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이 계속되어 여행은 취소하기로 했다. 하지만.
5월 초 엄마와 둘이서 오스트리아 빈과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여행을 가기로 계획하고 있었다. 항공편과 호텔을 예약하고, 어디 가서 뭘 할지도 검색하는 등 신나게 준비했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취소하기로 했다. 말 그대로 꿈만 꾸다 끝나버린 여행이다.
하지만 그간 들인 시간이 아깝기도 하고, 필자가 꿈꿨던 여행의 요소들 몇 가지를 공유해본다.
내가 골랐던 숙소들
그 전 포스팅에서 엄마와의 여행에 대해 적었는데, 팁을 추가하자면 숙소는 무조건 관광지 근처로 잡는 게 좋다. 여행을 하다보면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밖을 돌아다녀야 한다. 젊은 나도 피곤한데 엄마는 오죽할까? 그래서 엄마와 여행할 때는 반드시 관광지에서 도보 이동이 가능한 위치에 숙소를 잡고, 오후 3~4시경에 잠깐 호텔에 들러 한 숨 돌리고 나가곤 한다.
빈은 전체적으로 숙박비가 비싸다고 느껴졌다. 동유럽이니까 서유럽에 비해서는 저렴하겠거니 생각했는데 체감상으로는 거의 비슷한 수준이랄까. 관광지 대부분이 뮤지엄 쿼터 안에 모여있어 반드시 쿼터 안으로 숙소를 구하려고 생각하니 더 어려웠다.
빈에서 묵고 싶었던 숙소를 적어보자면,
- 25 Hours Hotel Vienna : 독일 베를린에서 시작된 부띠크 디자인 호텔 체인이라는 25 Hours Hotel을 알게되었다. <나는 호텔을 여행한다>라는 책을 읽으면서였다. 마침 빈에도 지점이 있어 꼭 묵어보고 싶었는데, 찾아보니 위치가 뮤지엄 쿼터 바깥이라서 고민하다 아쉽게 포기했다.
- So/Vienna : So/Singapore에 묵었을 때 아주 만족했던 기억이 있다. 룸 디자인도 예쁘고, 과하지 않게 센스있는 서비스도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So/Vienna도 알아보았는데, 이 곳은 무료취소가 가능한 옵션으로 예약하려면 1박에 40만원 가까운 금액이 되어 고민하다 포기했다.
여러 고민을 거쳐 빈에서의 숙소는 아파트먼트형 호텔로 예약했다. 호텔스닷컴에서 위치나 사진, 리뷰를 꼼꼼히 확인하고 예약하긴 했지만 막상 가보지 않았으니 실제로 어땠을지는 결국 모르겠다.
한편 부다페스트는 빈에 비한다면 평균적인 숙박비가 저렴한 편이었다. 어차피 야경을 보러 돌아다녀야 하니 대표적인 야경 스팟인 세체니 다리까지 도보 이동할 수 있는 위치에 숙소를 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조금 욕심이 나서 2박 중 1박은 방에서 국회의사당 야경을 볼 수 있다는 인터컨 부다페스트로 하고, 나머지 1박은 인터컨에서 도보 5분 거리에 비교적 최근에 오픈한 부띠크 호텔인 D8 Hotel로 정했다.
특별한 장소에서 아침을
빈에서는 아파트먼트형 호텔에 묵기 때문에 호텔 이외의 장소에서 조식을 해결해야 했다. 원래 좋은 레스토랑에 갈 때는 디너보다 런치에 가는 게 가격적으로 이득이지만, 엄마는 점심은 생략하자는 주의이니 점심 대신 아침에 가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럽 다른 도시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빈에는 특히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건물을 개조해서 만든 호텔이 많은 것 같았다. 식사를 핑계로 그 건축물의 안과 밖을 경험해보고 싶었다.
첫 번째, 옛 유럽 공주가 살던 궁전을 개조한 호텔에서의 아침식사. Palais Coburg의 Clementine이라는 레스토랑이다. 호텔 숙박객이 아니라도 오전 7시부터 11시까지는 식사를 할 수 있다고. 이 곳에서 우아하게 아침식사를 하고, 호텔 앞 작은 정원을 산책하며 아침을 시작하고 싶었다.
https://palais-coburg.com/en/culinary/clementine/
두 번째, 오스트리아 헝가리 왕국의 왕립 은행이던 건물을 개조해 만든 호텔에서의 아침식사. 이번에는 유명한 체인 호텔인 Park Hyatt이다. 슈테판 성당 바로 옆의 암 호프(Am Hof) 광장에 위치해 있어 아침식사를 하고 바로 관광을 시작하면 되겠다는 계획이 섰다.
영화 <글루미 선데이>의 레스토랑에 다시 한 번
부다페스트에는 특별한 기억이 있다. 폴란드에서 교환학생으로 있던 시절 제일 친하게 지내던, 그리고 지금도 제일 친한 친구와 둘이 여행을 갔던 장소이기 때문이다. 당시에 우리는 동전 하나가 아쉬운 가난한 학생이었다. 그래도 부다페스트까지 왔는데 뭔가 특별한 경험을 해보자며 여행을 떠나기 전 영화 <글루미 선데이>를 같이 보고, 그 영화의 배경이 된 레스토랑에 같이 갔었다.
