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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데이수 Feb 13. 2020

엄마, 우리 여행 가자.


엄마와 딸의 여행기. 올해 5월에 동유럽까지 다녀오면 무려 8개국 13개 도시가 된다. 처음부터 계획한 건 아니고, 다니다보니 그렇게 되었다.


2020년 5월(예정) : 오스트리아 비엔나, 헝가리 부다페스트

2019년 4~5월 : 스페인 바르셀로나, 이탈리아 로마, 피렌체, 볼로냐

2018년 5월 : 일본 홋카이도

2017년 8월 : 태국 방콕

2017년 4월 : 일본 도쿄

2016년 7월 :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

2016년 3월 : 한국 제주도

2013년 10월 : 일본 오사카


엄마랑 둘이 여행을 다닌다고 하면 주변에서는 대단한 효녀라고들 한다. 뭐 그래, 처음에는 그런 갸륵한 마음에서 시작했던 것 같기도 하다. 해외 여행 다니며 내가 보고 느낀 것들을 엄마와 공유하고 싶다는 마음이랄지.


하지만 같이 여행한 경험이 쌓일수록 다른 이유보다는 다른 사람과 가느니 엄마랑 가는 게 제일 편하다. 이제 우리는 서로가 대략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잘 알고, 적당한 배려와 양보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균형을 지킬 수 있다. 그야말로 최고의 여행 메이트다.


엄마, 우리 여행 가자



유럽 하면 떠오르는 것, 빅벤과 에펠탑.


엄마와 여행을 하려면 내 욕심만 부리지 말고, 엄마 말을 잘 들어봐야 한다.

여행지를 선택할때만 해도 그렇다.


2016년 7월 엄마와 첫 유럽여행을 계획할 때 일이다. 나는 대학생 때 어학연수다 교환학생이다 해서 유럽 여러 나라를 여행한 기억이 있고, 엄마는 유럽이 처음이었다. 내심 그간 내가 가 보지 않은 유럽의 어느 나라로 가고픈 마음을 숨긴 채 엄마에게 "엄마, 유럽 어느 나라에 가고 싶어?"라고 물었다.


엄마의 대답은 아주 신속했다. "난 런던이랑 파리."


런던이랑 파리. 유럽 여행을 하면 누구나 떠올리는 곳. 런던에는 빅밴과 런던아이가 있고, 파리에는 에펠탑과 개선문이 있다. 엄마는 런던도 파리도 가본 적 없지만, 엄마 친구들이 패키지 여행을 다녀와서 카카오톡에 올린 프로필 사진을 보며 늘 부러운 마음을 품어왔다고 한다. 거기에 "내가 유럽에 언제 또 가 보겠니. 기왕 가는김에 런던이랑 파리에 가고 싶어"라는 '엄마語'를 덧붙이니 이건 뭐, K.O.패다.



패키지 여행의 논리, 자유 여행의 논리.


엄마와 내가 언젠가 스페인에 같이 갈 거라는 건 (엄마는 몰랐어도) 내게는 이미 정해진 사실이었다. 타워브릿지가 한 눈에 바라다 보이는 노천카페에 엄마랑 둘이 앉아 샐러드를 먹으며 스페인 얘기를 했던 탓이다.


"다음에 유럽에 온다면 어딜 가고 싶어?"

"에이, 내가 유럽에 언제 또 와 보겠니."

"왜? 나랑 또 오면 되지."

"지금이야 그렇지, 나중엔 남자친구랑이나 가지 엄마랑 가겠어?"

"그건 모를 일이지. 어디를 제일 가고 싶은데?"

"엄만 잘 모르지... 글쎄... 꽃보다 할배들이 갔던 스페인?"


그렇게 3년이 흘러 2019년 5월. 일본의 장기 연휴인 골든위크를 앞두고 몇 개월 전부터 바르셀로나행 왕복 비행기 표를 끊었다. 바르셀로나에서만 8박9일을 보낼 수 없으니 주변의 다른 도시를 찾아야 한다.


처음에는 바르셀로나에서 렌트카를 빌려 프랑스 남부 도시들을 순회하는 상상을 했다. 고흐가 말년을 보냈던 아를이라든가, 매년 영화제가 열리는 칸느라든가. 아, 상상만 해도 설렜다.


엄마 마음은 달랐다. 아를이니 칸느니 엄마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이름이고, 프랑스는 이미 3년 전에 다녀왔기 때문에 다른 나라를 '찍어보고 싶다'고 했다. 내가 조금 더 강하게 우겼으면 엄마도 양보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을까? 아, 이것 참 내 친구만 됐어도 조금 더 우겨봤을텐데. 엄마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너무나 이해가 되니 엄마가 원하는 대로 해 주고 싶었다.


엄마 세대의 여행은 8박9일만에 7개국을 '찍고 오는' 패키지 여행이다. 그래. 비교적 어릴적부터 여러 나라에 돌아다닐 기회가 있던 나도 세계지도를 보면 어디어디 가 봤는지 찍어보고 싶은데, 엄마는 오죽할까? 그래서 결국 비행기 타고 로마로 갔다가, 피렌체를 찍고 볼로냐까지 가서 다시 바르셀로나에 돌아오기로 했다.



나 몰래 피곤한 엄마


나는 평소에 여행일정을 빡빡하게 짜는 편이 절대 아니다. 그런데도 이탈리아에서의 3일 동안 3개 도시를 돌아보기로 한 건, 짧은 일정 동안 하나라도 더 많은 경험을 했으면 하는 엄마의 여행방식을 존중해서였다. 엄마는 불평도 않고 하루에 3만보를 거뜬히 걸었다. 하지만 정말 안 피곤했을까?


