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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데이수 Oct 25. 2020

미 대선을 앞두고 읽어볼 만한 책, <라스트 캠페인>

왜 지금 로버트 케네디에 대한 책을 읽어야 하는가?

미 대선이 열흘 앞으로 다가왔다. 선거 직전이 되면 정치가 경마판으로 변한다. 정책적 논의 같은 속 편한 이야기는 뒤로 미뤄두고, 1번 말 트럼프, 2번 말 바이든 중 누가 이길 것인가 라는 아주 단순한 문제로 환원된다. 바로 이 타이밍에 읽어볼 만한 책이 출간되어 추천 리뷰를 써 본다. 로버트 케네디의 일대기를 다룬 <라스트 캠페인>이라는 책이다.





어떤 책이 정말 좋은데, 이 책이 왜 좋은지를 다른 사람에게 납득시키기 어려울 때가 있다. <라스트 캠페인>이 그렇다.


미국도 아니고 한국에서 태어나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케네디는 존 F. 케네디다. 나도 책을 펼치기 전까지는 이 책이 다루는 케네디가 존 F. 케네디인 줄 알았다. 미국인들이 사랑하는 대통령이었고, 쿠바 미사일 위기에 대처한 주인공이었으며, 너무나도 극적인 순간에 불의의 암살을 당하고 만 그 존 F. 케네디 말이다.


이런 오해를 하는 사람이 나뿐만은 아니었는지, 작가는 "사실 제가 다루려는 케네디는 로버트 케네디에요"라는 말로 책을 시작한다. 로버트 케네디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존 F. 케네디의 동생으로, 그가 대통령일 때 법무장관이 되어 국정을 수행했던 사람이다. 한 발짝 나아가 1968년 대선에서 공화당의 닉슨에 대적해 민주당 후보가 되기 위해 경선에 참가했었다. 좀 못되게 요약한다면, 그의 최종경력이 대통령 후보의 후보라는 것이다.


이 글의 서두에 이런 질문을 던졌다.


왜 지금 로버트 케네디에 대한 책을 읽어야 하는가?


<라스트 캠페인>을 읽고 나면 이 '왜'에 대한 답을 추측해 볼 수 있다. 왜냐하면, 1968년에 이어 2020년 미국 정치에 또 한 번의 위기가 왔기 때문이다. 1968년 대선에서는 결국 닉슨이 당선됐다. 역사에서 '만약에'라는 단어는 참 허무한 것이지만, 이 경우에는 '만약에'라는 말을 자꾸만 곱씹어보게 된다. 닉슨에 대적할 만한 민주당 후보로 꼽혔던 로버트 케네디가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이 한창이던 시기에 암살범의 총에 맞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가장 큰 경쟁자가 사라진 선거에서 닉슨은 비교적 순조롭게 권좌를 손에 넣었다.


닉슨의 당선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닉슨이 뭘 잘했는지는 모르지만, 뭘 못했는지는 모두가 다 안다. 그는 워터게이트 스캔들이라는 사상 최악의 지저분한 짓을 저질러 탄핵을 당할 위기에 몰렸고,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지지부진 버티다가 아름답지 못한 마무리를 한 채 대통령직을 떠났다. 정치라는 게 일정한 게임의 규칙 안에서 서로 다른 의견을 내세우며 경쟁하는 거라면, 닉슨은 이 게임의 규칙을 완전히 무시해 버린 정치인이었다.


게임의 규칙을 완전히 무시해 버렸다,

이 말에서 트럼프의 향기가 떠오르는 것이 나만은 아닐 거라 생각한다.


그러니까, 처음 질문에 답을 찾자면, 지금 이 순간 로버트 케네디에 대한 책을 읽어야 하는 건, 1968년에는 닉슨의 당선을 막을 수 없었지만, 2020년에는 어떻게든 트럼프의 당선을 막아야 하는 이유를 찾기 위해서다. 로버트 케네디가 대표했던 진보진영의 가치를 다시 한 번 되새기고, 그가 불의의 사고로 정계를 떠난 이후에 미국 정치가 겪었던 '쪽팔린' 비극이 다시 한 번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못박아야 하므로.





1968년은 폭력과 반폭력이 치열하게 맞선 시대이기도 했다. 1968년 4월, 흑인 민권운동을 이끌던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암살범의 총에 맞아 세상을 떠났다. 그 해 6월에는 경선 내내 흑백분리에 단호하게 반대하며 흑인 민권 향상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뜻을 밝혔던 로버트 케네디가 마찬가지로 암살범의 총에 맞아 세상을 떠났다. 폭력의 시대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반폭력의 시대이기도 했다. 지지부진한 베트남 전쟁에서 더 이상 피를 흘리지 말자는 젊은이들이 거리로 나와 반전운동을 벌였다. 유럽을 중심으로 대학생들이 거리를 점령해 '68혁명'이라고까지 불렸다. 미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한편에서는 너무나 미운 사람을 죽이기 위해 폭력을 사용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아무리 사회주의 진영이 밉단들 무의미한 폭력을 지속해서는 안 된다는 사람들이 거리를 점거했다.


