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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샛별 Feb 04. 2020

홈 바리스타의 꿈을 꾸었다.

시골 살기 전 준비한  첫 번째 도전


수동 그라인더에 두 스푼의 커피를 넣고 천천히 간다(물론 전동 그라인더도 있다).  나는 그 시간을 즐긴다. 골고루 힘이 분산되도록 급하지 않게 같은 속도로 천천히 커피 향을 즐기며 커피를 간다. 물이 끓고 있는 동안 드립을 위한 준비를 한다. 서버 위에 나만의 방향으로 드리퍼를 올리고 필터 끝을 늘 하는 방향대로 접어 올리고 알맞게 간 커피를 담는다. 톡톡 평형이 되도록 가볍게 흔든다. 물을 드립 주전자에 담고 온도를 체크하고 가장자리에 물이 가지 않도록, 낙차가 가능한 작도록 가까이서 물을 원을 그리며 붓는다. 커피가 서서히 부푼다. 뜸이 필요한 시간이다. 하나 둘 마음속으로 숫자를 센다. 빵처럼 부풀어 오르던 커피가 숨을 쉬며 내려앉는다. 본격적으로 물을 원을 그리며 붓는다. 처음엔 가늘게 두 번 나중에는 두껍게 두 번. 어느새 원하는 양만큼 커피가 내려왔다. 이제 드리퍼를 다른 용기 위로 재빨리 옮긴다. 전용 스푼으로 맛을 본다. 목에 와닿는 묵직하고  진한 향기. 음~ 오늘의 커피는 성공이다.


일련의 과정을 거치는 동안 나는 아주 집중하고 있어 다른 생각의 여지가 없다. 나의 아침 풍경은 이렇게 시작된다. 커피 한잔을 좋아하는 컵에 담고 좋아하는 책을 펼치면 행복하다.




홈 바리스타 교육을 받았다. 시골에 정착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나의 행복을 위한 첫 번째 배움이다. 시골로 내려갈 가능성이 남편에게서 보이자 내가 처음 준비한 것은 커피를 배우는 것이었다. 아들도 나도 커피를 매우 좋아하는데 그곳에서 생활하기에 나를 위로해 줄 방편의 하나로 홈 바리스타에 도전한 것이다.


친구와 함께 전국 바리스타 대회에서 일등 한 경력을 가진 바리스타에게서 핸드드립 강좌를 통해 커피를 배우기 시작했다. 커피콩은 어떻게 생겼는지, 어떻게 커피콩을 가공하는지, 여러 가지 세계의 커피 종류와 특성, 추출기구 및 추출법, 블랜딩, 로스팅의 원리 및 로스팅 , 직접 핸드드립을 하면서 노하우를 배우는 수업이었다. 선생님은 우리와 가능한 똑같은 조건( 물, 커피의 분쇄 정도, 양, 용기, 시간 등 )에서 커피를 내리고 커피의 맛을 비교하는 시간을 늘 가지게 했다. 신기하게도 각각의 커피 맛은 추출기구에 따라서도, 분쇄 정도, 내린 사람이나 시간, 물의 온도 등에 따라서도 참 많은 차이를 내었다. 인간 손끝의 미묘한 차이로 달라지는 커피의 맛이라니.. 그날 이후로 나날이 나의 커피 드립 기술은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해 왔다. 아들 녀석도 척 엄지를 들어 보이기도 하였고.


 얼마 전부터는 로스팅에 도전해 보기도 했다. 나만의 적용 가능한 방법을 찾다가 '좋은 인생 실험실'(샨티)이라는 책을 통해 팝콘 기계를 이용한 커피 로스팅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찾아보니  우리나라에서도 어느 분이 올린  동영상을 찾을 수  있었다. 그 사람의 방법을 참고하여 로스팅 시범 때 만들어 둔 13 단계의 시기별 로스팅 샘플을 잘 보아가며 커피 로스팅을 시작했다. 항상 로스팅을  할 때마다  로스팅 일지를 쓰고 그날의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따로 노트하여 다음 로스팅에 그 사항을 고려하였고 직접 볶은 콩은 항상 맛을 보았다. 점차 시간이 흘러가면서 로스팅의 노하우가 쌓이고 어느 날은 제법 그럴듯한 산물을 얻는 날도 점점 많아졌다.  잘 진행되고 있던 나의 로스팅 프로젝트는 어느 날 욕심을 내어 더 많은 양을 볶다가 팝콘 기계가 고장 나는 바람에 잠시 접어두게 되었다.


로스팅 일지의 예

-로스팅 일자: 2017. 10.18 수
-품명: Chanzo TOH   Bourbon
           45-40(dark)   꿀 초콜릿 체리
           washed          Mt.Elgon 1980m

-Start vol. : 120g(2 cup)  결점두 5-6개

-로스팅 후: 100g(16% 감소)
-popping 및 로스팅 시간: 2분 40초 popping, 3분 40초 종료
-색상 및 맛 : #12-3, 약한 신맛 초콜릿 향, body 감 좋음,   *문제점:


요즘은 주문만 하면 잘 로스팅된 커피를 빠른 시간 안에 받을 수 있다. 나는 잘 로스팅된 좋은 커피를 나에게 선물한다. 물건을 사는데 그다지 취미가 없는 편이지만 커피에 관한 한 잘 내린 커피를 찾아서 마셔 보기도 하고 잘 로스팅된 커피를 사는 나만의 사치를 누리길 즐거워한다.




은퇴 후 시골로 농사를 지으러 남편이 떠났다. 벌써 1년이 지나 두 번째의 겨울을 보내고 있다. 지난해는 한 달에 한번 꼴로 시골로 내려가 그의 농사일을 돕곤 했다. 시골에서 자란 나지만 오랜 도시 생활에 물든 나에게 시골에서의 생활은 힘이 든다. 이른 아침을 먹고 허름한 일복을 거치고 도착한 농장에서 처음 하는 일도 커피를 마시는 일이다. 믹스커피다. 커피를 마시며 하우스 안에 자라는 식물들을 보며 오늘의 할 일을 가늠해본다.


풀을 뽑거나 작물을 심을 때는 엉덩이에 방석을 붙인 채로 일을 한다. 때론 멀리서 뻐꾸기가 우는 때도 있었고, 때론 하우스의 비닐을 때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일을 하고 있는 동안 별 일이 없는 한 밖은 아주 고요하다. 종일을 정신없이 일을 하느라 그렇게 시골에서의 하루하루가 갔다. 드립 커피의 환상은 저만치에 있다.


적응 전의 시골 생활에서 무엇보다도 힘이 든 것은 아직 나의 책들이나  오디오 등이 없는 점이다. 많은 일거리 보다 힘든 것은 나만의 위로가 필요한 시간이 없어졌다는 점이다.  저녁 시간이면  몇 개 나오지 않는 티브이 채널을 돌리며 시간을 보내다 보면 얼른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나의 애장품들을 가지고 완전히 시골에 정착한다면 차리게 될 나만의 홈카페 프로젝트가 성공할지는 아직 모를 일이다. 그러나 아마도 나는 나만의 힐링을 위한 시간을 포기하지는 않을 듯하다.


Photo by Mike Kenneally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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