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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데이수 Feb 14. 2020

모녀여행, 티격태격한 시간들.

틈만나면 엄마랑 여행 다니는 딸 이야기, 두 번째 글이다.



난생 처음, 프랑스에서 사람 구경하기


파리에 가서 엄마가 제일 먼저 발견한 건 에펠탑이 아니라 프랑스 사람들이었다. TV에서 말고 현실에서는 난생 처음 보는 프랑스 사람이라고 했다. 엄마는 프랑스에서 눈에 띄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어디 엉덩이 붙일 자리만 있으면 마주보고 앉아 수다떠는 게 너무나 신기하고 재미있다고 했다.


"쟤들 저러다 코 부딪히는 거 아냐? 왜 저렇게 얼굴을 가까이 대고 있는거야?"

"원래 유럽 사람들은 말할 때 몸을 가만히 두지 않니? 손이 무지 빠르게 움직이네."


이 발견에서 시작된 파리에서 우리의 유흥거리, 어디 눈만 돌리면 눈에 띄는 수다의 현장에 대해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아무래도 정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저 둘은 조금 있으면 사귈 것 같지 않니? 눈빛이 심상치 않네. 등등.


생각해보면 나도 유럽에 첨 왔을 때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먼 나라 이웃 나라>를 읽으며 상상은 했지만, 아니나 다를까 정말 유럽 사람들은 말이 참 많구나! 내 경우에 운 좋게 그 생각을 스무살이 되는 해에 할 수 있었고, 엄마의 경우에는 유럽땅을 밟기까지 50년도 넘는 세월이 걸렸다는 차이가 있을 뿐. 스무살 적 내가 유럽에서 눈 돌아갔던 바로 그 시절처럼, 50대 엄마도 사소한 것에 소녀처럼 감탄하고 즐거워 했다.


그 후 여행에서 돌아오고도 한참동안 엄마는 TV에서 프랑스 사람이 나오면 눈에 띄게 반가워 하며 친한 척(?)을 했다. 그 때 세느강에서 봤던 프랑스 사람들처럼 TV 속 저 친구도 참 말이 많다고, 우리 아파트에 사는 이웃 소녀 이야기를 하듯이 말이다.



난바역에 갇힌 모녀


엄마랑 둘이 처음 가 본 여행지는 일본 오사카였다. 엄마도 나도 함께 여행하는 경험 자체가 처음이라 그 때는 몰랐지만, 돌아보니 그 여행은 우리 둘 다에게 어려웠던 것 같다.


오사카를 여행한다고 하면 열에 대여섯 사람은 난바(なんば)역 근처에 숙소를 잡는다. 공항으로의 이동은 물론 도심, 교외 어디든 이동하기가 편리하고 오사카 하면 누구나 떠올리는 관광명소인 도톤보리와도 가깝다. 편의상 난바역 근처라고 지칭하기는 하지만, 그 근처에 온갖 숙소들이 몰려있어 숙소 잡기도 어렵지 않다. 문제는, 편리한 대신에 엄청나게 복잡하다는 점이다.


그 때는 나도 일본여행이 처음일때라 지금보다도 더 어리버리 했다. 이 방향으로 가랬다가 저 방향으로 가랬다가 하는 방향지시에 이끌려 거대한 지하역사를 엄마 손 붙들고 두 시간 가까이 우왕좌왕 돌아다녀야 했다. 용기내어 현지인에게 어느 방향이냐고 물어도 속시원한 답을 들을 수 없어 어찌나 답답했던지.


(도쿄에 살고있는 지금은 이해한다. 예를 들어 난바역보다도 더 복잡하기로 유명한 신주쿠역 한복판에서 관광객이 나를 붙잡고 길을 물으면 "저도 잘 모르겠어요"라는 답이 절로 나올 것이다.)


처음 가 보는 행선지에서 길을 헤매는 거야 뭐 어찌 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 시절 오사카에서는 하필 지하에서 길을 헤매는 바람에 엄마가 무척 피곤해했던 기억이 있다. 지하철 역사 풍경은 서쪽출구나 남쪽출구나 다를 게 없고, 나야 구글맵도 보고 지나가는 사람 붙잡고 길도 물어보고 하니 그나마 덜 지루하지만, 엄마는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같은 풍경속에 두 시간이나 갇혀 내내 걸어야 했으니 고문도 그만한 고문이 없었을 것이다.


난바역은 대략 이렇게 생겼다. 지금이라면 조금 더 잘 찾아갈 수 있을까? 적어도 그 때 나에게는 거대한 미궁 같은 곳이었다. 출처는 오사카 메트로 홈페이지.


미술관은 이제 그만!


