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샛별 Sep 08. 2020

다시 동화책을 읽다.

어린 왕자와 길을 걷다(오소희)를 읽고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필사하고 있는 중이었다.


<어린 왕자>

스님은 그 책이 당신에게 단순한 책이 아니라 하나의 경전과 같다고, 누가 한두 권의 책을 선택하라면 <화엄경>과 이 책을 고르시겠다고 하셨다. 그 책을 읽고 난 반응으로 어떤 사람이 나와 친해질 수 있느냐 없느냐를 알 수 있다고 하셨다. 스님께는 그 책이 당신이 사람의 폭을 재는 한 개의 '자(척도)'와 같다고.

 

 꽤 많은 책을 소유하고 있지만 그중 좋아하는 책을 따로 두는 책장의 한 부분이 있다. 아마도 책들이 버거워져서 치우게 된다면 가장 나중에 치우게 될 책들이 자리하고 있는 곳이다.

그곳에 또 한 사람 어린 왕자를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 있었다.

어른이 되어 읽는 동화 오 소희 작가의 <어린 왕자와 길을 걷다>라는 책이다.  필사를 하다 말고 잠시 잊고 있었던 그 책을 다시 펴 들었다.



도와주는 사람 없이 혼자 힘으로 직장을 다니며 아들 둘을 키우고, 사회생활이 전부인 줄 아는 남편과 반려견 그리고 맏며느리로 살면서 여행을 떠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출장으로 처음 멀리 떠나 본 시애틀에서 일을 마친 마지막 날 해변에서 잠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있던 중이었다. 저 멀리 구름 속에 하얗게 솟아오른 원추형의 산. 레이니어 설산의 모습이었다. 가슴이 멎을 듯한 순간에 나는 같이 간 동료들에게도 그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꿈속 같았으므로. 아무도 그 산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돌아와서 그것이 진짜였을까 인터넷으로 다시 사진을 찾아보기까지 했다.  그 이후 설산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마음속에 깊이 자리 잡았다.

그것을 계기로 여행의 열망이 서서히 자라나기 시작했을 때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여행기를 사는 것뿐이었다. 김남희, 조병준, 유성용 등 좋아하는 작가들의 책을 부지런히 사 모았다.


오소희 작가와의 만남도 어느 날 여행기를 사러 점심을 굶고 들른 책방에서였다.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주겠지> 1.5인의 터키 배낭여행기!

아장아장 걷는 어린아이를 데리고 세상 속으로 들어가 그 사람들의 속살을 보며 마음을 열고 그들과 함께하는 그녀의 글이 참 좋았다. 그 이후로 그녀의 여행기는 내가 좋아하는 책들이 되었다.


그런 그녀가  쓴 책 < 어린 왕자와 길을 걷다>. 망설임 없이 책을 집어 들었다.

먼 길에서 돌아와 잠시 집에 머무르던 아들이 물었다.

"엄마 요즘 보시는 책 중 좋은 것 있으세요?"

그때 보고 있던 이 책을 내밀었다.

" 내가 너희들을 키울 때, 너희들이 가졌으면 원하던 심성을 표현할 수 있다면 이 책에 그런 마음이 담겨있네."

" 그래요? 그럼, 저도 꼭 한번 볼게요."










서문에서.

"진심이 있다고 믿으시나요?"

한 독자의 질문이 그녀를 생각에 잠기게 했다.

그녀는 삶의 꿈, 희망, 안식 같은 말들이 살아 숨 쉬는 곳을 찾고 있었단다.

어디일까? 그곳은.

답은 우연한 곳에서 왔다. 동화 <꽃들에게 희망을>을 집어 든 순간에.


처음 그 동화책을 읽었을 때 나는 소녀였다. 그리고 그때에 그것은 나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다만 한 쌍의 나비가 된 애벌레의 사랑 이야기였다.
그런데 지금, 그것은 나의 이야기였다. 내가 동화를 멀리한 사이, 나에게 벌어졌던 일들이 거기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산처럼 거대한 애벌레 탑을 기어올랐었고, 굴러 떨어졌었고,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가는 친구를 부럽게 바라보았었다. 애벌레가 좌절한 그대로 나는 좌절했었고, 애벌레가 희망을 품은 그대로 나는 희망을 품었었다.
그것은 단순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었다. 바로 나 자신의 인생 이야기였다.
.... 중략....
다음으로 집어 든 동화도 마찬가지였다. 빨려 들었다. 전율했다. 동화책은 마치 예언서처럼 읽혔다.

