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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밤산책 May 14. 2021

모정의 발견


 뒷베란다에서 빨래를 세탁기에 넣고 있는데 창밖으로 아이들이 노는 소리가 들린다. 단지 내 가정 어린이집이 여럿 있는 터라 흔한 풍경에 크게 신경쓰지 않았는데 얼핏 보이는 아이들 중 노란 점퍼가 눈에 띈다. 내 아이다. 봄 햇살이 참 좋다고 생각하며 평온하게 집안일을 하던 중이었는데 갑작스레 발견한 내 아이의 모습이 반가워서 일까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저 우리 애가 놀고 있을 뿐이라 해도 저건 엄연히 수업이고 선생님들은 열일하시는 중이다. 지나가다 우연히 눈에 띄어서 스치듯 지나가며 보는 건 상관없지만 창문으로 계속 지켜보는 건 안 될 일이다. 선생님께도 너무나도 죄송한 일이고 아이에게도 그다지 좋지 않은 일일 것이다. 알면서도 자꾸 눈이 창 밖으로 간다. 하필 노란 봄 점퍼를 입은 우리 아이가 너무나도 눈에 띈다. 내가 엄마라서 일까, 아이가 입은 옷의 개나리색이 워낙 쨍해서일까. 잠깐 시간이 멈춘 듯 정신없이 내 아이가 뛰는 모습을 보다가 정신을 차렸다. 이러면 안 된다. 외출 일정까지 아직 시간이 좀 남았지만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집 밖으로 나와버렸다.
 간혹 모정 또는 부정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게 되면 그런가보다 하고 지나가던 나였다. 문이 굳게 닫힌 수능 시험장 앞에서 부모님이 자리를 뜨지 못하고 한참을 서성이더라는 이야기에도, 군대 간 아들의 방에서 펑펑 울었다는 이야기에도, 결혼할 나이가 훌쩍 지나도록 캥거루족으로 지내던 딸이 독립을 했는데 괜히 딸이 쓰던 방을 자꾸 들여보게 되더라는 이야기에도. 나는 흔한 감동을 잠시 느끼고 금새 잊어버리곤 했다. 그 흔한 감동은 어찌 보면 진부해보이기까지 했다. 그런데 우연히 마주치게 된 내 아이의 사회생활(?)을 보고 만감이 교차했다. 여러 아이들 사이에 섞여 뛰어 다니고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을 듣고는 무엇을 해야할지 두리번 거리는 모습을 보며 아무 이유 없이 짠했다. 아이가 친구랑 싸운 것도 신나게 뛰다 넘어진 것도 아니었는데 아무 이유 없이 혼자 짠함을 느끼고 있었다.
  둘째를 임신하게 되는 바람에 요즘같은 코로나 시국에도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이 좀 미안할 때도 있었지만 나름 최선의 양육 방법을 찾았다고 생각해서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건 아니었다. 오전에는 최대한 늦게 보내고 오후에는 최대한 빨리 찾으려 노력했고 아이도 어린이집에 다니는 걸 좋아해서 주말에도 가겠다고 한 적도 있을 정도로 적응을 잘 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엄마 없이 친구들 틈에 섞여있는 아이의 모습이 왜 이리 짠한지. 아이가 바깥놀이를 하는 모습을 자꾸만 더 바라보게 될까봐 서둘러 외출 준비를 하면서 나에게 뜻밖의 애끓는 모정을 발견했다고 생각했다. 이제 겨우 만 2년차가 되어가는 초보 엄마, 나에게서 발견한 낯선 모습.

 90년대생, 밀레니얼세대, MZ세대 등의 이름으로 불리우는 젊은이인 나는 개개인의 특성이나 개성, 취향 등을 중요하게 여기며 지내왔다. 그런데도 아이를 낳고 기르는 엄마라는 이름 앞에서는 모두가 알고 있는 그 흔한 엄마의 모습이 되어 가는걸까. 내가 386세대였던 우리 부모님, 또는 전쟁을 겪은 세대인 우리 조부모님과 똑같은 모습의 부모가 될거라고는 말할 수는 없다. 다만 그저 부모라는 이름 앞에서는 굳이 세대를 구분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봄바람이 살랑이는 햇살 가득한 아침, 개나리색 점퍼를 입은 내 아이를 멀리서 바라보며, 나는 나에게 붙은 부모라는 이름을 떠올렸다. 새삼 낯선 나의 모정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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