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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데이수 Apr 10. 2019

이자카야에서 어떻게 주문해야 하나요? (음료편)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이자카야에서 어떻게 주문해야 하나요? (안주편)」 을 읽어주셔서 기쁘기도 민망하기도 했다. 한국에서의 경험을 돌이켜보면 한국의 술 문화를 이해하는 데 제일 도움이 된 경험은 대학교와 회사였다. 필자는 일본에서 대학교를 나오지도 않았고, 일본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일본인보다 한국인이 더 많은 회사이기 때문에 일본 회사의 술 문화를 경험했다고 하기는 좀 어려울 것 같다.


그래도, 필자가 경험한 범위 내에서는 이런 것들이 있다 는 정도로 가볍게 읽어주시기를. 그럼 시작해본다. 이자카야에서 어떻게 주문해야 하나요?


이번에는 음료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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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노미호다이(飲み放題, 음료 무제한) 메뉴가 있는지 확인한다.


한국에도 일정시간 술을 무제한으로 마실 수 있는 술집이 있기는 하지만, 대학가에서나 자주 보이지 일본만큼 보편화되어 있지는 않은 것 같다. 짐작컨대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수지타산이 안 맞기 때문이 아닐까. 일본 이자카야에는 웬만하면 노미호다이 메뉴가 있다. 인당 적게는 1천엔에서, 많게는 2천엔 정도를 내면, 가게마다 다르지만 1.5시간~3시간 정도 제한을 두어 음료를 무제한으로 시킬 수 있게 해 준다.


물론 무제한 옵션이 모든 메뉴에 해당되는 건 아니다. 예를 들어 필자가 사랑하는 나마비루(生ビル, 생맥주)가 노미호다이 메뉴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가게도 꽤나 많다. 이런 경우 병맥주를 시켜서 나눠먹거나, 최악의(?) 경우 피쳐잔을 가져다주거나 한다.


재미로 보는, 야마노테선(한국으로 치면 2호선 같은 순환라인) 각 역별 나마비루의 평균 가격. 빨간색에 가까울수록 비싸다. 도쿄역(마루노우치), 에비스역이 비싼 편이라는 것 같다


특히 회사 회식자리에서는 노미호다이가 필수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여기에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번째는 시간제한 덕분에 회식을 빨리 끝낼 수 있다는 것. 두번째는 코스메뉴+노미호다이 를 묶으면 돈 계산하기가 무척 쉬워진다는 것이다. 회사마다 다르겠지만 일본 회사에서는 회식비를 갹출하는 경우가 많다. 노미호다이를 포함해서 미리 주문을 해 두면 회식비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어, 얼마를 준비해오라고 미리 공지하기가 쉽다.


생맥주도 다 같은 생맥주가 아니다. 일본 여행중에 산토리의 프리미엄 라인 '마스터스 드림'을 발견했다면 꼭 한 번 주문해보시길. 부드러우면서도 느끼하지 않게 스르륵 내려간다.



2. 각자 주문한다.


한국에서 술을 마시러 가면, 소주 한 병 맥주 두 병 주세요, 이런 식으로 각 테이블마다 음료를 주문한다. 일본에서는 음료를 주문하는 단위가 테이블이 아니고 사람이다. 각자 먹고싶은 음료를 주문하는 분위기다.


술이 약한 사람은 상대적으로 도수가 낮은 술을 주문하거나, 아예 알코올이 없는 음료를 주문하거나 한다. 무알콜 음료를 주문하면서 과하게 눈치보거나 하는 일도 없다. 그냥 메뉴를 좀 뒤적이다가 우롱차 주세요 라는 식.


일본 안에서도 지역마다, 그리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필자가 경험한 범위 안에서는 술 잘 못 먹어도 살아가는 데 별 지장이 없는 곳이라는 인상이었다.


나마비루도 종류마다 맛이 다르다. 아사히는 탄산이 강해서 튀김과 잘 어울리고, 에비스는 향이 강해서 양식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사진은 맥주잔에서 솟아오르는 듯한 도쿄타워.


3. 고민될 땐 일단 맥주 한 잔으로 시작한다.


"토리아에즈 비-루 쿠다사이(とりあえずビールください, 일단 맥주 한 잔 주세요)". 음료는 뭘로 하시겠냐고 물어오는 종업원에게 이렇게 말할때마다 나도 이제 일본 생활에 꽤 적응한 게 아닐까, 라는 기분좋은 착각에 빠진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신경쓰는 문화 때문일까, 메뉴판을 앞에 두고 쭈뼛거리는 순간이 민망한지, 아예 관용구처럼 첫 주문은 맥주로 시작한다고 정해놓았다. 어디 적혀있는 건 물론 아니지만 많이들 이렇게 한다. 조금 뒤에 소개하겠지만 음료 메뉴가 엄청나게 많아서 공부(?)하는 데 시간이 걸리니, 마치 현지인인 것처럼 자신있게 토리아에즈 비-루! 를 외치는 것도 나름 괜찮은 방법 같다.


