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왕자와 길을 걷다(오소희)를 읽고
처음 그 동화책을 읽었을 때 나는 소녀였다. 그리고 그때에 그것은 나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다만 한 쌍의 나비가 된 애벌레의 사랑 이야기였다.
그런데 지금, 그것은 나의 이야기였다. 내가 동화를 멀리한 사이, 나에게 벌어졌던 일들이 거기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산처럼 거대한 애벌레 탑을 기어올랐었고, 굴러 떨어졌었고,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가는 친구를 부럽게 바라보았었다. 애벌레가 좌절한 그대로 나는 좌절했었고, 애벌레가 희망을 품은 그대로 나는 희망을 품었었다.
그것은 단순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었다. 바로 나 자신의 인생 이야기였다.
.... 중략....
다음으로 집어 든 동화도 마찬가지였다. 빨려 들었다. 전율했다. 동화책은 마치 예언서처럼 읽혔다.
- 서문 중에서
(책 속의 동화 18편)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JM바스콘셀로스
-아낌없이 주는 나무: 셀 실버스타인
-얼굴 빨개지는 아이: 장 자끄 상뻬
- 어린 왕자: 생떽쥐베리
-안녕 나의 별: 파블로 네루다
-강아지똥: 권정생
-마당을 나온 암탉: 황선미
-100만 번 산 고양이: 사노 요코
-나무를 심는 사람: 장 지오노
-눈사람 아저씨: 레이먼드 브리그스
-좀머 씨 이야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작은 집 이야기: 버지니아 리 버튼
-행복한 청소부: 모니카 페트
-꾸뻬 씨의 행복 여행 : 프랑수아 클로르
-창가의 토토: 구로아나기 테츠코
-마지막 거인: 프랑수아 플라스
-이기적인 거인: 오스카 와일드
-나는 달랄이야 너는?: 오소희
그러니 아들아, 누군가 세상에서 중요한 것들의 목록이 바뀌었다고 하거든 그 말을 믿지 마라.
그들이 출세나 성공에 대해 말해도 귀담아듣지 마라.
이 세상에 너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네가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네 인생은 성공한 것이란다.
무엇을 하든, 어디에 있든, 마음을 함께 나누는 일이 가장 중요하단다.
-본문 (마음을 심는 법) 중에서
엄마들은 얼마나 많은 베풂과 약탈을 겪어 내는 걸까 미안함이 순식간에 목까지 들어왔다
"우리가 옛날보다 가난해진 것은 물론 아니다. 아니 그 반대로 우리는 어쩐지 갑자기 풍요로워졌다. 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우리에게는 진짜 중요한 것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중요한 것이란 도대체 뭐지요?"
"소박함 이란다. 신약성서에는 단순함이라고 쓰여 있지."
나에게 진심이 없다면 그것을 어디쯤에서 떨어뜨렸는지 동화가 알려주었다. 나에게 행복이 없다면 그 또한 어디쯤에서 잃어버렸는지 동화가 알려주었다. 동화는 그림으로 된 인생 지도였다. 그 안에 잃어버린 모든 것들의 좌표가 들어 있었다. 꿈, 희망, 행복, 베풂, 안식, 우정... 소녀였을 때, 나는 꿈과 희망으로 눈앞이 충만하여 그 지도의 독법을 알지 못했다. 어른이 되는 와중에, 나는 꿈과 희망을 잃어버리며 비로소 지도의 독법을 터득하게 된 것이다. 다시 읽는 동화는 곳곳에 흩어진 생의 잃어버린 좌표들을 향해서 단숨에 내 손을 잡아 이끌었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