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사랑은 외나무다리에서>가 말하는 순수한 사랑에 빠질 시간이다.
고도로 발달된 사랑은 유아퇴행과 구별할 수 없다.
SNS에서 애인에게 과도하게 애교가 많은 이들을 두고 종종 '유아퇴행'이냐는 악플이 달리곤 한다.
하지만, 위 인용구처럼 이들은 유치할지언정 진한 사랑을 하고 있을 것이다.
왜냐면 이 말은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저서 <정신분석학의 근본 개념>에서 유래한 말로 나름의 근거가 있는 말이기 때문이다.
프로이트는 이 책에서 사랑을 '고도로 발달된 상태의 리비도(성적 에너지)'라고 정의했고,
프로이트는 사랑이 유아기의 리비도와 유사한 특징을 지니고 있어 유아퇴행과 구별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뜬금없이 드라마 리뷰에서 사랑과 유아퇴행의 비유를 댄 이유는?
드라마 <사랑은 외나무다리에서> 속 18년 만에 재회한 주인공 석지원과 윤지원을 보면 떠오르는 문장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철저히 원수인 두 집안의 아들 딸로 태어나 하필이면 같은 이름을 갖고
어쩔 수 없이 유년시절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늘 티격태격하며 함께 자라왔다.
공부도 곧잘 해 서로 으르렁대며 전교 1-2등을 다투던 이들.
이들의 관계에도 진전이 생기는 사건이 생겼으니,
18살의 어느 날, 전교 1등 자리를 두고 내기를 하던 둘은 파격적인 내기 조건을 건다.
윤지원(정유미)이 1등을 하면 석지원이 윤지원을 평생 누나라 불러야 한다는 조건에
석지원(주지훈)이 자신이 1등을 하면 둘이 사귀자고 한 것이다.
그렇다. 예상할 수 있듯이 석지원은 언제부터인지 깨닫지도 못한 채 윤지원을 물 흐르듯 짝사랑하고 있던 것.
하지만 드라마 1-2화에서는 왜 서로의 맘을 확인한 둘이 성인이 되어서도 만남을 이어가지 못했는지,
18년 만에 재회한 둘이 여전히 어떠한 앙금이 있다는 듯 다시 으르렁대는지 알려주지 않은 채 흘러간다.
하지만 확실한 건 여전히 이들은 18살의 어느 날에 머무른 사람들처럼
재회하자마자 유치하게 서로를 물고 뜯기 바쁘다는 것.
그런 그들의 신분은 심지어 학교 이사장과 선생 관계라는 것이다.
석지원의 아빠는 고향 땅을 지금이라도 밀어 골프장을 설립시키기 위해 아들을 그 중심인 독목고 이사장으로 부임시키고, 윤지원의 할아버지는 부단히 강경하게 고향 땅을 있는 그대로 지키려 한다.
그 뜻은 손녀이자 학교에 체육교사로 재직 중인 윤지원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게 철천지 원수로 다시 재회하게 된 네 사람.
특히, 어쩔 수 없이 한 학교에서 엮이게 된 석지원과 윤지원은
이번에도 회식 자리에서 홧김에 유치한 내기를 하게 된다.
학교의 전설처럼 내려오는 미친 라일락이 피면 그 해 고3들의 입시 성적이 좋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현재 4년째 꽃이 피고 있지 않은 것이다.
석지원은 올해 꽃이 필 거라고 주장하고, 윤지원은 4년째 피지 않으니 이제 끝났다고 얘기한다.
둘은 한참을 미친 라일락을 가지고 미친 대립을 펼치더니 결국 내기를 하고야 한다.
윤지원(정유미)이 이기면 석지원(주지훈)은 이사장 자리를 반납해야 하고,
석지원(주지훈)이 이기면 윤지원(정유미)은 석지원과 연애해야 하는 것.
석지원이 이사장과 연애할 수 있냐는 장난 어린 옛 선생님의 농에 질색팔색한 것을 목격하고 홧김에 던진 말이라지만, 단단히 미련이 있어 보이는 내기 제안이다.
18년 전, 석지원이 윤지원에게 했던 제안이 겹쳐 보이는 건 나뿐인가.
정유미와 주지훈은 실제 나이 각각 83, 82년생으로 40대 초반의 나이임에도
18살의 풋풋한 첫사랑을 떠올리게 하는 티격태격 혐관 로맨스코미디의 정석을 보여준다.
18년 전의 그날처럼,
윤지원은 석지원에게 불도저처럼 달려들고
석지원은 윤지원 앞에만 서면 카리스마를 잃어버리게 된다.
다시 돌아가 고도로 발달된 사랑은 유아퇴행과 구별할 수 없다는 말처럼,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가장 꾸밈없는 순수한 있는 그대로의 나를 드러내곤 한다.
그것은 내가 사회에서 쌓은 이미지와는 다른 새로운 '나'라는 영역일 것이다.
언뜻 보면 석지원과 윤지원도 서로를 향해 마냥 으르렁 거리는 앙숙 같아 보이겠지만,
상대니까 드러낼 수 있는 모습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그런 순수한 사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드라마 전개 내내
18살의 석지원과 윤지원이 계속 플래시백(Flashback)으로 등장하는 이유는
현재의 석지원과 윤지원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서도 있겠지만,
석지원과 윤지원의 관계는 순수한 사랑을 내포하고 있음을 드라마가 계속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지금 '본연의 나'로 돌아가 순수한 사랑을 하고 있는가?
내 옆에 있는 사람은 내가 사회적인 '나'와 동떨어진 어떤 모습이든 받아들여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인가?
있으면 행복할 것이고, 없어도 이 드라마를 보며 찾아나서면 된다.
현재는 서로 물어뜯기 바쁘지만 결국은 사랑 앞에 솔직해질 석지원과 윤지원을 보며
우리도 솔직한 사랑을,
그리고 조금은 유치한 사랑을 할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