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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데이수 Apr 27. 2018

알고 먹으면 더 맛있는 소바 이야기

가끔은 나도 현지인처럼, 당황하지 않고 소바를 제대로 즐기고 싶다.

소바랑 우동 중에 뭐가 더 좋아?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던 질문을 받아서 당황했다. 그런데 이 질문, 일본 사람들에게는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만큼 흔한 질문인가보다. 새삼스럽게 내가 맛있게 먹었던 소바와 우동을 차례로 떠올리면서 저울질을 해 보았다. 글쎄, 둘 다 좋지만 나에게는 역시 소바가 조금 더 취향인 것 같다.


소바면은 소바가루를 반죽하여 만든다. 소바가루가 되려면 메밀을 최소 30% 이상 포함해야 한다고 한다. 메밀 비율이 높다고 맛있는 소바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함량이 너무 낮으면 메밀향이 거의 느껴지지 않아서 소바로서의 매력이 없고, 함량이 너무 높으면 식감이 텁텁해진다.


한국에서도 맛있다는 소바집에 종종 찾아가곤 했지만, 본고장 일본에 온 김에 맛있는 소바를 먹어보고 싶어 이런저런 가게들을 탐방해보았다. 일본의 면류 삼대장이 소바와 우동,라멘인데, 나머지 둘에 비해 소바는 상대적으로 까다롭게 구는 음식이라 메뉴선택은 물론, 알맞은 식사를 위해서도 약간의 지식이 필요하다. 그래서 적어본다. 알고 먹으면 더 맛있는 소바 이야기.


에비스역 인근 카오리야 소바(Kaoriya Soba)에서 굵은 면(太麵, 후토멘)에 참깨소스를 추가. 면이 굵고 메밀 함량이 높아 표면이 까끌까끌한 편. 참깨소스와 궁합이 좋다


아자부주반 상점가에는 사라시나호리이(更科堀井)라는 오래된 소바집이 있다. 1789년에 개점해 무려 8대째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점심 저녁 사이 어중간한 시간에도 30분 이상은 줄을 서야 할 만큼 인기가 좋다. 그런데 이 집 소바 좀 이상하다. 테방(定番, 그 가게의 대표메뉴라는 뜻) 메뉴를 시켜보면 이게 메밀소바인지 소면인지 구별이 안 된다. 내가 아는 소바랑은 달리, 면이 희고 탄력이 있다.


그래서 첫 번째 궁금한 점, 왜 어떤 소바는 흰색이고 어떤 소바는 짙은색일까?


사라시나호리이의 대표메뉴 사라시나 소바


흔히 메밀함량이 높을수록 색이 진하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소바가루를 만들 때 메밀껍질을 벗겨내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면 우리에게 익숙한 짙은 색 소바가 된다. 위의 사라시나 소바는 메밀껍질을 제거해서 면이 희고 탄력이 있다. 보기에는 소면이랑 비슷해보이기도 하지만 밀가루가 주재료인 소면과는 달리, 어쨌든 메밀을 주재료로 한 소바이기 때문에 은은한 메밀향이 느껴져서 아주 맛있다.


그렇다면 다음 질문, 소바는 어떻게 먹어야 할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소바는 자루소바. 우리에게 제일 익숙한, 차갑게 식힌 소바면을 쯔유에 찍어먹는 형태다. 이 때 쯔유를 담는 그릇을 소바초코(蕎麦猪口)라고 부른다. 초코라니 귀여운 단어다. 초코만 따로 쓰면 잔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이자카야에서 지각자가 합류했을 때 저기요, 여기 초코 하나 더 주세요! 이런 식으로 종종 쓰인다.


이렇게 생긴 채반을 자루라고 부른다. 자루에 담아 나오는 소바라서 자루소바라고 부르는 것.