사실, 일본술은 또 다른 세계다. 대중 이자카야에 가서 사케 또는 쇼츄(焼酎, 일본소주)를 시켜봤자 그냥 저렴한 술이 나오기 때문에 만족하기 어렵다.


4. 대략적인 음료 종류를 파악한다.


드디어 이 글의 본론에 왔다.


하이볼, 츄하이 등 들어본 건 많은데 각각이 어떤 술이고 어떻게 시켜야 할지 모르면 왠지 자신이 없어서 못 시키는 수가 있다. 술 메뉴야 그야말로 주인장 마음이니 가게마다 천차만별로 다르겠지만, 필자가 종종 가는 대중 이자카야인 긴노쿠라(銀の蔵)의 음료 메뉴를 참고해서 몇 가지만 간단히 소개해본다.


일본술 종류가 좀 갖춰져 있는 곳에 가면 술잔을 여러 개 보여주며 그 중 하나를 고를 수 있게 해 준다. 여태까지 본 것 중 제일 귀여웠던 술잔. 술을 따르면 거북이가 살짝 잠긴다


(1) 츄하이(チューハイ), 사와(サワー)


필자도 둘의 차이가 긴가민가해서 찾아보니 산토리 웹사이트 FAQ에 이런 질문이 올라와 있다. "츄하이와 사와는 무엇이 다른가요?" 산토리 맥주 담당자에 의하면, 별 차이는 없다고. 도수가 높은 술에 과일향과 탄산을 섞어 차갑게 내는 음료를 가게에 따라 츄하이라고도 부르고, 사와라고도 부른다고 한다.


제일 많이들 먹고 흔한 메뉴는 역시 레몬사와다. 레몬의 상큼한 맛이 탄산과 어우러져 거의 술 맛조차 느껴지지 않게 된다. 도수 자체도 5도 내외로 부담없이 즐길 수 있다. 그 외에도 라임사와, 그레이프후르츠(자몽)사와, 진저사와 등 종류가 많기 때문에 적당히 본인이 선호하는 맛을 고르면 된다.



(2) 하이볼(ハイボール)


이것도 흔하게들 먹는 술이다. 위스키와 탄산수를 섞어서 차갑게 내 온다. 맥주처럼 배부르지도 않고, 사와처럼 달지도 않다는 장점이 있다. 가령 산토리에서는 아예 하이볼용 위스키인 가쿠빈(角瓶)을 출시해, 카쿠하이볼(角ハイボール)이라는 이름으로 자사 위스키를 하이볼에 써 달라고 광고하고 있을 정도.


물론 이자카야에서도 주문하기 좋은 메뉴이지만, 필자는 하이볼을 반주로 곁들이는 걸 더 좋아한다. 도수가 높지 않아 가볍게 곁들일 수 있으면서도, 음료 자체에 향이 강하지 않아서 어떤 음식과도 잘 어울리기 떄문이다.


산토리에서 말하는 가쿠하이볼을 만드는 방법. (1) 레몬을 준비한다 (2) 얼음을 가득 담는다 (3) 가쿠빈 1 : 탄산수 4 의 비율로 따른다 (4) 저어준다


(3) 칵테일


이자카야에서 나오는 칵테일은 칵테일 전문 바에서처럼 아주 대단한 맛이 나는 건 아니고, 그냥 정해진 레시피대로 슥슥 따라서 내 오는 느낌이다. 너무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칵테일이야 종류가 워낙 많고, 일본에서만 먹는 종류가 따로 있는건 아니라서 칵테일 부분은 생략하려고 한다.


다만 신기했던 술을 하나 소개하자면 카리모쵸(カリモーチョ)로, 충격적이게도 레드와인에 콜라를 섞은 칵테일이다. 말만 들으면 영 이상해보이지만 꽤나 맛있다. 닥터페퍼에서 샹그리아까지 여러가지 맛을 연상시키는 신기한 조합.



(4) 소주


소주를 시킬떄는 몇 가지 골라줘야 할 게 있다. 먼저 술의 종류. 원료가 무엇인지에 따라 맛이 조금씩 다르다. 쌀(米, 코메), 보리(麦, 무기), 고구마(芋, 이모)가 많은 듯. 필자는 일본소주 자체를 별로 선호하지 않지만, 만약 시킬 일이 있다면 고구마 소주만은 피한다. 특유의 향이 필자와는 잘 맞지 않는다고 느낀다.


