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개월 간 여행한 100개 도시 중 단 3곳이 한국이었다. 인천, 김해 그리고 제주도. 인천은 출발지였고 김해는 우리의 마지막 도착지였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여행 중에 한국에는 딱 한 번 입국했다. 그것도 제주도로. 제주도에서 우리는 관광보다는 재정비를 했다. 방문한 곳은 병원, 롯데마트, 다이소, 은행, 우체국 그리고 때밀러 목욕탕까지. 친구가 우스갯소리로 유학생이 한국 들어와서 가는 유학생 코스랑 똑같다고 했다.
롯데마트에서는 라면, 미역국 큐브, 누룽지 및 간단한 레토르트 반찬 등 비상식량을 한 꾸러미 구매했다. 해외에도 팔긴 하지만 가격이 훨씬 저렴하거나 구하기 어려운 브랜드의 라면 같은 경우를 지능적으로 추려서 짐을 쌌다. 은행은 환전, 우체국은 지금까지 배낭에 사모은 여러 국가의 기념품들을 모조리 집으로 보냈다. 여러 국가를 다니면서 사고 싶은 것들이 많았지만 부피나 무게 때문에 살 수 없는 사실이 굉장히 아쉬웠다. 그래도 욕심이 있어서 두 세번 정도 해외에서 한국으로 소포를 포낸적이 있는데 한 번 보내는데 거의 15만원 정도였다. 특히 미국 하와이 아울렛에서 엄마 사줄 코치가방을 사서 한국으로 보냈는데, 아울렛이라서 저렴하게 샀다고 자부했으나 우편값을 생각했을 때는 전혀 저렴하지 않게 구매한 것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뭐. 마음이 중요한 것이니까.
유튜브할 때 어떤 장비가지고 촬영하는지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다. 라이브보다는 녹화본을 편집하는 콘텐츠를 주로 제작하기 때문에 여러개의 장비를 가지고 다니는 편이다. 그 중에서도 여행다니면서 들고 다녔던 카메라 중에 가장 소중히 다루는 카메라가 있다. 바로 Vixia mini X (빅시아)라는 카메라인데 광각이라 셀프 카메라를 찍을 때 피사체 이외에도 주변을 다 담을 수 있어서 유용하다. 백종원씨가 방송영상에서 많이 들고 다녀서 유명한 카메라인데 수음도 굉장히 잘된다. 물론 요즘 워낙 좋은 액션캠이 많이 나와서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단종된 제품을 어렵게 어렵게 구해온 만큼 더 정이 가는 카메라이다. 원래 가격이 40만원 정도였는데 단종되어버려서 중고가가 80만원 정도로 올랐다. 이렇게 인기가 좋은 카메라를 왜 단종시켰냐는 설들이 많은데, 그 중 하나는 너무 완벽해서 다음 시리즈를 구매하지 않을까봐 단종시켜버렸다는 이야기가 있다. 한국 중고제품보다 더 저렴하게 사기위해 해외 Ebay 사이트로 들어갔다. 독일에서 어떤 사람이 60만원에 중고를 올렸길래 메시지를 보냈었다.
"혹시 살 수 있을까요?"
중고 거래이니만큼 사고 파는 사람 사이에 기존 거래내역이 중요한데, 나는 이 물건을 사기 위해 가입한 것이라 그에게 신뢰를 줄 수 있을 만한 거래내역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거절했다.
"기존에 팔고 산 내역이 없으셔서 당신에게는 못팔 것 같아요"
솔직히 내가 돈을 내고 그가 보내는 것이기 때문에 사기를 당해도 내가 당한다고 생각했는데 거래 내역이 없다고 거절당하니까 기분이 좀 그랬다. 아마 한국이라는 배송지가 부담스러운 건가 싶기도 하고. 그래도 난 그 카메라가 필요했다.
"제가 유튜브를 시작하려고 하는데 그 카메라가 꼭 필요합니다. 팔아주시면 안될까요? 이 주소가 제 유튜브 계정인데 꼭 좀 부탁드릴게요. 저를 찍을 수 있는 카메라가 필요한데 단종되어 버려서요."
내가 구매했을 당시에는 회사를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유튜브를 활발히 할 수는 없는 상태였지만 그는 내 유튜브를 본 후에 본인도 유튜브를 한다면서 팔겠다고 마음을 돌렸다. 그리고 구독하겠다며 잘 쓰면 좋겠다고 응원했다. 사실 저렴하게 구매했다고 좋아했는데, 세관에서 세금을 20만원 부여받아서 결국 한국에서 80만원 주고 사는 것과 동일한 상태가 되긴 했지만 쉽게 구매한 것이 아닌 만큼 더 소중한 카메라였다. 그리고 고백아시아 여행에 있어서도 가장 많이 유용하게 사용한 카메라였다. 그런데 몰디브에서 일이 터졌다. 몰디브의 곱디 고운 모래가 들어갔는지 카메라가 망가진 것이었다. 하아... 9개월은 무리였단 말인가.
고민 끝에 다음 도시인 홍콩에서 캐논 수리센터를 검색하여 찾아갔다. 홍콩에서는 수리하는데 1주일이 걸린다고 했다. 계속 이동하는 나에게 마지막 선택지는 한국에 보내서 수리받고 제주도에서 전달 받는 방법이었다. 홍콩에서 나의 여행메이트였던 빅시아를 한국으로 보냈고, 제주도에 계신 아버지 친구를 통해서 전달받기로 하였다. '제주도'라는 여행지에 왔는데 재정비하느라 바빠서 제주 바다도 못보고 다음 도시로 떠날 뻔했는데, 아버지 친구를 만나서 수리된 빅시아를 전달받다가 고백친구들과 나오면 짧게 나마 제주 여행을 시켜주시겠다고 하셨다. 그래서 냉큼 우리는 저녁 시간을 비워서 아버지 친구를 뵈러갔다. 제주 바다 해안 도로 드라이브도 시켜주셨는데 제주 바다가 이렇게 예뻤는지 처음 알았다. 매번 해외 바다만 아름답다고 생각했는데 너무나 청량하고 깊고 안에가 다 비치는 깨끗한 제주 바다를 보면서 '우리나라도 참 아름다운 곳이 많구나'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리고는 '마니주'라는 횟집을 갔는데, 나도 치우도 인생 최고의 횟집이라는 극찬이 나왔다. 4인 기준 한 테이블에 12만원 이었는데 인당 3만원 정도의 가격에 15개 이상의 스키다시가 나오다니 믿을 수 없는 가성비였다. 전복 살짝 데친 것도 나오고, 생전복도 까주시고, 오동통한 간장게장도 무한리필이었는데 비린맛 하나없이 정말 최고였다. 그 때 그 때 계절에 맞게 신선한 회로 테이블 당 한 마리씩 잡아주시는데, 우리는 구문쟁이를 맛보았다. 이 맛이 그리워 제주도에 또 와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중국 상해에서 먹었던 가정식에 이어 고백아시아 100개 도시 중 TOP2맛집이었달까. 역시 제주도에서 살고 계신 분이 데려가 주셔서 그런지, 검색해서 나오는 관광객 맛집과는 다른 진짜 제주 맛집을 발견한 뿌듯함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