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삐의 딜레마 #02
존댓말은 언제부터 가르쳐야 할까. 존댓말은 말하는 법이기 전에 관계 설정이다. 존댓말은 쓰는 순간 위계와 거리를 만든다. 말하는 태도와 톤, 사용하는 단어까지 모든 것이 바뀐다.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존댓말은 내 생각을 확장하거나 펼쳐주기보단 제어하는 장치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아이와 친구가 되고 싶은 나에겐 사실 존댓말 교육의 우선순위는 한없이 낮았다. 언어라는 표현의 도구가 생각을 마구 자극하고 끌어내지 못하고, 되레 억제하지 않길 바란다. 조금 서툴고 (누군가 보기에) 버릇없어 보여도, 서로 더 재미있고 편안하게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말을 조금 더 잘하게 되고,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존댓말은 금방 체득할 수 있다고 믿는다. 무엇이든 크게 조바심 낼 필요가 없다. 다양한 지식을 체계적으로 인지하고 인식할 수 있는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리라.
어느 날 부모님 댁에 다녀온 아내에게 오후에 있었던 일을 듣고선 잠깐 고민에 빠진 적은 있다.
아내: (어머니께 '야'라고 말한 아이에게) 할머니께는 '야'라고 하면 안 돼. '야'는 친구들끼리만 하는 말이야.
아이: 하지만 할머니는 내 친구인걸?
반박하기 어려운 논리다. 늘 친한 친구를 이야기할 때마다 할머니를 꼽았던 아이이기에, 단순히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 것도 아니었다. 어떻게 말해주면 좋을까. 존댓말에 대해서도, 친구에 대해서도, 뻔한 프레임을 씌우고 싶진 않은데.
또 아이는 유독 아내와 나에게 존댓말을 쓰고 싶지 않아 했다. 그냥 싫다고만 말해서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내는 왠지 자존심 상해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그 마음을 다 이해할 순 없지만, 만약 마음이 불편하다면 굳이 그것을 강요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존댓말로 생기는 거리감보다는, 친밀감을 쌓고 원활한 의사소통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니까. 앞으로도 그렇게 하고 싶다.
그렇지만 존댓말을 안 쓰는 것과 못 쓰는 것은 다르다. 우리나라에서 살기 위해서는 잘 쓸 줄 알아야 하는 것이기에, 그것 때문에 앞으로 사회에서 살아가며 온갖 어려움을 겪으면 안 되니까 존댓말이 더 좋거나 꼭 존댓말을 써야 하는 상황이나 쓰임에 대해 그때그때 간단히 알려주곤 했다.
다행히 아이는 어느샌가 존댓말을 꽤 잘 쓰고 있었다. 특히 낯선 어른을 대할 때는 '요'로 말하기를 잘했다. 아마도 유치원이 좋은 계기였던 것 같다. 여러 선생님을 만나 친하지 않은 어른들과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생겼고, 또래 아이들이 선생님과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배운 것도 있는 듯하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을 어머니, 아버지라고 불렀던 나는 어른에게 반말을 한 기억이 없다. 그래서 부모님께 반말하는 친구들을 보면 뜨악할 때가 많았지만, 동시에 부모님과 격 없이 지내는 그들이 부럽기도 했다. 나에겐 어머니와 아버지만 있었고, 그들에겐 엄마와 아빠가 있었다.
어린 시절 나는 인사성만으로도 쉽게 좋은 평가를 받았다. 가정교육을 참 잘 받았구나, 칭찬받을 때면 공짜 효도를 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왜'라는 질문을 할 겨를이 없었다. 왜 존댓말을 써야 하고, 왜 인사를 잘해야 하고, 어른들과 사회가 일러주는 것들이 어떤 의미인지에 관해 스스로 생각해보지 않고 그냥 했다.
아이가 예의 없는 사람이 되길 바라지 않는다. 하지만 예의가 단순히 손윗사람에게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다른 사람을 얕보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나와 타인의 감정과 생각을 존중하는 태도. 예의는 나이나 지위에 앞서 인간을 인간답게 대하는 태도다. 그러니까 아이에게도 스파르타식 존댓말 교육보다는, 반말을 쓰더라도 서로의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싶다.
아이가 앞으로 다양한 관계와 상황을 경험하면서 자신만의 언어를 갖게 되겠지만, 어쨌든 따뜻하고 예의 있게 말하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본인의 생각을 잘 표현할 줄 알고, 동시에 상대의 마음을 잘 헤아릴 줄 아는 사람. 그리고 무엇보다 앞으로도 계속 나와 격 없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참 좋겠다.
며칠 전 새벽, 이불을 자꾸 걷어차는 아이에게 이불을 덮어주며 존댓말로 말을 걸었다. 아이는 잠결에 눈을 감은 채로 대꾸하면서도 꼬박꼬박 존댓말을 썼다.
나: 이불 덮고 자야 감기에 안 걸려요.
너: 더워서요.
나: 그럼 다리만이라도 덮을까요?
너: 좋아요.
나: (이불을 허리까지 덮어 준다.)
너: 그건 몸통이잖아요.
나: (이불을 무릎까지 내린다.) 이... 이 정도면 괜찮을까요?
너: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