우리가 갔던 레스토랑 군델(Gundel)은 1894년에 처음 생겨서 100년도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다. 음식 맛 보다는 웨이터 할아버지가 기억에 남는다. 오래된 레스토랑의 분위기 만큼이나, 머리가 하얗게 센 베테랑 할아버지가 세련된 - 그리고 따스한 미소로 우리를 대해주셨다. 그 때 밥값이 인당 4만원이 조금 안 됐던가. 한 달 생활비 20만원 남짓으로 살아가던 시절이었으니 엄청 비싼거였다. 서비스료가 붙어 에상보다도 조금 더 나온 빌지를 앞에 두고 우리는 얼마 남지 않은 포린트를 동전까지 싹싹 긁어 야무지게 더치페이 했다. 웨이터 할아버지는 우리의 궁상맞음이 전혀 부끄럽게 느껴지지 않도록 세련되게 접객 해 주셨다.
내게 소중한 기억을 엄마와도 나누는 의미로 부다페스트에서의 하루 저녁 시간을 비워 군델을 방문할 계획이었다. 입맛이 까다로운 엄마를 위해 코스요리 대신 A la carte를 주문할 생각으로 대표 메뉴도 알아놓았었다. 음, 적다보니 조금 우울한 마음이 든다.
빈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바에서 칵테일 한 잔
앞에서 So/Vienna에 묵어보고 싶었다는 이야기를 썼는데, 숙박은 못 하더라도 공간 자체를 경험은 해 보고 싶었다. 이럴때는 레스토랑이나 바를 찾으면 된다. 마침 호텔 18층에 빈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Das Loft라는 바가 있다고 해서 마음속으로 찜 해두었었다.
아래 사진인데, 천장에 마치 노을빛을 연상시키는 그래픽이 있어 창가에 앉아 해 지는 모습을 바라보면 창 밖 풍경과 천장 디자인이 만나 무척 아름답다고 했다.
기쁨의 축제(Fest der Freude)
5월8일은 유럽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날이다. 나치 독일이 항복을 선언하면서, 길고 길던 제2차 세계대전이 끝을 향해 가게 된 것. 우리나라가 8월15일을 광복절로 기념하듯, 오스트리아도 나치 독일에서 해방된 5월8일을 전승기념일로 기념한다고 한다.
또한 관광객 입장에서는 이 날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환희의 송가' 공연을 무료로 볼 수 있다는 의미가 있다. 전승기념일을 기념하는 행사인 기쁨의 축제(Fest der Freude)이다. 예전에 교토를 여행할 때 1년 중 제일 큰 마츠리인 기온 마츠리와 날짜가 겹쳐 마츠리를 보기 위해 모인 인파를 구경하며 무척 즐거웠던 기억이 있는데, 비슷하게 이 나라 사람들이 어떻게 축제를 즐기는지 엿볼 수 있는 기회겠거니 기대하고 있었다. 흑흑. 적을수록 슬프다.
https://www.festderfreude.at/en
부다페스트 근교의 작은 마을 센텐드레(Szentendre)
엄마는 가급적 여러 도시를 경험해보고 싶어하는데, 동유럽 안에서도 빈의 위치가 조금 애매해서 여러 도시를 끼워넣기가 어려웠다. 특히 빈과 부다페스트를 동시에 일정에 넣으려면 오스트리아 안에서 잘츠부르크나 할슈타트 같은 다른 도시에 가기가 좀 애매해진다.
일정을 이리 짜 보고 저리 짜 보고 하다가 결국은 빈과 부다페스트 두 개 도시만 가는걸로 정리를 하고, 대신에 부다페스트에서 하루 당일치기 일정을 찾아보았다. 그렇게 찾아낸 곳이 부다페스트 시내에서 1시간 정도 거리의 작은 마을 센텐드레(Szentendre). 헝가리 중세의 분위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고, 예술가들이 정착해 있어 아기자기한 갤러리와 카페 등이 많다는 말에 끌려 선택했었다.
5월까지 상황이 어떻게 바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탈리아를 필두로 유럽에도 확산이 시작되고 있어 여행 계획을 그대로 두기에는 좀 찝찝한 마음이 들었다. 설령 5월 전까지 이 사태가 종식이 되더라도, 중국인을 비롯한 아시아인에 대한 인종차별 문제도 있을 것 같아 아쉽지만 여행은 다음 기회를 기약하기로 했다.
지금은 사실 유럽도 유럽이지만 한국에 가고 싶다. 따스한 우리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뉴스를 보며 이 일을 어쩌나 한탄하고 싶다. 평소에는 잘 모르겠다가도 이렇게 어려운 일이 있을때면 가족과 함께 지낸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깨닫게 된다.
뭐, 하소연을 하자면 끝도 없지만, 어쨌든 꿈만 꾸다 끝나버린 동유럽 여행에 대해서는 여기까지만 적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