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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샛별 Dec 12. 2020

 숲에서 얻는 위로

산책의 숲-봄. 여름. 가을. 겨울(이순우 글 그림)을 읽고



책 표지 그림을 보고 책을 골랐다.


산책이 주는 위로를 이야기 한 어느 서양 작가의 책 표지에  실물과 함께 예쁜 세밀화가 그려져 있었다.  그 표지가 책을 읽고 싶은 생각이 들게 했다. 예전 같으면 한번 서점에 나가 책을 펼쳐보고 샀을 테지만, 망설이다 인터넷으로 구입한 책은 생각보다 더디게 읽힌다. 그 이유가 낯선 동물, 식물, 지명 이런 것들에서 오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잠시 책을 덮고 쉬어간다.

우리 산이 가진 푸근함을 마치 처음인 것처럼 느꼈던 시간이 있었다. 늦여름이 지나 막 초가을에 접어든 남반구 여행에서 돌아와 만난  4월 초 우리 산은 막 새로 돋아나는 연둣빛 새순들로 부드럽게 채색되고 있는 중이었다. 그때 얼마나 우리 산이 따뜻하고 포근한 지를 마치 처음 만난 것처럼 느꼈었다. 울창하지만 숲의 내음조차 달리 느껴지던 그곳의 생경함이 그 책을 읽는 내내 느껴지곤 했다.

불현듯 친근한 우리 숲의 이야기로 위로를 얻었던 책이 생각났다. 아끼는 책을 모아둔 책장의 한편에서 그 책을 다시 펼쳐 들었다.

아쉽게도 이제는 절판이 되어 헌 책으로만 구입할 수 있는 책이다.




'산책의 숲' 봄. 여름. 가을. 겨울


따뜻한 글이다!

진정으로 숲을 사랑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많은 시간 펴보지 않으면 나타낼 수 없는 세밀한 관찰로 그린 그림이 글과 함께 있다.  바쁜 일상에서도 숲의 사계를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본 그의 이야기는 식물학자나 사진가들에 의해 만들어진 식물이나 숲에 관한 책들보다  따뜻하고 신선하다. 아마도 우리들과 같은 일반인의 시선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그의 관심 속 풀과 나무들은 우리가 주변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것들이.

또한 그가 책을 쓴 배경은 멀고 높은 산이 아니다. 우리 가까이에 있는 산이다. 우리들의 삶과 아주 가까워서 우리가 산책할만한 산을 배경으로 일상 속에서 늘 함께한 그의 날들은, 그 속에서  진정으로 삶을 소중하게 가꾸는 사람의 모습을 느끼게 다. 20년 가까이 청계산, 관악산 가까이  살면서 이들 숲을 자주 찾았다는 작가는 그 산들과 인접한 구룡산 근처 국제협력단 연수원에 근무하게 된 2년여 , 구룡산을 오르내리며 그 속에서 만난 우리 들꽃과 나무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그림으로 그리고, 산책길에서 느낀 사색의 시간들을  글로 남겼다.

그는 꽃과 나무, 숲이 아름답고 푸르른  시기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숲의 사계를 바라본다. 가을과 겨울을 만나며 마주하는 숲의 모습들까지  맑은 눈으로 바라보며 자연을 이야기하고 있다.


저자가 이년 이상을  오가며 만난 들꽃, 나무들은 어쩌면 그의 발길을 기억하지 않았 


꼼꼼하게 그린 그의 그림은 사진 볼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마치 좋아하는 책을 그냥 읽을 때는 무심코 넘겨버렸던 마음에 닿는  멋진 글귀들이, 필사하는 순간에  발견될 때 느껴지던.. 그런 느낌이다. 꽃과 나무들을 유심히 본다고 생각해왔던 내가 놓치고 만 꽃과 나무의 어느 순간의 모습들그의 그림 속에 담겨있곤 했다.




드물게 어떤 원고를 대할 때 원고를 검토하는 편집자의 입장을 잊어버리는 순간이 있다. 이것저것 따지고 들어간 어느 전시회에서 불현듯 숨을 멈추고 서 있었던 어느 그림 앞에서 처럼, 편집자로서의 나를 망각시킨 채 독자로 탈바꿈시키는 원고. 그런 경험을 나에게 선사한 원고가 바로 이 책이다.
- '편집자 노트' 중에서


나무와 야생화에 관심이 많고, 야생화와 나무 그리고 생태 관련 책을 좋아하는 편인 나 역시 편집자의 마음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자주 보지 못해서 놓치고 알지 못했던 식물들의 모습책을 통해 바라보게 되면서 작가가 얼마나 자주 그들을 사랑스러운 눈으로 깊이 바라보았는지를 알게 된다.




그의 책 '머리'에서.

