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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샛별 Feb 10. 2020

내가 꿈꾸는 산티아고를 향한 30 일간의 기도

-책으로 떠나 본 산티아고

나의 언젠가 리스트의 가장 위쪽에 적혀 있는 곳. 산티아고 순례길.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한 열망의 시작은 2009년 김희경의 '나의 산티아고-혼자이면서 함께 걷는 길'을 읽고 나서였다. 깊이 몰두해서 책을 읽고 난 뒤 책장을 덮으며 나도 그곳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일하는 엄마로, 딸로, 며느리로 사느라 그곳을 향해 가는 것은 참 요원한 길이었다. 아직까지도. 나는 그 꿈을 놓지 않고, 역시 같은 꿈을 꾸는 친구와 서로의 책을 바꾸어 읽으며 늘  마음속에 그 꿈을 간직하고 있었다. 영적 기도의 기운이 존재하는 그곳에 대한 나의 꿈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렇게 몇 년이 흘렀다. 한 친구가 남편과 함께 산티아고로 떠난다고 했다. 그 친구가 떠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나는 집안일을 하다가 오른쪽 팔이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다. 수술을 하고 2달이 넘는 시간 동안을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겪으면서 내가 택한 치유의 방법 중 하나는 길을 떠난 친구를 생각하면서 글을 쓰는 것이었다. 산티아고에 관련하여 내가 가장 좋아한 세 권의 책을(작가: 김남희, 김희경, 조이스 럽) 읽고 친구를 위한 묵상의 시간을 갖는 것이었다. 김남희, 김희경의 책은 산티아고 여정에 맞추어 20-30km 정도의 범위 까지만 읽고, 묵상의 주제별로 25개의 챕터로 나누어진 럽 수녀의 글은 한 개의 챕터 정도 만을 읽고 그날의 생각을 써 보는 것이었다. 왼손밖에 쓰지 못하지만 다행히 아들이 내게 준 아이패드가 있어 글을 쓰는 것은 가능했다.  다치기 전에 친구가 산티아고로 떠난 것은 그냥 우연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아이패드가 있고 내가 좋아하는 책이 있고 아주 천천히 글을 읽으며 묵상하는 시간이 갖는 치유의 힘은 그 긴 우울 속에서 나를 지탱해주는 힘이 되었다. 이 글은 그의 일부분이다. 친구가 돌아온 뒤 나는 이 글을 프린트하여 친구에게 건넸다. 그녀는 지금까지도 늘 나를 응원해주고 용기를 주는 나의 소중한 친구다.




이것은 나의 기도에 관한 이야기다. 내가 꿈꾸던 곳을 먼저 간 친한 친구를 위해 깁스 한 오른손을 한쪽 어깨에 건 채 왼손으로 타이핑하며 올린 기도의 이야기다.

만약 나의 팔이 부러지지 않았다면 나는 그처럼 느긋하게 모든 집안일을 접고 시간을 보낼 수 있었을까. 물론 직접 걷지 않는 나는 몸이 힘들지는 않다. 단지 마음으로나마 친구와 함께 하며 나의 기원이 친구에게 닿아 조금이라도 힘든 어깨를 다독여 줄 수 있기를...




-카미노 편안한 반경에서 벗어나기
삶은 하품이 날 정도로 뻔하고 따분할 수도 있고, 뜻밖의 사연과 성장으로 충만할 수도 있다. 그것은 우리가 삶을 어떻게 보고 그 삶에 자신을 맡기느냐에 달려있다. 일상의 풍경은 같아도 우리의 내면은 매우 다르다. 언제나 뭔가 새로운 것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거기에 우리 자신을 열기만 한다면 말이다. 우리가 온전히 들어설 마음만 있다면 평범하고 일상적인 일로 보이는 것들도 새롭게 다가올 수 있다. 매일의 시간은 모험이 되어 사는 것처럼 살라고 우리에게 도전장을 내민다.-랩

열흘째. 친구는 카미노 어디를 걷고 있을까? 아마도 그 길은 그녀에게 있어 편안한 일상에서 벗어나 소유를 버리는 첫 경험이 될 것이다. 그 길에서, 매번 달라지는 그 길처럼 우리 인생도 그러하리라는 열린 마음이 힘든 일정 속에서도 위로가 되기를 기도한다. 원격의 카미노를 함께 걷는 내게도 오늘은 소중한 단 하루뿐임을 깨닫게 하는 하루다.   




