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 동안 얻은 게 많아 기뻤어
2021년을 무사히 보내는 기쁨
무사히 2021년이 끝났다. 그 자체로 참 감사하다.
2018년부터 약 3년은 대학원에 다니고 있었기에 비교적 변화가 적었다. 그에 비하면 2021년에는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대학원을 졸업했고, 책을 한 권 만들어 펀딩을 해보았고, 갈 곳 없이 퇴사를 했으며, 쉬면서 뉴스레터를 열었고, 카피라이팅에도 도전했다. 예상과 달리 30대에도 현재 진행 중인 진로 고민을 해결하기 위한 나름의 몸부림이었달까?
아무튼.. 글 쓰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기록을 습관적으로 해야겠지만, 나는 아직도 그 습관을 얻지 못했다. 그럼에도 몸부림의 시간을 통해 얻은 것들을 조금은 적어둬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몰아서 적어본다. 말하자면 2021 깨달음 결산!
1. 문제는 해결하면 된다.
상반기 본의 아니게 책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도맡아 하게 됐다. 모르는 것 투성이다 보니 계획대로 되는 게 거의 하나도 없었다. 더욱이 내가 만든 책은 6명 저자의 에세이와 15명의 인터뷰가 실리는 책이었는데... 21명의 스케줄을 조율하는 것은 정말이지 쉽지 않았다. 또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얽혀 있어, 크레딧 하나 완성하는데도 수많은 사람의 검토에 검토가 필요했다. 그러다 보니 수도 없이 문제가 발생했고 일정은 자주 밀렸다. 막판에는 퇴사를 앞두고 있었기에 이러다 책을 완성하지 못하고 퇴사하려나? 하는 엄청난 불안감까지 겹쳤더랬다.
아무튼 이런 상황 속에서 처음에는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멘탈이 산산조각 났다. 일정이 마음대로 안 되는 것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고 아마 감정 조절도 잘 안 되었던 것 같다. ( 그 순간 나의 푸념(?) 혹은 불만을 묵묵히 들어준 동료들... 미안하고 고맙다) 그런데 쉴 틈 없이 문제가 계속 생기다 보니 나중에는 해탈을 하게 되더라. 그제야 각자 다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던 동료들의 상황을 들여다봤고, 문제가 안 생기고 계획대로 되는 프로젝트는 거의 하나도 없다는 걸 알게 됐다. '문제는 원래 늘 생기는 것이고, 해결하면 그만인 것이구나?'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보았다. 올해에는 이슈가 생겼다는 사실에 감정을 소모하기보다, 해결책을 찾는데 에너지를 더 써보리라!
2. 일이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나는 일에 대한 욕심이 많다. 맡은 일은 기깔나게 잘하고 싶은!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일-나 = 0)이 되는 듯한 순간을 마주했던 것 같다. 주말 새벽 2-3시까지 원고 편집을 하고, 월요일에 출근해야 했을 때. 내가 회사 집 외에 가는 곳이 없고, 좋아하는 영화 음악 드라마가 전혀 없는 상태에 빠졌다는 것을 발견했을 때. 오호라 이것은 무엇인가 잘못되었다고 깨달았달까?
일이 전부가 되어버리면서, 일에 대한 피드백을 나에 대한 피드백으로 받아 버리는 바보 같은 일도 일어났다. 나를 갈아 넣은 결과물에 대한 지적은 자주 나 자신에 대한 지적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단단히 잘못된 상황.
나를 지키며 일할 때, 건강한 피드백을 받아 더 니은 결과물을 만들 수 있다. 내가 없이는, 일도 없다.
기억할 것!
3. 열심히 하면 알아봐 주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누가 알아주길 바라며 일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노력이 어디에도 닿지 못하는 듯한 느낌은 영 좋지 못하다. 올해 알게 된 건 일하고 있는 바로 그 시점 그 당시가 아니더라도, 나의 애씀을 알아봐 주는 사람들은 반드시 생겨난다는 것이었다. 함께 책 작업을 했던 팀의 대표님은 내게 '참일꾼'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셨다. 이후 내게 글 작업도 제안해주셨다. 같이 일한 사람이 또 일을 준다는 것, 어떤 표현보다 강력한 인정이었다.
