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깨란 Nov 30. 2023

쉼의 공간에서 경험이 파도치는 공간으로

트윈웨이브 경험개선의 기록: 제3의 시간 공간 마법사 인터뷰


들어가며


이 글은 수원 슬기샘어린이도서관에 위치한 청소년 전용 공간 <트윈웨이브>의 경험개선 프로젝트를 아카이빙한 작업입니다. 경험개선 프로젝트는 도서문화재단 씨앗에서 운영하는 어린이 청소년 도서관 <제3의 시간> 팀의 주도로 진행되었습니다. <제3의 시간>을 총괄하는 정민, 재료/도구/작업을 담당하는 나연, 글쓰기 중심의 작업을 담당하는 혜지 3인이 프로젝트를 회고하는 방식으로 인터뷰했습니다.


복잡한 맥락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용어가이드를 마련했으니, 참고하여 공간경험을 개선하기 위한 고민과 실행의 과정을 따라가 보세요.


용어가이드


제3의 시간:
도서문화재단 씨앗에서 운영하는 8~19세를 위한 공공도서관. 어린이, 청소년이 누구든지 자신의 세계를 자유롭게 탐색하고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하는 공간이다. 총 3개 층을 사용하는 제3의 시간은 층별로 조금씩 다른 콘셉트의 공간이 조성되어 있다. 3층에는 ‘작가’가 되어 자신의 이야기를 엮어내는 공간인 스토리라이브러리가, 4층에는 취향과 관심사를 발견하고 다양한 형식으로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인 스토리스튜디오가, 5층에는 8~13세가 일상에서 떠오르는 영감과 호기심을 손으로 표현해 보는 작업 공간 모야가 운영되고 있다.


콘텐츠:
제3의 시간과 space T에서 말하는 ‘콘텐츠'란 이용자가 반응하는 환경을 만드는 모든 장치와 제안을 의미한다. 도서관에서 만날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이 콘텐츠인 책부터, dvd, 음반, 게임, 재료, 도구, 기기, 장비에 이르기까지 공간에서 마주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콘텐츠로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또래 이용자가 만들어둔 작업물이나 벽면에 부착된 말을 거는 문구들도 콘텐츠의 일환이다.


스스 콘텐츠:
제3의 시간 스토리스튜디오에서 주로 사용되는 콘텐츠들로 자신의 관심사를 다양한 형식의 작업물로 표현하는 것과 관련이 깊다. 질감과 부피를 갖는 작업물부터, 드로잉, 작곡, 사진, 영상에 이르기까지 각종 작업과 표현을 촉진하기 위해 고안되었다.


스라 콘텐츠:
제3의 시간 스토리라이브러리에서 주로 사용되는 콘텐츠들로 글쓰기, 출판 등의 작업과 관련이 깊다. 쉽게 끄적여 볼 수 있도록 주제를 던져주는 진입형 콘텐츠부터, 자신의 이야기를 완결할 수 있도록 돕는 완결서가까지 다양한 난이도와 깊이를 가진 콘텐츠를 포괄한다.


패시브 콘텐츠:
누군가의 도움 없이도 사용하며 낯선 공간을 경험할 수 있도록 배치해 둔 장치들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이용자가 고민을 적어 벽면에 부착할 수 있도록 질문을 건네는 글귀를 잘 보이게 배치해 둔다거나, 타자기 등 평소에 접해보지 않았던 낯선 장비를 활용해 볼 수 있도록 제공되는 가이드 등이 패시브 콘텐츠라고 할 수 있다. 짜인 일정이 없어 미리 신청할 필요가 없기에 학교, 학원 스케줄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적은 청소년들에게 안성맞춤인 방식이다.



제3의 시간팀 인터뷰 전문

** 독자가 구분하기 쉽도록 제3의 시간에서 운영하는 공간을 의미할 때는 ‘스토리스튜디오’ ‘스토리라이브러리’라는 정식 명칭을 사용하였고, 각 공간에서 개발한 콘텐츠를 의미할 때는 ‘스스’ ‘스라' 등의 줄임말로 표기하였습니다.


♦︎ 경험개선을 위해 트윈웨이브 팀과 함께 해결하고자 했던 고민지점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해요.

(좌) 공간개선전 트윈웨이브 공간안내지도  /  (우) 쉼의 풍경이 지배적이었던 트윈웨이브

정민: 실은 트윈웨이브는 처음 공간을 만들 당시부터 ‘쉼의 공간’으로 기획되었어요. 트윈세대 친구들이 마음 놓고 푹 쉴 수 있는 공간이 없는 것도 사실이잖아요? 오픈한 이레로 2년간 운영자 분들도 쉼을 굉장히 존중해 주셨고 거의 쉼 특화 공간이나 다름없었어요.


그런데 space T에서는 쉼, 만남, 탐색, 표현이라는 4가지 경험의 균형도 중요하거든요. 2년여 시간 동안 트윈웨이브가 ‘쉼 특화’ 공간으로 자리 잡다 보니, 다른 경험은 자리를 잃게 되는 상황이 발생했어요. 데이터를 살펴봤을 때 트윈웨이브를 찾는 친구들의 80%가 쉼 중심으로만 공간을 경험하고 있었고, 창작은 작업을 좋아하는 마니아 친구들을 중심으로만 일어났어요.


또 1516세 친구들의 방문비중이 많이 떨어지고 있다는 지표도 있었고요. 이 친구들은 명확히 공간의 매력을 느끼거나 할 거리가 있다고 느끼지 않으면 오지 않는 친구들이거든요. 하나의 경험이 특정 비중을 넘어 지배적이 되었을 때 다른 경험이 죽을 수 있다는 건 저희도 트윈웨이브 덕에 배운 거기도 해요. 처음 기획의도가 잘 구현된 공간이었지만, 이런 맥락에서 변화가 필요한 타이밍이었어요.  



♦︎ 경험개선을 위해 트윈웨이브를 처음 만났을 때 발견했던 아쉬운 점들은 어떤 것이었나요?



