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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샛별 Mar 22. 2020

초보 농부 아내의 시골생활 적응기

-  새로운 삶의 시작

봄이 오는 길목.

구정을 지내고 떠났다가 한 달 반 만에 시골에 내려왔습니다.


도시는 코로나로 인해서 가능한 외출이나 산책조차 자제해야 할 만큼 생활이 흔들렸고 마음은 답답하기만 했었습니다. 얼마 전 까지도 그 도시는 제가 꼭 돌아가야 할 곳인양 늘 서둘러 돌아가곤 했던 바로 그곳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곳은 고요합니다. 늘 그렇듯이 변함없이.




-작년의 농장 이야기


작년 봄 처음 남편의 농장에서 만난 작물들은 한해 겨울을 보내고 막 자라기 시작한 모습이었지요. 하루하루 자라는 식물들을 돌보고 사이에 자라난 풀을 뽑거나 새 작물을 심고 그렇게 농사일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해보는 농사일이었습니다.


그 와중에 어느 시기는 시어른들의 병환으로 작물들을 돌보지 못하고 얼마 동안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큰 일들을 치르고 돌아와 보니 그새 풀들은 우거져서 산마늘 밭은 풀밭이 되었고, 제초를 위해 사이사이 심어 둔 콩들은 그 기세에 눌려서 콩나물처럼 웃자라 있었습니다. 농사는 풀과의 씨름 이라더니 풀들의 기세는 대단해서 풀을 재배하는 모양새가 되어 있었습니다. 도저히 호미로 매고 뽑을 수가 없어서 자란 풀들을 베어서 풀 멀칭을 하기로 하고 한숨을 쉬어가며 며칠을 작업을 했습니다. 풀을 베어서 작물 주위에 일정한 두께로 덮어 두고 그 위에 톱밥을 이중으로 덮어 잡초가 자라지 못하게 하는 작업이었지요. 그렇게 애써도 하루만 지나면 다시 밀고 올라오는 잡초의 힘은 참 대단하더군요. 비록 그 힘이 아주 많이 약해지기는 했지만요.


농장이 있는 곳은 하루 세 번 시내버스가 다니는 한적한 곳이라  일을 하다 보면 새소리와 바람소리뿐, 고요함 속에서 일을 하게 됩니다. 비가 오는 날이면 하우스 비닐에 떨어져 내리는 빗소리가 음악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육체노동은 정신을 건강하게 하는지 몸은 고달팠어도 마음은 그저 평화로웠습니다.



어설픈 농부의 손도 마다하지 않고 작물들은 고맙게 자라주어 판매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손질을 할 때는 싱싱한 상태로 보내기 위해 아주 이른 시간부터 잎들을 따고 보기 좋게 정리해서 담습니다. 그 과정이 생각보다 긴 시간이 든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손이 열 개쯤 있었으면.. 손오공처럼 머리칼을 뽑아 몇 사람 더 복제하고 싶을 만큼 일은 끝도 없고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처음으로 우리가 마트에 가면 쉽게 살 수 있는 반듯하게 포장된 농산물 속에 숨어있는 다른 사람들의 노고를 절실하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조금 못나고 약간 벌레 먹은 것들을 생각 없이 치우던 손길은 고맙게 자라준 작물이 소중해서 그저 버리기 아까운 마음으로 바뀌게 되었고요.


미처 심지 못한 곳에는 다시 작물을 심었습니다. 날씨는 더워지는데 모종이 힘들까 이틀을 만 주의 모종을 심는 강행군을 했습니다. 덥거나, 비가 와서 찌거나 상관없이 날씨가 도와주기를 바랄 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묵묵히 할 일을 하는 것뿐이었지요.  우리가 키우는 작물은 더위에 약한 것들이라 우리가 더운 것보다 더 걱정하며 가림막을 덮어 주어 가며 작물들을 돌보는 시간 속에서 우리가 더운 것은 잊고 지냈습니다. 그렇게 여름을 보냈습니다.


가을이 가까워 오니 심어두었던 산마늘은 모두 잎이 시들고 내년을 위해 땅속에서 숨죽이고 있다네요. 과연 이들이 내년 봄 다시 살아날지 참 걱정스럽기만 했습니다. 그래도 산마늘 밭에 잡초가 자라는 걸 막기 위해 심어둔 콩들은 그새 키가 넘치게 자라서 주렁주렁 열매를 맺었습니다. 콩 수확을 하느라 주변을 조심조심 밟고 다니며  일을 했습니다. 때 맞추어 사이사이 심어둔 깨도 털어야 하고 콩도 털어야 하고 수확의 기쁨만큼 할 일도 많더군요. 마지막까지 달디 단 풋고추를 따다 먹는 기쁨은 덤이고요.


그리고 겨울이 되어서야  우리에게도 쉬는 날이 왔습니다.

겨울에도 죽지 않는 어떤 작물들은 이불을 덮어두어 얼지 않은 채로 겨울을 나도록 하기도 합니다. 하루 한 번쯤 가서 잘 있는지 돌아보고 오는 것이 남편의 겨울의 일과입니다.