분에 넘치게 강의할 수 있는 기회도 생겼다. 논문 쓸 때부터 어언 3년 세운 일대를 돌아다니며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인터뷰하고 글로 전한 덕이었다. (사실 글 쓸 기회들도 세운에서 일한 덕에 생긴 것이었다.) 강의라기보다는 '저는 이렇게 했는데, 참고해보실래요?' 정도의 노하우 전수에 가까웠지만, 내 이야기를 경청해주시고 질문까지 해주시니 정말이지 황송한 시간이었다. "진심으로 일하셨군요. 저도 그러고 싶은데 혹시 팁이 있으신가요?"라는 느낌을 받았다고나 할까.
당장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것 같아도, 스스로 부끄럽지 않게 언제나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를 알게 된 느낌.
4. 좋은 사람들에게는 먼저 치대기도 해야 한다.
세운에서 일하면서 가장 감사했던 건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난 거였다. 나의 안위만 신경 쓰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가는 미래를 꿈꾸고, 조금 다른 삶을 도모해보려는 사람들이 세운에는 정말 많았다. 일하면서 만난 사람들과 관계를 이어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이런 사람들을 무더기로 만나는 게 더 어려운 일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퇴사하고도 많이 치댔다.
결과는 나름대로 좋았다고 할 수 있다. 치댄 덕에 새로운 일을 도모하고, 오래 볼 수 있는 명목이 생겼기 때문이다. 함께 일해보고 싶었던 '인라이튼'팀의 신규 브랜드를 위한 카피라이팅을 할 수 있게 됐다. 함께 퇴사한 동료들과 '놀러 와'라는 뉴스레터를 시작했다. 체면, 자존심 뭐 그런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을 얻는 건 그보다 큰 일이니까. 지체 없이 진솔하게 표현할 것!
5. 뭔가 같이 해볼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는 건 행운이다.
2021년에는 내가 하고 싶었던 일에 기꺼이 참여해준 사람들이 많았다. 서울 둘레길 완주를 하고 싶었는데 혼자서는 자신이 없었다. 주변에 특별히 아웃도어 활동을 좋아하는 사람도 없는 것 같았다. 혹시 하는 마음으로 인스타그램에서 함께할 사람을 구한다고 올렸는데, 대학 동기가 기꺼이 참여해주었다. 그 덕분에 둘레길도 완주하고 한라산도 등반했다. 혼자라면 못했을 일이다.
뉴스레터도 늘상 내가 해보고 싶었던 일이지만 역시 혼자서는 자신이 없었다. 함께 퇴사한 동료들에게 슬쩍 제안했는데, 너무 흔쾌히 참여해주셨다. 또 내가 미쳐 신경 쓰지 못하는 부분까지 챙기며, 함께 머리를 모아주셨다. 혼자였더라면 벌써 그만뒀겠지만 덕분에 무사히 5호까지 뉴스레터를 발송할 수 있었다.
나이가 들 수록 뭔가 같이 한다는 게 쉽지 않다는 걸 느낀다. 같은 이야기를 해도 생각하는 바가 다르고, 같은 일을 해도 그것을 얼마나 우선순위로 삼는지도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때문에 뭔가 함께 해볼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는 건 너무나 큰 행운임을 되새겨 본다.
6.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은 오조오억 개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기 전까지 비교적 전형적인 삶을 살아왔다. 하지만 졸업 후 진로 고민이 시작되면서 근 5년을 갈팡질팡 했다. 남들은 승진하고 5년 차, 7년 차가 되는 시간에 방황한다는 것이 퍽 불안했으나 이 시간은 머리로만 이해하던 "각자만의 인생이 있는 법이다" 류의 말을 가슴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 주었다. 특히 세운에서는 자기만의 방법으로 멋진 삶을 꾸려가는 사람들이 엄청 많았다. 독학으로 디자인을 배워 대체 불가한 패키지 회사를 창업한 박스마스터 대표님이나, 어려서부터 기계에 관심이 많아 뭐든지 뜯어보며 여러 기술을 섭렵하고 나름의 노하우를 시민들에게 전달하는 기술 중개인 등.
다르게 사는 여러 방식에 눈을 뜨고 나니, 생각보다 그런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게 보였다. 그러니 내 삶도 내가 이래야 한다는 틀에 가둬놓지만 않으면.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 나만의 인생이 될 테다. 그러니 예상치 못한 흐름을 두려워말고 즐길 것! 반드시 안 되는 것도, 반드시 해야 하는 것도 너무 많이 만들지 말 것!
2022년에는 배운 것들을 되새기며 살아봅시다!
올해도 기쁜 한 해가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