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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샛별 May 31. 2020

다시 사는 고향과 첫사랑이 닮았다

회귀하는 연어처럼



연어 회귀하다.

연어는 담수에서 태어난다. 한번 낳는 알의 갯수는 약 3000개, 그중 10% 정도만이 부화하고 4~5%만이 살아남는다. 어린 시절을 큰 강에서 보내고 자란 치어는 바다로 돌아가 살다가 산란기가 되면 암.수 모두 다시 자기가 태어난 강 상류로 돌아와 새 생명을 낳고 그곳에서 죽는다.



연어의 회귀를 다룬 다큐멘타리를 보며 남편을 떠올렸다.

연어는 담수에서 태어나 넓은 바다를 누비며 살다가 그들이 태어난 곳으로 돌아온다. 강에서 바다로 다시 강으로, 전혀 다른 환경에 적응해가며 힘겨운 고난의 여정을 지나 죽어 그 땅에 거름이 되는 삶. 그곳에서 그들의 자손들은 자라나 다시 바다로 떠나고 그 과정이 반복되는 그들의 일생 이야기를 보면서 그가 마치 그들 연어처럼 느껴졌다.

태어난 곳은 아니지만 우리는 이곳을 고향이라고 부른다. 어린 시절을 이곳에서 보냈고 부모님께서 일생을 마무리하신 곳이기 때문일 것이다. 중학교를 마치고 도시로 나갔던 남편이다. 은퇴를 5년 정도 앞두고 새로이 노년을 보낼 곳을 찾던 때가 있었다. 내가 여러 곳을 보러가자고 채근 할때마다 말없이 함께 갔던 남편은 아무리 그곳이 맘에 든다고 이야기를 해도 큰 액션을 보이지 않았다. 내가 생각하는 노년의 그림을 그려 나아가기에 더 좋은 곳도 그의 마음 속에는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했던 모양이다. 단지 그는 표현을 하지 않았을 뿐 어리석게도 나는 그의 속 마음을 읽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갑작스러운 시부모님의 병환으로 우리는 돌아오게 되었다.

말하지 않았을 뿐 그는 꼭 이곳으로 돌아오기를 원했던 것이다. 마치 연어처럼.





남편과 달리 나는 왜 고향에 돌아오기를 두려워 했을까?


40여년을 떠나서 살다 돌아 온 고향.

아직은 발의 반 만을 그곳에 딛고 있기는 하지만 인생의 세번째 큰 변혁의 시기라는 60대에  다시 고향에서 사는 삶을 열었다.


도시는 예전보다 활기를 잃고 조용해 졌지만 40여년의 시간동안 그들의  얼굴은 너무도 많이 바뀌어 졌다.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내가 살던 옛 마을은 모두 없어지고 산허리를 깎아내어 큰 도로를 내었다. 뒷산 소나무 한그루 만이 외롭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어 그곳이 내가 아는 그 산임을 알게한다. 저 산은 내가 반딧불이를 잡느라 어둑한 밤에도 오르던 산, 산딸기며 머루 다래를 따던 산, 절벽을 타고 오르내리던 바로 그 산이다. 진달래가 붉게 피었던 집앞 근사한 절벽도 시멘트로 마무리하여 흉측한 모습으로 바뀌어 있다.

왜 저렇게 밖에 가꾸지를 못했을까?

새로이 다리가 놓이고 길을 넓히고 발전이라는 이름하에 행해진 모든 것들이 아름답던 엣 모습을 낯설게 바꾸어 놓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고향이 빛을 잃은 것은 엄마의 부재 때문이다. 엄마가 그곳에 사실 때 분당의 깨끗한 아파트 정원 한복판에서 나는 얼마나 훍바람 이는, 옥수수대 서걱거리는 그 들판을 그리워했었던가.

함께 기타치며, 노래하고, 라면을 끓여 먹으며 난로가에 옹기종기 모였던 형제자매들도 모두 떠났다. 그리고 아들을 따라 엄마가 떠난 고향, 없어진 마을은 내게 아픔일 뿐이었다.


