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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깨란 Nov 16. 2021

6번 만에 운전면허 기능시험에 합격했다

나에겐 너무 어려웠던 시험 통과의 기쁨

나는 운동 신경이 좋지 않은 편이다. 뭐든지 몸으로 하는 건 배우는 속도가 더디다. 게다가 겁도 많고, 조금 덤벙대는 구석도 있다. 차가 없기도 했지만, 운전 배우기를 미뤄 왔던 데는 이런 이유들이 있었다.


나 기능시험 5번 떨어졌어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ㅋㅋㅋ 나조차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는 상황. 예상치 못한 근황에 친구들은 당황하면서도 우스워하며 "대체 왜?"라고 물었다. 사실 이유는 너무 다양했다. 처음엔 주차가 문제였다. 주차만 해결하면 붙을 줄 알았는데 그 다음엔 코너링이 문제였고, 이것 저것 기능적인 것이 해결된 후엔 시간이 초과됐다.


"탈선, 10점 감점입니다."

"방향지시등 위반, 5점 감점입니다."

"시간 초과, 3점 감점입니다"


점수 미달 불합격입니다.


나중에는 낭랑하게 불합격을 외치는 컴퓨터 목소리가 너무도 야속했다. 마치 오징어 게임 속 장내 아나운서의 목소리와 비슷했는데, 크고 작은 이유로 시험에 불합격할 때마다 오징어 게임 속 탈락자들의 억울함과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적지 않은 시험비용도 부담이 되었지만, 그 보다 더 큰 문제는 대체 어떻게 해야 원하는 대로 차가 움직이는지 내가 익히지 못했다는 점이다. 내게 가장 필요한 건 연습이었다. 한데 연습할 수 있는 곳이 없었다. 고작 4시간의 수업은 내가 차를 움직이는 기능을 익히기엔 너무 부족한 시간이었다....

 

사실 나는 내가 못하는 일을 굳이 굳이 해내려고 애쓰지 않았다. 그냥 잘하는 일을 더 잘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중고등학교 체육시간에 다른 친구들 다 잘하는 동작을 홀로 해내지 못하면, 잘 못하는 모습을 여러 사람에게 보이며 연습을 하기보다 그냥 체육 성적을 포기하곤 했다."난 원래 운동 못해."라는 말과 함께. 쉽게 말해 회피했던 것이다.


5번째 시험에서 떨어졌을 때 나는 이번에도 그냥 포기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감사한 것은 가족들의 반응이었다. 엄마는 "그런 시험도 있는 거야. 운전을 배운건 엄마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야. 이동에 자유가 있는 게 얼마나 큰 일인데!" 아빠는 "넌 어떻게 그런 것 까지 날 닮았니. 아빠도 운전면허 시험 숱하게 떨어졌다. 사고 나는 것보다 나아 그냥 해!" 못한다고 비난하는 사람이 없으니 어쩐지 용기가 생겼달까. 그래 사람이 어떻게 다 잘하겠어! 더디더라도 해보자!라는 흔하고 진부한 용기.


6번째 시험을 앞두고, 난 연습할 시간이 필요해 하는 수 없이 보충수업을 신청했다. 학원에서도 계속 떨어지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1종 대형을 주로 지도하시는 베테랑 강사님을 붙여주셨다. 강사님은 무심하게 뭐 때문에 자꾸 떨어졌냐고 물어보셨고, 나는 여러 이유들로 떨어졌다고 말했다. 여러 번의 불합격으로 내가 위축되어 보이셨는지 강사님은 수업 시작하기 전 무심한 목소리로 위로를 건네셨다.

 

이거 떨어진다고 인생 안 망해요. 괜찮아.


그 소리가 내 마음에 왜 그렇게 위로가 되었는지 알지 못한다. 비단 기능 시험뿐 아니라 내 인생에서 뭔가 안 풀릴 때 나는 "망했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 생각은 나를 갉아먹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인생은 망하지도 끝나지도 않고 또 다른 방향으로 계속해서 나아갔다.  그 걸 몇 번 겪은 후에도 더디더라도 끝까지 하면 괜찮아, 각자만의 속도가 있는 거야 류의 메시지들은 내 것이 아니었다. 나는 늘상 빨리 잘하고 싶었다. 그렇게 스스로를 볶다 보면, 다른 사람에게도 그런 잣대를 들이대기 십상이었다. 뾰족한 잣대는 야속하게도 내게 다시 돌아와 "점수 미달, 불합격입니다."라는 시스템 속 목소리처럼 내 마음에 비수로 꽂혔다.


겨우 기능시험 가지고 인생을 이야기하냐고 웃어도 어쩔 수 없다. 남들에겐 아주 쉬운 저 시험이 내 인생에서 가장 어려웠고, 숱한 불합격을 무릅쓰고 붙을 때까지 도전한 처음이었기에. 2시간 여 "운전은 잘하는 데 덤벙대서 그랬나 보네." "천재지변이 아니면 오늘은 붙겠어." 등 무심하지만 따뜻한 응원을 들으며 연습을 했다.


그리고 드디어! 시스템에선 다른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축하합니다. 합격입니다!



마치 명문대에라도 붙은 양 나는 신나서 그날 여러 사람에게 나 붙었다고 자랑을 했다. '아 이게 바로 작은 성취인가?' 하는 마음이 모락모락 피어났다. 이제는 좀 못하는 일도 될 때까지 해볼 수 있겠다는 용기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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