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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샛별 Feb 08. 2021

 ‘퍼스널 지오그래픽’- 한 장의 인생 지도

내가 만난 시인 조병준 그리고 그의 새 책을 마주하며






많은 이들과 함께하는 일터에서 내가 섬처럼 느껴지던 때가 있었다.

함께 웃고, 일을 하고, 커피를 마시고 , 밥을 먹고... 그런 가운데서도 늘 헛헛함이 명치끝을 누르고 있는 듯 느껴지던 시간들이.

아마도 제2의 사춘기라는 갱년기 시작의 전조증상쯤이었다고 생각해 두자.

어느 날부터인가 점심시간이 되면 밥을 굶고 혼자서 책방 순례를 시작했다.

그냥 일상의 이야기 말고, 일 이야기 말고...


 무엇인가가 절실하게 가슴속에 다가오고 있었다.




그렇게 일상의 탈출을 꿈꾸며 여행기 코너를 돌다 조병준 시인, 그의 책을 만났다.

사랑을 만나러 길을 나서다-서른 청춘들에게 보내는 여행 편지


책 속표지에 있는 몇 그루 나무와 하늘, 외로운 풍경이 찍힌 사진과 함께 아래 쓰인 글이 마음에 와 닿았다. 

사람들을 만나러,
또 다른 나를 만나러,
그리고 생이 내게 준비해 둔 무수한 가능성을 만나러.

그리고 이어진 가수 김 창완 님이 쓴 추천글

사람을 만나는 일은 거울을 닦는 일과 같다. 맑게 닦을수록 나의 티와 허물이 잘 보인다. 조병준과 대화를 하면 어느새 거울 앞에 선 느낌이 든다. 거울 앞에서는 나를 보는 나의 모습밖에는 볼 수가 없다. 조병준 앞에서도 자꾸 나의 모습을 보게 된다. 나의 이런 느낌만으로는 부족했던 것일까. 이제는 조병준이 세상을 향해 거울을 들이민다. 자신의 길 위에서 이루어졌던 ‘만남’을 이야기하며 사람을 되돌아보게 하고 나를 되돌아보게 하는 내 안의 거울을. 때로는 헝클어진 모습으로 때로는 행복에 겨운 모습으로 그가 슬그머니 내미는 거울 속의 나와 마주하며 마음 한 구석이 따뜻해져 옴을 느낀다.


그렇게 그를 만났다.

그의 여행기는 내게 사람과 만나는 여행을 꿈꾸게 했고 자유롭게 세상을 향해 떠나는 여행을 꿈꾸게 했다.

국경도 성별도 나이도 초월하여 그 만이 지닌 특유의 그 무엇인가로 만나는 인연들과의 기억을 정직하게 풀어내는 그만의 이야기가 오래오래 마음에 남았다.

싶어 한다. 싶어 한다. 소망이 많을 때란 결국 삶이 시원찮을 때다.

소망이 많던 시간들, 그의 글 속 한 구절이  답답한 마음을 쓸어 주었고, 그의 가슴 따뜻해지는 이야기를 통해  많은 위로를 만났다.


어느 때부터인가 그의 책을 만나지 못했다.

꽤 긴 시간이 지나 2016년 7월 초 그의 새책 ‘기쁨의 정원’이 나왔을 때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얼마나 반가웠던지.

"인생의 온갖 딴지 걸이들, 그 많았던 아픔들, 슬픔들, 분노들,
어쩌면 작은 죽음이라고 불러도 좋을 그 병이 여전히
나를 주눅 들게 만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내 인생, 꽤 친절한 인생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내가 받은 숱한 선물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셀 수도 없이 많은 기쁨의 정원을 보았고,
콘크리트 옥상일망정 내 몫의 기쁨의 정원도 만들어 보았다.
그 기쁨들을 재료로 이렇게 책도 한 권 쓸 수 있었다.
이렇게 살아있어서 고맙다 그 힘들었던 시간들에
꽃들이, 풀들이, 나무들이, 그리고 사람들이
나를 위로하고 지탱해줘서. "
-'기쁨의 정원 ' 프롤로그 중에서

2016년 '기쁨의 정원'  글들 속에 녹아있는 잔잔한 일상의 찬미를 충분히 받아들이기에는 그 시절 나에게 그만큼의 여유가 없었던 모양이다. 우울했던 일상처럼 책을 덮었었다.

그러나 2020년, 코로나로 갇힌 일상 속에서 다시 잡은 책은  다세대 주택 옥상에 있는 콘크리트 위에 꽃밭을 가꾸며 어둠의 긴 시간을 지키며 쓴 그의 글들이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다시금 느끼게 해 주었다. 그 어두운 시간을 살아내면서도 아이와 같은 마음을 잃지 않고 우리 주변의 작은 것에도 눈 돌려 기쁨을 노래할 수 있는 그의 힘이 나의 닫힌 마음을 열게 해 주었다.


