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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데이수 Jul 24. 2020

책 덕후의 소지품을 소개합니다.

달팽이처럼 나만의 도서관을 이고지고 다닙니다.

카페에 들어간다. 커피를 주문하고 자리를 잡는다. 오늘 뭐할지 정하고 가방을 뒤진다. 블로그에 글 쓰는 날은 핸드폰 거치대와 키보드를, 종이책 읽는 날은 독서대와 책을, 전자책 읽는 날은 핸드폰 거치대와 이북 리더기를 꺼내놓는다. 카페에 앉아 그 날 할 일을 시작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5분 안쪽.


오늘은 달팽이처럼 나만의 도서관을 이고지고 다닐 수 있게 도와주는, 책 덕후의 소중한 소지품을 소개할게요. :)





먼저 내 취향에 대해 이야기해두는 편이 좋을 것 같다. 사람마다 좋아하고 필요한 게 다 다를 수 있으니까. 나는 물건을 고를 때 두 가지 기준을 고려한다. 물론 예쁘면 좋고, 전자기기의 경우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혹시 모르니 방수기능이 있으면 좋고, 이런 부가적인 고려요소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기본적인 판단기준은 바뀌지 않는다.


가벼운가? 그리고 사용법이 간단한가?



무거운 건 참을 수 없어


무거운 가방에 온갖 참고서를 이고지고 다니던 건 중고등학생 때 할 만큼 했다. 가죽가방도 무겁다고 느껴서 평소에는 에코백에 소지품을 던져넣고 출근한다. 에코백도 모양이나 재질에 따라 무게가 다르게 느껴진다. 물건을 넣어도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고 탄탄하게 잡히는 편이 덜 무겁다. 당연히 가방 안에 넣는 물건들을 고를때도 "가벼운가?"를 꼭 따져본다.



사용법을 이해하는 데 머리쓰고 싶지 않아


새로운 기기의 사용법을 익히는 건 내게 스트레스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가끔 급하게 회사 컴퓨터에 이어폰을 연결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요즘 유선 이어폰은 집에 두고 에어팟만 들고 다니는데, 절대절대 에어팟은 연결 안 한다. 귀찮아도 주변에서 유선 이어폰을 빌려다가 쓴다. 컴퓨터의 블루투스 메뉴를 켜서 내 에어팟을 새로 등록하고, 용무를 마친 다음에는 연결을 끊고 내 핸드폰과 다시 연결해야 하는데 나는 그게 너무 귀찮고 싫다.


그래서 내가 이용하는, 들고 다니는 기기들은 사용법이 다 엄청나게 간단하다.





서론이 길어졌다. 이제부터 소개합니다. 우리 아가들. :)


내 아가들을 한 군데 모아보았다. :)



내 사랑 킨들과 크레마


사진 속 소지품 중 제일 나와 함께 한 역사(?)가 오래됐고, 고가인 물건은 역시 이북리더기인 킨들과 크레마다. 해외에서 지내면서 이 아이들이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한국에서 일본으로 이미 한 차례의 이사를 겪는 과정에서 종이책에 대해 다시 생각헤보게 되기도 했다. 책이 물질로 남아있으면 왠지 자주 꺼내읽을 것 같은 생각이 드는데, 정작 책장 속 수많은 종이책 중 한 번 이상 읽은 책은 거의 없다.


MP3를 다운받아 듣던 내가 Spotify나 YouTube Music으로 음악을 듣고 ,

비디오 가게에서 비디오를 빌려오던 내가 Netflix나 Amazon Prime으로 영화를 보고,

이런 세상에 익숙해지다보니 책도 일종의 스트리밍 하는 게 나쁘지 않게 느껴진다.


종이책의 물성에 대한 집착이 옅어지는 만큼, 내 친구 킨들과 크레마에 대한 사랑도 깊어지고 있다. 과거 포스팅 중 이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물씬 묻어나는 글이 있어 관련글로 달아본다.




내게 이동의 자유를 준, 블루투스 키보드


무거운 걸 못 참는 나는 노트북도 LG 그램을 쓴다. 1kg가 안 된다는데, 정작 충전기와 마우스를 노트북 파우치에 넣으면 체감상으로는 엄청 무겁게 느껴진다. 그래도 손글씨보다는 타이핑으로 내 생각을 정리하고 싶을 때가 많이 있어서 이고지고 많이도 들고다녔다.