혜지: 트윈웨이브는 뛰기 좋은 길이 시원하게 뻗어 있는 활동하기 좋은 공간으로 설계되어 있었어요.. 다른 공간의 복도 공간이 오솔길이라면 트윈웨이브의 복도는 고속대로 느낌? 머무르는 공간보다는 훅 뛰어가거나 몸을 움직이고 하는 데 특화된 공간이었죠. ‘작업을 좀 더 활성화시키려면 머무를 수 있도록 호흡을 한 번 끊어줄 필요가 있겠다.’ 구상 단계에 팀과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공간개선전 뛰기 좋은 넓은 복도 공간이 있던 트윈웨이브


나연: 저도 혜지 님 말씀에 공감해요. 운영자 분들이 가지고 계신 고민 중에 아이들이 책을 잘 안 읽고, 생각보다 작업을 많이 안 한다는 점이 있었는데… 실은 구조적으로 조금 어려운 면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활동하기 좋은 공간인 반면 작업의 욕구를 느끼고 머물기엔 어려움이 있어 보였거든요.


작업 욕구를 일으키게 하는 것으로 대표적으로 재료 자체와 잘 전시된 작품 두 가지 요소를 꼽을 수 있어요. 트윈웨이브는 자주 이용되는 재료의 종류 대비 재료바의 칸이 많은 편이었고, 작품을 전시용으로 사용되던 선반이 폭이 좁아서 한계가 있었어요. 이런 부분을 좀 개선해서 작업의 선순환이 일어나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죠.



♦︎ 본격적인 경험개선을 준비하면서 제3의 시간 팀이 주안점으로 삼으셨던 부분이 있으셨을까요?

제3의 시간팀이 제안한 트윈웨이브에서의 새로운 공간경험

정민: 이번 경험 개선을 하면서 제3의 시간 팀도 엄청 발전한 부분이 있는데요. 이용자뿐 아니라 운영자의 경험까지 고려하기 시작했다는 거예요. ‘이렇게도 할 수 있어’라는 것까지를 보여드리고, 생각을 넓혀 드리는 건 저희가 할 수 있지만 결국 공간은 운영자와 이용자의 손을 타면서 또 달라지는 거니까요.


해서 이번에는 운영자 분들이 애정하는 경험이 가득한 공간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 또 유연하게 만들어갈 여지가 있는 공간이 되도록 하는 것에 신경을 많이 썼어요. 그런 차원에서 운영자 분들이 제3의 시간에 와서 쉐도잉도 하는 시간도 가졌는데 온도와 이해도 모두 올라가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유연함을 위해서는 바퀴를 달아서 가구들의 모빌리티를 높였어요. 예전에는 진짜 무거워가지고 전혀 움직일 수가 없는 가구들이었는데 바퀴를 달면서 운영자 분들이 이용자에 맞춰 움직이실 수 있게 만든 거죠. 저희의 마법이 끝난 뒤로도 마법을 부릴 수 있게 마법을 조금 나눠드렸달까요?


경험 측면에서는 트윈웨이브의 특화 콘텐츠인 ‘쉼의 풍경’을 다채롭게 바꾸면서도, 만남, 탐험, 표현 등의 다른 경험과 균형을 이룰 수 있게 조율하는 것과 1516세를 사로잡을 만한 콘텐츠가 중요했죠.


나연: 작업물 데이터를 봤을 때 트윈웨이브에는 ‘초인’ 작업자가 많았어요. 정교하고, 스토리가 있고, 작동가능한 그런 작품들이 엄청 많은 편이었거든요. 그런 친구들이 더 마음껏 상상하면서 작업할 수 있도록 돕는 한 편, 작업을 처음해 보는 친구들도 손쉽게 시작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이 두 가지가 저에게 중요했어요.


혜지: 저는 ‘스토리 라이브러리’가 트윈웨이브에서 잘 작동하게 하는 것에 신경을 많이 썼어요. 글쓰기 콘텐츠는 기존에 트윈웨이브에는 없던 것이었다 보니, 보자마자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느낌을 주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집중했어요.



♦︎ 트윈웨이브의 공간적 특성을 고려했을 때, 나왔던 아이디어들은 어떤 게 있을까요? 기대하면서 준비하셨던 것, 트윈웨이브라 가능했던 것 등이 궁금해요.


나연: 공간을 바꾸는 저희 입장에서 트윈웨이브는 상상하기가 되게 좋은 곳이었어요. 언덕이나 다락, 테라스가 있어 지형도 다양하고, 세로로 긴 공간에 스스 콘텐츠와 와 스라 콘텐츠가 수평으로 놓일 수 있다 보니 경험이 섞이고 연계되도록 실험해 볼 수 있는 영역이 많은 것도 재밌었어요.


스스존에 놓인 넓은 작업대

그래서 저는 되게 큰 작업 테이블을 놔주고 싶었어요. 아까도 말했듯 트윈웨이브에 초인이 정말 많았거든요. 제가 1년 치 작업물을 살펴봤는데, 작업물들이 하나 같이 정말 정교하고, 진짜 작업 잘하는 친구들이 한 솜씨였어요. 그런데 모든 작업물이 그렇다는 건 반대로 역으로 ‘나도 한 번 해볼까?’하는 마음으로 가볍게 시도하는 친구들이 없다는 의미기도 하거든요. '사막에서도 막 갑자기 집 지을 수 있고 이런 애들만 여기서 작업을 하는 건가?' 그런 느낌이 좀 강했어요.


트윈웨이브는 쉬고, 즐기는 걸 장려하는 공간이었기 때문에 그런 무드가 작업공간에서도 만들어지면, 그냥 흥겹게 누구나 한 번씩 해볼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이 들었죠. 그러려면 좀 편하게 작업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이 중요했는데, 트윈웨이브가 작업을 귀한 단독공간을 만들 수 있는 형태는 아니었거든요. 같이 있으면서도 혼자 있는 느낌이 나려면 간격이 굉장히 넓은 큰 테이블이 있으면 되지 않을까 해서 요청을 드렸어요. 이게 스토리스튜디오 같은 공간에서는 놓을 수 없는 사이즈거든요.



♦︎ 기존에도 꽤 큰 육각형 테이블이 있었었는데, 그 테이블과 이번에 변경된 직사각형 테이블은 기능이 어떻게 다른 걸까요?


혜지: 실은 이전에 트윈웨이브 작업공간에 있던 육각형 테이블을 작업을 벌이기에 편한 형태는 아니었어요. 보통 친구들이 앉은자리에서 수평으로 재료를 벌려 놓거든요. 그런데 각이 생기게 되면 1명이 쓸 수 있는 공간이 한정적이 되니까… 좀 난감하죠.


