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에 대하여
김영민 교수님의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라는 책을 읽었을 때, 가장 내 마음에 들었던 글의 제목은 '성장이란 무엇인가'였다. 특히 아래 대목이 마음에 들었다.
"사람들은 가족을, 옛 친구를, 혹은 자신이 나서 자란 고장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나아갔다. 이렇듯 성장은, 익숙하지만 이제는 지나치게 작아져버린 세계를 떠나는 여행일 수밖에 없다. 익숙한 곳을 떠났기에 낯선 것들과 마주치게 되고, 그 모든 낯선 것들은 여행자에게 크고 작은 흔적 혹은 상처를 남긴다. 그 상처는 우리를 다시 성장하게 한다. 혹은 적어도 삶과 세계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킨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본가를 떠나 계속해서 어디론가로 향했었다. 성인이 되어 처음 다다른 곳은 수원이었다. 그곳에서 고등학교 3년 동안 열심히 공부하면 모든 게 해결될 것이라는 나의 나이브한 소망은 산산조각 깨졌다. 그 당시 나는 김영민 교수님이 말씀하신 '흔적 혹은 상처'를 제대로 직면하지 못했던 것 같다. 나의 문제를 회피하는데 오랜 시간을 보냈었다. 그때 내가 입원했던 병원의 간호조무사 선생님이 내게 했던 말이 지금도 가끔씩 떠오르는데, 당시 나에게 자극이 되었던 말이다.
"계속해서 그렇게 살아라!"
다행스럽게도 나는 점점 문제에 조금씩 직면해 나갔던 것 같다. 처음에는 내가 도저히 넘어설 수 없을 것 같았던 문제들은 시간을 지나면서 아주 작은, 사소한 문제들처럼 느껴졌다. 나는 경상북도 포항에 있는 대학교에 새롭게 입학했는데, 이곳에 오기까지의 과정과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해 나가는 과정은 여러모로 운이 따랐다. 풋내기에 불과했던 내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조금씩 서투른 모습을 벗었다. 20살 때 입학했던 대학에서는 모든 게 어렵고 힘들게 느껴졌지만, 22살 때 다시 입학한 대학에서는 모든 게 재미있었고 도전해보고 싶었다.
나의 첫 직장은 경기도 김포에 있었고, 나는 그곳에서 1년을 보내며 다시 나의 부족한 점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 1년 동안을 지금 다시 돌아봤을 때 내가 스스로 정말 안도하는 점은 내가 절대로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출근하기 싫어도 악으로 깡으로 출근했다는 점이다. 일을 하기 싫어서 조금 미룰지언정 아예 내려놓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사회초년생이었던 나는 20살 때의 그 실수를 다시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에게는 1년의 경력이 그저 '물경력'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때의 1년이 스스로 정말 자랑스럽다.
하지만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말은 지금부터이다. 서른 살이 되어서 새롭게 자리 잡은 양산에서 나는 여전히 실수하고 있다. 부족한 점이 많고, 정말 그러고 싶지 않지만 때로는 사람을 실망시키기도 한다. 여전히 일을 미룸으로써 '회피'라는 방어기제를 사용할 때도 있다. 그래도 시간이 너무 많이 흘러 더 이상 손쓸 수 없기 전까지 이르지는 않는다. 다행히도 나는 조금씩 대처해 나가는 법을 배우고 있는 것 같다.
얼마 전에 내가 인스타그램에서 팔로우하고 있는 샴마(@sham____ma)님의 계정에서 인상적인 그림을 하나 보았다. 그 그림에는 노트북으로 작업을 하고 있는 한 사람이 "촘촘히 쌓이고 있다. ㅋㅋ", "이대로 계속하자"라고 말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그림을 보자마자 너무 마음에 들어 내 휴대폰 배경화면으로 설정했다. 요즘의 나를 보면 당장 하루하루는 스스로 멈춰있는 것 같고, 내 앞길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매일 아침 몸을 일으켜 출근을 하고 있고, 축적의 힘을 믿으려 한다.
"상처도 언젠가는 피 흘리기를 그치고 심미적인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성장이, 예술이 우리에게 주는 구원의 약속이다."
김영민 교수님이 쓰신 글 '성장이란 무엇인가'는 이 문장을 끝으로 마무리된다. 물론 서른이 된 지금의 내가 보기에 스무 살의 나를 보면 아름답게 볼 수 있는 점도 있지만, 여전히 떠올리기 싫은 흑역사도 만만찮다. 이렇게 고상하게 글을 쓰고 있는 척하는 나 자신에게는 여전히 부끄러운 점이 너무나 많다. 그럼에도 나는 살아있는 한 멈춰 있지 않는다고 믿어보려 한다. 조금씩 전진하며, 더 나은 내일의 나를 기대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