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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샛별 Nov 01. 2020

나를 울게 한 시인

천사의 탄식-마종기 시집



어느 늦은 저녁 시간 Fm 방송을 듣고 있었다.

진행자가 시인 한 분을 초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중이었다.

질문이 무엇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날의 초대 손님  이병률 시인이 어느 시집을 읽고 울었다는 말씀을 하셨다.

시인을 울게 한 시집은 바로 내가 좋아하는 마종기 시인의 최근 시집이었다.






시를 좋아하지만 따로 배운 적이 없다.

그저 중, 고교 시절 교과서에 실린 시로 시를 접했고 어른이 되어 가면서 마음에 닿는 시인들의 시집을 틈틈이 읽었을 뿐이니까.

그저 내 가슴에 무언가를 던져주는 그런 시들을 읽었으니 다소 편향되어 있을 것이다.

더구나 나는 이과 전공자다.

시들을 읽으며 무슨 말인지가 와 닿지 않고 어려운 시는 내게는 넘볼 수 없는 영역 밖의 글들이다.

쉬우면서도 마음에 와 닿는 그런 시를 좋아한다.


'내 시는 죽어서나 살아서나 내 의미가 설사 전달되지 않는 한이 있어도

그냥 그대로 아름답고 우아하면서 언제 어디서고 어렴풋한 위로의 말을 전할 수 있기 바랍니다.

내 시는 언제나 그런 자리에, 그런 구석에서 있어 주기를 바라는 거지요.'

-마종기 시인과 루씨드 폴의 서간집 <아주 사적인 만남>이라는 책의 구절 중에서


그런 시인의 시가 좋다.

어렴풋한 위로를 넘어선 따뜻한 등 토닥임을 그의 시를 통해 받는다.


<우화의 강>,  <바람의 말>, <북해>, <이 세상의 긴 강> 좋아하는 그의 시들이 많지만

비 오는 어느 날 창밖을 보며

좋은 인연을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을 때면

나의 오랜 소중한 인연에게  이 시를 전하고 싶어 진다.



비 오는 날


구름이 구름을 만나면

큰 소리를 내듯이

아, 하고 나도 모르게 소리치면서

그렇게 만나고 싶다, 당신을.


구름이 구름을 갑자기 만날 때

환한 불을 일시에 켜듯이

나도 당신을 만나서

잃어버린 내 길을 찾고 싶다.


비가 부르는 노래의 높고 낮음을

나는 같이 따라 부를 수가 없지만

비는 비끼리 만나야 서로 젖는다고

당신은 눈부시게 내게 알려준다.







그 방송을 듣고 난  바로 다음 날 그 책을 주문했다.


그리고 시들을 읽으면서

왜 그 시인이 눈물을 흘렸는지.. 나도 눈물이 흐를 것만 같았다.

의사로서의 냉철한 시간을 살았으며, 그 속에서 꾸준히 시를 쓰셨다.

그렇게 시인으로 60년.

이제는  삶의 후반부를 향하여 가는 여든이 넘는 나이에서 바라보는 고국, 고국에 대한 그리움, 귀향을 향한 꿈과 좌절,  먼저 떠난 이들에 대한 그리움과 그 속에서 바라보는 자신, 그리고 삶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그의 신앙과 사랑들이 마음에 깊이 와 닿는다.



약속한 술집을 찾아가던 늦은 저녁,

신설동 개천을 끼고도 얼마나 어둡던지

가로등 하나 없어 동행은 무섭다는데

내게는 왜 정겹고 편하기만 하던지.

                     - < 신설동 밤길>의 부분



바지락에 겉절이나 펄펄 끓는 감자탕이

의사인 내게는 어울리지 않는다지만

당신은 모른다. 벼랑 끝에서 참아낸

수많은 헛발질의 억울하고 매운 맛,

함께 굴러다니고 싶어 찾아 헤매던 맛,

얼큰하고 깊고 맵싸한 곳만 찾아다니는

나도 언제 한 번쯤은 모여 살 수 있을까.

아무래도 그런 건 다음 세상의 일일까.

                  -  <바지락이나 감자탕이나>의 부분


숨은 쉬고 살았던가 절망하던 탄식의 날들,

시간 조금 나면 텅 빈 병원 옥상에 올라가

입고 있던 가운을 조금씩 조금씩 찢고 또 찢었지.

눈물이 배 속부터 터져 나오는 경험도 하면서

그해에 내가 찢은 가운은 몇 개쯤 되었을까

돈이 없어 귀국은 입속에서만 이루어지고

죽음이 눈 부릅뜬 불면 속을 헤매던

어느 날 저녁이었지, 옥상에서 우연히 본

산 뒤의 먼 곳, 소리 없는 노을, 그 꽃!


