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 회복 이야기

한 걸음 멈춰 선 자리

by 박나윤

구순이신 외할머니가 혼자 지내고 싶다고 하셨다.
외삼촌은 300만 원의 보증금에 월세 50만 원쯤 되는 방을 얻어,
우리 집 근처로 모시라 하셨다.

교대근무를 하는 큰딸인 엄마는
거의 5년 가까이 할머니를 모시고 지내셨다.
하지만 최근 어느 새벽,
할머니는 엄마를 깨우며 돈을 훔쳐갔다고,
도둑년이라고 하셨다.
그 말을 들은 엄마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내가 모셔야지.”
엄마는 그렇게 말씀하셨다.

자식이 넷이나 계시지만,
엄마 외에는 누구도
고집 센 할머니를 모시려 하지 않았다.
할머니의 완고함을 탓하면서도,
그 고집 속에 깃든 외로움을
누구 하나 깊이 들여다보지 못했다.

방을 알아본다는 외삼촌에게 나는 말했다.
“혼자 사시면 고독사 같은 일도 생길 수 있어요.”
잠시 침묵하던 외삼촌은
“네 말이 맞다. 미안하고, 수고 많다.”며 짧게 답하셨다.
그 말이 오래 남았다.
그러나 더 오래 남은 것은,
아무도 곁에 두지 않으려는 할머니에대한 애처러움이었다.

할머니의 세상은 이미 아주 작아져 있었다.
그 작은 세상 안에서
스스로를 지키려는 의지가 남아 있었다.
누구의 손도 빌리지 않고,
자신의 생을 자신답게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
그 속엔 고집스러운 결심이 있으셨다.

문득 생각한다.
우리의 삶은 100미터 달리기가 아니다.
눈앞의 결승선을 향해 숨 가쁘게 달려가는 짧은 경주가 아니라,
끝이 보이지 않는 긴 여정이다.

그래서 우리는 때로 잠시 멈춤,
즉 브레이크 타임이 필요하다.

멈춘다는 것은 포기가 아니다.
다시 나아가기 위해 숨을 고르고,
지친 마음을 다독이는 과정이다.
길을 걷다 보면
잠시 멈춰 서서 바람의 결을 느끼고,
지나온 발자국을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어쩌면 할머니의 고집도
그런 멈춤의 한 형태일지 모른다.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은 채
자신의 생을 스스로 감당하려는 조용한 의지.

잠깐의 멈춤은 결코 낭비가 아니다.
그것은 다시 걷기 위한 준비이며,
삶이 우리에게 허락한 가장 인간적인 쉼표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그 쉼표 앞에서 숨을 고르고,
다시 한 걸음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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