지금 생각해도 무척 혼란스러운 시대였던 것 같다. 한편, 이 책은 혼란한 시대를 살아가다 끝끝내 자신의 정치를 펼치지 못하고 죽고 만 정치인에 대한 이야기이다. 매사를 좀 삐딱한 눈으로 보길 좋아하는 내 입장에서는, 저자 서스턴 클라크가 로버트 케네디를 너무 떠받드는 것처럼 서술할 때 조금 거부감이 들었다.


대통령 후보의 후보로서 경선을 할 때 후보 앞에 놓인 실패란 '대통령 후보가 되지 않는 것' 그 뿐이다. 반면 대통령으로서 한 국가를 통치함에 있어서 그 앞에 놓인 실패란 훨씬 치명적인 것이다. 법안을 제때 통과시키지 못해 많은 사람들이 어려운 상황에 놓이거나, 또는 쿠바 미사일 사태에서처럼 까딱 잘못했다가 또 한 차례의 세계대전을 치러야 하거나. 그래서 현실정치에서는 밥 먹듯이 타협이 일어난다. 가령, A를 양보받는 대신 B를 양보해준다. B가 정치인으로서의 신념을 훼손한다 할지라도, B를 양보하지 않고 꼿꼿이 버티기만 해서는 A를 얻을수도 B를 막을수도 없다.


로버트 케네디의 미담 역시 반만 믿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가 대통령이 됐다면 그의 통치에 B라는 과오가 남아, 소위 우상화할 수 없는 현실의 존재로 격하되었을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그가 대통령 선거를 치러보지도 못하고 이상이 넘치던 대통령 후보의 후보 시절에 요절해버렸기 때문에 비로소 그의 신념이 신념으로 남을 수 있었다고 본다.


소설가 이상의 작품이 정말로 위대한가?그가 요절했다는 사실을 빼고 이상의 작품에 대해 논의하는 것이 가능한가? 고흐의 미술 작품이 정말로 위대한가? 고흐가 드라마틱한 인생을 살았다는 사실을 빼고 고흐의 작품에 대해 논의하는 것이 가능한가? 얼핏 보기에는 완전히 다른 맥락의 질문 같지만, 내가 보기에는 완전히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신비로움을 너무 높게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한편, 이 책의 또 다른 장점은 번역이 정말 좋다는 것이다. 선데이수가 평소에 재미있게 읽고 있는 페이스북 페이지 <워싱턴 업데이트>를 운영하는 박상현 님이 번역을 맡아주셨다. 영어권에서 출간된 책을 번역서로 읽을 때 번역의 미숙함 때문에 진도가 잘 안 나가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 <라스트 캠페인>의 경우에는 전혀 그런 느낌이 없이 읽기 쉽게 번역이 잘 되어 있다. 역자 박상현 님의 책 소개 멘트 일부분을 옮겨본다.


<라스트 캠페인>을 번역하는 내내 든 생각은 "미국은 흑백갈등과 빈민 문제를 해결할 마지막 기회를 놓친 후에 영원히 1968년에 멈춰있다"라는 것이다. 로버트 케네디가 하던 주장이 지금도 전혀 진부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게 미국의 비극이다.





이건 완전히 사족인데, 오늘 도쿄도사진미술관에서 하는 <생명체로서의 도시>라는 전시회를 보고 왔다. 이시모토 야스히로 라는 작가의 특별전이었는데, 그가 194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까지 미국 시카고에서 수학하면서 찍은 사진들을 모아 낸 <시카고, 시카고>라는 특별전을 아무 생각 없이 감상하던 중에 로버트 케네디의 이름이 나왔다. 깜짝 놀랐다.


전시장에서 사진을 찍을 수 없게 되어 있어서 딱 그 사진을 가져오지는 못했다. 아래는 비슷한 시기에 찍은 사진. 킹 목사와 맬컴 X로 대표되는 흑인민권 운동가들이 각자의 방법으로 흑백분리 철페운동에 나서던 시절이다. <라스트 캠페인>을 읽기 전이었다면 다른 사진들과 별다를 것 없는 '사진1'이었을텐데, <라스트 캠페인>을 읽고 그 시대의 역사적 맥락과 분위기에 대해 조금쯤 감을 잡고 나자 이 사진이 조금 더 특별하게 보였고, 내게 이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 <라스트 캠페인>에 대한 글을 써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인연이란.


Ishimoto Yasuhiro, <Chicago Chicago> 연작 중. 사진은 Museum of Contemporary Photography 웹사이트에서 가져왔다.


산만한 추천사였지만, 이 글을 읽은 독자들께서 <라스트 캠페인>을 한번쯤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면 성공이다.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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