나연: 맞아요. 육각형 테이블도 사이즈가 컸는데 막상 작업을 크게 벌이고 싶으면 옆에 있는 사람과 부딪히는 거예요. 큰 작업을 하고 싶으면 테이블 전체를 독점해야만 가능하고요. 그런데다 저같이 내성적인 사람들은 앉기가 부담스러운 형태기도 해요. 어디 앉아도 마주 보게 되니까요.  

작업공간이 비좁았던 개선 전의 오각형테이블

아무튼 그런 맥락에서 큰 테이블을 놓게 됐는데, 비로소 정말로 ‘웨이브가’ 된 느낌이더라고요. 스라와 스스의 경험을 잇는 테이블이 쭉 이어져 있고, 그 끝에는 언덕과 테라스가 이어지니까요.



♦︎ 가구 하나에 공간의 흐름이 달라질 수 있다니 정말 흥미롭네요. 다른 분들도 공간적 특성을 고려해 시도해 보신 것이 있다면 더 공유해 주세요.  
 

정민: 저 같은 경우는 공간은 이미 너무 써먹기 좋으니 거기에 담긴 풍경을 바꾸자라는 접근이었어요. 트윈웨이브 공간에서 특히 재밌는 포인트는 두 가지 정도가 있는데,  하나는 높낮이 플레이가 가능하다는 거였어요. 다른 공간들은 그렇게 높이 해먹이 있다거나 뭔가 2층 다락서가 같은 그 위에서 내려볼 수 있다거나, 탑뷰를 가질 수 있다거나 그런 것들이 없는데 트윈웨이브는 그게 가능해서 좀 재밌었죠. 나연 님이 작업물을 매달자는 아이디어를 주셨었는데, 그러면 해먹에 누워있는 친구들도 작업물을 볼 수 있게 되니까. 이렇게 경험을 입체적으로 선물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았어요.


다른 건 운영자의 시선을 피할 수 있는 다양한 사이즈의 포켓공간이 충분하다는 것. 다락에 가면 이쪽에는 2명, 저쪽에는 4명이 들어갈 수 있고. 뚫린 구멍으로 들어가면 그쪽에는 1명이 들어갈 수 있어요. 비밀의 문 같은 회전문을 돌려서 들어갈 수 있는 다목적실도 마찬가지고요. 그런데 그런 공간들이 휴대폰 하는 공간으로 변질된 게 아쉬웠고, 집고 싶은 콘텐츠들을 채워 넣어서 풍경을 바꿔봐야겠다 그게 중요했어요.


혜지: 스토리라이브러리의 경험을 넣자는 결정에는 다목적실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어요. 이전에는 다목적실이 프로그램을 하는 용도로만 사용됐거든요. 프로그램이 있을 때는 문을 닫고 진행하다 보니 상시 이용하는 친구들의 경험과 단절되는 느낌도 있었고요. 실은 모든 프로그램이 이 공간 안에서 일어나는 것도 친구들에게는 되게 좋은 구경거리인데 말이죠.

콘텐츠가 없어 할 수 있는게 적었던 기존의 다목적실


그런데 다용도실이 잘 쓰면 매력이 굉장히 많은 공간이었어요. 다락서가를 사이에 두고 회전문이 있는데, 벽처럼 보이는 선반을 살짝 밀면 돌아가면서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느낌을 주는 장치예요. 또. 2층에 올라가서 내려 볼 수도 있고요.


그러면 프로그램을 하지 않을 때는 어떻게 쓰면 좋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공간을 뜯어봤어요. 살펴보니 평소에 그 공간이 굉장히 조용하더라고요, 창밖의 공원은 가장 아름답게 보이기도 했고요. 그래서 아름다운 창가를 보면서 몰입하고 싶은 자세와 바라보고 싶은 뷰를 보면서 글을 쓰는 또는 나를 좀 더 알 수 있는 콘텐츠를 봤으면 좋겠다. 마치 거실처럼요. 그래서 일부러 의자도 모두 창쪽을 향하게 세팅하고 신경을 많이 썼던 것 같아요.


아름다운 창가를 중심으로 몰입에 최적화된 콘텐츠가 투입된 다목적실


두 번째로는 공간에 들어오자마자 ‘새로운 경험이 시작됐다.’라는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스토리라이브러리에서도 해볼 수 있는 것들이 눈앞에 펼쳐지는 게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마침 스라 콘텐츠가 들어 사자마자 보이는 전면에 배치됐어요. 막 압도감을 느낄 필요는 없지만 ‘우와 뭐야’라는 와우포인트가 있도록 전면에 재료도구를 많이 배치했어요. 재개관 첫날 관찰기록 사진 올라오는 걸 보니까 이 전략이 유효했는지 들어오자마자 작업을 하는 친구들이 꽤 있더라고요. (웃음)



♦︎ 이번에는 좀 더 실질적인 질문으로 들어갈게요. 재료바 업데이트가 이번 경험 개선에서 꽤나 중요한 과제였어요. 제3의 시간과 다른 트윈웨이브의 여건을 고려하면서도, 아이들이 작업하고 싶은 욕구를 충분히 자극할 수 있도록 해야 했어서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지속가능한 매력적인 재료바’를 만들기 위해 고려한 부분이 있으실까요?


나연: 말씀하신 바처럼 space T가 소속된 기관의 내부사정에 따라 예산 상황, 수급 및 관리하기 편한 재료가 다 다르기 때문에 트윈웨이브의 상황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게 중요포인트였어요. 월간 사용사실 수 있는 재료비 수준에 맞춰 재료를 라인업 해본 것은 저희에게도 이번이 첫 시도였어요.


트윈웨이브의 기존 재료 사용현황을 분석한 자료

그걸 가능하게 하기 위해 했던 여러 가지 제안이 있었는데요. 원래 재료바가 30칸이었어요. 그런데 맨 위쪽에 문을 달아서 5칸을 줄여 25칸으로 만들었죠. 이건 트윈웨이브가 가지고 있던 여러 가지 고민 지점을 해결하기 위한 제안이었는데요. 트윈웨이브에 재료도구 수납공간이 부족한 편이었어요. 실제로 줄인 5칸 정도에는 재료가 아니라 장갑, 앞치마 같은 도구를 보관하고 있었거든요. 또 2023년 활용된 재료도구를 살펴봤을 때, 길목형 재료 위주로 사용되고 30여 개의 재료를 다 사용하지는 않는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과감하게 칸 수를 줄이고 주재료로 삼을 만한 것들을 넉넉히 채워주기로 했죠.


