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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ylor L Jun 27. 2019

남들 다 가는 유학

한치 앞도 모를 미래를 위해 현재를 저당잡히며 살아내던 날들에 관한 기억

한국 드라마를 보다보면, 주인공이 어떤 난감한 사건에 휘말리거나, 실연을 하거나, 꽤 큰 심경의 변화를 겪고 나서 종종 하는 말이 있다.


"나 유학가."


늦어봐야 1주일 후, 빠르면 그 말을 던진 다음 날쯤으로 보이는 다음 장면에서 주인공은 캐리어를 하나 끌고 공항에서 출국을 앞두고 있거나, 이미 주인공을 태운 (것으로 보이는) 비행기가 인천 상공을 날고 있다. 



유학을 가봤거나 고민해 본 사람이라면, 이런 구성이 가난한 여주인공이 부잣집 아들과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만큼이나 현실성이 없다는 것을 안다. 유학을 마음 먹고 출국하는 시점까지,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수반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 유학 가'라는 한 마디에 '홀연히' 떠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어학연수라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질 수 있다. 여기서 내가 하고자하는 이야기는 학위 취득을 목적으로 한 유학을 말한다. 물론, 어학연수라고 해도 사설 어학원이든, 대학 내 어학연수 프로그램이든 교육기관을 정해야 하고, 미국에서 교육을 받아도 좋다는 허가인 비자를 받아야 한다. 비자를 받기 위해서는 비자 인터뷰를 신청하고, 연수 기간 동안의 제반 비용에 대한 충분한 재원과 연수가 끝나면 귀국할 수 밖에 없는 안정적인 기반이 국내에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노곤한 과정이 뒤따른다.(게다가 트럼프 정부의 반이민정책의 영향으로 학위 취득이 아닌 단순한 어학연수는, '든든한 스폰서' 혹은 돌아와 다시 일할 수 있는 '탄탄한 직장'이 있지 않는 한 비자 인터뷰에서 성공 확률이 현저히 떨어진 것도 사실이다. 비자 인터뷰에서 떨어지면 다시 같은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

비자 인터뷰를 성공한다고 해도 비자 스탬프가 찍힌 여권을 돌려받고, 출국 준비를 하는 것만도 한 달은 족히 걸린다. 어쩌면 드라마 속 주인공들은 여기까지의 과정을 아무도 몰래 부지런히 준비해놓고, 출국 직전 돌발 선언을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유학'을 간다고 하지, '어학연수'를 간다고 콕 찝어 말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더더욱 현실감이 떨어지는 설정이다. 어학연수와 학위를 위한 유학은 결이 완전히 다르다. 준비하는 과정과 수학하는데 소요되는 시간이 다르고, 그 시간 만큼 발생하는 비용을 따져보면 더욱 그렇다. 드라마 속의 현실감 떨어지는 유학 장면을 보면 씁쓸해지는 이유다. 게다가 미디어가 만든 이미지와 그에 대한 반복적 노출이 빚어내는 학습 효과는 어마어마하다. '고시 공부하냐.' '유학 간다더니 안 가려는 모양이구만.' '노는 동안 아이나 낳아라.' 유학을 가겠다며 회사를 나온 뒤 출국을 하기까지 주변에서 다들 한 마디씩 보탰다. (드라마에서처럼) 남들 다 쉽게 가는 유학, 2년이 넘게 질척거리고 있으니 그럴만도 했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도 '뭐하느라 2년이 넘게 걸렸지?' 고개를 갸웃할지 모르겠다.



미국 대학원 유학을 결심한 순간부터 출국까지의 2년 3개월은 대략 이랬다.


2014년 4월, 7년여 동안 다니던 회사를 그만둘 결심을 한다. 충동적인 선택을 막아보려 휴가를 보내주는 등 회사의 만류 덕에 공식적으로 2014년 6월, 입사 후 처음으로 노트북을 어깨에 둘러메지 않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회사를 나온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롯이 쉬는 법을 알지 못했던 그때의 나는, 퇴사 다음 날부터 아침 출근시간대에 필라테스를 하고, 끝나자 마자 영어학원에 다니기 시작한다. 미국 대학원에 진학하기 위한 두 개의 영어시험(토플과 GRE)을 준비하기 위해서다.


미국 학교는 가을에 정규학기가 시작되는 만큼, 현실적으로 가장 빠른 입학은 그 이듬해 8월. 1년 2개월이 남았군, 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8월 학기 진학을 위해서는 전년도 12월 무렵에 원서접수가 마감되기 때문이다. (학교, 학과에 따라서는 입학하는 해 2-3월까지 원서를 받는 경우도 있다.) 이 사실을 알고 잠시 충격에 빠지지만 이내, 인터넷의 미국 대학원 '합격' 수기와 학원 선생님의 감언이설에 눈이 멀어 GRE 3개월, 토플 2개월, 학업계획서 (statement of purpose) 등 에세이와 부수적인 서류준비 1개월이라는 야심찬 계획을 세운다. 


2014년 8월, GRE 학원 수강 2개월 만에 첫 시험을 본다. 4시간 동안, 인생에 다시 없을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고 '아 어쨌든 끝났구나' 하고 안도하는 순간, 바로 스크린에 성적이 뜨는 이 잔인한 시험은 '그후로 오랫동안' 내 발목을 잡는다. 


2014년 12월, 6개월 이내에 유학을 가는 건 무리라는 것을 깨닫고, 내년도 입시를 준비해야겠다는 현실적인 결론에 도달한다.


