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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샛별 May 12. 2020

불편한 삶 속에서 마음밭을 가는 중

초보 농부 아내가 사는 법


초보 농사꾼에겐 하루의 일이 곧 그의 글이 됩니다.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은 일에 묻혀서 그 마음이 일속으로 녹아들어 갑니다.

그런 나의 마음들토닥토닥 위로해 가면서 작물들을 다독여가며 일합니다.

만약 지금 조금 더 편한 다른 이들의 삶을 부러워한다면 내 오늘의 글은 불평을 이야기할 뿐, 다른 이들에게 평화를 주는 글이 되지 못할 겁니다.

알맞게 자라난 것들을 고르느라 열심히 들여다보며 한참을 따온 잎들을 내 글을 다듬듯이 차곡차곡 정리해서 박스에 담습니다. 이 푸르고 싱싱한 작물들이 도시의 힘든 삶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좋은 글처럼 다가가길 바라며..

나의 이 글을 받는 이가 자세히 살펴보면 거기에는 벌레도 있고 상처도 있습니다. 살펴주시길.. 그것은 저의 아픈 시간이기도 하고 작물을 키우며 마음이 커가는 시간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상태가 나쁘다며 골라내는 남편에게 좀 구부러지고 구멍이나도 당당하다고 저는 말합니다. 사실은 그것이 받아들여 지기가 쉽지는 않은 일이라는 것을 잘 압니다. 약을 조금 쳤음은 '음식에 MSG를 아주 조금만 넣었어'라고 웃으며 이야기하는 것과는 비교하면 안 될 일이지요. 제 가족이 아닌 다른 이들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야 하니까요. 그래도 괜스레 우겨 보기도 합니다.


종일을 같이 일하다 보면 힘이 들어서 조금만 섭섭한 말을 해도 마음에 상처가 남기 쉽습니다. 지난번에는 보름 동안 도시에 있는 저의 집에 가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저의 천국에서 책 보고, 글 쓰고, 기타 치고 너무도 행복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조금만 먹고 혼자서 노는 일이 꿀맛 같았습니다. 고된 일끝에 돌아간 내 집이라 그 기쁨이 더했겠지요.

하지만 혼자서 쑥쑥 자라는 작물들을 돌보고 수확하느라 힘든 남편이 죽는소리를 하는 바람에 (애원할 때까지 기다렸어야 했는데 ) 결국  마음이 약해져서 다시 시골에 내려왔습니다. 겨우 며칠을 일했는데 벌써 여기저기가 쑤십니다. 일에 이골이 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한가 봅니다.

어제 눈치 없이 남편이 또 제게 섭섭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조금 일찍 들어가서 저녁 준비도 편하게 하고(집에 가서도 저는 또 저녁 준비며 집안도 치워야 하니) 답답한 마음을 추스를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거든요. 일찍 접고 싶어서  제가 넌지시 더 할 일이 남았느냐고 물었더니 무심코  어떤 일을 하라고 해야만 하냐며 스스로 일을 찾아서 하라고 이야기하네요. 물론 자신도 너무 힘드니 하는 이야기겠지만 열심히 돕고 있다는 것을 몰라서는 아닐 터인데.. 울화가 치밀기 시작했습니다. 좀 곱게 이야기해주면 좋을 텐데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인 남편은 늘 그러거든요. 알기는 하지만 화가 치밀어 소심한 복수로 말을 걷습니다. 왜 그렇게 화가 난 건지 아직 파악이 안 된 남편은 슬슬 눈치를 봅니다. 하지만 아직 그 이유를 모르는 눈치입니다. 조용히 화낸다고 강도가 약하냐고요? 평소에 잘 참지만 제가 화가 나면 완전히 빙하기의 얼음 두께로 말을 얼려버립니다.


종일을 같이 부대끼다 보면 지금까지는 보아오지 못했던 많은 것을 보게 됩니다. 서로 직장생활을 할 때는 바쁘고 자기만의 일들에 묻혀 있어서 작은 것들은 묻고 살았던 걸까요? 둘 다 몸이 몹시 힘들다 보니 그런 것들이 더 잘 보입니다. 일을 하는 방법 이라든가 연장을 정리하는 습관 등등... 더욱이 그것들이 하필이면 내게 맞지 않는 일일 경우에는 부대끼게 되고 그런 경우가 더 잘 보여요. 40년 가까이 살았는데도 아직도 몰랐던 것들이 있다는 것이, 또한 꽤 많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그래서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옛 속담의 의미를  이제 서야 더 깊이 이해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지금 와서 어찌하겠습니까. 그저 웃을 수밖에요. 부부의 세계라는 드라마가 인기리에 방영되는 요즘, 이 시대와는 영 거리가 먼 해결 방법으로 결말을 짓고 말았습니다.