정민: 나연 님이 올해 초 스토리스튜디오에 합류하면서 재료의 구조를 좀 정리해 주셨어요. 덩어리 재료, 뼈대 재료 등 용도별로 나누어서요. 작업물이 다양하게 생산될 수 있도록 재료들 간의 비율은 유지하면서도 ‘수급이 용이한지?’ ‘재료비가 적정한지?’등을 고려해서 25종을 선별한 게 지금의 트윈웨이브 재료바예요.


나연: 어떤 재료를 얼마나 넣을지는 작업물 데이터를 많이 참고했어요. 트윈웨이브 같은 경우에는 입체 작업물이 많았는데 대부분 길목형 재료를 활용한 작업들이었어요. 종이모듈은 세 개만 붙여도 입체가 되니까 쉽게 입체 작업물이 나왔을 수도 있고요. 그런데 저희가 이번에 기존에 있는 것만 쓰고 더 이상 그 재료를 쓰지 않는 걸 권해드렸어요. 대신 박스 지를 재단해서 쓸 수 있게. 그 재료가 사실 좀 비싸기도 하고, 기술력 좋은 친구들이 많은 트윈웨이브의 상황을 고려했을 때 직접 재단하는 것이 작업하는 맛이 더 좋기도 하고요


근데 그러려면 확실히 넓은 테이블이 유리하거든요. 뭘 이렇게 펼치고 재단을 하려면 일단 앞에 거칠 게 없어야 해요. 넓은 테이블로 바꾼 것도 재료 재단 측면에서는 좀 더 유리하고, 이전에 없던 칼, 풀 등을 담은 도구트레이를 테이블 위에 놓아서 닿기 쉽게 바꾼 측면도 있어요. 바로 시작할 마음을 쉽게 가질 수 있도록요.

그 외에도 재료바가 가득 찬 느낌을 내는 부피감 있는 덩어리 재료를 추가하거나, 비슷한 성질이지만 저렴한 재료를 섞어서 놓는다던가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어요.



♦︎ 어떤 재료가 풍성함과 가성비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재료였나요? 구체적으로 알려주세요.


나연: 부피감 있는 재료 중에는 과일망이 있어요. 제3의 시간에는 원래 동그란 과일망이 들어 있었어요. 근데 깨는 응용하기가 쉬운 재료는 아니더라고요. 작업을 봤을 때 보통 뭐의 모자 이렇게 쓰는 경우가 많아서. 그래서 트윈웨이브에는 그물망 형태의 과일망으로 바꿔봤어요. 그물망을 만들 수 있는 재료가 없으니까, 그건 조금 더 활용이 되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하면서 바꿔봤죠.


업데이트된 재료바


면 재료로는 폼보드 대신 우드락을 넣어봤어요. 폼보드랑 우드락이 성질이 같은데 폼보드는 겉에 이제 종이가 붙어 있어서 더 단단한 대신 더 비싸거든요. 우드락보다 3배 정도 비쌀 거예요. 근데 그렇게까지 필요 없을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해서 일단 우드락을 넣어 봤어요. 실제로 제3의 시간에서 실험을 해보니까 친구들이 그 질감이나 강도나 이런 걸 스스로 보고 판단해서 필요에 따라서 꺼내서 쓰더라고요. 그래서 재료비 때문에 우드락과 폼보드를 같이 넣은 것도 있지만 그 두 가지 재료가 차이가 있다는 것과 그걸 고민해 가지고 작업을 해보는 재미? 그런 것도 생길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그런 재료들을 좀 더 넣었어요.


바뀐 작업대에서 박스지를 재단하는 캡틴들


그리고 이번에 감사하게도 도서문화재단 씨앗의 예산도 사용할 수 있었어서. 드로잉 재료에 힘을 좀 많이 줬어요. 처음에 드로잉 재료는 살 때는 돈이 드는데, 오래 쓸 수 있거든요. 그리고 사실 종이는 상대적으로 저렴하잖아요? 종이의 사이즈라든가 재질이라든가 이런 걸 좀 다양하게 보여주려고 노력했죠.


특히 트윈웨이브는 작업물의 절반 정도가 드로잉이었을 정도로 드로잉이 많이 일어나는 공간이었어요. 더구나 드로잉은 제3의 시간에서도 15세 이상 친구들이 좋아하는 작업이거든요. 막 본격적으로 뭘 만드는 거는 그 친구들한테 조금 이제 부담일 수도 있고 피로감일 수도 있고 머무는 시간도 그렇게 길지 않고 하니까요. 공간에 왔을 때 드로잉 재료가 아까 안 써본 거라든가, 색깔이 좀 많은 거라든가 이런 게 있을 때 '이 공간 좀 괜찮은데?' 이런 약간 직관적인 평가를 하기도 되게 좋은 지표가 돼요. 1516세를 잡아야 하는 트윈웨이브에게도 잘 맞는 전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 드로잉 재료를 곳곳에서 만날 수 있게 된 데에는 그런 배경이 있었군요. 이미 드로잉이 많이 일어나는 공간이었긴 하지만, 공간 개선을 하면서 새로운 드로잉 경험을 주기 위해 추가적으로 배치하신 장치들이 있었는지 궁금해요.  


나연: 저는 트윈웨이브 작업하면서 가장 좋았던 건 스라랑 같이 한다는 거였어요. 앞서 말했듯 트윈웨이브에서는 스스와 스라 콘텐츠가 공간에 일직선 상으로 놓여 있기 때문에 경험을 연결하는 게 가능하더라고요. 사실 제3의 시간은 스토리 라이브러리는 3층, 스토리스튜디오는 4층, 이렇게 층이 나뉘어 있으니까 경험이 분절되는 면이 있어요. 근데 생각해 보면 글과 그림이 되게 잘 붙잖아요. 그래서 스스, 스라 구분 없이 공간 곳곳을 누비며 드로잉 할 수 있게 일부러 재료도 분산해서 배치했어요. 예를 들면, 작은 종이는 스라 재료바에만 두고, 좀 큰 종이는 스스 재료바에만 두는 식으로요.