나는 유년의 고향을 잃어 버린 것이다.


내가 다니던 국민학교의 좁은 운동장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다.

어릴적에는 넓게만 보이던 운동장이였다. 저기서는 아침에 조회를 하고 한참을 행진을 하며 교실로 들어 갔었지. . 운동회날 운동장 한가운데서는 마스게임이며 기마전이며 오재미(콩주머니) 큰 종이박을 터뜨리는 등 여러가지 청군 백군대항 게임을 했었지. . 바깥 트랙에서는 달리기, 2인 3각, 종이에 적힌 어른 모시고 달리기등을 하고 운동장의 뒷쪽에서는 청백으로 나뉘어 모자를 쓰거나 머리띠를 두른 우리들이 목청 높여 응원가를 불렀었지..운동회의 마지막 백미인 릴레이가 시작되면 우리는 열광하며 더욱 더 목소리를 높였었지. .그런데 저 좁은 운동장에서 그 수많은 일들이 한꺼번에 진행될 수 있었다고?


어느날 남편의 직장으로 초등학교 시절 맘속에 간직한 첫사랑이 찾아왔었단다. 말하지 않았지만 전화 연락을 받고 남편은 마음속에 아련히 남았던 사람을 만나게 되어 설레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친구의 방문 목적은 보험 판매를 위한 것이었다고 했다. 물론 남편은 보험을 들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뒤에 조심스레 그의 기분을 물었다.  만나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걸. .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생각이 난다. 그 친구는 그냥 추억속의 사람이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어쩌면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편리한 생활을 위하여 그곳도 바뀌어가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허물어진 옛 정취가 너무도 아쉬워져서 나는 첫사랑을 나이들어 만난듯한 서글픔을 느낀다.

인생의 힘든 시기에는 어느 장소가 주는 힘으로 곡절많은 한 시절을 견디어 낼 수 있었다던 어느 작가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새로이 시작하는, 해보지 않았던 노동의 일터에서  내게 그 어린 시절의 마을이 남아있었더라면 얼마나 많은 위로가 될 수 있었을까! 사랑했던 사람들과의 추억이 있는 그 산과 들을 오르내리며 사는 일에 힘을 얻지는 않았을까?

내가 고향으로 돌아오고 싶지 않았던 것은 그 때문이 었을 것이다.


남편은 그 늙어버린 첫사랑의 여인의 얼굴 어느 구석에 그가 사랑했던 옛 얼굴이 남아있지는 않을지. . 그 말투속에 따뜻한 어린 시절의 어여쁜 모습이 남아있지는 않을지. . 첫사랑의 얼굴에서 조금이라도 아름다운 기억을 찾고 싶지 않았을까?

나는 아직도 그렇게 변해버린 고향 이곳저곳에서 나를 위로해 줄 옛 기억을 더듬더듬 더듬으며 찾아가고 있다.

 

강과 바다가 만나는 강 하구에서 옛 물의 맛을 찾아 상류로 회귀하는 연어처럼 그렇게 그렇게..






위안의 땅을 꿈꾸며



새로 시작한 삶은 익숙치 않은 길이어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내게 다가온다. 조금씩 천천히 받아들여 가기로 마음 먹는다. 농사는 서툰 나지만 하우스 주변에  심을 꽃들과 심고 피는시기 등을 공부하면서 힘든 일의 무게를 덜어 낼 꿈을 꾼다. 여기에는 해바라기를, 여기에는 한련과 코스모스, 아! 금잔화도 심어야지..멀리서 바라보면 꽃이 피어있는 하우스를 만들어 야지.

남편이 거름이 되고 싶어하는 그 땅이 내게도 위안이 되는 땅으로 가꾸어야 할텐데.


시골 가기전 꽃집엘 들러 옛 정취를 주는 꽃씨를 샀다.

그리고 그 꽃씨는 지금 어여쁜 싹을 내밀고 잘 자라고 있는 중이다.

    



Main Photo : 산파꽃 밭에서 (핸드폰 사진)

Photo : by Cassie Smart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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