아, 욕심을 버려야 하는데 도무지 잘 버려지지 않는 게 바로 미술관이다. 런던과 파리 여행에서 미술관이 빠지면 뭐가 남는단 말인가. 그래도 빼야했다. 최선을 다해 뺴고 빼 보았지만 파리의 오르세와 오랑쥬리는 도무지 포기할 수가 없었다. 나도 그렇지만 엄마는 미술에 대해 잘 몰라 지루할 수 있으니(라는 핑계로) 무려 3시간의 오르세 가이드 투어 일정도 우겨넣었다.


결국 그 날 오르세에서 엄마는 3시간 투어 중 1시간 반을 꾸역꾸역 버티고, 나머지 시간은 미술관 벤치에 앉아 꾸벅꾸벅 졸며 보냈다. 그 때 교훈을 얻어 엄마랑 가는 여행에서는 미술관 일정을 넣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나도 20대 초반 유럽 여행 하던 시절에는 미술관에 영 관심이 없었다. 대영박물관, 루브르미술관 모두 내가 벤치에 앉아 늘어지게 자던 곳으로 기억된다. 하도 잘 자서 내게 무슨 일 있는 줄 알고 맘씨좋게 깨워주던 서양인 할머니 얼굴이 아직도 떠오르네.


그 때는 나도 미술작품을 어떻게 감상해야 할지 몰라 잠이나 잤었다. 나야 그 후로 한국에서 데이트 코스로 미술관에 가 보고 미술에 대한 책도 찾아 읽어 보고 하며 미술관과 조금쯤 가까워졌지만, 엄마는 미술관에 발 들여본 일 자체가 없는 와중에 그 넓은 오르세에 던져졌으니 졸릴만도 하지.



나보다 더 내 몸을 아껴주는 시간


이번엔 태국이다. 필자는 휴양지와 도시 중 고르라면 무조건 도시를 택하는 도시 여행자다. 방콕은 도로마다 자동차가 꽉 들어찬 도시중의 도시이면서도, 잘만 찾으면 휴양지의 어느 리조트 같은 한적한 공간도 즐길 수 있는 매력적인 여행지다.


혼자서, 그리고 친구와 함께 1년에 한 번 꼴로 방콕을 드나들다가 이번에는 엄마와 함께 갔다. 그 유명한 태국 마사지 제대로 한 번 받아보자고 트립 어드바이저 등 온갖 여행정보 사이트를 뒤져 멋진 마사지샵에 미리 예약을 하고 갔다.


웰컴티를 한 잔 하는 동안 엄마는 눈이 휘둥그레 해 져 주변을 돌아봤다. 샵에 도착하기 전 택시타고 지나가던 풍경과 샵 내부의 풍경이 전혀 딴판으로 달라서였을 것이다. 호화로운 분위기 속 기분마저 호화로워지는 것 같았다. 우리가 택한 건 90분 동안 등, 어깨, 다리 등 온 몸을 마사지해주는 코스였다. 사전에 질문지를 받아 어디어디가 아픈지 표시하고, 마사지 받을 때 입는 옷으로 갈아입는 과정이 엄마는 너무 신기했나보다.


마사지를 받는 내내 엄마는 별 소리도 내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나중에는 피곤했는지 얕게 코 고는 소리도 들려왔다. 옷을 갈아입고 앉아 망고 스티키 라이스를 깨작깨작 떠먹으며 엄마가 말했다.


이 사람들이 나보다 더 내 몸을 아껴주네.
마사지 받고 나니 어깨가 하나도 안 아파.


울엄마 어깨 안마 좀 자주 해줄걸. 꼴랑 5분 하고 손 아프다고 도망가지 말고 좀 진득하게, 엄마 몸을 아껴주며 꾹꾹 눌러줄걸. 그게 그렇게 좋았나. 괜히 찡한 마음이 들었다.


고작 햄이 먹고 싶어서 싸우다니


작년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생긴 일이다. 이름만으로는 생소한 도시 볼로냐에 가기로 한 이유가 두 가지 있다. 첫 번째는 가격, 인기노선인 바르셀로나-로마 보다는 상대적으로 비인기노선인 바르셀로나-볼로냐가 훨씬 저렴했다. 두 번째는 먹는 욕심 때문이었다. 볼로냐는 예로부터 먹보의 도시로 유명하다고 한다. 고기를 잔뜩 넣고 느끼하게 끓여 낸 볼로네제 파스타의 원산지답게, 햄과 치즈가 맛있다고.


이 지점에서 엄마와 내 라이프스타일의 근본적인 차이에 대해 이야기해야겠다. 우리는 먹을 거 취향이 너무너무 다르다. 아, 나는 엄마 딸인데 왜 이렇게 먹을 걸 좋아할까?


