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 회복 이야기

따뜻한 위로

by 박나윤

노력해도 안 될때,사람은 참 무기력해진다.

나는 살아오며 그 무기력의 순간들을 여러 번 마주해야 했다.

갓 스무 살을 넘긴 해, 운전면허 도로주행시험을 앞두고 있었다. 아빠 친구분이 새벽 연습을 도와주겠다며 나를 태우고 간 길의 끝, 그의 사무실이었다. 그곳에서 그는 나를 성폭행하려 했다. 다행히 내 지혜는 그 상황에서 빠져나올 길을 찾아냈고, 불행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의 싸늘한 공포는 오래도록 내 안에 잠식해 있었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는 부모로서, 혹은 한 사람의 어른으로서 그 어떤 말도,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저 술잔을 기울일 뿐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세상은 결코 안전한 곳이 아니’라는 사실과, ‘부모조차 나를 온전히 지켜줄 수 없다’는 아프고 냉정한 진실을 배웠다.


시간이 흘러 아이를 낳고, 산후우울증이라는 깊은 늪에 빠졌다. 워커홀릭인 남편의 빈자리는 나를 더욱 외롭게 만들었다. 하루 종일 두 아이와 씨름하며 잠들지 못하는 밤이 이어졌고, 마음속 어둠은 걷잡을 수 없이 짙어져 갔다. 어느 날 문득, 나는 16층 창문 밖을 바라보며 모든 것을 끝내고 싶다는 격렬한 충동에 사로잡혔다. 다행히 타워형 건물은 창문과 베란다 문이 조금밖에 열리지 않는 구조였고, 나는 그날도 살아남았다.


그 후로도 친정아버지의 술로인한 고소고발 사건과 폭언, 폭행은 일상처럼 반복되었다. 나는 감당하기 힘든 짐을 짊어져야 했고, 상처투성이인 가족들은 다들 각자의 방식으로 감정에 휘둘렸다. 그들 사이에서 나는 언제나 중재자의 역할을 도맡았다. 누구의 편이 될 수도 없었고, 누구에게도 온전히 기댈 수 없었다. 그 역할 속에서 나는 점점 더 이성적이고 냉철한 사람이 되어갔다.

최근 외할머니와 엄마, 동생 사이의 복잡한 일에서도, 나는 그 누구의 편도 들 수 없었다. 이모와 삼촌 등 외가 식구들의 때론 이기적인 선택들을 묵묵히 들어주고, 내가 할 수 있는 도리를 다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때마다 무기력은 나를 삼키려 들었다.


어릴 때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어른이 되고 나서야 깨달았다.

이제는 내 삶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이 생겼다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깊은 상처는 여전히 잔재해 있고, 지독한 두려움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나는 안다. 무기력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감정이지만, 그 안에 오래 머물 필요는 없다는 것을.

이제 나는 혼자가 아니다.

용기를 내어 소중한 사람들에게 내 마음을 털어놓는 연습을 하고 있다.

“나, 지금 힘들어.”

“도움이 필요해.”

아직은 그 말을 꺼내는 것이 서툴고 낯설지만,

나는 안다.

이것이 바로 회복의 위대한 시작이라는 것을.


나는 늘 밝고 긍정적인 사람으로 살아왔다.

그래서 오랫동안 깊이 숨겨두었던 이 슬픔들이 혹여 누군가를 놀라게 하지는 않을까 걱정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이제는 명확히 안다.

진정한 회복은 철저한 자기 돌봄 위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나 자신을 돌보는 일은 결코 이기심이 아니다. 그것은 나를 다시 숨 쉬게 하고,

살아 있게 만드는 가장 용기 있고 숭고한 선택이다. 오늘, 나는 이 글을 쓰는 행위로 그 용기 있는 선택을 했다.


가슴 시리게 힘들었던 시간들을 견뎌온

나 자신에게,

이제는 따뜻한 위로를 건네고 싶다.

정말이지,

그 모든 것을 버텨내느라 진심으로 애썼다고,

그리고 무엇보다 대견하고 자랑스럽다고.

작가의 이전글성장 회복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