마음밭이 어지러운 상태에서 한 일은 뚜렷하게 눈에 보입니다. 오늘 일을 도와주러 온 동생이 수확해 놓은 작물들이 어지럽게 담겨 있었습니다. 제가 초짜일 때 수확해 놓은 것과 비슷합니다. 동생은 나름 프로에 가까운 사람이거든요. 무슨 속상한 일이 있나 봅니다. 대충 수확해 놓은 잎들을 정리하는 데는 서너 배의 노력과 시간이 듭니다.  수확을 할 때 잘 펴서 포개 두면 한꺼번에 여러 장을 정리할 수 있어서 훨씬 일이 쉽습니다. 1킬로 박스에 들어가는 잎의 수를 따져보진 않았지만 대충 500여 개의 잎을 하나하나  접힌 부분을 펴서 길이와 크기를 맞춰가며 정리하는 일은 꽤 시간을 요합니다. 저는 그 일을 도를 닦는 일이라고 혼자서 생각합니다.  아주 작은 농사여도 이러하니 많은 일을 해야 하는 분들은 어떨까 진정 존경스럽기까지 합니다. 오늘도 이웃 멘토 부부를 잠깐 만났는데, 이 봄 동안 얼굴이 아주 많이 상했더라고요. 그 예쁘신 부인의 푸석해진 얼굴을 보면서 저는 그렇게 살고 싶진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조금 쓰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바람인 저는 이전부터 그런 삶을 살고 싶진 않았었고요. 그런데 그런 내  마음속을 깊숙이  들여다보니 만약 다른 이들이 힘들여 농사를 지어주지 않는다면, 자급자족하고 살지 않는 한 살 수 없다는 것을 잊고 있었구나 생각이 들었네요.


오전에 잎을 따고 오후에 어제 딴 것들을 정리하다 보니 12개 박스를 채웠습니다. 어제는 싸워서 말도 않던 둘이 오늘은 웃으면서 그 일을 해냅니다. 어지러운 마음을 오늘은 보아 줄 여유가 있는 날인 모양입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냅니다.




시골 아파트 화단에서 만난 개불알꽃( lady's slipper)


제가 보낸 작물 속에는 친구들과의 그리운 시간을 그리며 홀로 일하는 제가 있습니다. 함께 커피를 배우던 친구와의 그 향기롭고 진한 커피와 함께 한 시간에 대한 그리움도 있습니다. 땅을 뚫고 올라오느라 끝 부분이 상처가 나서 상품 가치가 떨어져 버린 산마늘을 끝 부분을 잘라 친구에게 보냈습니다. 거기에는 우리의 고단한 시간이 있습니다. 약 안치고 풀 열심히 매어주고 추운 겨울을 지나온 우리의 마음이 담겨 있기에 좀 상처 난 것에 대한 미안함도 함께 넣어 곱게 보냈습니다.


"자기네 산마늘이 정말 맛있었어. 최고야."

응원해 주고 지인들에게 모두 보내도록 도와준 친구의 마음이 따뜻한 선물이 되어 제게 되돌아왔습니다.


어머니가 사시던 집은 일을 마치고 돌아와 씻는 일이 불편합니다. 더운물이 잘 나오지 않는 거예요. 보일러는 더운물을 감질나게 주고 금세 서늘한 물로 바뀌곤 합니다. 내 편안한 집이 아직도 너무 그립습니다.


네가 진정 자족의 삶을 그리던 사람이 맞아?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불편하지만 아름다운 삶 남희 씨의 글 한쪽이 나를 돌아보게 합니다.

네팔에서 한 양동이의 미지근한 물도 그리 고마웠다고.

그래서 오늘은 마음을 바꿉니다.

물을 데워서 샤워를 하면 되겠구나. 불을 땔 필요 없음 만도 감사할 일이지...

역시 적응하는 것은 인간 최고의 무기입니다.


차곡차곡 마음밭을 정리하는 중입니다.

그렇게 오늘 시골에서의 제 하루가 갑니다.


- Main Photo: 하우스 주변. 핸드폰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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