2015년 1월, 체계적인 입시 준비를 위해 각종 랭킹 사이트 등에서 내가 전공하고자 하는 학과를 검색한 뒤, 입학에 필요한 자격 조건 등을 스프레드 시트에 꼼꼼이 정리하기 시작한다. 대한민국 대학입시를 경험해본 사람 답게 안정지원, 하향지원을 위한 랭킹 외 학교들을 포함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2015년 4월, GRE 시험 접수비용을 합치면 차라리 어학연수를 가는 것이 낫겠다는 마음이 들 정도로, 시험 주관기관(ETS)에 '글로벌 호구' 인증을 거듭하던 나는, 문득 GRE보다는 쉽다는 토플을 도전하기로 마음먹는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무렵이, 유학 준비 최대 위기의 순간이었다. 퇴사를 마음먹은 지 1년, 그동안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다는 자책감과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 GRE 교재만 봐도 울렁거리던 피로감까지, 돌파구가 절실했던 시점이었다.)


 한풀 꺾인 유학의 꿈은 2015년 6월, 동영상 강의 수강 2개월 만에 처음 본 토플시험에서 웬만한 학교서 요구하는 하한점을 넘기면서 되살아난다. 대학원 진학서류 중 그 중요성이 어학점수나 학업계획서에 뒤지지 않는 '추천서'를 받기 위해, 졸업한지 10년만에 '눈 딱 감고' 대학 때 교수님을 찾아간 것도 이무렵이다.


2015년 8월, 토플로 인한 사기진작 때문인지, 드디어 학습곡선(learning curve)의 변곡점에 도달한 탓인지, 대학 때 교수님들에게까지 알렸으니 '이제는 빼박'이라는 절박함 때문인지, 꿈쩍도 않던 GRE 점수가 점점 오르기 시작, 2015년 10월 시험을 끝으로 ETS에 꼬박꼬박 납부하던 기부금을 끊게 된다. (물론, 2년 뒤, 박사에 지원하기 위해 유효기간이 끝난 토플을 재응시하는 과정에서 또다시 기부금을 납부할 기회가 생기지만.)


 2015년 11월, 한 달을 꼬박 입시 서류에 쏟아붓는다. 감옥에서 전향성명서를 쓰는 심정으로, 지난 세월을 톺아보며 '학업계획서 (Statement of Purpose)', '자기소개서 (Personal Statement)'의 원형을 작성하고, 10개로 추려낸 미국 전역의 대학마다 요구하는 조건에 맞게 살을 덧붙이거나 덜어내기를 거듭한다.  


2015년 12월 1일 원서접수가 마감하는 학교를 시작으로 이듬해 1월 초까지 10개 대학의 석사과정 지원을 매듭짓는다. '이제 공은 그들에게로 넘어갔으니 마음껏 쉬어보자' 하는 마음이 들 무렵, 4곳의 학교에서 스카이프를 통해 화상 면접을 제안한다. 끝날 때 까지 끝이 아니다.


2015년 2월, 생각지 않았던 한 학교에서 "congratulations"으로 시작되는 이메일을 시작으로, 3월 중순,까지 총 7곳에서 합격 연락을 받는다. 그리고 지난 몇 년 동안 가장 달콤했던 '행복한 고민'의 기간을 거쳐, 앞서 언급한 비자발급 등의 절차를 밟고 미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학위를 취득할 때까지 드는 시간과 비용은 나 역시 그 과정의 중간에 있는 만큼 현재로서는 가늠할 길이 없지만, 유학을 가는 과정까지의 시간과 비용만 따져봐도 이렇다. 물론 영어를 잘하고, 다양한 면에서 나보다 자원이 풍부한 사람이었다면, 이 만큼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운이나 타이밍이 따라주지 않았거나 나보다 영어가 더욱 미숙한 사람이라면, 더 긴 시간을 요하는 일일 수 도 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혹시 주변에서 유학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이 모두 겪었을 혹은 겪고 있을 그 외로운 시간들에 대해서도 한 번 쯤 떠올려봤으면 하는 까닭에서다. 미국에 와서 석박사 과정에 있으면서 만난 한국인 유학생들은 대부분 하나같이 치열하게 산다. 드라마에서 나오는 것처럼 '팔자 좋게' 머리 좀 식힐 겸 유학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동시에, 이 글에는 스스로를 안심시키려는 뜻도 담겨 있다. 여름방학인 요즘, 가끔 생산적이지 못하게 하루를 보낸 날이면, 남들은 다 출근해서 열심히 일하고 돈 버는 동안에 한가롭게 '놀고 먹는 것 같다'는 자책감에서 자유로워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회사를 그만둔 2014년 이후로, 기약 없이 유학을 준비하던 2년여 시간 동안, 그리고 매번 찾아오는 방학이면, 나 혼자 '노는 것 같은' 자책감은 툭 하면 나를 찾아왔다. 얼마 전, 한국에 있는 친구에게 안부를 물을 겸 연락을 했더니 출근하는 길이라고 했다. '너처럼 이렇게 매일 출근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방학도 있는 내가 힘들다고 하면 안되겠구나. 반성해야겠다'라고 했더니, 친구는 '반성하지마. 대신, 너는 퇴근이 없잖아'라고 했다. 이 모든 과정을 옆에서 지켜봐 준 사람의 묵직한 위로 앞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 친구는 단 한 번도, '너 대체 언제 유학가느냐'고 물은 적이 없었다.


퇴근이 없는 삶. photo by Taylor 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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