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터가 업무에 숫자를 활용하는 방법
내 업무 성과를 설명함에 있어 가장 강력한 언어는 무엇일까.
바로 숫자다.
숫자는 누구에게나 같은 의미를 전달한다는 점에서 영어보다도 더 보편적인 의사소통 수단이다. 성과를 숫자로 전달한다는 건 곧, 내 일의 가치를 가장 객관적이고 효과적으로 설득하는 방법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브랜드나 콘텐츠를 다루며, 직관과 감각을 무기로 일해온 직관형 마케터에게 숫자는 여전히 낯설고 때로는 두려운 언어처럼 느껴진다.
그렇다면 직관형 마케터는 숫자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
첫째, 모든 것을 정량화해야 한다.
숫자는 문제를 정의하는 언어이며 정량화하지 않으면, 해결책 역시 추상적인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다. 특히 정성적인 요소를 정량화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고객이 제품을 비싸게 느낀다”라는 막연한 감각은 객단가라는 단일 수치(=지표)로 표현할 수 있다. 하나의 숫자로는 부족할 때, 관련 있는 여러 지표를 묶어 평균이나 합산으로 새로운 기준을 만드는 척도화 방식도 활용 가능하다. 예컨대 “구매 의지가 낮다”라는 문제는 장바구니 담기율과 구매 완료율을 함께 보아야 더 정확하다. 지수화는 여러 변수를 종합해 더 복합적인 하나의 지표를 설계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고객 충성도가 낮다”라는 인상은 재구매율, 리뷰 평점, 멤버십 이용률까지 합쳐 하나의 ‘충성도 지수’로 만들 수 있다. 이렇게 정성적인 개념을 지표화·척도화·지수화 과정을 거쳐 수치로 관리하면, 모호했던 문제는 한층 명확해지고 해결책도 자연스럽게 구체화된다.
둘째, 숫자를 영리하게 표현해야 한다.
같은 숫자라도 어떻게 전달하느냐에 따라 설득력은 완전히 달라진다. 보고는 단순히 수치를 나열하는 과정이 아니라, 그 숫자를 통해 상대방이 상황을 즉시 이해하고, 성과의 무게를 가늠하며, 흐름을 읽게 만드는 과정이다.
먼저 직관적이어야 한다. 숫자가 아무리 정확해도 직관적으로 와닿지 않으면 힘을 잃는다. 예컨대 “11월 육아 콘텐츠 조회 비중이 65%였다”라는 표현은 사실이지만 다소 추상적이다. 반대로 “11월 조회자 3명 중 2명은 육아 콘텐츠를 봤다”라고 하면 누구나 즉시 그림이 그려진다.
숫자는 비교할 때 힘이 생긴다. 성과를 드러내려면 절대값만 보여주어서는 부족하다. 단순히 “거래액 20억 원을 달성했다”라는 말보다 “작년 동기간 대비 2.6배 성장했다”라는 표현이 훨씬 강력하다. 숫자는 비교와 증분이 붙을 때 설득력이 생긴다.
숫자는 흐름으로 말해야 한다. 숫자는 한 시점만 떼어놓으면 왜 중요한지 설명하기 어렵다. 흐름을 담아야 한다. 예를 들어 “이번 달 재구매율이 20%다”라는 보고보다, “지난 6개월간 재구매율이 14% → 16% → 18% → 20%로 꾸준히 상승했다”라는 보고가 훨씬 힘이 있다. 추세선과 그래프는 단발적 숫자가 설명하지 못하는 맥락을 한눈에 드러내준다.
셋째, 숫자에 담긴 인사이트를 발견해야 한다.
숫자는 단순히 현상을 보여주는 도구가 아니라, 본질을 드러내는 질문이어야 한다. 예를 들어, 내가 인스타그램 같은 SNS 서비스를 담당하는 마케터라고 가정해보자. 처음엔 “유저들이 게시물을 더 자주 올리게 해야 한다”는 단순한 고민에서 출발한다. 단편적으로 보면 활동성이 높은 유저가 팔로워나 조회 성과가 높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숫자를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다. 주 7회 이상 올리는 그룹은 팔로워 증가율은 빠르지만, 뷰어의 반응은 떨어질 수 있다. 반대로 주 2~3회 올리는 그룹은 성장 속도는 느리지만 관계의 질과 장기 잔존율이 더 높을 수 있다. 그렇다면 성장은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설계의 문제라는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 단순히 ‘많이 올리게 하는 것’이 답이 아니라, 초기에 적정 빈도로 꾸준히 활동하며 관계를 형성하게 만드는 온보딩 설계가 곧 장기 리텐션을 좌우한다는 주장과 함께 특정 업로드 빈도(예: 주 2~3회)를 유지하는 유저에게 보상 배지를 부여해 습관을 만들자는 아이디어까지 제시할 수 있다. 이처럼 숫자 분석을 통해 다음 단계를 그려보는 것이 숫자로 일하는 것의 지향점이 되어야 한다.
숫자는 실전에서 체득해야 한다.
개념을 아무리 공부해도, 내 프로젝트 데이터를 직접 다뤄보는 경험만큼 빠른 훈련은 없다. 요즘은 GPT 같은 AI 도구 덕분에 이 과정이 훨씬 쉬워졌다. 통계 지식이 부족해도 “이 지표가 왜 줄었는지 분석해줘”라고 물으면, 상관계수·p-value·ANOVA 같은 결과를 금세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풀어준다. 하지만 도구보다 더 중요한 건 태도다. 내 보고서의 핵심 메시지가 숫자로 드러나 있는가? 그 숫자가 누구나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가? 현상에 머물지 않고 다음 단계를 보여주고 있는가? 이 세 가지 질문에 ‘예’라고 답할 수 있다면, 숫자는 더 이상 낯선 언어가 아니다. 오히려 내 성과를 가장 강력하게 빛내는 언어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