“쑥갓꽃을 본 적이 있는가? 쑥갓꽃의 아름다움을 모르는 당신, 아직 갈길이 멀다.”

작가는 글 속에 이렇게 썼다.

많은 이들이 쑥갓꽃을 알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자주 먹는 채소, 그러나 낮은 곳을 바라보지 않는다면 아무나 보지 못하는 그 소박하고 어여쁜 꽃.

그의 글이 쑥갓꽃을 닮았다.






이제 2021년 1월 말 그의 새책 ‘퍼스널 지오그래픽’이 나왔다.




꽤 오래전에 여기저기 발표되기는 했지만 책으로 엮어지지는 않았던 다양한 범주의 글들을 다시 묶어서.

그의 말 따나 오지 않을 것 같았던 환갑의 나이가 되어 오래전 세상을 향해 던졌던 수많은 질문의 들을 다시 엮었다. 그리고 각각의 그 시절의 글들 뒤에  현재의 작가가 그때를 바라다보며 자신의 인생을 다시 한번 돌아보는 글들을 담았다.


비슷한 세대를 살아서였을까?

아니면 자발적으로 안정된 생활보다는 프리랜서에 가까운 삶을 살았기 때문일까?

내게 얽힌 질긴 의무의 끈들이 하나씩 소리 없이 풀어져 가기 시작하고 이제 날고 싶다고 어깨 펴며 돌아보는 시간, 그의 글 속으로 나도 함께 걸어 들어간다. 시인과는 다른 삶이었을 지라도 함께 꿈꾸었던 그 길은 곧 나의 길이 되어 있다.

그의 인생 지도에 함께 점을 찍어 본다.


<시처럼 살기>- 책 속에서

그의 대학시절 스승님이 그와 선생님과의 대화 

-시처럼 살렴.
- 아유 선생님. 시처럼 어떻게 살아요!
- 시처럼 사는 게 어때서?
- 너무 힘들잖아요...
- 시처럼 사는 게 왜 꼭 힘들다고만 생각하니? 시가 꼭 고통스러워야만 하는 거니? 시가 별거니? 행복해서 웃는 것도 시고, 돈 벌려고 땀 흘려 일하는 것도 다 시야. 아름다운 것들을 아름답게 느끼고 살면 그게 다 시처럼 사는 거야...

시처럼 살고 싶었던 그는 늦은 단을 한 시인이 되었고 마흔일곱이 되어서야 첫 시집을 내었단다. 시를 썼던 젊은 날이 그나마 글을 써서 살 수 있는 지금의 를 만드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고.

어느 대안학교 고등학교 과정 학생들과의 만남에서  “ 시인의 연봉이 얼마나 되나요?” 어느 학생의 질문에 대하여 그는 최선을 다해 왜 시를 쓰는지, 그렇게 쓴 시가 왜 세상에 필요한지를 최선을 다해 이야기했단다.   함 민복 시인의 ‘긍정적인 밥’ 시를  들려주며.(2004년 발표한 글: 긍정적인 밥-세상엔 두 종류의 밥이 있다)

시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덥혀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 ‘긍정적인 밥’  중에서 일부분

그의 이야기는 어린 가슴들 속에 시를 쓰고 싶은 마음을 열게 했고, 이후 학생들은 모임을 만들어 시를 쓰고 벌써 정식 ISBN 번호까지 담긴 네 번째 시집까지 만들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무엇보다 그의 글이 마음을 울리는 점은 길 위의 사람들과의 정 깊은 만남, 자유로움, 낮은 곳에 있는 사람이나 동물에 대한 그의 따뜻한 눈길에서다. 법정 스님 책을 필사하다가 나는  내가 그의 글을 좋아했던가 그 이유를 깨달았다. 그의 글은 곧 사람들 속에서 함께 하기 때문일 거라고.

우리는 어려서부터 얼마나 많은 좋은 말을 들어왔는가. 지금까지 들은 좋은 말만 가지고도 누구나 성인이 되고 남을 것이다.

말이란 그렇게 살기 위한 하나의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의 삶에 이어지지 않으면 말이란 공허하다. 자기 체험이 없는 말이 울림이 없듯이 그 어떤 가르침도 삶으로 구체화되지 않으면 무의미하다.
- '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중에서, 법정스님

그는 말한다.

'지금까지 쓴 모든 글은 이를테면 다 내가 몸으로, 마음으로 걸어온 길의 기록이다. 모험 또는 탐험이라 부르기엔 쑥스럽지만. 어쨌든 내 정신이 헤매고 다녔던 내 나름의 오지 체험 기록이다. 부끄러운 흑역사의 순간도 많지만. 그래도 대견한 구석도 아주 지는 않은 어느 아주 개인적인 지리학 수업의 기록...'이라고..


주변의 은 이들에게, 독자들에게도  빚을 졌다고 하는 그의 글을 읽으며  나의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니 독자인 나로서는 오히려 그가 고맙기만 하다.


그가 우리에게 준 것은 따뜻한 온기다. 사랑을 전하는 사람의 온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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