-내려놓으라
의식적으로 더 많이 내려놓을수록 나의 마음과 생각에 더 깊이 평안이 찾아드는 것을 보았다. 내 욕구와 기대를 버리고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일 때 하루하루가 훨씬 좋았음을 내가 뭔가를 아무리 꽉 쥐어도 내가 그것을 그대로 지키거나 영원히 지속시킬 수 없음을. 무엇이든 귀한 것일수록 움켜쥐지 말고 그것을 든 손을 감사함으로 펴라. 그럴 때 삶은 더 순탄해진다.- 랩


내려놓기,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여유롭게 과정을 중시하기.

그대가 순간에 충실해 지기를

단순함으로 더 빛나기를

더욱 걷는 걸음만큼 살찌워진 영혼을 가지게 되기를

그리하여 마음속으로부터 우러나오는 밝은 모습으로 돌아오기를




-카미노에서 당신의 영혼은 출가 중
미래는 현재로만 올뿐 미래로는 절대로 오지 않기에, 그것은 역기능적인 삶의 방식이다. 거기서 불안과 긴장과 불만의 끊임없는 잠류가 생겨난다. 그것은 삶을 존중하지 않는 삶의 방식이다. 삶이란 현재이며, 현재가 아닐 때가 전혀 없다-에크하르트 톨레

여정을 내 욕심대로 계획하고 예상하려 하기보다는 여정이 어디로 이끌든 거기에 만족하는 법을 배우면서 나는 더 자유롭고 평안해졌다-랩


현재에 산다는 것은 언제나 현실을 가장 바로 보게 한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면, 미리 예측함으로써 생길 수 있는 오해로부터 나를 자유로와 질 수 있게 한다. 친구가 맑고 단순한 영혼으로, 건강한 육체로, 과거의 기억이나 잠자리를 찾는 작은 미래부터 먼 미래까지를 깊이 생각하기보다는 바로 그 자리 힘든 여정 속 주변을 더 많이 바라보고 즐길 수 있기를.. 그리하여 인생 여정을 바라보는 혜안을 얻기를 기원한다.




-바쁜 삶에서 벗어나 세상의 아름다움을 보기
바쁜 삶에 과도히 몰두할 때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놓치는지 모른다. 고단한 날이면, 단순한 배려의 선물이야말로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우리가 활동에 찌들어 있을 때 원기를 돋우어 주고, 낙심 중에 우리에게 희망을, 속상하고 지쳐 있을 때 누군가 우리가 사랑하는 이가 있음을 일깨워 주고, 다른 사람들의 선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회복시켜 준다.

편하고 안전한 집을 떠나 카미노를 걷는 동안 순례자의 삶은 더 단순해지고 생각은 더 명료해진다. 마음은 두고 온 것에 대한 집착을 잃고, 현존하는 것의 아름다움에 더욱더 공명하게 된다. 걷는 몸의 리듬 속에서 영혼도 제 나름의 모험과 조화의 리듬을 얻는다. 몸과 영이 친구가 되고, 그 과정에서 뭔가 더 큰 것과 연합하여 새로운 일체감을 얻는다. 나는 전에 없이 단순하게 살아가는 순례자였다. 여정을 걷고 있는 나를 여정이 걷게 하고 있었다.- 랩

단순하게 살아가는 것은 영혼과 육체가 함께 가는 여정이다. 전에 없이 더 카미노의 열망이 나를 부른다. 아마도 메세타의 평원을 고통스럽게 걷고 있는 친구에게 이 열망은 그 고통을 모르는 자의 어리석음에서 온 것으로 느낄 수도 있으리라. 카스티아를 걷는 초반엔 마음(heart)이, 메세타의 끝없는 평원을 걷는 동안은 몸(body)이, 갈리시아 지역을 걷는 동안은 정신(spirit)이 강해지는 길이라는 글을 읽었다. 친구가 여정에서 보이는 아름다움을 맘껏 느끼고 영혼의 강건함을 얻기를 기원한다.




