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전이 처음 등장한 이 회차에서 '노인과 여성'은 기피대상이 된다. 승리하지 못하면 죽는 데스매치에서 상대적 약자로 분류되는 이들이 장애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주인공 기훈의 팀엔 이미 노인 1명(일남)과 여성 1명(새벽)이 있는 상황. 게임의 종류와 무관하게 '브레인 상우'는 추가적인 여성 팀원은 받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힌다. 하지만 그의 바람은 쉬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최종적으로 기훈의 팀은 여성 3인, 노인 1인, 외국 남성 노동자 2인, 한국 남성 4인으로 구성된다. 힘으로만 따지자면 최약체로까지 볼 수 있는 구성. 하지만 그 어느 팀보다 다양성 측면에서는 앞도적 우위를 가진 팀이기도 하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내 발표된 종목은 '줄다리기'...
힘으로 겨루는 대표종목이 아니던가?
주인공이 최약체인 팀에 있는 상황과
그들이 절대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장애물의 등장에
관객들은 자동적으로 질문하게 된다.
어떤 방법으로 이기는 거지?
방법은 주인공이나 브레인의 입이 아닌 뜻밖에 노인의 입에서 나온다. 노인(일남)은 줄다리기는 힘보다 '전략'이라며 소싯적 노하우를 기반으로 팀을 지휘한다.
전략은 요약하자면 '선 버티기 후 공격'. 의외로 쉽게 당겨지지 않아 상대가 당황했을 때, 깨진 리듬을 틈타 주도권을 탈환하는 전력이다. 이 전략을 변주하며, 주인공 기훈의 팀은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게임에서 승리한다.
노인에 전략에 따라 줄다리기를 하는 기훈
비록 드라마에서는 노인의 전략만이 강조됐지만,
(그러니까 여성, 외국인 노동자들의 이야기는 다루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나는 이 에피소드를 '결국 다양성이 승리합니다'라고 요약하고 싶다. 딱 보기에 강한 팀보다 다양성을 가진 팀이 이길 수밖에 없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1. 동질적 집단보다 이질적 집단이 더 잘 협력한다
사람들은 흔히 서로 비슷할 때 더 쉽게 뭉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사교적 목적이라면 이 말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공동의 목표를 위한 협력의 측면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동질적 집단에서 사람들은 서로 구별 짓고, 비교하며 서열을 세우기 바쁘다. 이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질적 집단에서 사람들은 굳이 서로 비교하려 하지 않는다.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서로를 존중하는 어느 정도의 공간이 이질성 때문에 자동적으로 형성되는 것이다. 이 작은 공간은 쓸데없는 에너지 낭비를 막고, 협력으로 나아가기 위한 좋은 기반이 된다.
2. 힘은 집단 지성을 이길 수 없다.
힘과 같은 물리적 조건은 경쟁에 있어 단연 중요한 요소이다.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인간은 이미 지구에서 자취를 감췄어야 할지도 모른다. 강한 이빨, 발톱도 없고 그렇다고 치타보다 빨리 달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심지어는 추위를 잘 이겨낼 만큼 엄청난 양의 털도 없다. 물리적 조건만 따지면 자연계에서 인간만큼 형편없는 동물도 드물다는 말이다. 결국 인간을 지금까지 발전시킨 것은 집단지성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러니까 인간은 항상 물리적 조건을 극복할 창의적 방안을 여러 사람의 머리를 모아 만들어 왔다는 것이다.
머리를 모을 때는 이왕이면 다양한 것이 좋다. 한 사람의 노인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경험과 지식의 총체다. 오죽하면 노인이 가진 지식의 가치를 도서관에 빗댈까. 그런가 하면 남성과 완전히 다른 물리적 조건을 가진 여성은 남성은 절대 떠올릴 수 없는 상황 극복 전략을 수천만 가지는 보유하고 있다. 완전히 다른 문화적 맥락에 적응하기 위해 외국인이 개발해온 지식도 우리가 절대 상상할 수 없는 차원일 것이다.
힘으로 밀어붙이고,
한 방향으로만 생각해서는 절대 이길 수 없는 집단지성이다.
3. 절박한 약자의 연대는 방심한 강자의 벽을 허문다
애석하게도 다양한 사람들을 포용하는 사회에 대해 말할 때 언급되는 주체들은 늘 약자다. 노인, 아이, 여성, 장애인 등. 하지만 오징어 게임에서도 보여주듯 절박한 약자가 힘을 합치면, 강자를 충분히 이길 수 있다. 사실 이는 절박함 때문이라기보다, 강자가 가지지 못한 강점의 시너지가 절박한 상황 앞에 최대치로 발현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치우친 채 높이 쌓아진 강자의 벽은 이처럼 강력한 약자의 연대에 곧 빈틈을 들키고 만다.
우린 말이 아니야
오징어게임의 대장에게 선전포고하는 기훈
잔혹하기 그지없는 게임이 계속될수록 관객도, 주인공도 끊임없이 한 질문을 반복하게 된다. 도대체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야? 허무하게도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돈 없고 힘없는 사람들을 '사람'이 아닌 도박판의 '말'정도로 도구화해서 보는 참혹한 자본주의에 있다.
그러나 드라마 말미 주인공의 외마디 외침처럼
사람은 전력만으로 평가할 수 있는 말 같은 존재가 아니다.때문에 엄격하게 수치화된 분석에 대항하는 우리의 전략은 오히려 판을 깨는 완전히 다른 방향에서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