드로잉은 또 꼭 자리에 앉아서만 할 수 있는 작업은 아니니까 이동하기 쉽도록 화판 같은 걸 두기도 했고요. 다락이나 다목적실에 마음에 드는 공간이 있으면 이동해서 그림을 그리거나 그럴 수 있도록요.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작업하고 싶은 자리를 잘 찾거든요. 근데 지형이 다양한 트윈웨이브는 그러기 더 좋은 형태이니, 그걸 가능하게 하는 장치를 놔준 거죠. 처음에는 테라스가 너무 좋으니까 이젤 같은 걸 둬볼까? 그런 생각도 했어요. 이제는 추워졌지만요. (웃음) 어쨌든 화판이 있으니까 원하면 나가서 그림을 그릴 수도 있고… 그런 운치를 친구들이 좀 발견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어요. ‘드로잉 재료가 저쪽에도 많이 있고 이쪽에도 많이 있으니까 마음껏 써봐.’ 하는 마음.  



♦︎ 스스와 스라간 연결이라는 지점이 아주 흥미롭네요. 연결된 경험의 흐름을 누리며 친구들이 운치를 발견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어요. 혹시 스라존에서도 스스와 경험을 연계하기 고민한 흔적을 발견할 수 있나요?


혜지: 저 또한 스스와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좋다고 생각했어요. 실은 스라 콘텐츠는 트윈웨이브에 처음 들어가는 것이다 보니까 아이들이 보자마자 직관적으로 이해하게 하는 게 굉장히 중요했거든요. 스토리라이브러리에서 실험해 봤을 때 ‘스라러픽'이 유효했어요. 스라에 오신 작가님들이 스라에서 참고한 책, 그날 만든 작업물을 모아 서가 한 칸에 전시할 수 있도록 하는 콘텐츠인데요. 운영자가 라운딩을 통해 공간을 소개해주는 것도 물론 좋지만, 친구들이 남기고 간 전시물은 한눈에 공간에서 뭘 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최고의 가이드라 정말 중요해요.

캡틴픽을 전시할 수 있는 공간


어쨌든 요 방식을 트윈웨이브에도 ‘캡틴픽'이라는 이름으로 적용했어요. 들어오자 보이는 아치형 서가에 오늘 본 책과 작업물을 꽂아 놓고 가는 영역을 만들었거든요. 바로 뒤에 새로 넣은 재료바도 펼쳐지고요. 여기서부터 스스와 연결되면서 즐거운 지점인데요. 저는 이 전시영역에 책과 작업물이 같이 놓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아니면 정말 특이한 작업물에 가까운 책이 놓일 수도 있고요.

나연: 스스 재료를 사용해서 만들 수도 있으니까…


혜지: 맞아요. 맞아. 스스와 눈에 띄는 연결 지점이 생긴 부분이 하나 더 있는데, ‘세상에서 OO 한 책 만들기' 에요. 트윈웨이브 작업물들을 같이 들여다보면서 ‘이 친구들 진짜 초인이다!’라고 생각했던 부분이 몇 개의 재료만으로도 이야기를 가진 작업물을 완성하는 거예요. 캐릭터가 재밌는 작업물이 많은 것도 좋았지만, 몇 개 안 되는 책 작업물들을 보면 되게 자기 키 만한 책, 굉장히 긴 책을 만드는 작업들이 꽤 보였거든요.

공간 개선전 굉장히 긴 책을 만든 트윈의 사례


‘그래, 그러면 우리 세상에서 OO 한 책 만들기를 해보자.’라고 해서 레퍼런스로 긴 책을 사서 천장에 달아놓기도 하고, 정말 작은 책도 전시대에 놓았죠. 그러면서 한 편으로 전시대 아래쪽 칸에는 스스 재료를 조금 갖다 놨어요. 타일도 갖다 놓고, 실도 갖다 놓고, 과일망도 갖다 놓고. 쭉 다 갖다 놔서 ‘오늘의 재료’ 같은 것을 좀 번갈아 가면서 제안해보기도 하고.


추가된 스라 재료 도구 존, 세상에서 가장 OO한 책


이건 스라에서 해보지 못한 시도였는데, 이번에 트윈웨이브 오면서 해본 거죠. 1214세 친구들은 바로 글을 쓰기보다 손으로 작업하면서 생각하는 걸 되게 좋아하거든요. 트윈웨이브에 스라 콘텐츠를 넣기로 한 결정은 1516세 친구들이 많이 와줬으면 하는 측면에서였지만. 어쨌든 현재 실제로 많이 오고 있는 친구들은 1214세니까 이 친구들이 스라 콘텐츠를 자연스럽게 이용할 수 있는 장치도 돼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부분에서 되게 재미있는 시도였죠.


또 오히려 스스랑 붙어 있으니까 중복 재료 도구들을 되게 섬세하게 나눴거든요. ‘우리 연필 스펙트럼 이렇게 다 있으니까 그럼 저기는 연필을 뺍시다.’ 이런 대화들을 처음 해본 거죠. 예산적 제약과 공간적 특성이 더해져 오히려 창의적인 해법들을 많이 찾아낼 수 있었달까요? (웃음)

재개관 후 신설된 스라존에서 곧바로 경험으로 빠져드는 캡틴들


♦︎ 역시 창의력을 발휘하려면 새로운 문제가 필요한가 봐요. 설명해 주신 것처럼 스라 콘텐츠는 트윈웨이브에는 처음 적용됐는데요. 친구들이 어려움 없이 진입할 수 있도록 배치하신 장치들을 더 소개해주실 수 있나요?


혜지: 앞서 말씀드린 ‘캡틴픽', ‘세상에서 OO 한 책 만들기' 외에도 기본적으로 기존에 스라에서 잘 작동하던 패시브 콘텐츠들을 구석구석에 배치했어요. 예를 들어, 뭐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을 때 질문이나 단어를 제시해 주는 ‘생각소스'나, 가볍게 문장을 따라 적을 수 있도록 한 ‘발견한 한 문장 쓰기'같은 것들이 들어갔어요.

다락서가에는 서가를 좀 들여다봤으면 좋겠어서 ‘고양이가 좋아 강아지가 좋아’ 이런 되게 간단한 질문들에 투표할 수 있도록 하면서 그 옆에 강아지, 고양이와 관련된 책을 놓았고요. 뭔가 책을 읽다가도 옆에 쪽창으로 보면 ‘너 내려가서 한 번 써보고 싶지 않아?’라는 문구들도 좀 써놓고. 그럼 내려가서 가볍게 글쓰기를 시작할 수 있으니까. 그런 기본적인 것들도 좀 넣었어요.