진짜 순전히 노트북 들고다니기가 싫어서 블루투스 키보드를 사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블루투스 키보드는 아이패드 또는 갤럭시탭 유저나 쓰는 거라는 인식이 있었는데, 막상 사고보니 굳이 용도를 제한할 건 없는 것 같다. 어차피 핸드폰으로 맨날 인터넷 서핑 하지 않는가. 물론 화면이 크다고는 못하겠지만, 어차피 맨날 쓰는 화면이다. 그 화면으로 서핑을 할지 타이핑을 할지의 차이 정도라고 생각한다.


아마존 재팬에서 여러 제품을 비교해보고, 리뷰도 읽어보고 한 끝에 골랐다. iClever 라는 브랜드 마크가 적혀있는데 유명한덴지는 잘 모르겠다. 폴딩식이라서 가방에 쏙 넣을 수 있고, 한 번 블루투스 연결을 해 두면 On/Off 버튼을 슥 밀어서 타이핑을 시작할 수 있어서 편할 것 같았다. 실제로도 아주 잘 쓰고 있다. 요즘은 블로그에 글쓸 때 노트북이 절반, 블루투스 키보드가 절반 정도 비율인 것 같다. 키감이 별로일까 걱정을 했는데, 생각보다 노트북 키보드와 크게 다르지 않아서 장시간 글 쓰기에도 나쁘지 않다고 느낀다. 배터리도 꽤 오래 간다.



핸드폰 거치대


다음은 핸드폰 거치대. 사진을 잘 보면, 윗편에 크레마가 오뚝 서 있다. 당연히 지 혼자 서있는 건 아니고, 등 뒤에 핸드폰 거치대를 대 주었다. 블루투스 키보드를 살 때 사은품으로 받았다. 작은데 나름 안정감이 있다. 핸드폰용이지만 나름 킨들과 크레마 정도는 버텨준다. 테이블에 내려놓고 읽는 것보다 목도 덜 아프고 눈도 편하다.


요즘 업무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화상회의에 참석할 일이 많이 있다. 회사에서 쓰는 데스크탑에 웹캠이 없어서 화상회의가 있을 때마다 회사 노트북을 빌려 오는데, 예약이 꽉 차 있을때면 하는수없이 핸드폰으로 접속한다. 이 경우에 거치대가 있으면 무조건 편하다. 조악하게 생겨가지고는 나름 3단계로 각도조절도 할 수 있어서 내 얼굴이 너무 뜨악하게 나오지 않는 선에서 조절할 수 있다.


안 쓸 때는 납작하게 접어서 들고다닐 수 있다. 에코백 라이프에 딱 어울리는 물건이다.


가까운 카페에 갈 때 핸드폰 거치대와 블루투스 키보드만 슥 넣어가면 어디에서든 글을 쓸 수 있다.



접이식 독서대


윗 사진 왼쪽에 빨래건조대처럼 생긴 스테인리스제 물건이 바로 접이식 독서대이다. 사진 속 물건 중에서는 가장 최근에 합류한 아이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전자책의 좋은 점을 실컷 늘어놓았지만, 천성이 책 덕후라 종이책과도 완전히 이별하진 못했다. 요즘은 <대통령의 권력>이라는 640페이지짜리 책을 읽고 있다. 하드커버라 책도 무겁다. 큰 맘 먹고 백팩에 책을 짊어지고 카페에 앉았는데 책이 워낙 두꺼우니까 들고있는 것만으로도 팔이 아팠다. 그렇다고 바닥에 내려놓고 읽자니 목이 아프고.


사실 이렇게 무거운 책은 밖에서보다는 집에서 많이 읽으니까 굳이 독서대를 산다면 튼튼한 원목 독서대를 사야겠다는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원목 독서대 예쁘지도 않은데, 집에서 자리 차지하고 있으면 안쓸 때는 무척 거슬릴 것 같았다. 반면 얘는 부피차지를 거의 안 하니까 안쓸때면 납작하게 접어서 어디 구석에 둘 수 있다. 고민하다가 이번에도 가벼운 쪽을 선택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크기가 좀 작다는 것? 아무래도 일본은 문고본을 많이 읽으니까, 문고본 사이즈에 맞게 제작을 했나보다. 다행히 640페이지짜리 <대통령의 권력>을 지탱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 본격적으로 전공서를 사다 공부하는 게 아니니, 어차피 <대통령의 권력>보다 더 무겁고 두꺼운 책을 읽을 일은 거의 없다. 이 정도면 되지 않나 싶다.



