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지 않아도, 괜찮아
외할머니 이야기를 들어 드렸다.
그 목소리에는 오래 묵은 서운함이 스며 있었다.
화가 아니라, 마음속 깊은 곳에서 삭지 않은 상처의 말투였다.
“엄마가 내 마음을 잘 대변하게 너가 말 좀 해줌 좋겠어"
할머니의 그 말에 나는 잠시 숨을 고르다가,
조심스레 대답했다.
“할머니께서 하셔야죠. 저도 엄마랑 잘 안 되요.”
내 말은 조금 냉정하게 들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할 수 없는 일을 억지로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다시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할머니, 화를 오래 품고 계시면 그게 결국 할머니께 독이 돼요.
용서는 상대를 위한 게 아니라,
할머니 자신을 위한 거예요.”
할머니는 잠시 말이 없으셨다.
그리고 이윽고, 작고 단단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그래도… 아직은 용서하고 싶지 않아.”
그 말 앞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괜찮지 않은 마음을 괜찮은 척 덮고 사는 일이
얼마나 버거운 일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핏대를 세우며 말씀하시는 그 모습조차
오죽하면 그럴까 싶었다.
그 화 속에는 미움보다 슬픔이,
서운함보다 외로움이 더 짙게 배어 있었다.
진정한 용서는,
억지로 미소 지으며 덮는 일이 아니라
충분히 미워하고, 다 미워진 뒤에야 비로소 다가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용서하지 못한 삶 또한 어쩌랴
그 마음 그대로 살아내는 것도
한 사람의 진심이니까.
오늘 내가 할머니께 한 말들은,
결국 말일 뿐이었다.
돌아보면,
내가 오늘 잘한 일은
오직 하나
할머니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드린 일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