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샛별 Jul 15. 2020

내 자그마한 소유와 행복

나에게 위안을 주는 책 들이기

나이가 들어가며 물건을 들이는데 주저하게 된다.

꼭 필요한 것인지. 몇 번이나 더 확인하는 습관이 강해졌다.

책을 사는 일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가끔 이북을 사기도 하지만 기기를 통해 느끼는 이질감은 종이책의 감촉을 따르지 못하여 결국 다시 종이책을 사게 만든다.


마음이 헛헛한 날에는 혼자 책방에 간다. 나와의 데이트 시간이다. 인터넷으로 책을 사면 더 쉽지만 가끔은 내가 원했던 책이 아니라서 실망하는 경우가 여러 번 있었다. 혼자만의 데이트 길에서 책과 미리 만나 서로 결이 같은지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온 후에 책을 사면 그 만남은  틀림이 없다. 책을 사는 일은 사람을 만나는 것과 많이 닮았다. 한 번을 만나도 가슴 떨리는 책이 있고, 많은 정보를 통해 그 명성은 익히 들었어도 나와는 영 맞지 않는 옷 같은 책도 있다. 그 길에서 많은 책과 많은 사람을 만난다. 나에게서 밖으로 향하는 한 방향의 길 이기는 하지만 다양하고 좋은 이들을 만나고, 책 속에서 나마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다 한번 만나 가슴에 와 닿은, 꼭 만나고 싶은 작가의 책을 그 길에서 만나면 가장 먼저 나 스스로에게 선물을 하곤 한다.


은퇴 후에는 때로 헌 책을 사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것은 오히려 많은 이들이 이미 읽어 검증된 좋은 책을 싸게 얻는 기쁨이  있어 좋다. 책방 순례길에서 새책을 고르는 기쁨만큼은 아니어도 쥐꼬리만 한(?) 나의 작은 연금을 받아서 여러 권을 사는 경제적인 점도 고려한다면 괜찮은 선택지다. 언젠가 마종기 시인의 을 헌책으로 샀다. 누군가 그 이전 주인이 책갈피에 넣어둔 세 개의 네 잎 클로버를 함께 받았다. 시인의 시가 너무 좋아서.. 그 시의 배경이 된 에세이 글이 너무 좋아서.. 네 잎 클로버의 행운이 좋아서.. 책 겉장에 이렇게 썼다.

'행운이 함께 한

시인의 눈을 같이 느끼고

시인과 같은 곳을 바라볼 수 있는

보물을 찾은 기쁨! '이라고.




레이첼 카슨의 '센스 어브 원더'를 원판으로 헌책을 샀을 때는 그 글과, 그 글에 어울리는 사진들이 너무나 좋아서 정말 행복했었다.

그날의 책 겉장에는

'보물을 찾다.

김영갑의 멀리 보는 눈과 카슨의 확대하여 아주 가까이 보는 눈.

두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자연바라보는 멋진 시선을

나도 함께  공유하게 됨을 기뻐하며' 이렇게 쓰여 있다.





나의 어느 생일날. 방송작가의 길을 버리고 나이 들어 영국 유학을 하고 나서 정원사의 길로 들어선, 용기 있는 오경아 작가의 정원 이야기를 담은 '안아주는 정원'을  책방에서 만났다. 새 책을 나 스스로에게 선물하며 나도 이제 지나 온 나의 시간들을 잊고 새로운 삶을 꿈꾸기를 바랐다.  

'나 스스로를 응원하며!

스스로로 살아가도록!'

책 겉장에 쓴 이런 응원의  메시지를  스스로에게 보냈다.


새로 책을 들이는 그날에, 때로는 읽고 나서 내 작지만 기쁜 마음을 책 안쪽 빈 공간에 담으면서

그렇게 나의 자그마한 소유욕은 나에게 소소하고 작은 행복감을 가져다주곤 한다.


며칠 전 한참을 책을 보다가 갑자기 눈앞에 무엇인가 이물감을 느꼈다. 눈 앞에 어른 거리는 잔상들 때문에 몹시 불편해졌다. 책을 보기도, 글을 쓰기도 어려워져서 모든 일에서 손을 놓았다. 창문을 열고 멀리 보이는 호수를 바라보기도 했지만 결국은 한참을 누워서 눈을 감고 쉼의 시간을 가져야 했다.

볼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기쁨인지!

잠시 동안의 눈의 이상이 내가 가진 것들이 얼마나 약하고 부서지기 쉬운 것인지를 순간 알게 한다.


언젠가는 볼 수 있는 것이 줄게 될 것이다.

들을 수 있는 것이 줄어들 것이다.

움직임에도 제한이 올 것이다.

어쩌면 내가 좋아하는 이 책들도 어느 날엔가 무용지물이 될 날이 오겠지.

그때는 그때의 또 다른 즐거움이 있을까..

그저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며 지나온 삶을 돌아보는 그러한 즐거움이라도.

그런데 지나온 그 날들이란 바로 오늘 이 순간들이 모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던가.

잠시의 가슴 섬찟한 불편함에서 돌아오니 '지금 이 순간 내게 가장 위안을 주는 것이 무엇인가 또는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가 절실하게 다가온다.


첫 비행을 앞둔 생떽쥐베리에게 남아메리카 대륙의 안데스 산맥과 남대서양 횡단이라는 우편 비행의 기록을 세운 동료 기요메가 그에게 건넨 말을 책에서 찾는다.

폭풍우나 짙은 안개나 눈 따위가 때때로 자네를 괴롭히겠지만, 그런 때 자네는 자네보다 먼저 그런 것을 겪은 사람들을 생각하게. 그리고 자네 자신에게 이렇게 타이르게. 남들이 해낸 일은 나도 반드시 해낼 수 있다고 말일세.

글귀로 위로를 받는다.

남들처럼 그렇게 천천히 익듯이 나이 들어갈 수 있으리라고.


지금 이 순간의 나는 행복하다.

작은 소유

책과의 만남은 늘 설레는 순간이다.



Main Photo : by Kari Shea on Unsplash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꿈꾸는 산티아고를 향한 30 일간의 기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