   - 서문 중에서




책 속에서는 동화를 바탕에 둔 20개의 글들을 만날 수 있다.

우리들 모두의 마음속 작은 시인이 될 수 있었던 우리 마음 가장 아랫칸에 존재하는 마음. 타인의 아픔을 헤아려 줄줄 아는 어린아이 같은 마음을, 한 그루 은행나무를 통한 자연과의 교감을, 희망을 지니는 일에 대하여, 신념을 배운 아이들의 이야기를, 우정을,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하여 얻은 역경 속에서의 행복 찾기를, 제3세계의 아파도 울지 않는 아이들과 비바람에도 굴하지 않는 작은 거인들의 이야기를, 진흙 속에서 피는 꽃 같은 행복 이야기를.. 그 속에서 만날 수 있다.

(책 속의 동화 18편)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JM바스콘셀로스
-아낌없이 주는 나무: 셀 실버스타인
-얼굴 빨개지는 아이: 장 자끄 상뻬
- 어린 왕자: 생떽쥐베리
-안녕 나의 별: 파블로 네루다
-강아지똥: 권정생
-마당을 나온 암탉: 황선미
-100만 번 산 고양이: 사노 요코
-나무를 심는 사람: 장 지오노
-눈사람 아저씨: 레이먼드 브리그스
-좀머 씨 이야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작은 집 이야기: 버지니아 리 버튼
-행복한 청소부: 모니카 페트
-꾸뻬 씨의 행복 여행 : 프랑수아 클로르
-창가의 토토: 구로아나기 테츠코
-마지막 거인: 프랑수아 플라스
-이기적인 거인: 오스카 와일드
-나는 달랄이야 너는?: 오소희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속에는 크리스마스에 아빠를 위해 일하는 돈에 굴복하지 않는 자존감이 자리한 제제의 마음이 있다. 그녀는 제3세계, 가난한 시리아의 사진을 파는 소년으로부터 늘 계산하는 우리들과는 달리 마음을 줄 줄 아는 계산하지 않는 마음을 다시금 깨닫고 그 마음을 기쁘게 받게 된다.

<어린 왕자> 속에서 얻은 마음을 나누는 일의 소중함을, 요르단에서 만난 무슬림 여성들과의 만남 이야기를 통해서 전하기도 한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란, 그녀는 이렇게 썼다.

그러니 아들아, 누군가 세상에서 중요한 것들의 목록이 바뀌었다고 하거든 그 말을 믿지 마라.
그들이 출세나 성공에 대해 말해도 귀담아듣지 마라.
이 세상에 너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네가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네 인생은 성공한 것이란다.
무엇을 하든, 어디에 있든, 마음을 함께 나누는 일이 가장 중요하단다.

 -본문 (마음을 심는 법) 중에서



< 백만 번 산 고양이>에서는 넘치는 것보다 모자란 것을 귀히 여기는 마음을 이야기한다.

백만 번이나 죽었다 살아난 고양이가 있다. 백만 명의 사람이 그 고양이가 죽었을 때 울었다.

자기 자신만을 좋아하던 고양이. 그는 단 한 번도 울지 않는다.

그가 자신보다 더 좋아하는 것이 생겼다. 아기도 낳고, 자신보다 그들을 더 사랑하게 되었다. 새끼들은 자라서 모두 떠났고 사랑하는 고양이도 늙어 버렸다. 그는 오래오래 그녀와 살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어느 날 자신이 사랑하던 고양이가 죽었다. 고양이는 처음으로 울었다. 백만 번이나 울었다. 며칠이 지났다. 그 고양이는 사랑하는 이의 곁에서 다시는 살아나지 않았다.

마음이 없을 때 모든 것은 기계적 반복이다 그것이 목숨이라고 해도.

혼자 떠난 론다에서 보낸 사흘. 동화 같은 마을에서의 삼일 , 처음에는 신기하고 좋았던 것들이 점점 바뀌어 간다. 진심으로 마음을 준 것들이 거기 없어서 모든 것이 시들하고 외롭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경치도, 음악도 매일의 반복 속에서는 시들해졌다. 처음에는 멋지기만 하던 기타리스트의 음악이 그냥 반복이기만 해 졌을 때 그 CD를 산다. 그 반복에 대한 성찰의 표시로서..

그녀는 마음을 다해 끝까지 지키고 싶은 것들과 금방 질려 내려놓는 것들을 진심으로 깨닫게 된다.