엄마는 이동수단에만 올라타면 틈틈이 졸았다. 로마에서 피렌체로 향하는 열차 안에서 창 밖 풍경이 너무나 아름다워 엄마를 깨우고 싶다가도, 곤히 자는 엄마의 모습에서 피곤해도 꾹 참고 딸과의 여행에 집중하겠다는 의지가 보여 나도 그냥 꾹 참았다.


그뿐 아니다. 파리 오랑쥬리 미술관 앞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정원 벤치에서 분수를 바라보며, 해질 녘 옥스포드의 한 성당에 앉아 오르간 연주를 들으며, 심지어 런던 웨스트엔드의 멋진 뮤지컬 극장에서 <맘마미아>를 보면서도, 어디 따뜻한 데 앉기만 하면 틈틈이 잘 잤다.


"엄마 피곤하지?"

"아니, 안 피곤해."

"근데 왜 뮤지컬 보면서 잤어! 이거 엄청 비싼 표란 말이야."

"에이, 잠깐 졸려서 존 거야. 뮤지컬 재밌던데 왜."


나 몰래 피곤한, 엄마의 마음.



숙소는 편안해야 한다


엄마와 여행한 경험이 쌓이면서 내가 알게 된 것,

엄마와 여행할 때 숙소는 무조건 편안해야 한다.


아, 숙소. 2016년에 런던과 파리를 여행할 때 내가 아주 잘못 생각한 부분이었다. 엄마랑 가는거니 3성급 이상으로는 해야겠고, 런던과 파리의 호텔 요금은 입이 턱 벌어지게 비싸고. 런던에서는 그래도 Ibis 체인을 이용해서 방은 좀 좁아도 편히 쉴 수는 있었는데, 파리에서 묵기로 한 숙소는 여러모로 최악이었다.


위치적으로는 샹젤리제 골목 어드메에 있어 일정 중간중간 피곤하면 잠시 숙소에 들를 수 있어 좋았는데, 시설이 문제였다. 침대는 좁고 딱딱했고, 화장실은 옆방과 쉐어하는 구조였다. 방음도 거의 되지 않아 밤새 창 밖으로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 자동차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려 잠들기가 어려웠다. 나는 비교적 어디서든 잘 자는 편이지만 엄마는 잠귀가 예민해 거의 한 숨도 자지 못했다고 한다.


그 불편한 숙소에서 하룻밤을 거의 꼬박 새고, 나머지 날에 대한 숙박비를 환불받지 못할 걸 각오하고라도 다른 호텔로 옮기기로 했다. 천만다행으로 Ibis 호텔 홈페이지에서 만 25세 이하 한정 당일 프로모션을 찾아 내 아주 저렴한 가격에 새 숙소를 예약할 수 있었다. 그래도 전 숙소 값에 새 숙소 값을 더하면 웬만한 4성급 호텔 정도는 예약할 수 있는 금액이라 속이 쓰리긴 했지만 말이다.


그 후로 엄마와 여행할 땐 최소 3성급 이상 호텔을 잡는다. 요즘은 요리나 빨래를 해결할 수 있는 레지던스형 숙소나 에어비앤비를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는데, 그래도 호텔이 안심된다. 집주인 사정 때문에 갑작스럽게 예약이 바뀔 염려도 없고, 24시간 로비에서 체크인이 되니 늦게 도착해도 걱정이 없다. 엄마랑 여행할 땐 변수를 줄이는 게 중요하다.


엄마랑 묵었던 호텔 이야기는 다음에 기회가 되면 조금 더 풀어보려고 한다.



호텔 조식, 남이 차려주는 아침상.


호텔 조식에 대한 의견 차이도 재밌다. 엄마는 호텔 조식을 좋아한다. 내가 뭔가 우리 여행에 사치스러운 포인트를 넣으려 하면 일단은 "에이"라는 반응부터 나오기 마련인데, 호텔 조식만큼은 한 번도 사양해 본 적이 없다. 평생 엄마 손으로 아침상을 차리다가, 간만에 남이 차려주는 아침상을 받는 게 너무너무 좋다고 한다.


솔직히 예약하는 내 입장에선 좀 아깝기도 하다. 더군다나 조식 포함과 불포함 요금의 차이가 클 때는 더더욱 그렇다. 그래도 호텔 조식 먹으러 내려갈 때 엄마 표정을 보면 아까운 마음도 사르르 녹아 사라진다. 엄마가 진짜 신이 나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간 여러 호텔을 다녔으니만큼 호화로운 조식도 있고, 비교적 소박한 조식도 있었다. 어느쪽이든 엄마는 다 좋아한다. 먹고싶은 음식을 골라 양껏 먹고, 식후 커피까지 그 자리에서 해결할 수 있는 게 너무 좋다고 한다. 엄마가 워낙 입이 짧아 여행지에 가서는 엄마가 만족할 만한 끼닛거리를 찾기가 쉽지 않은데, 호텔 조식을 잘 먹고 나간 날은 무엇을 얼마나 먹든 속이 든든해서 돌아다닐 기운이 난단다.





아, 적다보니 엄마와의 여행에 대해서는 정말 적을 말이 많고 많다. 글을 쓰는 내내 엄마와 투닥투닥한 시간이 떠올라 미소가 지어진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다음 포스팅을 들고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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