그런데 자루소바를 다 먹고 나면 소바유토(蕎麦湯と)라고 하는 생소한 그릇을 가져다 준다. 당황하면 안 된다. 마치 매일같이 소바를 먹어왔던 것처럼, 소바초코에 남아있는 쯔유에 첨가해서 후루룩 마셔주면 된다. 내용물은 바로 소바유. 파스타를 요리할 때 면수를 버리지 않는 것처럼, 소바를 끓이고 난 물을 버리지 않고 두었다가 준비해주는 것이다. 일부러 메밀차도 마시는 판에 소바유를 못 먹을 이유가 없다. 메밀의 영양분이 녹아있어 건강에도 좋고, 쯔유와 섞으면 입가심하기에 적절한 음료가 된다.


소바유토(蕎麦湯と). 이유는 모르겠지만 꼭 붉은 색의 나무통에다가 준다.


자루소바처럼 '찍먹' 타입 말고도, 국물을 부어서 나오는 '부먹' 타입도 다양하다. 소바 위에 어떤 토핑을 얹는지에 따라 키츠네(きつね, 유부), 타누키(たぬき,  튀김고명), 츠키미(月見, 날계란), 야마카케(山かけ, 토로로(마를 갈아서 걸쭉한 식감을 낸 것)) 등으로 불린다. 여름이 되면 '부먹' 소바도 차갑게 식혀서 먹을 수 있기 때문에 더위에 지쳤을 때 후루룩 먹고 일어나기 좋다.


소바라는 이름도 사실 갖다붙이기 나름. 오키나와에 가면 먹을 수 있는 오키나와 소바는 우리가 아는 소바보다는 라멘에 더 가까워보인다.


마지막 질문, 소바는 어떤 술과 같이 먹는 게 좋을까?


나는 어느 음식에나 무난하게 잘 어울릴거라고 생각하고 나마비루(生ビール, 생맥주)를 시도해보았는데, 정말이지 대실패. 탄수화물 과다섭취였다. 메밀에 맥주까지 먹고나니 포만감이 과했다.


사진에서 잘 보이지 않지만, 왼쪽 작은 접시가 소바를 잘게 잘라 튀긴 스낵이다. 짭짤하기까지 해서 맥주안주로 딱이긴 하다. 다 먹고 나면 배가 불러서 그렇지...


하지만 많은 소바집들이 저녁 영업에 적극적으로 나서,이런저런 간단한 안주류를 구비해두고 이자카야 행세를 하고 있다. 일본의 술꾼들이 얼마나 까다로운데... 소바와 잘 어울리는 주종이 분명히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한 번 찾아보았다.


먼저 일본 소주(焼酎). 소주는 기본적으로 증류주이지만, 어떤 재료를 사용해서 증류했는지에 따라 종류가 나뉜다. 소바와 궁합이 좋은 건 당연하게도 메밀소주로, 두 메밀향이 서로 어우러져 상성이 좋다고 한다. 그리고 니혼슈(日本酒). 사케라고도 불린다. 쌀을 발효시켜 만든 술로 사람마다 취향이 조금 갈리기는 하지만소주보다 더 대중적으로 통용되는 조합인 듯 하다.


언뜻 상상이 잘 안 되지만, 소바와 레드와인도 추천할 만한 마리아쥬라고. 소바 특유의 떫은 맛이 레드와인과 잘 어울린다고 한다. 하긴 교자 집에서도 와인을 파는데 소바집에서 못 팔 이유가 없긴 하다. 아무튼 요즘은 소바와 와인을 같이 내 놓는 식당도 늘어나는 추세라고.




외국에 왔으니 그냥 외국인으로서 살면 편하지만, 그래도 가끔은 현지인처럼 나도 여유롭게 TPO에 맞는 리츄얼에 따르고 싶을 때가 있다. 얼마 전 소바집에서 소바유토를 처음 받고, 이걸 어떻게 해야하는지 몰라 당황했던 경험을 계기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사실 나부터 잘해야겠지만, 이 글을 읽게 된 분들도 소바집에 가서 무엇을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에 대해 조금이라도 참고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 이 글은 「An Illustrated Guide to Japanese Cooking and Annual Events」(링크) 라는 책을 참고하여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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