<마당을 나온 암탉> 편에서 젊은 여성들의 눈으로 본 각기 다른 엄마의 모성애에 대한 견해들을 듣는다.

- 잎싹의 모성이 조금만 덜 비장해서 자신의 행복도 살필 수 있었더라면.. 그래서 해피 엔딩이라면

- 많은 여성들이 헌신적인 조연으로 살아. 하지만 그건 그들에게 생의 주연이 되는 또 다른 방식이란다..

엄마의 응급실에 동행한 그녀는 그 시간 동안 엄마의 이야기를 마음으로부터 듣는 시간을 갖게 된다. 그 시간이 바쁘다는 핑계로 단 한 번도 떠나보지 못한 모녀간의 시간.

초록머리가 잎싹을 떠난 것처럼 자신도 엄마 곁을 떠났고, 자신이나 자신의 아들에게는 세상 구석을 아낌없이 보여주었으면서도 엄마와는 겨우 응급실에서 긴 이야기를 나누는 자신을 돌아본다. 그 시간이 , 오랜만에 갖는 엄마와의 시간이 그녀에게 소풍처럼 느껴진다.

 엄마들은 얼마나 많은 베풂과 약탈을 겪어 내는 걸까 미안함이 순식간에 목까지 들어왔다

하지만 엄마는 그것조차도 미안해하고 고마워하고...

그렇게 우리네 엄마들의 삶을 돌아본다. 다른 방식으로 주연이 되는.








법정스님이 좋아하는 책의 주인공 어린 왕자에게 보석 같은 마음을 긴 편지글을 쓰셨듯이, 그녀는 동화 속에서 따뜻한 시선으로 가족, 이웃, 여행 중에 만난 가난하지만 마음이 부자인 사람들과의 만남 속에서 동화 속의 진실들을 만난다. 깨어있는 눈을 가져야만 볼 수 있는 진심들을, 따뜻한 진실들을 그녀는 깊은 우물에서 물을 길어 올리듯이 아름답게 길어 올리고 있다.



오래전 헤세의 <정원 일의 즐거움> ' 꿈의 집'편에서 읽은 이야기다.

 마치 자신을 나타낸 듯한 노인 정원사 네안더와 둘째 아들 한스와의 이야기다.

 "우리가 옛날보다 가난해진 것은 물론 아니다. 아니 그 반대로 우리는 어쩐지 갑자기 풍요로워졌다. 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우리에게는 진짜 중요한 것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중요한 것이란 도대체 뭐지요?"

"소박함 이란다. 신약성서에는 단순함이라고 쓰여 있지."



진심과 진실은 소박하다. 풍요로워질수록 잃기 쉬운 것.

우리 곁에 늘 존재하지만 마음을 열고 보아야만 볼 수 있는 것들이다.

크게 성공하지 않아도, 부자가 아니어도.

 

코로나 시대. 우리는 많은 것을 잃었다.

 늘 우리 곁에 있었던 것들 중 필수적이라고 생각했던 것들 그중 얼마나 많은 것들이 버려도 살 수 있는 것들 임을 알게 되었는지.

우리에게 소중한 것들은 얼마나 소박한 것인지.



<꽃들에게 희망을> 책을 다시 읽었다.

그녀의 이야기에 고개 끄덕인다.

그랬구나..


나에게 진심이 없다면 그것을 어디쯤에서 떨어뜨렸는지 동화가 알려주었다. 나에게 행복이 없다면 그 또한 어디쯤에서 잃어버렸는지 동화가 알려주었다. 동화는 그림으로 된 인생 지도였다. 그 안에 잃어버린 모든 것들의 좌표가 들어 있었다. 꿈, 희망, 행복, 베풂, 안식, 우정...  소녀였을 때, 나는 꿈과 희망으로 눈앞이 충만하여 그 지도의 독법을 알지 못했다. 어른이 되는 와중에, 나는 꿈과 희망을 잃어버리며 비로소 지도의 독법을 터득하게 된 것이다. 다시 읽는 동화는 곳곳에 흩어진 생의 잃어버린 좌표들을 향해서 단숨에 내 손을 잡아 이끌었다.

 - 본문 중에서




오늘 오랜만에 동화책을 샀다.

그녀의 이야기 속 더 긴 이야기가 보고 싶어 졌으므로.

비록 그녀만큼 깊은 눈을 지녀 깊숙이 보지 못할지라도 나만이 가질 수 있는 이야기가 그 속에 존재할 수 있으리라 믿으며.


동화책을 기다리는 나의 마음이

아주 오랜만에 아이처럼 몹시 설레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