다음은 마시는 방법이다. 저도수의 술을 즐기는 일본 사람들 답게, 소주도 스트레이트로 시키는 경우가 드물다. 록꾸(ロック, 얼음잔에 내 오는 것)나 미즈와리(水割り, 찬물에 섞는다), 오유와리(お湯割り, 따뜻한 물에 섞는다) 등을 고르게 되어 있다.


처음 일본에 와서는 소주에 물을 섞고, 더군다나 따뜻한 물을 섞어서 내온다는 게 도무지 이해가 안 되었는데 지내다보니 그마저도 익숙해져서 그러려니 한다. 자진해서 시키지는 않지만 말이다.


사진은 소주는 아니고 니혼슈. 이치고(一合)를 시키면 오른쪽 같은 도쿠리와, 인원수에 따른 잔을 가져다준다. 병째로 시키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5) 일본술(日本酒, 니혼슈)


소주와 니혼슈를 구분하는 설명이 있었는데 뭐더라. 대강 요약하면 니혼슈는 원재료를 발효시킨 상태고, 소주는 발효 후에 증류를 거쳤다는 것 같다. 소주에 비해 도수가 낮고, 상대적으로 마시기 쉬운쪽이 니혼슈이다.


니혼슈를 시키면 아래와 같이 사각의 나무통(마스라고 부른다)에 잔이 담겨서 나오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 유리잔에 '표면장력' 상태까지 술을 따르고, 아슬아슬하게 유리잔에 담긴 술을 마신 후 아쉬운 마음은 나무통에 남은 술까지 말끔히 마시는 걸로 해결한다.


니혼슈 종류 중에는 따뜻하게 먹어야 맛있는 술도 있다. 꼭 술맛 때문이 아니더라도 으슬으슬 추운 날에는 따뜻한 술이 생각나기도 한다. 그럴때는 아츠칸(熱燗, 따뜻한 잔)을 시키는 것도 방법이다. 잔을 손으로 감싸고 따뜻한 술을 홀짝홀짝 넘기다보면 왠지 추위도 풀리는 것 같고, 감기도 나을 것 같고, 그런 착각속에 시간이 절로 간다.


니혼슈를 나무통에 가져다주는 경우. 당황하지 말고 나무통에 남은 술까지 싹 마셔버리면 된다. 출처는 구글 이미지.


(6) 우메슈(梅酒, 매실주)


한국에도 매실로 담근 매실주가 있지만, 일본의 대중적인 이자카야에서 파는 매실주는 그 정도는 아니고 그냥 술+탄산수+매실액 인 것 같다. 운이 나쁘면(?) 일본의 매실장아찌인 우메보시(梅干し)를 빠뜨려서 내 오는 경우도 있다. 나름 고급 우메슈인 듯. 깜짝 놀랐다. 필자는 우메보시를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먼저 우메슈를 시키면 비주얼을 확인해보고 시키거나 한다.


츄하이나 사와와 마찬가지로, 알코올 도수가 높지 않고 달달한 맛이라 비교적 수월하게 마실 수 있기 때문에 여성들에게 인기가 높은 음료다.


이 비쥬얼은 대중 이자카야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로바타(炉端,  화로구이) 전문점에서 대강 시킨 안주상.


(7) 그 외


술을 못 하는 사람이라면 소프트드링크 메뉴를 잘 들여다보는 게 좋다. 한국에서 잘 못 봤는데 일본에서는 흔한 음료가 진저에일. 진저하이볼 등으로 이런저런 술에 섞는데도 쓰이곤 한다.


그 외에도 또 만만하게 시키는 음료가 우롱차. 여럿이서 노미호다이 옵션을 이용하는 경우, 마지막 주문으로 테이블당 2~3개 정도 우롱차를 시키곤 한다. 술을 마신 후 시원한 차를 마시면 술이 좀 깨기도 해서 늘 수요가 있는 음료. 그 외에도 콜라나 칼피스 워터, 오렌지 주스 등 가게마다 조금씩 다르다.



이상, 필자의 짧은 경험을 토대로 이자카야에서 어떻게 주문해야 하는지에 대해 적어보았다. 술이라는 게 각자의 취향과 TPO에 따라 주문방법이 다 다르니 이것만이 정답이라고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어쨌든 이 포스팅이 일본에서의 즐거운 저녁시간을 보내는 데 조금이라도 참고가 될 수 있다면 영광일 것 같다.


필자가 먹는 걸 사랑하고 먹는 데 돈을 아끼지 않는 만큼, 일본 식문화 탐구 매거진은 계속됩니다.


다음편은 일본에서 먹는 츄카(中華, 중화요리)를 소개해보려고 한다. 기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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