스라의 패시브 콘텐츠 (좌) 다락서가의 투표함 / (우) 다목적실의 생각소스


♦︎ 공간에 따라 다른 주제의 책을 배치하는 한 편, 나(다목적실) ⇔ 세상(다락서가) ⇔ 상상(언덕서가)으로 주제 간 연결과 확장이 일어나는 것이 인상 적었어요. 더욱이 서가 별로 진입장벽이 상이한 도서를 선별하신 섬세함에 놀라기도 했는데요. 각 공간이 어떤 특성을 갖고 있길래 거기에 그 책이 필요했던 것인지 궁금해요.


정민: 그 부분은 이제 스스를 담당하시는 나연 님과 스라를 담당하시는 혜지 님의 니즈를 조합해서 제가 하나로 정리를 했던 부분이에요. 그러니까 공간을 헤매면서 경계 없이 스스와 스라의 콘텐츠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를 고민한 결과예요.  


‘나 <> 세상 <> 상상'이라는 제3의 시간에서 사용하던 틀을 사용하는 한편, 스라 스스 콘텐츠와의 조응을 생각했어요. 다목적실이 있는 스라존은 한마디로 표현하면 ‘나에 대해 탐구하고 글로 적을 수 있는 공간’이에요. 누군가의 눈을 피해서 자신에 대해 돌아보고 조금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하고 싶은 친구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책을 뒀어요.


트윈웨이브의 콘텐츠 구조


스스존과 언덕, 테라스로 이어지는 오른쪽은 ‘상상’ 그러니까 나와 세상을 넘어서 여러 가지 발상을 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이 예요. 세계관을 발견하고, 자기도 뭔가 만들어보고 싶어지는. 실은 이 언덕 앞에 책을 배치하는 것이 공간을 개선하는 단계에서 굉장히 큰 결정이었어요. 공간개선 전에는 언덕의 오른쪽에는 게임존이 있었고 왼쪽 선반에는 작업물을 전시했거든요. 그런데 선반은 작업물을 전시하기에는 조금 좁은 편이었고, 게임하는 영역과 언덕이 만나면서 언덕이 거의 관중석처럼 활용되고 있었거든요. 책 읽는 모습은 거의 볼 수 없는 곳이었죠. 그런데 여기서 책을 읽는 모습을 보려면 어떤 책을 놔야 해? 했을 때 스스의 평상존처럼 편하고 쉽게 책을 읽을 수 있는 곳이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그래서 평상존에서 인기가 많은 책이 뭔지 살펴보고 히어로물, 좀비물 같은 좀 인기 많은 책들을 놓게 됐죠.


이렇게 양 끝에 ‘나'와 ‘세상'을 배치한 후에 가운데 그 둘을 잇는 ‘세상’을 넣게 된 거예요. ‘세상'은 실은 가장 관심이 없는 영역이거든요. 나에 대해 생각하거나, 아예 픽션을 보는 건 재미있는데 논픽션적인 세상의 이야기는 어디에서도 늘 인기가 없거든요. 그런데 다락서가는 공간 자체가 인기가 많고, ‘책을 좀 읽는다' 하는 친구들은 무조건 가는 공간이에요. 실제로 정성기록 상에 오자마자 다락서가에 가는 친구들도 많았는데, 그건 이 친구들은 원래부터 여기서 책을 읽겠다는 마음으로 왔다는 거거든요. 세상 안에서도 좀 인기가 있는 동물 같은 주제를 포함해서 책을 읽을 수밖에 없는 구조로 다락서가를 만들었던 거고요.


나연: 트윈웨이브는 아까도 말했 듯 공간을 바꾸는 저희 입장에서도 상상하기가 너무 좋은 공간이었는데요. 언덕에서 바람을 맞으면서. 트윈웨이브는 바다니까요?(웃음) 아니면 해먹에 누워서 호쾌한 책을 읽으면 너무 좋겠다. 약간 이런 상상을 하게 되고, 다락에 숨어서 되게 내밀한 사랑 이야기를 읽으면 좋겠다 이런 걸 저희가 되게 즐겁게, 쉽게 상상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그 주제대로 배치를 하는 거에 아무도 이견이 없었고 맞아 거긴 '나'지 막 이런 거 있잖아 거긴 맞아 '모험'이지 이런 그런 게 또 너무 재밌었어요.


모험심을 불러 일으키는 만화책으로 가득한 어디서든 서가

정민: 공간개선하고 나서 종종 언덕에서 책 읽는 모습이 사진으로 올라오거든요? 그러면 이제 저희는 너무 반가운 거죠. 거기는 책 읽는 공간이 정말 아니었으니까. 100명 중에 1명 있을까 말까 한 정도로.


혜지: 추가적으로 ‘나'에 대해 다루고 있는 스라존에서 수서 하면서 시도한 건 나이 책이에요. 기존에 트윈웨이브에 ‘책 만드는 법', ‘편지 쓰는 법' 같은 하우투와 관련된 책들은 좀 있었는데 그 외에는 대부분 만화책이고 글밥 책은 거의 없었어요. 그런데 1516세, 아니 14세만 돼도 글밥 책을 꽤 읽거든요. 오히려 글밥 책의 아우라의 안정감을 느끼는 책도 있고. 그래서 이런 글밥 책들을 좀 다양하게 넣었는데 그중에서도 ‘13살 여름' ‘14살 우리는' 이런 책처럼 나이가 제목에 등장하는 책들이 있잖아요? 이런 책들은 무조건 집어 들거든요. 그게 글밥이 많든 적든. 내 나이에서 시작해서 나도 언젠가 00살 될 거니까 쭉 이어서 보게 되는. ‘나, 성장, 변화'라는 주제의 책들을 넣으면서 좀 어려울 수 있으니 쉬운 접근을 만들기 위해 그런 나이책들을 12세부터 19살까지 수서 했어요.



♦︎ 컬렉션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이어가 볼게요. 트윈웨이브에 들어오자마자 공간 가장 중앙에 15세 관람가 서가가 있는 것이 굉장히 눈에 띄어요. 어떻게 이렇게나 중앙에 놓게 되셨는지? 15세 관람가를 굳이 모아둔 서가를 둠으로써 기대하시는 효과 같은 것이 있으신지 궁금해요.


