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먼저 피고 올라 온 줄기에는 보송보송한 솜털이 자라는 꽃. 노루귀라는 이름은 꽃이 지고 난 다음 자라나는 잎이, 아직 어려서 솜털이 가득한 어린 노루의 귀를 닮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른 초봄 다른 풀들이 자라나기도 전에 일찍 피고, 아주 작아서 자세히 보지 않으면 사람들은 그 꽃이 피어 있는지 조차도 모른다. 추위 속에 처음 피어난 그 꽃을 본 누군가가 따갈 것만 같아서 나는 슬그머니 마른 참나무 잎으로 조심스레 그들을 감추어 준다.
꽃이 지고 난 뒤 잎의 모습 ( 보송한 털과 갈색 얼룩무늬)
여러 송이의 노루귀 ( 침엽은 소나무의 잎이다)
어느 봄날이었다. 공원에 있는 작은 정자에서 강아지와 함께 쉬고 있던 내 나이 또래의 여인을 만났다. 둘 다 강아지를 데리고 나와서일까. 우리는 서로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무릇 개를 키우는 사람끼리는 서로 무언가 통하는 게 있는지 말을 건네기가 쉽다. 공통의 주제가 있으니까. 두 녀석이 서로를 아는 체하며 즐겁게 놀고 있어서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 날씨가 참 좋네요. 봄 날씨네요." 왠지 그녀가 꽃을 좋아하는 사람일 거라는 감이 온다.
" 저기 꽃 핀거 보셨어요? (나는 주로 아래를 보고 다니는 편이다) 아직 바람은 차지만 벌써 노루귀꽃이 폈더라고요."
서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처럼 공통의 관심사가 많던 우리는 그렇게 꽃 이야기, 강아지 이야기, 그림 이야기, 책 이야기, 여행 이야기 등을 나누며 함께 많은 시간을 나누게 되었다.
처음 만난 그 공원을 친구와 나는 우리의 정원이라고 부른다.
새로 사귄 동네 친구는 자신의 집에서 그곳을 바라다볼 수 있어서 , 나는 나의 반려견과 매일매일 산책하는 곳이기에.
공원에는 봄이면 산수유를 시작으로 진달래며 개나리가 피어난다. 뒤이어 벚꽃이 만개하고 이어서 조팝나무, 산사나무, 찔레꽃이 하얗게 꽃을 피워낸다. 라일락, 아카시아, 때죽나무도 뒤를 이어 피어나고 떨어진 예쁜 꽃들이 공원 바닥을 장식한다. 공원은 비록 작고 아담하지만 제법 많은 나무들이 자라고 공원이 끝나가는 곳에서, 길은 숲을 향해 난 작은 오솔길로 이어진다.
공원의 한 복판에 자리한 나지막한 언덕을 향해 난 편안한 나무 계단을 오르면 펼쳐지는 작은 흙길을 따라 만들어진 화단에는 아주 낮은 나무 울타리 너머로 매발톱꽃, 상사화, 옥잠, 비비추, 배초향, 노루귀, 초롱꽃, 산부추, 원추리, 피나물, 금낭화, 조릿대, 앵초, 종자 꽃등 야생화들이 작은 자신들만의 영역을 이루며 자라고 있었다.
공원을 가로지르는 길 옆과 계단의 양편 흙 언덕에는 보랏빛과 흰색의 제비꽃, 꽃마리, 냉이꽃, 민들레 등 아주 작은 잡초들이 군락을 이루어 봄, 여름 내내 바람에 꽃들이 일렁이고 있었다.
정원의 첫 모습은 꽤 예쁘고 잘 꾸며졌던 것 같다. 그러나 자연스럽던 정원의 모습은 처음 조성될 때와는 달리 점차 그 모습을 잃어 갔다. 아니 자연스럽게 그 모습을 바꾸어 갔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보살피는 손이 거의 없다 보니 자연의 법칙에 따라 어느 식물은 서서히 자리를 잃고, 또 새로운 식물이 서서히 자리를 잡기도 하며 그 모습이 변화되어 갔다.
늘 그곳을 다니다 보니 나에게는 작은 변화라도 금세 눈에 들어온다.
