌5 엔딩 이후의 삶은 인제 그만 행복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이 영화는 바로 그 이야기를 풀어낸다. (‘엘 카미노’에 관해선 따로 쓰기로 하고..)


영화는 시즌5 이후의 이야기를 풀어내지만, 시즌5 시점을 회상하는 장면이 많이 등장하기 때문에 (루루루 만큼은 아니지만) 시청자가 조금 헷갈릴 수 있다. (이 제시가 그 제시인가 이 제시인가..)

하지만 영화 초반에 제시가 머리를 밀기 때문에, 시청자는 머리의 길이나 얼굴의 상처 등으로 장면의 시점을 쉽게 구분할 수 있다. 루루루에서 클레이의 반창고 같은 역할이랄까.





클레이의 반창고와 제시의 삭발은 관객의 이해를 돕기 위한 역할이 컸지만, 이 밖에도 하나의 장면 속에는 다양한 기능을 하는 요소들이 숨어있다.


최근 정주행을 시작한 ‘워킹데드’의 예를 들자면, 릭이 말을 타고 도심으로 들어갔다가 들고 갔던 총 가방을 떨어뜨리는 장면이 있다. 우선 말은 (워커들의 먹이가 되어) 릭이 숨어든 탱크가 집중 공격을 받지 않도록 하는 역할을 하고, 또 (보는 입장에선 복장이 터지지만) 이때 떨어뜨린 총 가방은 릭과 동료들이 그곳을 다시 방문하는 계기가 된다.


뭐 어쨌든..


가끔은 아무 생각도 안 하고 볼 수 있는 작품이 좋을 때도 있지만, (평상시에도 자주 멍 때리는) 난 생각을 많이 할 수 있는 편이 더 좋다. 쓸모 없는 요소가 하나 없는, 솜씨좋은 무엇을 만나면, 참 고맙고 기쁘다.




ㄲㅡㅌ.




- 내용에 포함한 이미지는 '루머의 루머의 루머'와 '엘 카미노'에서 캡쳐한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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