-몸의 필요에 주목하기
몸의 인격에 주목하는 것은 카미노에서 배운 아주 중요한 인생 교훈이었다. 순례 중에 나는 내 몸을 '한 인격'으로 대하려 했다. 아프고 욱신거릴 때는 긍휼을 베풀었고, 건강하고 활력이 있을 때에는 고마워했다. 내 몸의 유연성과 복원력을 존중하는 마음도 날로 깊어졌다. 우리가 몸을 부실하게 관리하거나 아예 관리하지 않을지라도, 인간의 몸은 최선을 다해 우리를 물리적으로 지원한다. 나는 거기에 대해 경이감을 얻게 되었다.-랩

팔걸이를 벗고 팔을 높이(?) 들어 올릴 수 있어 행복한 날이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오늘 나는 팔을 높이 올리고, 어설프나마 음식도 만들기 시작했다. 오른손 타이핑도 가능해졌다.

친구가 고된 몸을 잘 달래 가며 영혼의 충족을 얻기를..




모두가 산티아고로 향하는 하나의 길을 걷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모두가 가야 할 단 하나의 길이란 아예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각자 다 자신만의 길을 걷는다.- 희경
카미노 무리에서의 고독
고원에서는 인생의 사소한 것은 망각 속으로 사라진다. 자아는 중요하지 않은 것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다. 여정 자체가 순례자를 떠메고 간다. 고요한 고독에 둘러싸여 무더운 평지를 터벅터벅 걷노라면 나머지 것은 모두 잊힌다. 그 고독이 성장을 가져다준다. 그렇게 먼 길을 걷는 사이에 순례자는 자아를 비우게 된다. 그리하여 삶이 똑똑히 보이기 시작하고, 평소에 귀히 여기던 모든 것들이 제자리를 찾는다.- 랩

그냥 존재할 때, 고원을 힘겹게 걸을 때,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수녀님은 자신과 만나고 평화롭고 자신을 바라볼 수 있다고.. 카미노를 걸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상상 속에서라도 느낄 수 있음은 이 어려운 시간이 내게 가져다준 축복이다. 이 힘든 길을 묵묵히 걷고 있는 나의 친구에게도 이런 깨달음이 함께 하기를.. 충분히 그러하리라. 오늘도 지친 친구의 발을 묵상하며..




-약함을 통해 겸손을 배우라
카미노는 내게서 지나치게 독립적인 기질을 앗아갔고, 미래에 있을 비슷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나를 준비시켜 주었다. 그런 도전은 병으로, 실패와 역경으로, 예상치 못한 혼란으로, 가장 확실하게는 노화과정으로 반드시 찾아오게 마련이다. 끝까지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우리 중에 아무도 없다. 미국 문화가 아무리 독립심을 조장해도, 살다 보면 내 힘으로 못하는 일을 겸손히 감사함으로써 다른 사람에게 맡겨야 하는 상황이 오게 마련이다.'자신의 어깨로 자기를 질 수는 없다'는 것을 카미노는 나에게 확실히 가르쳐 주었다. 다른 사람들이 주는 것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삶의 순간이 나에게도 올 것이다. 그들이 내 짐을 져 주도록 나는 가만히 있어야 한다.-랩