아직은 추운 어느 봄날 소복하게 올라온 풀들이 있었다. 무서운 속도로 자라나더니 5월이 되자 그들은 아리따운 꽃들을 피워냈다. 앙증맞은 분홍빛 주머니에 또 다른 하얀 꽃잎을 뾰족이 내민 꽃송이들이 조롱조롱 달린 어여쁜 모습이다.
그 꽃과 사랑에 빠져서 매년 같은 시기가 오면 나는 행복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그 꽃을 만나러 가곤 했다.
근접해서 본 금낭화
어느 날부터인가 조릿대가 무서운 속도로 자라기 시작하더니 옆 화단을 넘어가기 시작했다. 아직 충분히 자라지 못한 금낭화 사이에 자리를 잡고 자라나는 조릿대들이 미워서 나는 강아지를 곁에 묶어두고 매일 조릿대를 잘라냈다.
이 미운 조릿대들 같으니라고....!
나는 그들과 싸우고 있었다.
무서운 힘으로 자라나던 조릿대들을 향해 적의를 불태우며 잘라내던 내가 다른 눈으로 그들을 보게 된 것은 '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이 유미)라는 책을 읽으면서 였다.
식물학자인 저자 또한 나와 같은 느낌을 가진 적이 있었다고 했다. 다른 식물이 자라지 못하도록 빽빽하게 우거지고, 땅속줄기로 무섭게 번져가서 그들만의 무리를 이루는 조릿대를 바라보며 나와 비슷한 느낌을 가지셨다는 것이다.
책 속의 이야기에 따르면 조릿대는 우리의 선조들에게는 친근한 식물이다. 옛 어른들의 필수품이었던 조리를 만드는 재료로서 쓰이기도 했다. 차의 재료로서도 쓰인다고 한다. 일정 시간 후에 꽃이 피고 나면 열매가 열리기도 하는데 그것은 구황작물로서의 기능도 있다고 한다. 야생동물의 생태를 연구하는 분의 이야기를 빌리면 조릿대 숲이 야생동물의 중요한 서식처가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다른 생물의 생존을 위해서 필요한 또 다른 미덕을 지니고 있다는 이야기다.
우리 공원에는 어떤 야생 동물이 이 조릿대 숲에 깃들어 있을까?
나의 힘겨운 전투로 조릿대에 밀리던 금낭화들은 다시금 제 자리를 잡게 되었고 그 해 근사한 꽃을 피워 내어 나를 기쁘게 했다. 하지만 그 해 이미 뿌리가 깊이 뻗어나간 조릿대는 맹렬한 기세로 자라나더니 가을이 되어갈 즈음 금낭화가 지고 난 자리를 모두 차지했다. 결국은 손을 쓸 수도 없이 자라나서 금낭화 화단을 점령하고 말았다. 그 속에서 점차 금낭화는 그 힘을 잃어 겨우 몇 그루 만이 조릿대 틈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나는 전의를 상실하고 말았다.
빽빽한 조릿대의 무리 속에서 금낭화는 내년에 새순을 피워 낼 수 있을까?
동자꽃 (함백산)
동자꽃이라는 야생화가 있다. '기다림'이란 꽃말을 지닌 꽃.
오세암의 이야기와 유사한 전설 속 동자가 죽어 그 넋이 꽃이 되었다는.
척박한 땅이 맞지 않았는지 공원에서의 동자꽃은 겨우 한 그루만이 아주 작은 봉오리를 달고 피는 시늉만 하다가 져버리고 말았다. 그 후 남은 것들은 한 그루 두 그루 죽어가더니 내 애타는 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사라지고 말았다.
앵초도 피나물도 역시 같은 길을 걸었다.
피나물 (줄기를 자르면 붉은색 액이 나온다)
어느 해 인가는 화단의 한 영역에 갑자기 산딸기가 자라기 시작했다. 아마도 어느 새가 딸기를 먹고 싼 똥 속에 숨어있던 산딸기 씨앗이 자라난 것일 것이다. 자라나던 딸기들은 밭을 이루고, 흰꽃을 무수히 피워 내더니 앙증맞은 빨간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 온통 가지마다 딸기가 열렸다. 이른 새벽 공원에 갈 때마다 내게는 이슬을 머금은 딸기를 하나씩 따서 맛보는 즐거움이 생겼다.
