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인간인가』, 인간다움을 잃어도 인간인가?

책이 불러낸 생각과 감정을 따라가는 글

by 순간의 기록자

[메인 이미지 대체 텍스트: 「이것이 인간인가」 –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의 기록을 담은 책 표지. 오른쪽에는 고개를 숙이고 웅크린 인간 형상의 드로잉이 있다. - © 돌베개]






같은 공간, 다른 시선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다룬 두 권의 책이 있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이시형 옮김 / © 청아 출판사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

『이것이 인간인가』/ 프리모 레비 저/ 이현경 옮김 / © 돌베개


두 권 모두 오래전에 읽은 책이라 줄거리도 세세한 문장도 희미했지만, 그때도 지금도 이상하게 내 마음속에 남아 있는 책은 프리모 레비의 책이었다.


책을 읽었을 당시에는 글쓰기는 나와는 무관한 일이었기에 그 물음표는 곧 기억 저편으로 희미하게 사라졌다.

시간이 흘러 그 상관없는 일을 매주하고 있는 나를 보며 잠시 겸연쩍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이제 그 질문에 답을 찾아보기 위해 다시 두 책을 펼쳤다. 그러자 길을 잃었던 물음표들이 응답이라도 하듯 하나의 생각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두 책은 같은 공간을 다루고 있고, 작가 시점 또한 똑같은 1인칭 주인공 시점이었지만, 인간을 풀어낸 시선과 책의 성격이 다르게 다가왔다는 점이 내가 찾아낸 물음표의 이유였다.



생각하게 하는 책 vs 직면하게 하는 책

빅터 프랭클의 문장은 1인칭임에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다. 책에서도 언급되어 있지만, 프랭클의 책은 로고테라피(의미 치료)적 성격을 담은 심리학적 성찰을 품고 있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는 내내 그는 고통 속에서도 의미들을 찾아내어, 독자들로 하여금 성찰을 불러일으키도록 돕는 듯했다. 그래서 나 또한 ‘이 책을 통해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라는 넓은 의미의 사유의 길을 걷게 했다.


좀 더 입말로 설명해 보자면 이런 느낌이다.

“만약에 말이야, 네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잡혀간 사람 중 한 명이라고 상상해 봐. 이런 극한의 상황에서, 너라면 인간으로서 어떤 선택을 할 것 같아?, 그리고 그 선택 속에서 우리는 어떤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까?”


반면 『이것이 인간인가』는 똑같은 1인칭 시점임에도 독자의 감각을 잊게 했다. 자신이 겪었던 끔찍한 경험을 과감 없이 차갑게 써 내려간 그의 글은, 읽는 이를 실제 그곳으로 몰아 비루하고 나약한 인간의 모습으로 상상하게 만들어 그들의 선택과 행동 앞에 안절부절못하게 했다.


아우슈비츠의 한복판에서 인간이 어떻게 무너지는지, 때로는 살기 위해 어떤 이간질을 하고 죽음으로 내모는지를 자세히 남겼다. 그런 서술이 나를 더 끊임없이 질문의 늪으로 몰아넣었다.


“나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

“나는 인간다움을 지킬 수 있었을까?”



인간다움을 잃어도 우리는 인간일까

‘굶주림 앞에서 서로를 배신하고, 죽어가는 이가 빨리 죽기를 기다리며 그가 가진 물건에 눈을 돌리는 이들을 우리는 인간이라 부를 수 있을까.’

‘살기 위해 인간다움을 내려놓은 자신을 인간이라 할 수 있을까.’

‘비슷한 상황이 반복된다면 인간은 또다시 같은 방식으로 무너지고 말 것인가.’


이성적 사고는 유대인 말살을 전제로 한 체제와 폭력의 구조 안에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쳤던 그들의 행동을 쉽게 단죄할 수 없고 단죄해서도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다 해도 마음은 끝끝내 질문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따로 증명할 필요가 없을 만큼 답은 자명한데도 “인간이니까, 인간이기 때문에 다른 선택은 불가능했을까 “를 끊임없이 되묻게 하는 힘. 그것이 바로 이 책이 가진 냉철한 힘이었다.



존엄을 빼앗긴 인간이었음을

아우슈비츠의 강제 수용소 이야기는 형제복지원에서의 나를 떠올리게 했기에 의식적으로 책을 자주 찾아 읽었다. 오래전 무너졌던 내 인간다움의 구멍 난 존엄을 회복하고, 나아가 인간을 이해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 폭력 앞에 순응했던 그곳에서의 내가 떠올라 나를 부끄럽게 했지만, 다른 한편으론 아픈 역사 속 존엄을 잃은 여러 인간군상을 통해 아이러니하게도 나를 더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이 인간인가』를 읽으며 처음으로 내 존엄성의 회복을 넘어, 인간의 인간다움에 대한 생각을 하게 했다. 책은 단 한 번도 그곳에서 이루어진 사람들의 행위가 “정당했다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라고 항변하지 않는다. 오히려 눈살을 찌푸리게 할 정도로 적나라하고 불편한 행동들을 자세히 묘사한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그 행동을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인간도 아니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인간이기 때문에 비극의 순간에 비인간적인 선택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하게 했다.


그래서 나 또한 그 비인간적 상황 속에서 인간다움을 지키지 못한 것은 내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고, 그저 존엄을 빼앗긴 한 인간이었을 뿐이었다고 책은 말해주는 듯했다.



그럼에도 인간이기에

책은 어떤 답도 주지 않는다. 다만 “이것이 인간인가?”라는 질문을 끝없이 반복하며, 인간이라는 존재의 한계와 가능성을 동시에 응시하게 했다.


그들도 그때의 나도 인간도 아니었던 게 아니라, 인간이었기에 생존 본능 속에서도 굴욕감을 느꼈고, 모멸감에 몸서리쳤으며, 자괴감을 견뎌냈다. 더불어 인간이기에 그 이해를 넘어 다시는 그런 비인간적인 상황에 놓이지 않게 하기 위해 어떤 노력과 힘을 기울여야 하는지를 함께 생각하게 했다.


프리모 레비의 이 책은 내게 단순한 증언문학이 아니다.

내가 외면하고 싶었던 과거의 나를 다시 바라보게 하는 책이며, 복잡다단한 감정 속에서도 내가 여전히 인간이었음을 말없이 일깨워주는 책이었다.


『이것이 인간인가』를 읽으며 나는 더 이상 ‘그때의 나’를 단죄하지 않는다. 대신 그때의 내가 어떤 구조 속에서, 어떤 조건 아래에서 그렇게 흔들릴 수밖에 없었는지를 이해하려 애쓴다. 그 이해야말로 다시 인간다움을 회복하기 위한 시작이며,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가장 깊은 성찰일지 모른다.


명확하지 않지만 현재의 내가 찾은 답은, 인간다움을 잃어버리는 순간에도 우리가 여전히 인간이라는 것.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그 인간다움을 지켜내기 위해 부더니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질문을 지우지 않고 살아가는 것, 그 자체가 인간이기에 가능한 몸부림일지도 모르겠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인간다움을 잃어버린 그 순간에도,

우리는 여전히 인간이라 말할 수 있을까요?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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