독립적일 수 있는 것은 건강할 때에 가능한 것임을 실감한다. 건강에 문제가 생겨서야 비로소 혼자 모든 것을 할 수 없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 과정을 통하여 느낀 것은, 평상시 매사를 사랑으로 행한다면 그 사랑의 힘이 또한 고통의 시간에 타인이 주는 도움을 감사하게 받게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다른 이를 위해 어떤 일을 하면서 왜 나만 이 일을 해야 하는지.. 불평할 때는 얼마나 많았는지. 나 혼자서 모든 일을 혼자서 할 수 있을 거라는 오만함이 도움이 필요한 이에게 손 내밀 때 망설이게 한 것은 아니었는지. 독립적이라는 것이 반드시 세상을 바르게 사는 방법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고통의 시간이 주는 소중한 깨달음을 통하여 겸손하게 타인의 도움도 즐길 수도 있는 열린 마음을 가지며 나이 들어가고 싶다.

힘겹게 갈리시아의 산길을 걷고 있을 친구의 영적 성장의 하루를 기원한다.




-멈추어 되돌아보라
멈추어 그간의 족적에 주목하면 나 자신과 삶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과거가 현재의 순간과 이어지기 때문이고, 지금 내가 믿고 있는 것과 살아가는 방식이 과거와 어떻게 맞아들 거나  맞아들지 않는지 보이기 때문이다. 과거에 집착하는 것은 건강하지 못하다. 과거를 절대 돌아보지 않는 것도 똑같이 건강하지 못하다. 우리는 지난 일에서 배울 수 있고, 그 통찰을 현재 속으로 가져올 수 있고, 다시 거기서 배울 수 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더 깊은 지혜를 품고 미래로 들어설 수 있다.- 랩


참으로 자유로운 삶을 꿈꾼다. 너무도 버려야 할 것이 많음을 깨닫는다. 또한 쓸데없이 많은 것을 미리 걱정하고, 지나간 시간을 후회하였는지를 깨닫는다. 참으로 많이 내려놓아야 하리라. 더 이 순간에 집중해야 하리라. 그 길을 향해 떠나지는 못하였으나 여기 이 자리에서 가볍게 짐 지고 사유하는 삶을 살아야 하리라.


카미노의 여정이 끝나가는 즈음, 친구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버렸을까. 마음을 열고 그 길을 걸었다면 많은 영적 성장을 이루었으리라. 단순함 속에서 온전히 자신과 자연과 만나는 경험을 통하여 앞으로의 친구의 인생 여정에 많은 변화가 있기를 기원해 본다. 아직 가보지 않은 그 길을 나는 다만 감상적이고 낭만적인 상상만으로 도전해 보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닌지.. 내 건강이 그를 뒷받침할 수 있을지.. 그러나  한번 꼭 그 길을 걷고 싶다. 가진 것은 가장 소박하게, 나의 통제 욕구를 버리고, 그냥 나 자신으로.




 그대의 마음이 뜻밖의 사건들 속에서 의미를 찾기를

그대를 위해 기도 하는 친구들이 내내 그대를 안고 가기를

그대를 위해 기도하는 친구들이 그대 마음속에 안겨 가기를

 삶의 동심원이 길가는 내내 그대를 에워싸기를

깨어진 세상이 그대의 어깨 위에 목말을 타기를

 그대의 영혼의 배낭에 그대의 기쁨과 슬픔을 지고 가기를

 그대가 온 세상 모든 기도의 고리들을 기억하기를
 - 메크리나 위더 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책을 읽고 생각하는 과정 속에서 내가  순례길을 걷는 느낌이 들었다. 상상 속에서 한번 걸어 본 그 길을 정말로 꼭 걷고 싶다. 나의 건강이 허락하는 만큼만 욕심내지 않고. 일부 구간만을 걷는다 해도.


아마도 나는 그 길을 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친구의 기도가 내게 위로가 될 것이다. 그 길을 떠날 때 나는 이 글을 묶어 들고 떠나고 싶다. 매일 친구를 향해하던 나의 기도가 이번엔 나를 향한 기도가 되어 줄 것이다.




Photo by Ricardo Frantz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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