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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데이수 Mar 14. 2020

집순이 라이프, 주말엔 바빠서요.

MBC 예능 <나 혼자 산다>를 즐겨본다. 이번주에는 아이오아이/구구단의 세정 이라는 아이가 나왔다.


자취를 시작한지 딱 3개월째라고 했다. 꼭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들을 잔뜩 사들여 수납장마다 꽉꽉 들어 차 있는 모습이나, 먹다남은 피자를 데워먹더라도 그릇에 옮겨담고 나름대로 세팅해서 먹으려는 모습들. "아 나도 그랬지!"라는 생각에 흐뭇해졌다.


아, 나도 그랬지!


과일 하나를 먹더라도 예쁜 접시에 담아서 제대로 먹는다. 설거지 하기가 좀 귀찮긴 하지만, 그래도 준비하는 과정, 먹는 과정, 치우는 과정 모두 다 나를 위한 시간이다.





스물 아홉살에 처음 혼자 나와 살게 되었다. 그 전에도 이런저런 기숙사에 산 적은 있었지만, 기숙사 말고 내 집에서 하나부터 열까지 내 스스로 관리하며 사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라우터로 와이파이를 연결하고, 전기와 수도를 신청하고, 초면인 인덕션과 한참 씨름하다 겨우겨우 물 끓이는 데 성공하는 등 누구 하나 도와줄 사람 없는 가운데 내 생활을 이루는 요소 하나하나를 채워나갔다. 그 과정은 마치 게임 같았고, 나는 게임 속 세상에서 제일 쓸모없는 뉴비였다.


게임으로 치면 HP가 깎일법한 자잘한 실패도 많이 겪었다. 혼자 사니까 괜찮겠지 하며 너무 작은 용량의 세탁기를 산 덕분에 가끔 이불빨래라도 하려 하면 어디서 전쟁난 것 같은 굉음이 들린다든지, 식탁과 의자를 각각 다른 가게에서 사 왔는데 맞춰놓고 보니 높이가 안 맞아서 식탁 다리에 두꺼운 책을 몇 권씩 괴어놓고 지낸다든지. 등등.


전자렌지를 먼저 사고, 그 다음 철제 수납장을 샀다. 전자렌지가 생각보다 커서 각 모서리에 아슬아슬하게 걸쳐놓았다. 다행히 나름 안정적으로 버텨주고 있지만 보기에는 좀.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하나하나 마련한 살림들이 모여 지금의 우리집이 됐다. 어떤 부분은 마음에 쏙 들고, 어떤 부분은 좀 아쉽기도 하지만, 어쨌든 어느 하나 내 손으로 고르지 않은 물건이 없기 때문에 애착이 간다. '내 공간'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일까? 집에 있는 시간이 점점 좋아지는 이유는.





예전의 나는 스스로를 '집순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저녁 약속은 늘 웰컴, 주말이면 하루를 여러 조각을 쪼개 이런저런 모임에도 나가고 친구도 만나고 하며 밖에서 시간 보내길 좋아했다. 지금은? 집에 있는 시간이 제일 좋다. 주말 이틀 집에 있다보면 시간이 너무 빨리 가서 아쉬울 지경이다.


집에서 대체 뭘 하냐고?

반대로 묻고 싶다. 아니,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일단 삼시세끼 밥 차려먹는 것도 큰 일이다. 매 끼 뭘 먹을지 메뉴를 고민하고,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냉장고에 있는 식재료를 점검하고 부족한 게 있으면 근처 슈퍼에 가서 사 가지고 온다. 밥 먹으면 설거지도 해야 하고, 아침밥 먹고는 커피도 한 잔 내려 마셔야 한다.


생존을 위해 최소한의 요리를 하며 살아간다. 귀찮기는 하지만, 그래도 기분 좋게 식사하기 위해 모든 반찬은 각각 그릇에 담아 먹는다. 당연히 설거지 하는 데 한참 걸린다.


그뿐 아니다. 주말이면 평일에 못 챙겼던 집안일도 해 줘야 한다. 가령 오늘 아침에 했던 집안일을 예로 들어보자.


건조대에 널어뒀던 빨래를 개켜서 옷장에 넣어두고, 창문을 열어 환기시키고, 청소기를 돌리고, 화장실 변기를 싹 닦아놓고, 평일에 받아놓고 현관에 내팽겨쳐 뒀던 택배상자를 풀어서 각 물건을 제자리에 가져다 놓고, 옷장의 물 먹는 하마를 새 걸로 갈아준다. 그 전에 쓰던 물 먹는 하마는 일일이 뚜껑을 열어서 물을 싹 버린 후 모아놓는다. 물 먹는 하마를 비롯해 집안 곳곳의 쓰레기를 싹 모아서 내다 버린다. 등등.


집안일도 일이라지만, 적어도 내 경우에는 집안일 하는 게 딱히 스트레스 받을 일은 아니라고 느껴진다. 내 집 구석구석 어디에 먼지가 쌓였는지, 생필품 중 무엇이 떨어졌는지 등등이 다 내 머릿속에 있지만, 그렇게까지 부지런을 떨어가며 모든 걸 다 완벽하게 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하루하루 지내다 어느 한 부분이 유독 거슬리는 순간이 오면 그 부분만 얼른 해결해 놓고, 나머지는 주말에 의욕이 생길때마다 조금씩 조금씩 해 나간다.


어차피 혼자 사는 집이다보니 집안일이라고는 해도 어디까지나 내 맘대로 판단해서, 내가 하고 싶을 때, 무엇보다 오직 나를 위해서 하는 일이다. 해 놓고 나서는 물론 하면서도 나 자신을 아껴주는 마음이 들어서 기분이 좋다.




3월 이맘때면 주말 이틀 중 하루 정도는 귀찮음을 물리치고 집 밖에 나가 벚꽃도 보러 다니고, 봄을 맞아 새롭게 개장하는 미술 전시도 보러 다니고 했던 기억이다. 요즘은 뭐, 벚꽃도 미술관도 전부 개점휴업 상태니 어디 나갈데도 없다. 설령 나갈데가 있다고 해도 내내 마스크를 쓰고 있어야 하는데, 한국도 그렇지만 일본도 마스크가 워낙 귀하다보니 주말까지 아까운 재고를 소진할 수 없다.


그렇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하루종일 집에서 시간을 보내며, 내 마음의 건강을 위해 집에서 보내는 시간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본다.


그치만 역시 3월의 남은 반, 그리고 곧 다가오는 4월에는 모든 상황이 조금 나아지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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