서울서 본 노을이 퍼지면서 약속해주었지

아버지, 어머니가 그 노을 안에 살아 계셨다.

그날 이후, 나는 다시 살기로 결심했다.

내 나라도 보이던 따뜻하고 편한 그 색깔,

아직도 어디에서 편히 살고 있겠지.

노을의 집 주소는 고국의 어디쯤일까?

                   - <노을의 주소> 부분






동화 작가인 마해송 님의 아드님인 작가도 <빨강머리 앤> 동화를 좋아했었나 보다.

앤의 자취를 따라 가보고 싶었던 곳, 프린스 에드워드 섬의 샤롯 타운에 있는 앤의 집을 찾아간 여정에서 만난  고속도로변 작은 목조 단층 '제주 식당'이라는 간판을 보며 전쟁으로 폐허가 된 중학생 시절 초라한 어린 날의 모습을 떠올린다. 그리고 관광객들이 줄지어 온다는 그 동네를 떠나면서 그곳에 가보지 못한 것을 후회하며 그는 이렇게 썼다.


초라한 내 어린 날이여,

누가 이곳까지 와서 살게 될 줄 알았을까.

제주도를 떠나 캐나다의 변경에까지 온

방랑벽이여, 혹은 부끄러운 가난이여,

제주식당에서 얼큰한 김치찌개로 식사를 마치고

한국말을 나누면서 주인과 악수라도 했다면

혹시 내가 먼저 소주 한 병을 더 찾았겠지.


내가 사랑했던 앤은 올해로 백열 살이 되었지만

명랑하고 생기발랄한 제주식당에서는

김치 냄새가 빨강머리를 더듬어 안았겠지, 아니,

앤이 먼저 두부조림을 먹으며 미소했을까?

백 살 넘은 앤은 다시 내 애인이 될 것이고

고향은 이 생이 끝나고 나서

나중에 천천히 찾아가면 되는 곳,

아주 멀어서 보이지는 않지만 따뜻한,

그곳은 가도 가도 기다려주겠지.

                    - <빨강머리 앤> 부분





어린 시절,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한 채

멀리 있어 고국에 자주 올 수 없는 많은 이들을 생각해 본다.

더욱이 멀리 타국에서 생의 후반부를 맞이하는 분들을 생각해 본다.

그리고 굳이 내 나라에 사는 비교적 젊은 노년의 나를 생각해 본다.


노년의 그가 건네는, 삶을 바라보는 그의 글들이 깊은 울림을 가져다준다.



 




표현에 서툰 나는

누군가를 미치도록 좋아하는 팬심을 조금은 어리둥절해 마지않던 때가 있었다.

저렇게나 좋아한다고?


하지만 지금

내가 좋아하는 꽃과 시인이 좋아하는 꽃이 같아서 기쁘고( 은방울 꽃)

내가 좋아하는 동화가 시인의 아버지가 쓰신 것이라  좋고( 바위 나리와 아기별)

그가 좋아했던 책이, 책 속 그 인물이 나와 같아서 행복감을 느끼는 (인간의 대지, 기요메)


그런 팬심을 이 나이에 가지게 되어  참 좋다.

나는 마종기 시인의 시를 참 좋아한다.


" 시는 내게 사랑이었고 희망이었고 하느님이었고 무조건적인 이해심이자 베풂이었다"


시인이 되신 지 60년.

코로나 때문에 새 60주년 출판 기념이 미루어지고 있다는데

맘껏 시인이 고국의 땅을 밟으실 수 있는 날이 어서 오기를..  





시집 '천사의 탄식' 중에서


바다들의 이별


해안을 떠나는 바다는

이별이 아쉬워, 늦은 밤까지

소리 죽여 울고 또 울지만

몇 해쯤 후에 다 자라면

밀물이 되어 돌아오게 되는 것은

아직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구나.


그래서 슬피 우는 바다여,

우리는 어차피 어디로 가는지

한 순간의 방향도 모르고 산다.

내가 당신을 만나리라는

기대도 여정도, 단지

다짐하며 믿고 있을 뿐이다.


돌아오려고 해안을 긁어대다

피 흘리며 떠나는 바다여,

우리들의 행색이 다 그렇거니

기진한 바다의 젖은 눈이

지나간 날의 나신을 보고 있다.

허물어진 몸을 세우고

돌아올 바다 앞에 선다.




Main Photo : by Jeremy Bishop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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