정민: 15세 관람가 책을 넣으려면 일단 운영자 분들의 용단이 굉장히 중요해요. space T는 1216세 공간인데 15세 관람가를 어떻게 볼 것인가? 의 문제다 보니까요. 아직 space T 차원에서 다양한 관점이 존재하지만, 제3의 시간 입장에서는 15세 관람가 도서를 공간에 두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의미거든요. 첫째로 ‘여기가 15세도 올 수 있는 공간이다.’라는 걸 확실히 보여주는 거죠. 또 12세 친구들도 언젠가 12세가 되잖아요? 그때 어떤 콘텐츠를 보여주는지 알려주는 장치가 되기도 하죠. 지속적으로 오게 만드는 동인이 된달까? 특히 이번에 들어간 <최애의 아이> 같은 콘텐츠는 반응이 좋은 책이고, 드로잉 작업으로 연결이 많이 되는 콘텐츠거든요.

전면에 부각된 15세 관람가 서가

그럼에도 선정성, 폭력성 때문에 민원이 들어올 수도 있는 부분이고. 해서 운영자 분들의 용단이 중요해요. 다행히 트윈웨이브에서는 콘텐츠를 넣어보자는 결정을 해주셨고요. 그런데 학부모님들, 도서관의 리더십 분들이 우려하실 부분을 고려해서 운영자와 가장 가까운 공간에 책을 두고 15세 관람가임을 명확히 명시하자. 이런 방법을 찾게 된 것 같아요.


그렇지만 이 방법이 최선인지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워요. 제3의 시간의 경우 15세 관람가임을 명확히 명시해 뒀을 때 숨어서 보는 친구들이 생기는 사례가 있었거든요. 공간마다 차이가 있는 부분이라 아직까지 더 나은 방법을 찾아야 하는 주제이지만, 15세 관람가 책들을 남겨두었다는 것이 저에게는 큰 위안이에요. 이게 아예 빠졌다면 거기는 이제 12세 관람가나 전체 관람가만 있는 공간이 됐을 거고, 저희가 아무리 스라 콘텐츠를 넣어서 1516세를 위한 느낌을 줘도 콘텐츠가 없기 때문에 아이들만을 위한 공간이 됐을 가능성이 높거든요.

나연: 물론 15세 관람가인 것들이 진짜 안 넣고 싶어 하시는 이유가 이해가 되는 부분도 되게 많아요. 진짜 선정성 폭력성 이런 것도 있고, 성 상품화 이런 것도 있고. 근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가 수서 할 때 검토를 다 해서 넣는 거거든요. 그렇게 까지 하는 이유는 15세 관람가만이 가져갈 수 있는 서사의 깊이가 있어요. 서사가 되게 거대하고, 감정이 너무 막 요동치고, 이런 게 가능하려면 약간의 자극요소가 필요하거든요. 어디에 더 주안점을 두느냐에 이제 문제긴 한데, 사실 아이들은 다 보고 알고 있거든요. 우리가 그냥 ‘안 볼 거다.’라고 생각하는 거지. 근데 그걸 공공에까지 두느냐 안 두냐는 진짜 이제 선택의 문제긴 하죠. 하지만 ‘우리는 너네가 이런 걸 보고 있다는 걸 알고 있고, 우리도 이런 거를 경험해 본 사람들이야.’라는 암묵적 합의에서 오는 동질감 같은 것도 생길 수 있다고 봐요. 그래서 포기할 수 없는 부분인 것 같긴 해요. 대신 굉장히 엄하게 검토를 하긴 해요.


♦︎ 공감해요. 같은 책이라도 안전한 공간이라는 전제가 있는 공공공간에서 보는 것과 그렇지 않은 곳에서 보는 것은 굉장히 다른 의미인 것 같아요. 선별된 약간의 선정성을 포함한 책을 안전한 테두리 안에서 보는 것과 어둠의 경로를 통해 만나는 불특정 다수의 선정성과 자극을 마주하는 건 완전히 다른 이야기니까요.


나연: 맞아요. 저도 청소년을 키우기도 하고, 가르쳤기도 해서 얘기를 많이 나누는 편인데요. 아이들은 선정성, 폭력성에 집중하기보다는 스토리 얘기를 훨씬 많이 해요. ‘그래서 왜 귀칼(귀멸의 칼날)’이 좋아?’하고 물어보면, 스토리가 어떻고 세계관이 거대하고 그런 이야기를 가장 많이 해요.

선정성을 완전히 무시해서도 안 되겠지만 너무 초점을 거기에만 두게 되면 힐링 만화밖에는 볼 수 있는 게 없어요. 그런데 그걸로 상상할 수 있는 건 좀 한계가 있으니까요.



♦︎ 제가 초등학교 때 천국의 계단을 엄청 재밌게 봤어요.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그게 초등학생이 볼 만한 드라마는 아니거든요. 그런데 그걸 보면서, 거기에 포함된 선정적 요소는 솔직히 이해도 못했지만 스토리라인이 너무 재미있어서 거기에 집중했던 거거든요. 그래서 말씀하신 내용이 어떤 말씀인지 알 것 같아요.

나연: 물론 자극을 받는 친구도 있겠지만 더 다수의 친구들은 스토리와 감정에 공감할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걸 음지에서 보게 하기보단 오히려 ‘이건 조금 야하긴 하지만…’ 이런 식으로, ‘그건 너무 폭력적인 표현이긴 했어요.’ 이렇게 어른과 되려 얘기할 수 있게 되는 게 저는 더 좋은 것 같아요.


♦︎ 아까 살짝 이야기했던 언덕 옆 게임존이 영화존으로 바뀌었어요. 게임존은 상대적으로 잘 안 보이는 공간에 숨겼고요. 영화존을 넣으면서 공간의 흐름이 어떻게 바뀌길 기대하셨는지 궁금해요.

 

나연: 생각해 보면 게임을 안 쪽으로 넣자는 결정이 경험개선하면서 가장 초반에 운영팀과 내린 큰 결정이었어요. 처음에는  게임에 되게 애정이 많으셨고, 아이들이 게임하려고 이 공간에 오기도 하는데 게임을 치우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타협안으로 안 쪽으로 이동을 하게 됐고. 그랬기 때문에 게임만큼 재미있는 만화가 언덕옆 서가에 놓여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했고요. (웃음)


정민: 예전에 트윈웨이브 이용 사진을 쭉 분석해 보면, 게임을 하고 있는 친구는 2~3명 밖에 없는데 언덕 쪽에 관람하는 친구들이 정말 많았어요. 멍 때릴 바엔 구경하고, 구경하다 보면 하고 싶고 계속 그 수렁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는 구조였어요. 그런데 이제 안쪽으로 게임존이 이동함으로써 공간이 들고 나는 느낌이 생겼어요. 한 판 하고 이제 나오면 딴 것 해볼까? 하고 생각해 볼 수 있는 거죠. 그러니까 공간적으로 전환이 된다고 해야 할까요? 게임하러 가는 것, 그만하러 가는 것을 스스로 인지할 수도 있고. 무엇보다 관람하는 인원을 좀 줄이고 싶은 마음이었어요.


