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라또 피케 : 룸웨어의 변신

혼자 있는 시간도 품격있게, 디저트 가격으로 작은 행복을 사세요.

by 선데이수


젤라또 피케(Gelato Pique, ジェラートピケ)는 2008년 첫 출시된 이후, 20-30대 젊은 여성들에게 '룸웨어'라는 새로운 소비 카테고리를 만들어 준 브랜드다. 브랜드 슬로건은 '방 안의 패션', '어른의 디저트'. 방 안에 혼자 있는 시간도 품격있게, 디저트 가격으로 젤라또처럼 부드러운 룸웨어를 사 보라는 것이다.





먼저 젤라또 피케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알아보자. 이 브랜드는 개인적으로 네이밍을 진짜 잘 한 케이스라고 생각한다. 그냥 아이스크림도 아니고 젤라또라니. 한국이 브랜드 이름을 영어로 짓기에 열심이라면, 일본은 유럽쪽 언어를 유난히 좋아한다. 젤라또. 왠지 이름만 들어도 유럽의 따뜻한 햇살 아래 잠깐의 여유를 즐기는 것만 같고, 딱 집어 설명할 수는 없지만 어딘지 모르게 부드럽고 달콤하며 혀끝에 닿자마자 녹아내리는 것 같다.


선물 포장을 해 달라고 하면 파스텔톤 케익 상자에 고이 담아준다.


그런데 디저트란 뭘까? 생각해보면 우리는 식사를 마치고 이미 배가 부른 상태에서 굳이 식사 가격보다 더 비싸게 주고 디저트를 먹으러 간다. 젤라또, 밀크 크레이프, 생 딸기 타르트... 먹어도 되고 안 먹어도 되는 거지만, 먹기로 결정함으로써 오늘 하루를 조금 더 특별하게 보내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니까 디저트 가격이라는 건 디저트처럼 가볍게 구입할 수 있을만큼 저렴하다는 뜻일뿐 아니라, 디저트처럼 내 삶을 조금 더 풍요롭게 해 주는 플러스 알파라는 뜻도 된다.


사실 요즘은 무인양품이나 유니클로에도 질 좋은 파자마 세트 종류가 많이 나와있다. 같은 상하의 세트라고 할 때, 무인양품에서 사면 한화 기준 5만원 내외지만 젤라또 피케에서 사면 어떤 라인을 사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기본적으로 10만원이 훌쩍 넘어간다.


그럼에도 젤라또 피케 매장이 매번 붐비는 이유, 은근슬쩍 파자마를 식사가 아닌 디저트의 카테고리에 넣었기 때문이다. 무인양품이나 유니클로에서 파자마를 살 때는 일상적인 소비를 했구나 라는 느낌이라면, 젤라또 피케에서 파자마를 살 때는 조금 더 특별한, 일본어로는 '오샤레(おしゃれ, 세련됐다는 뜻)'한 느낌을 갖게 된다.


일본의 유명 뷰티유튜버 세키네 리사가 젤라또 피케 파자마를 착용한 모습. 셀럽들의 일상 사진이나 영상에서 자주 등장한다.


물론 품질은 별로인데 감성에만 호소해서는 소비자들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 애초에 젤라또 피케가 유명한 이유는 왠지 모르게 겁나 편한 소재 때문이다. 언뜻 보기에는 타월처럼 생겼는데, 막상 만져보면 말도 못하게 부드럽고 푹신푹신 포근하다. 이음새 부분도 입는 사람을 배려해서 세심하게 마무리 해 놓아서 집에서 뒹굴뒹굴하며 입기에 거슬림이 없다. 정말, 정말 편하다.


젤라또 피케의 가장 기본 소재인 젤라또 라인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 일본답게 계절별로 소재에 약간의 배리에이션이 있기도 하다. 여름에는 땀 흡수가 잘 되는 라인, 겨울에는 조금 더 두껍고 보온성이 좋은 라인 등. 미묘한 차이지만 입어보면 확실히 느낄 수 있어서, 매 시즌마다 계절에 맞는 소재의 파자마를 구입하다 보면 어느덧 젤라또 피케에 '락인(Lock-in)'이 되어버리고 만다.



디자인도 주목할 만 하다. 매장을 뒤적여보면, 전체 제품군을 몇 가지 카테고리로 손쉽게 분류할 수 있을 것 같다. 티셔츠는 티셔츠처럼 생겼고 원피스는 원피스처럼, 바지는 바지처럼 생겼기 때문이다. 군더더기 없이 원형(原形)에 집중한 심플한 디자인이라 쉽게 질리지 않는다.





다음은 젤라또 피케의 콜라보레이션(Collaboration) 전략을 살펴본다. 일본에 와서 느낀 것, 일본 사람들은 한정판을 정말 좋아한다. 식당에만 가도 꼭 '일일 50인분 한정'이라고 적힌 메뉴가 하나쯤은 있고, 어느 브랜드가 됐든 시즌마다 이런저런 브랜드와 콜라보를 해서 기간한정 제품을 출시한다. 한정판과 콜라보의 나라 일본에서 누가 누구랑 콜라보하는지를 지켜보는 건 참 재밌는 일이다. 누구랑 나란히 설지를 결정하는 방식에서, 브랜드가 지향하는 바를 은근슬쩍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2018년 S/S 시즌 현재, 젤라또 피케는 두 가지 콜라보를 진행하고 있다. 스누피와 조엘로부숑(Joel Robuchon)이 그것. 스누피와의 콜라보가 노리는 건 설명할 필요도 없이 명확하다. 귀여운 거 x 귀여운 거 = 더 귀여운 거 아니겠는가. 덧붙여서 스누피는 요즘 일본에서 유독 핫한 캐릭터다. 2016년 4월에 아자부주반 인근에서 기간한정으로 오픈한 스누피 뮤지엄(링크)이 예상했던 것 이상의 대인기를 얻으면서 연장에 연장을 거듭해 올해 가을까지 전시를 이어가기로 했다는 맥락 때문이다.