엄마는 집밥이 제일 맛있고, 밖에서 먹는 밥은 다 그냥 그렇다고 한다. 한식을 특별히 선호하냐면 또 그렇지도 않다. 오히려 한식 특유의 진한 양념맛을 불편해하는 편에 가깝다. 그러니 여행을 가서도 호텔 조식을 신청해서 빵과 요거트, 과일 등의 간단한 음식을 잔뜩 먹고, 점심 나절에는 우유가 든 음료수나 한 잔 사먹고 때운 다음, 저녁에는 적당한 식당에서 샐러드나 피자, 파스타 정도의 음식을 먹으면 아무 불만이 없다.


그치만 내 생각은 다르다. 여행지에서의 경험 중 식문화도 빠뜨릴 수 없는 즐거움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나라에 가든 그 나라에만 있다는 음식은 꼭 먹어보고 싶어하고, 만약 그 음식에 나름대로의 이야깃거리와 경험이 곁들여진다면 더욱 더 욕심이 난다.


볼로냐에서 우리 숙소는 구시가지의 마조레 광장 한복판에 있었다. 사각의 광장을 빙 둘러 구석구석 골목길이 나 있는데, 그 중 한 골목을 따라가면 신세계가 나타난다. 거대한 돼지고기 생햄이 칼로 긁어 낸 단면을 자랑하며 존재감을 뽐내고, 색색깔의 소세지가 천장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으며, 유리로 된 냉장고 안에는 각양각색의 치즈들이 늘어서 있다. 어디 애니메이션에서나 봤음직한 풍경이다. 각자 취향에 따라 주문해서 한 접시에 소세지 한 웅큼, 치즈 한 웅큼씩 채워놓고 와인 안주로 야금야금 먹는 방식이다.


이 풍경을 보고 나는 눈이 돌아갔고,

엄마 말에 의하면 엄마는 내가 이 끔찍한 햄을 먹자고 할까봐 겁이 덜컥 났다고 한다.


그 날 우리는 대판 싸웠다. 나도 참 우스운 게, 엄마 나 저 햄이 꼭 먹고싶어 라고 솔직하게 말했으면 될걸, 어줍잖게 배려한답시고(사실은 배려가 아니라 엄마가 내 마음을 알아줬으면 하는 이기적인 마음인지도) "엄마 뭐 먹고 싶어?"라고 돌려돌려 물었다. 빙빙 꼬인 말이 오해를 부르고, 오해는 다시 오해를 불러 우리는 마조레 광장에서 신경전을 벌였다.


돌이켜보니 어이가 없다. 고작 햄이 먹고 싶어서 싸우다니. 싸운 이유가 잘 기억나지 않듯, 화해하게 된 계기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서로 감정은 상했지만 그래도 싸우고 싶지는 않아 우물쭈물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광장 한 켠에 있는 노천카페로 발길을 옮겼던 기억이다. 둘 다 술도 약한 주제에 그 카페에 앉아 와인 한 병 반을 비웠다.




밥을 같이 먹는 사이, 식구(食口)


가족과 식구, 같은 말 같지만 미묘하게 뉘앙스는 다르다. 해외 나와서 살다보니 더욱 뼈저리게 느껴진다. 가족은 언제가 됐든 가족이지만, 식구는 밥을 같이 먹는 사이를 식구라고 한다. 2019년 볼로냐에서 한 판 하던 때 나는 이미 해외에서 혼자 생활하기 시작한지 1년 반이 되어갔었다.


화이트 와인을 주량보다 더 마시고 얼굴이 새빨개진 엄마 말에 의하면, 내가 아무리 살갑게 하고 여행을 같이 오고 해도, 집에서 투닥투닥 하던 때에 비해서는 왠지 대하기가 조심스럽고 멀게 느껴진다고 한다.


한편 햄을 먹고 먹지 않고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지만, 햄을 먹고 싶은데 먹고싶다고 솔직하게 말하지 않았던 내 태도를 돌아보면 나 역시 알게 모르게 엄마를 '배려해야 할 상대'로 느꼈던 게 아닌가 싶다.


이런 이야기를 여행지에서가 아니면 또 언제 할 수 있겠는가. 싸우지 않았다면 더 좋았겠지만, 싸우고 나서도 어디 도망갈 곳 하나 없이 서로를 마주보고 풀어야만 한다는 점에 여행지의 장점이자 단점이 있는 것 같다. 처음에는 서로 씩씩댄지 얼마 안 돼 어색한 기분이었지만, 와인잔을 부딪히며 홀짝홀짝 들이키다보니 긴장감이 풀어졌다. 늦은 저녁까지도 광장에 나와 노래도 부르고, 술주정도 부리는 볼로냐 사람들을 구경하는 건 덤.