혜지: 저희가 다 회고해 보면 가까이에 뭐가 있느냐가 진짜 중요하거든요. 시선이 닿는 것에 뭐가 잇느냐에 따라 딥어드는 책이 달라진다던지, 저희가 경험개선을 하면서 가장 변화를 주고 싶었던 부분은 결국 이 공간을 일상적으로 새로운 걸 해보고 싶고, 작업을 해보고 싶은 공간으로 만드는 거였으니까. 그렇다고 할 때 가까이 있는 것을 완전히 바꾸고 싶었던 게 있었던 거죠. 작업물이 있던 곳에 책을 놓는 다던지, 게임이 있던 것에 책을 놓는 다던지. 가까이 있으면 슬그머니 와서 보는 것도 달라지고, 해보고 싶은 것도 확실히 달라지는 것 같아요.



♦︎ 게임존을 어떻게 할지 고민하면서 space T 사상 처음으로 게임 수서 기준을 만들기도 했는데요. 게임 콘텐츠를 바라보며 가지고 있는 기대와 우려는 어떤 것이 있으실까요?


정민: 트윈웨이브에서 게임 콘텐츠가 어떻게 이용되는지 기록을 보면서 제가 처음으로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게 됐던 게, 게임을 하면서 트윈웨이브에서 친구를 사귄 경우가 있었어요. 제3의 시간에는 워낙 목적성이 명확한 친구들이 오다 보니까 잘 일어나지 않는 케이스거든요. 동네 가까운 곳에서 오는 친구들이 많은 공공도서관의 특성상 다른 점이 있겠구나. 생각을 했고. ‘만남' 콘텐츠로서 게임의 가능성을 봤던 부분이 있어요.

이동한 게임존에서 함께 게임을 하는 캡틴들


여기서 착안해서 트윈웨이브의 대표적인 ‘쉼' 콘텐츠였던 게임을 ‘만남' 콘텐츠로 부각해보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고요. 다른 하나는 ‘탐색’ 콘텐츠로서 게임의 가능성을 실험해 보는 거였어요. 예전엔 게임이 플레이하는 경험 정도였다면, 요즘엔 그래픽도 워낙 뛰어나고, 만화나 영화에서 영감을 받은 게임도 많고, 감상형 콘텐츠로서 가능성이 있잖아요. 영화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시각적으로 생소한 경험을 할 수 있게 하는 그런 콘텐츠가 될 수 있겠다 생각했어요.


이런 관점에서 게임 수서 기준도 처음으로 세워 봤는데요. ‘만남'이 가능하도록 2인 이상이 플레이해야 하는 게임일 것, 콘텐츠 원작이 있어 여러 경험을 넘나들 수 있는 게임일 것 같은 게 대표적이에요. 예를 들면, <호그와트 레거시>나 <드래곤볼> 이라던지 이런 것들은 워낙 원작 콘텐츠가 잘 알려져 있지만, 게임화되어 그래픽이 펼쳐졌을 땐 굉장히 낯선 경험을 할 수도 있으니까요. 탐색 콘텐츠가 책만 있으면 진입장벽이 너무 높잖아요. 시각적 감상의 영역에서 낯선 것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그런 탐색 콘텐츠로 영화뿐 아니라 게임이 기능했으면 하는 희망이 있어요.


'게임이 과연 이야기 콘텐츠로서 작업자들한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가?' 이런 걸 저희도 많이 규명해 보지 않았고 또 '작업실에서의 휴식 콘텐츠는 어때야 하는가?'도 지금 계속 고민하고 있는 지점이라 게임을 둘러싼 담론들이 많이 생기고 있거든요. 제3의 시간 안에서도. 이걸 훨씬 더 다양한 친구들이 오는 space T에서 더 친구들의 반응을 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그랬을 때 트윈웨이브가 선봉장이에요.


♦︎혹시 이전에 제3의 시간에서 게임을 지양했던 이유가 있다면 어떤 것이었을까요?

정민: 아무래도 게임이 워낙 강력하니까 제한된 시간 안에서 게임 때문에 시간을 너무 많이 쓰게 되면 나머지를 할 수 있는 물리적인 시간이 없어지고, 소수의 친구들은 오자마자 게임을 시작해 갈 때까지 하다 보면 스토리스튜디오에서의 경험이 게임하나로 압축돼버리는 경우들이 많은 거예요. 그래서 몇 개의 허용된 걸 게임을 제외하고는 못하게 했던 것이, 다른 영역에 눈을 돌릴 수 있도록 자극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 좀 컸었어요. 또 분석을 해봤을 때 첫 경험으로 게임을 했던 친구들은 스토리스튜디오에 다시 안 오는 경우가 많았고요. 아무래도 매력을 파악하지 못하니까요. 그런 것들의 영향이 컸죠.



♦︎ 긴 이야기 들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변화된 트윈웨이브에서 가장 보고 싶은 장면은 어떤 장면인지 이야기해 주세요.  


(좌) 나연이 보고 싶었던 언덕에서 책읽는 캡틴 / (우) 혜지가 보고싶었던 다목적실에서 몰입하는 캡틴

나연: 저는 이미 본 것 같은데, 언덕에서 책 읽는 장면!


혜지: 혼자서 자기만의 공간을 만들어서 몰입하는 모습이 다목적실에서 일어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소파에서 책을 읽는다든지 다른 친구의 책을 읽는다든지, 자기 작업을 한다든지 이런 풍경을 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벌써 첫날에 본 것 같아요!


정민: 지금 아직 안 나타난 걸로는 좀 1516세가 와서 작업을 하는 모습들을 좀 보고 싶어요. 지금 기록을 보면 15세 남자친구들은 반응은 없는 것 같아요. 아직 지켜봐야겠지만요. 초반에 제가 저희 고객이 이용자뿐 아니라 운영자도 포함된다고 했는데요.  운영자 분들이 천장에 작품을 달아준다거나 그렇게 적극적으로 공간을 꾸려가시는 모습이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어요.




매거진의 이전글 도서관의 한계를 넘는 팀, 스페이스 이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