미도리 노트


마지막으로 소개할 소지품은 노트다.


나는 뭐든지 금방 질려하는 편이라서 같은 물건을 반복해서 사는 경우가 잘 없는데, 이 노트는 아주 마음에 들어서 두 권째 사서 쓰고 있다. 작년 연말쯤 시부야 근처에 갔다가 시부야의 거대한 문구점 로프트(Loft)에서 '완벽한 노트를 찾아서' 탐험을 했다. 매장에 진열되어 있는 온갖 노트를 열어보고 만져보고 한 시간도 더 고민한 것 같다. 탐험 끝에 고른 노트다.


이 노트를 선택한 이유를 끄집어 내 보았다.


무선이다. 유선이나 모눈, 스케줄러처럼 문구사가 지정해 준 양식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표지도 무지다. 속지랑 같은 색조의 화이트다. 디자인이 없는 디자인이라 도무지 질릴일이 없다.

압도적으로 가볍다.

180도로 쫙쫙 펴진다. 노트를 함부로 쓰는 편인데 제본상태가 좋은지 아주 잘 버틴다.

보통은 가벼우면 종이가 너무 얇아서 비치기 마련인데, 이 노트는 다르다. 종이가 꽤 탄탄하다.

비닐커버가 있다. 겉면을 깨끗하게 유지할 수 있고, 깨알같이 볼펜도 꽂아둘 수 있어서 유용하다. 별도구매라서 처음 살 때는 좀 열받았는데, 커버만 벗겨서 몇 번이든 재활용할 수 있어서 지금은 좋다고 생각한다.


사실 더 적을수도 있지만 여기까지만 하겠다. 여러모로 마음에 쏙 든다. :)






결국, 코로나가 바꾼 삶


지금까지 소개한 소지품들 중에는 그 전부터 가지고 있던 물건도 있고 최근 몇 개월 사이에 새로 장만한 물건도 있다. 틈만나면 코로나 탓하기도 지겹긴 한데, 그래도 소지품이 늘어난 이유를 찾자면 코로나 때문이다. 사람 많은 전철을 조금이라도 피하기 위해 자체(?) 시차출근제를 시행하느라 아침에 1시간 여유가 생겼다. 이 여유시간을 잘 활용하기 위해 이것저것 시도하는 과정에서 필요해진 물건들을 사들인 것이다.


사실 그 전에도 20분 정도 일찍 도착해 카페에 앉아있다 가곤 했다. 생각보다 20분과 1시간의 차이가 컸다. 20분 정도야 그날치 웹툰도 읽고, 인터넷 서핑도 하고, 모닝 카카오톡도 하다보면 금세 지나가는 시간이다. 반면 1시간을 그렇게 허비하는 건 느낌이 좀 달랐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기분.



물건보다는, 그 물건이 내게 전해주는 시간


나는 미리 뭘 해야지 정해놓고 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내 관심사를 여럿 펼쳐놓고, 그 중 그때그때 내키는 일을 골라서 하는 게 나와 잘 어울린다. 외국어 과외에서 새로 배운 단어 복습도 하고, 영어신문 기사를 넘겨보다가 흥미로운 주제가 있으면 집중해서 읽어보고, 블로그에 글을 쓰고, 책을 읽고, 등등.


그러다가 핸드폰 거치대가, 블루투스 키보드가, 독서대가 필요해져서 하나하나 사들이다 보니 나만의 소중한 이동식 도서관이 되었다. 출근 1시간 전 도착해서 5분만에 세팅을 마치면, 못해도 하루에 50분 정도는 내 관심사에 온전히 투자할 수 있게 된다.


이 글을 쓰기로 시작할 때 나는 "내 소중한 소지품을 자랑해봐야겠다!"는 생각에 빠져있었다. 마무리하려고 보니 새삼 깨달음이 온다.


사실 이 글은 물건보다도 그 물건이 내게 선물해주는 시간에 대한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좋아하는 물건으로 둘러싸여,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보내는 아침의 1시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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