공항에는 늘 여유롭게 도착합시다


오늘의 마지막 에피소드는 2년 전 일본 홋카이도에서 생긴 일이다. 홋카이도는 한반도의 4분의 3 크기에 달하는 엄청 큰 섬이다. 우리는 삿포로 공항에 내려, 라벤더 밭으로 유명한 후라노와 비에이를 거쳐, 동물원으로 유명한 동쪽의 아사히카와 까지 갔다가 후라노에서 마지막 일정을 즐겼다.


우리가 갔던 4월 말은 홋카이도 하면 떠오르는 눈밭도, 라벤더 밭도 없는 쌩 비수기였다. 그래도 도시에 살다 온 우리 눈에는 렌트카 타고 시골길을 달리며 양옆에 보이는 논밭 풍경이 이국적이고 좋았다. 그 논밭 한가운데에 우리가 눈여겨 봐 둔 화덕피자집이 있었다. 후라노에서의 첫 날 카페인 줄 알고 점심을 먹고 갔다가 화덕피자를 못 먹게 되어 입맛을 다셨다. 그리고 그게 못내 아쉬워 마지막 날 공항가는 길 시간을 내 다시 그 곳에 들른 것이다.


화덕피자집의 창 밖 풍경. 지금 봐도 너무나 멋지다. 흰 뭉게구름과 설산이 겹쳐져 잘 구분이 안 된다.


고즈넉한 창 밖 풍경과 아기자기 따스한 실내 인테리어를 즐기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는데, 정신이 들고보니 무려 1시간이 넘게 피자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급히 주방에 물어보니 지금 막 피자를 화덕에 넣었고 나오려면 20분 이상 걸린다고 했다. 아, 망했다. 처음 우리 계산으로는 식당에 도착해 피자를 먹는 시간까지 다 합해 1시간도 안 걸릴 거였다. 그런데 이대로라면 식당에서 2시간은 보내게 되어, 공항 가는 시간이 촉박할 것 같았다.


시간이라는 게 어쩜 이렇게 상대적인지. 공항 가는 걱정 없이 세월아 네월아 할 때는 1시간이 넘도록 여유롭고 행복했는데, 한 번 초조한 마음이 들고보니 거의 5초에 한번꼴로 주방 상황을 점검하게 되어 시간의 밀도가 완전히 달라졌다. 평일과 주말의 차이가 이런걸까.


그 놈의 피자, 그냥 포기하고 일어섰으면 더 나았을까? 프랜차이즈 피자집도 아니고 식당 주인이 오랜 시간 정성스럽게 만들어 준 음식인데 그냥 두고 갈 수 없어 꾸역꾸역 기다려 순식간에 먹어치웠다.


어렵게 출발하고 나서도 설상가상으로 고속도로에서 예상치 못한 정체를 만나 지옥과도 같은 2시간을 보냈다. 홋카이도 고속도로는 차선이 하나밖에 없다. 에이 설마, 싶겠지만 정말이다. 알고보니 하나뿐인 차선에서 하필 사고가 나는 바람에 갓길로 사고차를 옮기는 데 시간이 걸려 정체가 발생했다고. (운전하는 내내 폭발하기 일보직전인 엄마에게 아주 미미하게나마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나는 멀미를 꾹 참고 일본어로 된 사이트를 뒤져 정황을 파악해야 했다.)


다행일지 불행일지, 온갖 지연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비행기 출발 1시간 전 아슬아슬하게 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우리 엄마는 공항에 무조건 3시간 전 도착하는 걸 목표로 여유시간을 넉넉하게 잡고 출발해, 결국 3시간 반 전에 도착하는 유형의 사람이다. 처음에 엄마의 계산법대로 시간을 계산했기 망정이지 내가 평소에 하는대로 2시간 전에 도착하려고 했다가는 분명 비행기를 놓쳤을 것이다.


하루동안 완전한 평화와 완전한 지옥을 오가며 얻은 교훈. 공항에는 늘 여유롭게 도착합시다.


아차, 그 때 그 화덕피자집에서 이런 말을 했다가 뼈도 못 추리고 혼났다.


"엄마, 어차피 늦을거였는데 늦었다는 사실을 너무 빨리 알았어. 아까 몰랐을 때 행복했는데. 피자 먹을때까지만 몰랐으면 좋았을걸. 피자가 고무같고 맛이 하나도 없어."





두 번째 에피소드도 너무 신이나서 순식간에 써버렸다.

엄마, 우리 여행 가자. 첫 번째 포스트를 관련글로 걸어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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