눈이 내린 날은 함께 가서 한 폭의 수묵화와 같은 겨울 산의 모습을 바라보고 돌아왔습니다.




- 다시 새 봄을 맞으며


봄이 되어 다시 살아난 산마늘


그렇게 겨울을 보내고 올봄 처음 만난 하우스 안 풍경은 놀라웠습니다. 겨우내 빈 땅이었던 곳이 처음 우리가 심어 놓았던 모습 그대로 줄 맞춰 작물들이 다시 살아나  자라고 있었지요. 작년 가을 제 걱정은 기우였습니다. 그 모습이 참으로 경이로웠습니다.



잎을 수확하는 우리에게 꽃은 필요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키우는 작물의 입장에서 보면 봄은 꽃을 피우는 시기입니다. 힘껏 꽃을 피우느라 잎은 크게 자라지 않고 꽃대만 굵게 무서운 힘으로 자라 오릅니다. 꽃대를 따 주어야 잎이 자란다고 하면서  열심히 꽃대를 따고 있는 남편과는 달리  저는 철없이 그 꽃대가 어여쁩니다. 애쓰는 꽃의 모습이 대견스러워 꽃대를 꺾다 말고 그 꽃을 들여다봅니다.


고추냉이(와사비) 꽃


들여다보면 재미있는 것은 제 마음입니다. 각 동의 작물들 중에서도 제가 심은 동의 작물이, 제가 풀을 베어 주느라 애썼던 하우스의 작물이 더 눈이 가고 사랑스럽게 느껴진다는 것이지요.


어린 왕자의 장미를 기억하시나요? 어린 왕자는 자신의 별에 두고 온 소중한 한송이 장미꽃이 지구 별에서 만난 수많은 다른 평범한 장미꽃 들과 같아 보여서 처음엔 실망하면서 울어버렸지요. 그러나 여우를 만나 그에게서 길들인 다는 것의 의미를 배우고 나서 자신이 아낀  한 송이  장미꽃이 더 소중함을 깨닫는 이야기 말이지요. 자신이  물을 준 장미꽃이라서, 투덜거릴 때 그 말에 귀를 기울여 준 장미꽃이라서, 세상에 단 하나뿐인 장미꽃이라는 그 이야기가 작물들을 둘러보는 내내 제 마음속에 떠올랐습니다. 그렇게 초보 농부의 아내인 초보 일꾼의 마음이 익어갑니다.




-그러나 내가 살고 싶은 삶은


저에게 있어 이상적인 노년의 삶은  단 10퍼센트라도 소로나 니어링 부부를 닮는 삶이었습니다. 너무 많은 일에 묻히지 않고, 가능한 모든 것을 자신의 힘으로 만들고, 최소한의 소유로 살며 넉넉한 사유의 시간을 가지며 사는 삶.

그러나 이상주의자인 저는 늘 꿈을 꾸다 현실의 벽에 자주 부딪치곤 합니다.


함께 시골에 사는 꿈을 가졌지만 세부적인 점을 미처 나눌 시간이 없이 시작된 생활을 돌아보니 우리는 각자 다른 방향을 보고 있었나 봅니다. 은퇴가 가까워 오던 시점에 부모님 두 분이 차례로 아프셨고 두 분을 돌보며 그 힘든 시간을 잊으려 이 일을 시작한 남편을 묵묵히 응원할 수밖에 없다 보니  서로 이야기를 많이 나누지 못한 탓 이지요. 물론 그보다 훨씬 이전에 나누었어야 할 이야기였지만..

농사일에 매진하는 남편과 달리 저는 초보의 딱지를 뗄 날이 멀어 보입니다. 함께 살아야 하기에 나와는 약간 다른 생각을 지닌 남편의 삶에 일 부분만을 함께 하면서 때로는 두려워하고, 그러면서도 함께 하려 노력을 하는 중입니다.


실제 농사를 짓는 많은 분들에 비하면 소규모여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부끄럽습니다.

하지만 농사짓는 삶이란, 무엇 인가를 얻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노동이 꼭 필요함을 깨달아 가면서 지금까지의 삶과 전혀 다른 삶 속에서 나는 아직 젊은 나이라고, 여기서 또한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고, 가장 기초적이고 생산적인 삶을 배우고 있다고 생각을 다듬어가는  중입니다.

그 과정 속에서 노력하다 보면 진정 제가 원하는 삶 쪽으로 조금씩 올바른 방향을 잡아가지 않을까요.




이번에는 코로나로 인해서 시골에 머물게 된 시간 동안 예전과는 조금 다른 관점으로 시골살이를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절박한 상황이 아니었으면 느끼지 못했을지도 모르는). 그리고 시골살이의 좋은 점을 달리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직은 갈 길이 많이 멀긴 하지만요.


마스크 없이 일하면서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팔을 베고 누웠으니 대장부 살림살이 이만하면 족하다'는 옛사람의 이야기를 생각했습니다.


깨끗한 공기와 자연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며 그저 너무나 고마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것만으로도 너무나 고마운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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