누군가가 비껴선 자리에 또 다른 누군가가 자리하고 그 이웃엔 또 다른 것들이 터를 잡아  치열한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숲과 들녘은 항상 모자람이 없는 풍요의 느낌을 준다. 그리고 우리 인간을 포함한 다른 모든 것들이 깃들 수 있도록 자신을 열어놓고 품에 모두를 너그럽게 감싸 안는다. 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들이 그들의 푸르름과 그늘, 그들이 주는 자양분으로 또 다른 삶을 영위해 나간다.
정작 그들의 모습이 더 숙연해 보이는 것은 나무들이 잎새를 지우고 풀들이 잎을 거두어 빈 숲과 마른 풀대를 만들고 있을 때이다. 그들은 스러졌지만, 속에 또 다른 생명의 신비와 소생의 경이를 잉태하고 있다. 그들은 죽은 것이 아니라 움트는 새 생명의 숨결을 깊은 뿌리와 작은 씨앗에 숨겨놓고 때를 기다리며 인내하고 있다. 대자연의 조화와 섭리에 순응하는 물러남과 기다림의 지혜를 가지고 있다.
- 글머리 '나무숲 풀꽃 들녘'중에서


한때 아름다울 때의 꽃의 모습뿐이 아니라 가을날 꽃이 지고 난 뒤의 마른풀의 모습도, 벌거벗은 나무들의 모습도, 떨어지지 못한 채 남은 열매들도, 봄을 기다리며 인내하는 나무들의 겨울눈도, 한겨울의 눈꽃과 서리꽃이 핀 숲도 그의 눈을 통하여 다시 살아난다.

겨울 숲에 서면 더 넉넉함이 느껴진다는 법정 스님의 말씀을 읽고 스님도 나와 같은 느낌을 가지셨구나 행복하던 기억을 다시 떠올리며, 작가의 눈을 통해 본 겨울 숲 속으로 함께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때로는 나무며 꽃의 이름에 얽힌 이야기를 읽는 즐거움도 있.

우리나라 특산종인 개나리, 소나무와 구상나무에 관한 이야기, 우리 고유의 이름이 기억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표현한 라일락과 수수꽃다리, 플라타너스와 양버즘나무의 이야기가 그 예다.

계곡의 백합 ( Lily of the valley), 성모 마리아의 눈물(Larmes de ste. Marie), 천국의 사다리(Ladder-to-the heaven)라는 여러 이름을 가진 은방울꽃이 피려면 5년여를 기다려야 하고 또 예쁜 열매를 맺는다는 것도 배워본다. 꽃이 필 때가 오면 좋아하는 은방울꽃 만나러 매년 같은 곳을 둘러본 적은 있었지만 꽃이 진 후의  모습을 관심 있게 보지 않았다. 나는 저자만큼 그 식물을 사랑하지 않았던가 보다. 그 열매를 직접 보지는 못했었지만 이제 저자의 눈으로 꽃이 지고 난 후의 모습보게 되었다. 다시 만날 기회가 있다면 더욱 세심하게  그 꽃을 관찰할 것 같다.

또한 글을 읽으며 좋아하던 그 은방울꽃의 향기가 얼마나 그윽하고 좋았던지 땅에 드려 그 내음을 맡던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 났다.



계절별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꽃과 나무들의 모습, 관련된 이야기, 생각나는 하나까지 

숲에서 느끼는, 작가가 숲을 바라보는 눈은 참 깊다. 그의 깊은 눈은  사진과는 다른 섬세함을 지닌 채 때로는 꽃으로, 때로는 시든 대궁의 모습으로, 단풍이나 열매, 겨울눈의 모습으로 잘 그려져서 보는 눈을 즐겁게 한다. 

우리 주변에 늘 있는 꽃과 나무들의 사계가 더욱 가깝게 다가선다.



이 땅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만나게 되는 나무와 풀들의 친숙한 기운을 마치 내가 그 속을 거니는 것처럼 느끼는 기쁨. 밤꽃 향기가 지면을 빠져나와 콧전에 닫는 것 같은 실감. 도시의 길이나. 동네 뒷산, 혹은 그보다 깊숙한 오솔길을 거닐면서 나무들의 속삭임을 늘 접하고 있지만 그 이름이나 아우라가 알 수 없는 의문으로만 남아있는 경험이 있었던 분들이라면 이 말이 무슨 말인지 공감하리라.
-'편집자 노트' 중에서


식물학자가 아닌 아마추어의 눈길로 그린 따뜻한 글과 그림은 나 또한 가까이 우리 곁에 있는 숲을 산책하며 그려보고 싶은 마음을 갖게 한다. 그러다 보면  나 역시 숲은 더 친근해지고 꽃과 나무를 다시 바라보게 하는 기쁨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숲에서 얻는 넉넉한 위로.

책을 다시 읽으니

그와 같이 따뜻한 눈길로 숲을 바라보며

겨울 숲의 여유로움을 느끼고 싶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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