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 회복 이야기

Family history

by 박나윤

할아버지는 만석꾼이었다.
돈이 많아 중국에까지 가서 큰돈을 벌어오셨다고 했다. 들판이며 논이며, 할아버지 소유가 아닌 것이 없었고, 지금도 본가에서는 “밭은 팔지 말라”는 말이 전해 내려온다. 식모 셋에 남자 일꾼 다섯. 할머니는 밥도 안 하고 사셨다고 한다.

방이 열 개가 넘는 집에서

아빠는 열한 형제 중 장남으로 자랐다.

형제가 열한 명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종종 묻곤 했다고 한다.
“어머니가 둘이세요?”
그러면 아빠는 웃으며 대답하셨다.
“아니요, 하나요. 하나.”
그러면 돌아오는 말은 늘 같았다.
“어머니, 정말 대단하시네요.”
그 대단한 분, 친할머니는 단아하고 아담하고 참 예쁘셨다고 한다.
집안의 어른이었지만 늘 집에만 계신 분은 아니었다. 할머니는 산을 좋아하셔서 강원도 태백도 함께 가고, 계룡산과 지리산도 올랐다. 집보다는 절에서 지내는 시간이 더 많았던 분이었다.

아빠는 젊을 때 술을 참 좋아했다. 고등학생 때부터 선생님들께 술을 사드리고, 함께 마셨다. 술집을 그냥 지나친 적이 없었다고 했다. 늘 술이 곁에 있던 사람.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말씀하지만,

지금은 마시고 싶어도 마실 수 없는 몸이 되었다. 그래서 술은 아빠에게 후회이자,

이제는 아득한 추억이 되었다.

할아버지는 쉰아홉에 돌아가셨다.

기생집에 가셨다는 말을 듣고, 아빠는 그 집을 때려 부수며 외쳤다고 한다.
“내 아버지를 손님으로 받으면 죽인다.”
그때 아빠 나이 서른셋. 결혼하고 이삼 년쯤 지난 뒤였다.
그리고 엄마 아빠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인연이라는 것은 참 무섭고도 질긴 것이었다.
엄마는 군 출신이었다.

할아버지가 엄마를 보시고 아빠에게 말씀하셨다.
“저 여자는 바람 안 피우고 살림할 여자다.”
그 말을 듣고 아빠와 엄마는 2년을 만나왔다.
그러던 어느 날, 아빠는 엄마의 연락을 받고 내려갔다. 그날 엄마는 친구를 데리고 나왔다. 이걸로 끝내자는 말씀을 하시며. 고향에는 아빠가 깡패라는 소문이 나 있었고, 엄마는 깡패와는 살 수 없다고 했다. 친구가 곁에 있어 엄마를 때리지 않았던 아빠는 속이 끓어올랐지만, 결국 다시 서울행 기차를 타고 올라갔다.
엄마는 아빠를 잘 알았기에, 일부러 친구를 데리고 나왔던 것이다.

그러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다시 엄마를 만났다. 엄마는 제대 후, 신발장사를 하던 외할머니를 도우며 살고 있었다. 말도 예쁘게 하고 손도 부지런한 엄마를 할머니는 무척 마음에 들어 하셨다.
외할머니는 화끈하고 인정 많은 아빠가 엄마와 잘 어울리는 사람이라며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그 사람한테 가라.”
그 말 한마디에 엄마는 가방 세 개를 들고 아빠를 따라나섰다.
그리고
키가 190쯤 되던 외할아버지는 참 불량하신 분이셨다. 엄마와 동갑인 여자와 살았고, 식당도 하고 신탄진에는 아파트도 있었다.

아빠는 그 집을 때려 부수러 갈 뻔했지만, 결국 참았다. 그러다 어느 날, 젊은 여자와 산다고 욕을 먹던 외할아버지가 깡패들에게 맞고 있을 때, 아빠는 할아버지를 구해준 에피소드가 있으셨다고 한다
그런 외할아버지는 충대 병원에서 쉰아홉에 돌아가셨다. 주사로 인한 쇼크였다고 했다. 의료사고였지만 소송은 하지 않았고, 보상금으로 3억을 받았다.

이 모든 이야기는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가족의 리얼한 이야기다.
거칠고, 뜨겁고, 불완전했던 사람들.
하지만 그 불완전함 속에서도 인연은 이어졌고, 나는 그 인연의 끝자락에 서 있다.

지나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지만,

이야기는 남아 이렇게 나에게 전해졌다.
그렇다면 언젠가,

나의 이야기도 누군가에게 전해지겠지.
어떤 이야기일지, 나도 조금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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