하지만 딸기나무는 가시가 많아서 공원에는 어울리지 않는 나무다.
이듬해, 일 년에 한 번씩 공원을 정리하던 사람들의 손에 의해 그들은 모두 잘려 나가고 말았다.
가만히 두면 그렇게 자연은 스스로 새로운 자기의 얼굴을 만들어 낸다.
공원을 만든 사람은 왜 야생의 꽃들을 이곳에 심었을까?
금낭화를 꽃피우게 하고 싶어서, 동자꽃이며 앵초며 피나물을 보호하기 위해서, 나는 늘 다른 풀들을 뽑아 버리고 그들을 보살폈지만, 어느 날 내가 나의 눈에서 그들을 바라본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사람이든 식물이든 동물이든 자기가 있어야 할 곳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자연의 흐름대로 두는 것이 가장 좋다는 것을!
애당초 야생화는 그들이 피어야 할 곳에 있어야 행복할 것이라는 것을!
여기는 그들이 피어 날 땅이 아니다.
숲에서 자라나야 할 그들은 이곳에서 행복하지 않은 것이다.
그 이후 나는 공원의 꽃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들이 피어나는 것도, 그들이 사라지는 것도 그들의 힘에 맡기고 단지 있는 그대로 그들을 사랑하기로 한다.
사람의 손이 가면 갈수록 공원의 자연스러운 모습은 사라져 가고 있었다.
초기의 나무계단이 시멘트 계단으로 바뀌었고, 조팝나무 울타리는 잘려 나갔다.
대신 무릎 높이의 검은 돌담이 세워졌다.
사람들은 그 많은 작은 야생 풀꽃이 자라던 자리에 귀신같은 머리를 흩날리는 맥문동을 심었다.
잡초 꽃이 무리 지어 피어 하늘 거리던 그 꽃밭은 사라지고 말았다. 아름답던 그곳은 이제 사라지고 없다.
노란 꽃다지야!
하얀 냉이꽃, 점나도 나물아!
흰 제비꽃, 보랏빛 제비꽃, 꽃마리, 뽀리뺑이들아!
나는 그들의 이름을 불러 본다.
올 해는 금낭화 꽃을 볼 수는 있을까?
노루귀꽃은 피어났겠지.....
코로나 때문에 나는 우리의 정원을 찾지 않는다.
힘이 들 때 벤치에 앉아 하염없이 바라보던 하늘.
무지개다리를 건넌 나의 반려견, 그 녀석과의 추억.
친구들 그리고 동네 어르신들의 쉼터인 이곳.
나는 아직도 사랑한다.
비록 그 모습이 바뀌어 간다 해도.
꼭 사흘 동안이라도 볼 수 있다면 무엇이 제일 보고 싶은지 생각해 봅니다. 첫날은 친절과 우정으로 내 삶을 가치 있게 해 준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남이 읽어 주는 것을 듣기만 했던, 내게 삶의 가장 깊숙한 수로를 전해준 책들을 보고 싶습니다. 오후에는 오랫동안 숲 속을 거닐며 자연의 아름다움에 취해 보겠습니다. 찬란한 노을을 볼 수만 있다면, 그날 밤 나는 잠을 자지 못할 겁니다. 둘째 날은 새벽에 일어나 밤이 낮으로 변하는 기적의 시간을 지켜보겠습니다. 그리고.. '단 사흘 만이라도 볼 수 있으면'. (헬렌 켈러)
- '문학의 숲을 거닐다'.(장영희) 중에서
내가 지닌 작은 것들에 감사하며
늘 자연 속에서 치유의 힘을 얻는다.
작은 공원을 거닐며, 숲을 거닐며 새로 일어 설 힘을 얻곤 했다.
나는 이곳을 거닐 것이다.
이른 새벽의 공기를 맡으며, 한낮의 햇볕을 피해 그늘에 앉아 책을 읽고, 바람 소리를 들으며 하늘을 올려다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