다음은 조엘 로부숑이라는 프렌치 레스토랑이다. 조엘 로부숑은 프랑스 쉐프지만, 정작 프랑스에서보다 도쿄 지점에서 미슐랭 3스타를 받았다는 에피소드로 유명하다. 그래서인지 에비스에 있는 도쿄 지점은 영화나 드라마에도 자주 등장한다. 심지어 2016년 공개된 아마존 재팬 오리지널 드라마 <도쿄 여자도감>에는 "30살이 되기 전에 조엘 로부숑에서 저녁 데이트를 할 수 있다면 성공한 여자"라는 대사가 등장하기도 할 정도다. 그야말로 20-30대 젊은 여성들에게는 '아코가레(憧れ, 동경한다는 뜻)'의 장소고, 브랜드이다.


에비스에 있는 조엘 로부숑 레스토랑. 디너타임에 가려면 인당 한화로 4~50만원 정도는 예상해야 한다...


그런데 조엘로부숑과의 콜라보 제품은 어딘지 좀 다르게 생겼다. 룸웨어가 아니라 여행용이라는 게 포인트다. '퍼스트 클래스 승객'에게 제안한다는 컨셉으로, 기내에서 착용할 수 있는 (하지만 기존의 룸웨어랑 디자인이 크게 다르지는 않아 비행기 안 탈 때는 집에서 입을 수 있을 것도 같은) 편안한 옷은 물론, 여행용 파우치와 휴대가 가능한 기내용 슬리퍼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혼자 집에 있을 때도 '룸패션'을 신경쓰라는 제안에서 출발한 젤라또 피케가 이제는 기내 패션에 대해서도 한 번 생각해보는 게 어떻냐는 제안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퍼스트 클래스에 타지는 못하지만) 패션만은 퍼스트 클래스 승객처럼 여행해보는 게 어때? 이 때 조엘로부숑의 '품격 있는' 브랜드 아이덴티티는 '뭘 그렇게까지'라고 망설이는 고객의 옆구리를 쿡쿡 찔러주는 역할을 한다. 허영심을 자극하는 포인트가 된다.


아마 콜라보 기간이 끝난 다음에는 트레블 웨어를 정식 라인으로 출시하지 않을까? 이거는 왠지 좀 먹힐 것 같다. 얼마 안 가 인기 신혼여행지로 가는 비행기에서 젤라또 피케든 다른 브랜드든, 트레블 웨어를 커플룩으로 착용한 신혼부부들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조엘로부숑과 젤라또 피케의 콜라보레이션 컨셉 페이지. '어른의 비행을 시작해보세요'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마지막은 젤라또 피케라는 브랜드를 여기까지 키운 기업에 대한 이야기. 젤라또 피케는 현재 매쉬 홀딩스(Mash Holdings)라는 회사 소유이다. 창업자인 콘도 히로유키는 원래 건축가로 시작했다가, 1998년에 애니메이션 CG 개발회사인 매쉬 홀딩스를 설립했다고 하니 거 참 특이한 이력이다. 어떤 계기로 패션으로의 방향 전환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2005년 스나이들(Snidel)이라는 여성패션 브랜드 런칭을 계기로 패션사업을 시작했고, 특히 2008년 런칭한 젤라또 피케가 '대박'을 터뜨리면서 지금은 건축이나 애니메이션 CG는 접고, 패션 뷰티 푸드 등 라이프스타일 기업으로 거듭났다고 한다.


http://www.standard.net/World/2016/07/15/Mash-Holdings-a-solo-rising-star-in-fashion-industry


매쉬 홀딩스는 일본 국내에서의 성공에 힘입어 해외사업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미 중화권(중국, 홍콩, 대만)에 7개 지점을 운영하고 있고, 작년에는 미국 뉴욕에도 법인을 설립하고 젤라또 피케 팝업스토어 이벤트를 진행했다고 한다. 글쎄, 아시아권은 확실히 젤라또 피케 특유의 '귀여운' 감성에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게 과연 미국에도 먹힐까? 그건 조금 더 지켜보기로 하자.



※ 사진 출처 : 젤라토피케 공식 사이트(링크), 온라인 몰 우사기 닷컴(링크), 세키네 리사 트위터(링크)




부정기 연재 매거진 < 브랜드로 읽는 일본 이야기 >

일본에서 요즘 핫하다는 브랜드에는 한국이나 글로벌 트렌드와는 비슷한 듯 다른 특징이 있습니다. 무엇이 까다로운 일본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게 했는지, 그게 일본뿐만 아니고 글로벌 시장에도 먹힐만한 포인트인지 궁금해집니다. 자칭 '프로 소비자'인 선데이수가 직접 경험해보고 흥미를 느낀 브랜드들을 탐구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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