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내게 고민을 물으면, 주로 딱히 고민 같은게 없다고 대답하곤 했다.
하지만, 나를 깊숙이 들여다보면 고민이라기보단 해결해야 할 것은 많다. 그리고 고민을 해야할 일로 정의하고 뭐든 스스로 하다보니 책임감 있는 사람으로 비춰지기도 하지만, 이로 인해 주위 사람들에게 자신이 당면한 문제를 공유함으로서 얻는 타인의 관점을 배울 기회를 잃는다. 템플스테이를 통해 생각하게 된 화두 중 하나가 고민의 정의이다.
언어교환 멤버들과 생애 첫 템플스테이를 가게 됐다. 경국사라고 하는 종로구에 있는 조용한 절이었다. 템플스테이에서 좋았던 건 핸드폰, 노트북과 잠시 멀어지며 단절로 얻게 되는 평화였다. 또, 해가 지니 주위 모든 게 깜깜해 졌는데 일상 생활에서는 밤에도 어둡게 지낼 일이 없다보니 깜깜한 밤을 온전히 마주할 수 있는 것도 좋았다. 어떻게 보면, 굳이 절이 아니라도 자연이 주는 당연한 것들인데 템플스테이를 통해 그 당연한 것을 온전히 느낄 수 있게 된 듯 하다.
108개의 나무 구슬을 꿰어 염주를 만들고 소원 2개를 담은 초를 만드는 체험도 했다. 시연이는 절에 와서 '경제적 자유'를 소원으로 적는 모순(?)을 일러줬지만 ㅋㅋㅋㅋ 소원은 소원인 것을 어찌하리!
템플스테이 일정 중, '차담' 시간이 있었다. 차를 마시며 스님과 대화를 하는 시간이다. 차담에서 스님은 불자가 세상을 보는 관점에 대해 최대한 쉽게 풀어 설명해 주셨다.
스님이 자아(진짜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셨는데, 우리가 떠올리는 감정이나 생각들은 모두 잠깐 스쳐지나는 것으로 그런 감정이나 생각을 자신이라고 정의할 수 없으니 그런 것들은 잠깐 스치는 방문객이고 진짜 자신은 비어있는 허공과 같다는 말. 사념(감정, 생각)이 없어지면 온전한 자아(허공의 상태)가 돼, 모든 사물과의 경계가 없어지니, 물아일체(物我一體)가 되어 비어있는 모든 사물(자연)과 싱크가 되니 내가 만물이고 만물이 자신임을 깨닫는 경지가 된다고 한다.
사람이 불행한 이유는 욕심과 잡념 때문인데, 이러한 생각과 감정에서 벗어나 깨달으면 온전한 평화의 상태가 되어 영원한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스님이 말한 수행법은 떠오르는 생각과 다 나 몰라라 하는 방법이다. 수행 중 떠오르는 모든 잡념에 대해 '나 몰라라'를 연발해 모든 잡념의 고리를 끊고 깨끗한 내가 되는 것.
내가 컵에 담긴 투명한 상태의 물이고, 잡념이 그 속에 섞인 흙이라고 가정해 보자. 잡념이 생기면 나라는 물 안에 흙이 마구 섞여 흙탕물이 되어 버린다. 수행(명상 등)을 통해 마음을 가라앉혀 잡념이 내려가면 나는 다시 투명한 물의 상태가 되어 속이 들여다 보이고 가라앉은 잡념이 생기는 근본적인 원인도 들여보다 볼 수 있다.
위와 같은 법문을 들으며, 나도 명상을 시작해 볼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종교를 넘어 나를 객관적인 시점으로 보고 다스리는 시간이 필요해서다. 난 좀 둔한 성격이라, 남들과 같이 고민을 이야기하지 못 한다. 나를 괴롭히는 것에 대한 정리가 되지 않다보니 정말 몰라서 말을 못 한다. 내가 배우고 있는 비즈니스에서 가장 중요한게 문제 정의인데, 정작 내 인생의 문제 정의는 되어있지 않다. 명상을 통해 내 마음 속 흙탕물을 관찰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숙소는 함께 온 owen과 남자 한 분 총 세 명이서 쓰게 됐다. 그러다 보니, 좀 더 가까운 거리에서 owen을 볼 기회가 있었다.
이번 템플스테이는 총 9명이 참여했다. 적은 인원이다보니 오손도손 모여서 밥을 먹게 됐다. 식사 끝나고 별안간 이 친구가 중년 여성 두 분께 자신이 설거지를 하겠다고 말했다. 식사가 끝나면 본인이 먹은 그릇은 본인이 설거지 하는 룰이 있었는데도 말이다. 알고보니, 전날 차담이 끝나고 중년 여성 두 분이 찻잔 설거지를 도맡아 해주셨는데 감사의 의미로 자신이 설거지를 대신 하고 싶다고 선뜻 나선 것이다. 이 모습이 얼마나 보기 좋아 보이던지, 기억에 또렷이 남는다.
친구의 겸손한 모습은 비단 윗어른을 대하는 태도에서만 나오는게 아니다. 스님이 불법을 나눠주실 때도 눈을 땡그랗게 뜨고, 최선을 다해 경청한다. 한국어로 말해주셔 반 정도만 알아듣는 다고 토로하면서도 말이다. 대화를 하거나 배움에 있어 어떤 선입견이나 잣대없이 그대로 받아들이는 모습에서도 겸손을 발견했다. 숙소에 돌아와 들은 내용인 '생각을 비우는 게 행복과 연결된다면, 이를 정말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을까?'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을 보며 '이 친구 정말 있는 그대로 흡수하는구나'라고 다시금 느꼈고, 이 친구가 왜 공부를 잘 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우연찮게도 함께 방을 쓰게 된 남자 분이 태양광 사업개발 팀에서 일하며, 미국을 왔다갔다 하는 분이였다. owen 역시 국제 협력(에너지, ESG 분야)에 관심이 많아 둘 사이에 대화의 물꼬가 트이기 시작했다. 둘의 대화는 유창한 영어로 진행됐기에 살짝의 소외감과 자격지심을 느끼며(?) 들으며 두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1.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역시 언어적 장벽이었다. 보통 내 영어의 동기부여는 거시적 관점으로 훗날 글로벌 사업이나 출장 등을 위해 였는데 그게 아니라, 눈 앞에 친구들과 좀 더 깊게 소통하고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노력하고 싶다는 생각이 솟았다.
2. 다른 하나는, 다른 사람의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세의 중요성이다. 나는 좀 보수적인 편인지, 내 기준에서 의견이 합당하지 않으면 적당히 재단하여 걸러듣는 습관이 있다. 잘못된 의견을 수용하는 것이 의사결정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판단해서다. 하지만, 이는 나의 성장 기회를 뺏는 나쁜 습관임을 근래들어 깨닫는다. 먼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게 아니라, 사람 사람마다의 생각하는 관점을 재밌게 받아들여보자라는 접근법으로 바꿔보자고 다짐해 본다.
이번 여정을 통해, 멤버들과 좋은 추억도 만들고, 스스로 돌아보기도 했다. 좋았다.
이 기회는 관악청년청에서 주관하는 체크메이트 청년 동아리 모임 지원 사업을 통해 만들어졌다. 우리 언어 교환 모임도 지원사업에 선정되어 지원금을 통해 템플스테이에 참여할 수 있었다.
Thank you for all the sup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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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청년청 #청년동아리모임지원사업
2024/12/13-2024/12/15 경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