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가 울리면 항상 가슴이 떨린다 어떤 전화여도 같은 마음이다. 설렘은 아니다. 하루에 100~200통에 전화를 주고받으면서 긴장과 첨예한 대화의 내용들이 오가다 보면 사람 만나는 것도, 대화하는 것도 모두 스트레스다. 콜 포비아가 괜히 생기는 게 아니다. 사람을 만날 때 순수함으로 마음 다해 대하는 것이 노력이 필요하다. 저 사람은 저 말을 나한테 하는 이유가 무언가 바라고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무의식의 반사작용과 싸우는 노력 말이다.
우리는 구현하는 사람이지만, 구현하려는 대상에 대해 익숙하지 않다. 건축주는 수년간, 건축가는 수개월간 그 땅과 자신의 삶에 대하여 고민하였지만, 우리는 2주 안에 수년수개월간의 고민들이 수치화된다. 물량과 단가, 합산금액으로 말이다. 삶의 태도, 물성을 연구하느라 쓴 땀들, 도면에 표현할 수 없는 가치관들을 이해하기 전 급하게 수치화할 뿐이다.
간혹 입찰설명회라는 것이 우리가 참여하는 소규모 건축물의 설계에도 발생하긴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수차례 참여한 입찰설명회는 공간이 갖는 의미와 태도보단 예산과 공기, 공사의 애로사항들을 나열한 내용을 듣거나, 공정간 어떤 보고들과 어떤 태도로 일해줬으면 좋겠다는 얘기만 듣기 일쑤다. 도면이라는 먹잇감으로 강아지를 부르듯 입찰참여하는 것과 입찰설명회를 통해 정중한듯한 태도로 이래저래 가르치며 먹이를 던지는 것과 차이를 모르겠더라. 어쩌면 내가 너무 피상적일 수 있지만, 땅을 얻게 된 이유, 중력을 극복하며 그려낸 구축물을 통해 상상하는 삶, 그 덩어리들로 구현하고자 한 장소와 공간, 건축주와 건축사의 긴장 미묘한 관계를 이해하고 싶은 것은 너무 큰 욕심인 걸까?
10분이면 그 땅에 대한 접근, 공간이 만드는 장소성, 건축주의 예산과 건축물의 부동산으로서의 가치를 말해줄 수 있는데도, 그것을 듣고 입찰에 참여하기란, 아니 2~3달 동안 건설을 하면서도 본인들의 예산이 어찌 쓰이는지만 생각하지 그 태도와 가치에 대해서 듣기란 참 쉽지 않다. 건설사는 건축가를 따라가는 이들인가? 건설사는 건축주의 을로서 항상 모시듯 서비스를 해야 하는가? 난 어떤 존중을 바라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어떤 공간을 만들어냄에 함께 그 의미를 깊이 생각해 보고 더 좋은 아이디어를 구현해 내며 즐겁게 지어갈 수는 없는 것인지 생각해보곤 한다.
건설사 엔지니어가 존중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좋은 건설문화가 만들어지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