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시간 그리고 나의 이야기 1
오늘은 아빠의 건강 상태에 대한 기록을 써 내려가려 한다.
많은 일들이 두서없이 흩어져 있었고, 그중엔 지워버리고 싶었던 일들도 많았다.
아마 내 기억 속엔 흑역사로 남은 순간들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동안 꺼내기를 주저했지만, 이제는 써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아빠에 대한 글을 쓰는 일은 어쩌면 내 마음을 정리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 무의식을 이해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기회라고 생각한다.
내가 스무 살이 되기 전, 그러니까 2000년이 되기 전이었다.
아빠는 간성혼수에 빠지셔서 중앙병원 중환자실에 누워 계셨다.
의사들은 곧 돌아가셔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중증 간경화라고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빠는 의식을 되찾으셨다.
그 이후의 시간은 기적과 파란이 함께한 시간이었다.
아빠는 술로 인해 많은 사건사고를 일으키셨다.
술을 마시지 않을 땐 세상 다정하고 정 많은 분이셨지만,
술만 드시면 다른 사람이 되었다.
집안의 살림을 부수고, 폭언과 폭행이 이어졌다.
어린 나는 그런 날이면 문을 꼭 잠그고 방 안에 숨거나,
집 밖에서 조용해지기를 기다리며 어둡고 긴 터널을 통과하듯 시간을 보냈다.
세월이 흘러 내가 서른이 넘고, 동생이 결혼한 2012년이 되었다.
그즈음부터 아빠는 알코올중독 치료병원의 폐쇄병동에
1년씩, 혹은 6개월씩 입원하기 시작하셨다.
그 병원에 계실 때만이 유일한 금주의 시간이었고,
퇴원하시면 어김없이 다시 술이 이어졌다.
어느 날은 내가 근무하던 대학병원 응급실까지 찾아오셨다.
“우리 딸이 여기 간호사야!”
술에 취한 아빠는 그렇게 외치며 난동을 부리셨다.
나는 그저 고개를 숙이고, 마음속으로만 울었다.
주변 사람들이 “괜찮냐”라고 물으면,
괜찮지 않으면서도 늘 “괜찮아요”라고 대답했다.
아빠 딸이니 어쩔 수 없다고, 그게 내 몫이라고 믿었다.
2013년, 나는 결혼을 했다.
어느 날 나이트 근무를 앞두고 응급실에 입원한 아빠 곁을
남편이 보호자로 대신 지켜준 적이 있었다.
그날 남편은 “사위 노릇은 못하겠어”라고 말했다.
그 말이 서운했지만
가람 아빤 그런 현실을 겪어본 적 없는 사람이었고,
나는 그저 이해가 되었다.
그 뒤로 아빠의 일은 모두 내가 혼자 감당했다.
아빠는 종종 내 앞에서 울었다.
“죽고 싶다”라고, “이젠 다 끝이다”라고 말씀하시던 그 모습은
어린 시절의 공포보다 더 깊은 슬픔으로 다가왔다.
나는 보호자이자 딸로서,
어떤 방식으로 사랑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2019년까지,
아빠는 병원과 집을 오가며 살아계셨고
나는 그 곁을 지키며 살아냈다.
병원에 계실 때가,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2020년 1월, 아주 편한 병원 알코올중독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아버님 상태가 위중하십니다. 전원을 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
폐렴으로 시작된 염증이 패혈증으로 번지고 있었다.
염증 수치는 이미 20을 넘었고,
나는 준중환자실에서 보호자 자격으로 아빠의 곁을 지켰다.
그때는 코로나가 막 시작되던 시기였다.
면회도, 출입도 쉽지 않았다.
1월 1일 새벽, 병원 창밖으로 떠오르는 첫 해를 바라보며
가족도, 집도 보지 못한 채
나는 아빠의 곁에서 묵묵히 그 해의 시작을 맞았다.
무겁고 고요한 아침이었다.
기적처럼 아빠는 폐 합병증을 이겨내셨고, 결국 퇴원하셨다.
하지만 술은 끊어지지 않았다.
대전의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치료를 시도했지만,
치료 불이행과 의료진과의 마찰로 더 이상 진료가 이어지지 못했다.
그러던 중 2021년, 충남대학교병원 김석현 교수님을 만나게 되었다.
교수님은 아빠를 보자마자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이렇게 계속 술 드시면 죽습니다.
다른 병원에서는 이제 약도 안 주죠?
제가 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드리는 겁니다.”
그 목소리는 단호했고, 아빠는 처음으로 그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아빠를 통제할 수 있는 누군가를 보았다.
그날 이후, 내 마음의 시간도 조금은 멈춰 있던 자리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금 이 기록은 아빠를 탓하기 위한 글이 아니다.
그저 아빠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한 인간의 시간,
그리고 그 옆에서 보호자이자 딸로 살아온 나의 시간을
조용히 되짚어보는 일이다.
그 시절 나는 늘 “괜찮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사실, 괜찮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시간을 견디며 살아낸 나는
이제야 비로소, 나 자신에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괜찮아도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