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그리운 아이

Me

by 바람세탁소


1985년 칠월의 한여름. 미술과 전체가 야외스케치를 떠났다. 청량리역 주변은 늘 학생들의 M.T로 북적이는 곳이다. 낮은 지붕에 허름한 간판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가게 앞에서 왁자지껄 소란한 학생들. 좁은 가게를 쑤시고 들어가 순대를 다투어 먹고 소풍 가는 아이들처럼 우유와 보름달 빵도 가방에 불룩 챙겨 넣는다. 우르르 몰려다니는 학생들의 어깨마다 매달린 원색의 배낭은 설렘과 기대로 한껏 부풀었다. 하얀 끈이 둥글게 매인 뽀얀 운동화를 신은 것만 봐도 신입생들임을 알 수 있다. 군복 색 큰 가방이나 야전점퍼를 걸친 선배들의 우쭐한 걸음걸이. 지하 세계에서 어둠을 긁고 다니는 듯한 사람들의 삐딱하기도 느리기도 한 걸음엔 좀 건방져 보이는 담배 연기가 따라다녔다. 여러 줄의 기차선로마다 한여름의 훅한 열기가 아지랑이로 아른아른 피어올랐다.


약간의 화장조차 쑥스러운 아이가 이 풍경 속에 섞여 있다. 여행오기 며칠 전 미장원 아줌마의 권유로 지루하게 단발 파마를 말았고 쌍꺼풀 없는 눈엔 아이라인을 그렸지만 전혀 티나지 않는다. 게다가 바람만 불면 꼬불거리며 부풀어 오르는 파마머릴 감당치 못해 신경이 곤두서 있다. 예정시간보다 한참 뜸을 들이던 경춘선 기차가 드디어 슬금슬금 출발했다. 속력이 붙자 칠월의 녹음이 차창에 산과 물, 나무들을 차례로 갈아 치우기 시작했다. 아이는 생전 처음인듯한 기차 여행에 설렘이 가시질 않는다. 이따금 과자와 삶은 달걀, 오징어에 맥주 땅콩, 콜라 사이다까지 실은 아저씨의 수레가 객차의 좁은 통로를 유연히 지나다니곤 했다. 기차는 아까부터 호기 어린 남학생들 때문에 문이 열린 체 위험운행 중이다. 그뿐인가! 고지식한 어른들께 꾸지람을 들어가면서도 기타 소리 노랫소리는 여기저기서 뚱땅대고 꺽꺽댔다.


마침내 도착한 숙소에 짐을 풀고 스케치 도구를 챙겨 한 무리씩 이동했다. 따가운 볕이 팔뚝을 쏘아대고 자칫 넘어질 듯 어지러운 강물 앞에서 단체 사진도 찍는다. 그림 같은 산과 물을 향해 진지하게 연필을 긋고 붓질 하는 사람들. 어쩜 아이가 늘 꿈꾸던 건 그림이 아니라 저들처럼 멋있어 보이는 것일 수도 있다. 비릿한 강바람에 주체 못 하는 파마 머릴 매만지는 아이도 그림 그리는 척 스케치북에 연필을 쓱싹거렸다.


큰 방에 원을 그려 앉아 밤늦도록 신입생들의 자기소개와 어설픈 장기자랑이 이어졌다. M.T의 주목적은 아마 술이 아닌가 싶게 저녁 이후론 줄곧 술을 마셔댔다. 소주와 막걸리로 시험을 치르던 신입생들마저 마냥 취해버린다. 술사랑 연애 자랑을 늘어놓는 예비역들의 술주정을 피해 다녀야만 했다. 별이 쏟아지는 마당에선 모닥불이 활활 타올랐다. 모닥불을 배경으로 기타를 탕탕 울리며 노래하는 선배, 일찌감치 어른 흉내를 내느라 담배를 피워물던 친구들, 어린 티를 못 벗은 우리 모두 그림은 몇 장 그리지도 못했다.

짧은 엠티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는 기차에선 친해진 무리가 나뉘어져 생기가 돌았다. 기차 안은 여전히 뜨겁게 달아올랐지만 서울로 다가갈수록 정차역마다 일시정지한 풍경이 내내 아쉬웠다. 칠월의 뜨거운 철로가 노곤해지자 이내 친구들은 서로의 어깨와 무릎을 빌려 잠들기도 했다.


아이는 참 오랜 세월 순간순간 연필 가루가 묻은 손에 미련을 갖고 살았다. 어느 만큼은 추억으로 얼마큼은 까맣게 지워버린 듯했다. 아쉬움이 남을 걸 알면서도 빨리 포기하고 양보하고 제한선을 긋고 살았다. 열정이 시키는 걸 용기 없어 멈칫하다 놓쳐버렸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올 즈음 한동안 앓는 감기처럼 머리가 아팠다. 알맞은 처방 없이 숨기기 바빴고 스스로 더 작아졌다.


긴 시간 건너서야 그 아이를 만나러 외출을 시작했고 이제서야 '그림그리는 척' 하며 산다. 더는 두통을 앓지 않으니 더 없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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