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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샛별 Jan 21. 2020

친구의 남편이 나를 무장해제시켰다.

나는 혼자 있기를 참 좋아한다. 혼자서도 잘 논다.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만큼 다른 이에게 마음을 여는데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마음을 열기에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한번 열면 오랜 시간 길게 호흡하는 몇 십년지기 친구들이(각각의 다른 환경에서 만난)  여럿이다.


아이들을 다 키우고 여유가 생긴 친구들은 서로 만남의 시간을 갖기 시작했던 모양이다. 우연히 같은 지역에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한 친구가 알음알음 내게 만나자는 연락을 취해왔고, 우리는 고교 졸업 후 몇십 년 만에 처음으로 만났다. 서로 간에 가장 많은 삶의 변화가 존재하는 시간을 뛰어넘은 옛 친구와의 만남은 마치 처음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것과 비슷했다. 그래도 시골 출신이기도 했고, 청소년기에 만난 친구라 약간의 편함도 존재하는.. 비교적 활발하고 능동적이며 나와는 반대인 친구. 빠르게 다가오는 친구에게 나는 적정거리를 유지해 가며 마음을 열어가느라 힘이 부치기도 했다. 천천히 하자고 몇 번이나 힘든 속내를 비춰가며. 그런 내가 그녀의 남편과의 첫 만남에서 너무도 쉽게 마음의 빗장을 스르르 풀게 된 것이다.


몇 달 동안, 몇 번의 만남이 있는 후 어느 날 친구의 주선으로 우리는 그녀 집 근처에서 작은 음악회를 보게 되었다. 음악회가 끝나고 친구는 남편과 함께하는 점심자리를 준비해 두었다고 했다. 은퇴 후 글을 쓰고, 붓글씨를 쓰고, 손주들을 돌보고, 10년여 파킨슨병으로 투병 중이신 홀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사람이었다. 친구의 말을 빌리면 어머니께서 볼일을 보시면" 아이고 참 좋은 변을 보셨네요. 어머니! 잘하셨어요" 하고 칭찬을 하면서 꼭 본인이 스스로 치운다는 사람이다. 나중에 느낀 일이지만, 낯을 많이 가리는 내가 그 자리를 싫다고 하지 않은 이유는 친구를 통해 들은 그의 이야기에 이미 조금씩 나의 마음이 열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내게도 최근 몇 년의 기간은 죽음을 늘 곁에서 바라보아야 하는 힘든 시간의 연속이었다. 여러 사람을 내 곁에서 떠나보내야 했고, 이제 수술 후유증으로 삼 년이 넘게 말 한마디 못한 채 요양병원에서 미라처럼 말라가는 시어머니와 그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노쇠하신 시아버지를 보살펴 드려야 하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식사가 시작되기 전 친구가 그러한 나의 상황을 짧게 이야기해 주었을 때, 그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아마도 친구가 "아이고 왜 그러셔" 하며 휴지를 건네지 않았더라면 못 보고 지나칠 수도 있었을 터였다. "참 힘 많이 드시겠어요." 짧은 말이었다. 그는 식사 중 내내 아내와 나의 접시에 말없이 웃으며 동태찜을 덜어 주곤 했다. 아주 자연스럽게.. 그 손길이 참 편안했다.


힘이 들 때 가끔 친한 친구들이 힘든 상황에 대해 물어볼 때(다 이야기하지는 못하지만) 나의 마음을 이야기하면 친구들의 답은 거의 비슷했다. 다 그런 거라든가, 돌아가실 때까지는 다 힘들다거나, 너도 힘들겠지만 네 남편이 더 힘들 거라는 등등 의 위로의 말을 건네곤 했다. 그러나 돌아서면 당시에는 조금도 위로가 되지 못해 슬프고 우울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순간 그들의 말은 나도 이미 인지하고 있는 일이었으며, 맞는 말이기는 했지만 그 순간 내가 받고 싶었던 위로는 단지 " 힘들겠구나! 얼마나 마음 아프니!" 단 그 몇 마디였음을. 그 이후로 다른 이를 위로해야 할 상황이 되면 나는 늘 그 시간을 돌아보게 된다. 진심 어린 위로는 단 한마디로 충분하다. "얼마나 힘드니."


우리는 주변에서 많은 노인들을 만난다. 그러나 나의 부모님들이 노쇠의 단계를 넘어서 죽음과 마주하게 되는 여정에서 바라보게 되는 한 인간의 모습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내 사랑하는 이들이 생의 마감 순간에 보이는 인간적인 모습들을 바로 바라보고 행동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과거에 반듯하고 지혜로우셨던 부모님의 모습이 죽음 앞에서 어린아이 같이 되어갈 때, 받아들이기 힘든 행동들 너머에 상처받고 두려워하는, 나를 목숨처럼 사랑했던 부모님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그렇게 병든 어머니를 모시고 말없이 힘든 시간을 지켜가고 있는 남자. 친구가 착하고 밝은 성정이라 하여도 병중의 시어머니를 돌보다 힘들어할 때 그 투정도 받아주어야 하는 남자. 둘이 함께 일하는 자식들의 손주들도 돌보는 남자. 그 와중에도 자신을 잘 가꾸고 있는 남자. 또한 타인의 아픔까지도 깊이 공감해 주는 남자( 비슷한 처지라 하여도). 어려운 시간을 지나며 세찬 폭풍을 뚫고 이제는 폭풍의 눈 속에 있는 것처럼 그가 느껴졌고 그의 눈물이 내포하고 있는 진심 어린 위로가 나를 감동시켰다. 나는 무장해제되었다. 처음 만난 친구의 남편에게.


 식사 후 잠시 자리를 옮겨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나는 처음으로 만난 남자에게 꽤 많은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이미 수필 책 한 권을 출간했다는 그가 시를 배우고 싶다고 했고, 며칠 후 그에게 좋아하는 시인의 시집 몇 권을 친구 편에 들려 보내며 그가 좋은 시를 많이 쓰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아마도 그 깊은 위로를 줄 수 있는 힘으로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시를 쓸 수 있을 것이다.


[남자는 태어나서 세 번 운다]? 친구 남편의 눈물을 바라보면서 처음 친구가 부러웠다. 이제 나는 나의 두 아들들에게 많이 울어도 좋다고, 맘껏 울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아내의 아픔을, 친구의 아픔을, 약한 자의 아픔을 함께 느끼고 공감할 줄 알고 다독일 줄 아는 마음을 가질 수 있기를.. (눈물 좀  흘리면 어떤가!)


이제 시간이 흘러 나는 두 분 시부모님과도 이별을 했다. 힘겹던 시간이 지나간 적막함 속에서 부모님께 못 해 드린 일만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왜 좀 더 따뜻하게 손잡아 드리지 못했던가! 힘들어도 곁에서 힘껏 돌보아 드리지 못했던가!

친구와 그의 남편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그들에게, 나의  따뜻한 위로를 전하고 싶다. 많이 힘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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