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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ylor L Jun 21. 2019

결정적인 순간

모든 이야기의 시작은 한순간에서 시작된다.

영화나 소설의 서사는 항상 순차적으로 흐르지 않는다. 주인공이 태어난 시점에서 연대기 순으로 진행되는 서사는 특정 인물에 관한 전기적인 작품에서조차 드물다. 모든 시작은 '결정적인 순간'--결말을 미리 보여주는 방식이든, 결정적인 사건의 실마리가 되는 순간이든--에서 비롯된다. 지금 내가 쓰려고 하는 이 이야기의 결정적인 순간은 어디일까, 잠시 고민해본다. 



태어나 처음으로 실패를 경험해 본 재수생 시절이었을까, 다른 이의, 혹은 사회에 미칠 영향을 제대로 가늠해보지도 않고 20대의 호기로 겁 없이 언론사에 입사했던 그 무렵이었을까. 죽을 때까지 싱글로 살아가겠다며 만국의 솔로들과 함께 '솔로당 선언'을 외치겠다던 내가, 불현듯 친구들의 비난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결혼을 했던 순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어렵게 들어간 회사를 생각보다 쉽게 때려치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5년 전 그날이었거나. 돌아보니 이 모두 인생의 변곡점들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나고 자란 범인의 삶답게, 이 모든 결정적인 순간의 후보들은 하나같이 북위 37도 동경 126도, 그 언저리에서 일어났다. 놀랍고도 또 놀랍지 않을 일이다.


북위 37도, 동경 126도의 서울. 30여 년간 변함없던 내 삶의 좌표. photo by TL.


내 삶의 좌표 따위, 예전 같으면 굳이 고민해보지 않았을 일인지도 모른다. 기껏해야 벽에 붙여놓은 세계지도를 가끔 들여다보거나, 집에 하나씩은 있었던 지구본을 하릴없이 굴리다가, 우리가 매일을 살아가는 공간이 실은 점 하나 제대로 찍기 어려울 정도로 작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니까. 



태어나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갔던 90년대 초, 당시 국민학생이었던 나는 처음으로 낯선 이국의 삶에 매료됐다. 아마도 귀동냥으로 들었던 '지구촌'이라는 말이 주는 친밀감 때문이었거나, 어쩌면 한식보다 양식을 좋아하던 기름진 식성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춘기와 중고교 시기를 지나면서, 드넓은 지구가 내 삶의 무대가 될 수 있다는 마음가짐은 위인전기에 나올법한 사람들이나 가질 수 있는 것이라는, 자조적이고 '분수를 아는' 청소년으로 성장했다. 그 시절을 살았다면 누구나 겪었을 경제위기는 '어학연수는 사치'라며 '한국 토종의 토익 만점 신화'를 믿는, 현실적인 대학생을 키워냈다.



그러다가 밥벌이를 시작하고 경제력이 주는 사소한 자유를 알게 되면서, 나는 다시 나의 좌표를 들여다보게 됐다. 그 무렵의 내게 한반도를 벗어난 넓디넓은 지구는 가끔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한 일탈과 해방의 공간으로 여겨졌다. 직업의 특성상 쉼 없이 울리는 전화와 잠깐 사이에 수백 통씩 쌓이는 이메일에서 잠시나마 자유로울 수 있던 것은, 순전히 물리적 거리 덕분이었다. 누구도 넘어올 수 없는 거리, 아직 가보지 않은 땅과 바다가 있었기에, 나는 이듬해의 휴가를 손꼽아 기다리며 다시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육로든 해로든, 누구도 넘어올 수 없는 거리면 충분했다. photo by TL.


그러나 그 어떤 '일탈'이든, 그 끝에 돌아와야 할 '일상'의 공간은 서울이어야 했다. 다른 곳에서의 '머무름'은 가능했지만, 그것은 늘 금세 떠날 것을 담보로 한 단기 투숙에 불과했을 뿐, '삶'은 아니었다. 정치 사회적인 성향과 무관하게 나의 삶의 태도로만 견주어보았을 때, 나는 보수적인 사람이다. 미국 TV 드라마 빅뱅이론에 나오는 쉘든처럼, 도서관이든 자주 찾는 카페든, 이왕이면 같은 자리에 앉는 것을 선호하고, 내비게이션을 통해 새로운 길을 알아내기보다는 늘 다니던 길로 운전할 때 마음이 편하다. 변화가 주는 신선함보다는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을 즐긴다. 학교 다닐 때 그 흔한 전학 한 번 간 적 없었던 나는, 한반도 내에서도 서울이 아닌 곳에서의 '삶'은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 내가, 남들은 출산과 육아 같은 어른의 고민을 하던 시절, 철없이 고국을 저버리고 미국으로 떠나왔다. 벌써 3년 전 일이다. 학업을 계속하겠다는 것이 도미의 이유였지만, 사실 그때의 나는 대학교 이후의 학업에 대해서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었고, 미국의 대학원이란 곳에 대해서는 더욱 말할 것도 없었다. 주변에 하나씩은 있다는 미국서 공부하는 친구, 미국 물정 잘 아는 가까운 지인조차 없었다. 굳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인맥을 최대한 활용한다면 찾을 수는 있었겠지만, 나는 남들에게 신세 지는 것을 무척 싫어하고, 넉살이라고는 없는 아줌마였다. 그래서 결국, 유학 준비부터 모든 과정을 남편과 단둘이 헤쳐나가기로 하고 무작정 도미를 계획했다. 



미국 중서부의 조용한 시골마을. photo by TL.



내가 앞으로 해 나갈 이야기의 결정적인 순간은 아무래도 여기서 시작하는 것 같다. 서경 86도 미국 중서부의 한 작은 도시에 삶의 새 좌표를 찍게 된 그 순간. 그 순간에 닿을 때까지의 이야기든, 그 순간이 빚어낸 다른 중요한 순간이든, 그로 인해 자리 잡은 새로운 곳에서의 일상에 관한 것이든, 혹은 그 순간을 후회하게 된 순간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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