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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필 Aug 30. 2022

이별

2022년 8월 28일 오전 10시 50분 길우가 떠났다.


살아 있을 때 길우는 3kg도 힘겹게 유지하는 작은 고양이였는데, 죽어서 화마 속에 들어간 길우는 연기처럼 거대해져서 세상이 온통 길우로 가득해져 버린 것 같다. 나무 그림자 속에도 책상과 식탁 의자 아래도 모니터에서 의미 없이 깜빡이는 커서 옆에도 길우가 있다. 길우가 떠난 세상에서 길우를 만날 때마다 코끝에 길우 냄새가 나는 것 같아 숨을 깊게 들이쉰다. 이내 내 폐는 슬픔으로 가득 차 버린다. 그 축축하고 끈적한 질감의 슬픔을 담은 나는 나를 원망한다.



원망스럽다. 아픈 너를 뒤로하고 일에만 빠져있던 내가 원망스럽다. 밤마다 내가 잘 보이는 곳에 자리 잡고 내게 시선을 거두지 않는 너를 알면서도 엎드려 책만 보던 숱한 날들이 원망스럽다. 너와 함께한 마지막 날 저녁 너를 벽을 보게 뉘어 놓고 ‘고양이 발작’과 ‘고양이 투석’만 열심히 검색하던 내가 원망스럽다. 구내염을 앓던 네 입을 깨끗이 닦아주지 못해 예쁜 사진 한 장 없는 것이 원망스럽다. 네 밥을 항상 마지막으로 챙겨주던 그 모든 날이 원망스럽고, 네가 좋아서 내게 볼을 비비면 갈아입은 옷에 네 침이 묻을까 불편해하던 모든 순간이 원망스럽다. 길우 너와 조금 더 함께 있을 욕심으로 네 의지와 상관없이 투석치료를 하게 했고 그 후 지속적인 발작으로 몸이 안 좋아졌다고 했다. 결국 내 욕심이 너의 삶을 더 단축시키고 더 힘들게 했던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면 나는 견딜 수가 없어 슬픔이 갇혀있는 가슴 한쪽을 주먹으로 탕탕 치게 된다.


길우가 떠나기 하루 전 길우를 그냥 보내줄 수 없었던 나는 더 적극적인 치료를 고민하며 길우와 함께 집으로 왔다. 길우는 그것이 마지막인 걸 알았을까. 바로 서지도 못하는 몸으로 자꾸 집안을 돌아다니고 싶어 했다. 아랫배를 받쳐주니 한참을 온 집안을 돌아다녔다. 몸이 말을 듣지 않아 가다 멈추다를 반복했지만 욕실, 보일러실, 주방까지 빼놓지 않고 돌았다. 또리방과 코인사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자는 방에 자리를 잡고 누워 그날 저녁 한 번의 발작... 그리고 다음날 아침 또 한 번 발작을 하고 떠나 버렸다. 켁! 켁! 하고 비명처럼 내지르던 마지막 호흡을 끝으로 길우의 심장이 뛰지 않았다.


우리에게 더 많은 시간이 있을 줄 알았던 내게 길우의 마지막 모습은 마치 은막 위의 허상 같았다. 뜨고 있는 길우 눈이 내가 움직일 때마다 나를 따라 움직이는 것 같았고, 흐느끼는 내 그림자가 떨릴 때마다 길우 배가 숨 쉬고 있는 것 같았다. 지금도 길우가 내 눈앞에서 사라져 어딘가에 있을 것 같다. 나는 한 치 앞도 예상하지 못했던 탓에 길우가 없는 이 현실이 오래 아프고 믿어지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길우가 제 죽음을 알았다면 그런대로 몰랐다면 또 그런대로 다행스럽다.


길우야. 길우야. 사랑하는 내 고양이 길우야, 너는 지금 어디에 있니. 그곳에서 너는 아프지 않은 거지? 이곳보다 좋아서 오지 않는 거지? 이제 피하 수액도 안 해도 되고 아픈 입으로 약도 안 먹어도 되는 거지? 시간을 거꾸로 돌려 너와 단 하루만 더 함께할 수 있다면 나는 마지막 날 벽을 보고 누워있던 너를 돌려 네 눈을 오래 바라보고 싶어. 내내 검색만 하던 손을 멈추고 너를 안고 쓰다듬고 싶어. 그때 너는 죽음의 문턱에 닿을 만큼 힘들었을 텐데 그때로 다시 시간을 돌리고 싶어 하는 나는 참 이기적이야. 미안해. 그때도 지금도 너는 내게 슬픔이 아니라 행복을 전해주는 존재라는 걸 잊지 말아 줘. 이젠 아프지 말고 자유롭게 날아. 네가 허락한다면 나는 계속 너를 사랑하며 살고 싶어.
미안하고 미안하고 미안해. 길우야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해. 내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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