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불러낸 생각과 감정을 따라가는 글
[메인 이미지 대체 텍스트: 눈 내리는 겨울 풍경 속에서 파란 우산과 검은우산이 보인다.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 표지 이미지 ©나무옆의자]
“벨이 울리고 있었다. 엄마가 또 머리맡의 벨을 누르는 모양이었다.”
책의 첫 구절을 읽고 내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던 장면이 떠올랐다. 돌봄 경험이 없다면 쓸 수 없는 구절이라 생각했고, 작가의 인터뷰를 찾아봤다. 코로나가 창궐하던 시기 남편의 뇌졸중으로 간병과 갖은 돌봄을 오롯이 혼자 해결해야 했던 경험이 있었다. 작가는 이 경험을 통해 한국사회 내 간병과 돌봄의 그늘이 얼마나 크고 짙은 지를 절감했다고 한다.
일기 형식으로 간병을 기록하던 작가는 어느 날 간병과 돌봄 문제를 다뤄야겠다고 생각했고 그 결과물이 바로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이었다.
그 당시 의사는 말했다. 수술로 인한 엄마의 유방암 생존 확률은 50:50이며, 수술하지 않는다면 잔존 생명 추정치는 6개월 정도라고. 엄마는 아빠와 상의 후 수술을 하지 않는 대신 기적처럼 병을 이겨냈다는 사람들의 전국 팔도 민간요법들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딸도 찾았는데 못할게 뭐 있냐며 보란 듯이 이겨내겠다."라고 했다. 집안에는 암에 좋다는 치료요법과 약재들이 채워졌다. 상황버섯, 굼벵이를 말려 갈아 만든 환, 약초 뜸 등등 그렇게 5년을 살아냈다. 그러나 움직임과 이동이 가능했던 초창기와는 달리 시간이 더 해질수록 엄마는 혼자서는 움직이지도 못하게 되었다.
엄마가 돌아가셨던 그 해 초, 거실 벽면 위로 안방에서부터 얇은 끈으로 이어진 작은 종이 달렸다. 딸랑, 딸랑 그 소리는 엄마의 부름이었다. 나중엔 그 줄을 당길 힘도 없게 되셨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엄마의 한쪽 가슴은 암세포가 더욱 날뛰어 조직이 괴사 되고 짓무르면서, 고름이 차고 속살이 드러나 문드러졌다. 엄마는 거의 매일을 고통으로 일그러져 몸을 비틀었다. 그 피할 길 없는 고통 속에서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뿐이었다. 손수건 한 장을 입에 물고 새어 나오는 신음을 삼키는 것이 전부였다.
생각해 보면 우리 가족은 그런 엄마를 보며 많이 무기력해했던 것 같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엄마의 가슴을 소독하고 고름 썩인 거즈를 걷어내는 것, 욕창이 생기지 않게 몸을 돌려드리는 것, 팔다리를 주무르는 것, 고작 그게 전부였다. 엄마가 아픈 만큼 우리 집안은 점점 더 우울하고 침울해졌다. 어쩌다 엄마의 통증 수위가 낮아지는 날엔 큰 안도와 함께 우리 표정에도 빛이 들었지만, 다시 이어지는 엄마의 통증 앞에서는 어쩔 도리 없이 함께 빛을 잃었다.
몇 해 전 친구 어머니가 뇌졸중을 겪으셨을 때 병문안을 갔다 돌아오는 길에 왈칵 눈물을 쏟았던 적이 있었다. 친구가 어머니를 아기 대하듯, 친구 대하듯 다정하게 짓궂은 장난을 건네기도 하며 밝은 표정으로 간병을 하는 모습을 보고 ‘아... 나는 왜 그 어둠에 갇혀 엄마에게 저런 밝은 모습을 조금이라도 더 보여드리지 못했을까. 하루 종일 누워계시는 건데 왜 더 자주자주 몸을 뒤척여드리지 못했을까. 왜 살아계실 때 사랑한다는 말을 아낌없이 해드리지 못했을까.’ 하는 만회할 수 없는 회한 때문이었다.
어린 시절이었지만 그런 복잡다단했던 돌봄 경험이 있었기에, 이 소설은 나에게 소설로만 다가오진 않았다.
명주는 남편과 이혼하며 딸의 양육권을 지키기 위해 위자료를 포기했다. 여러 일을 전전하다 급식소 조리원으로 일하던 중 발에 큰 화상을 입는다. 그 후유증으로 다시 일자리를 구하는 것 자체가 어렵게 되면서 살길이 더 막막해진다. 수입이라곤 치매를 앓는 어머니가 받는 기초연금 307,500원과 유족연금 698,000원을 합한 1,005,500원이 전부가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생계가 끊어질 것이 두려웠던 그는 어머니의 죽음을 숨긴 채, 그 연금을 받아 살아가기로 한다.
그의 이웃 준성.
내일을 꿈꾸며 물리치료학과를 다녔던 건실한 청년 또한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알코올중독과 뇌졸중 후유증을 앓고 있는 아버지를 돌보기 위해 학교를 그만둬야 했다. 살아야 했기에 낮에는 간병, 밤에는 대리운전으로 그렇게 위태롭게 하루를 버티며 살아간다. 그러나 준성 또한 잇따른 사고와 불운으로 더욱 사지로 내몰리게 된다.
글을 읽을수록 두 사람이 겪어내야 하는 켜켜이 쌓이는 삶의 무게가 나에게도 전달되어, 나도 모르게 질식할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어쩜 이리도 불행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렇게 한꺼번에 몰아치는 걸까. 정말 죽어라 죽어라 하는구나"라는 말을 내뱉으며 씁쓸한 마음을 진정시켜야 했다.
명주와 준성은 각자 다른 이유로 벼랑 끝에 서 있었지만, 공통적으로 돌봄을 오롯이 혼자 짊어져야 하는 가족이라는 굴레에 갇혀 있었다.
명주의 고통은 단순히 어머니의 돌봄에만 있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도 화상 후유증과 원인불명의 통증으로 정상적인 노동이 어려웠지만, 겉보기에 멀쩡하다는 이유로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보호망에서 밀려났다.
“가난을 증명하는 것도 수치스러운데, 아픔을 증명하는 건 더 복잡하고 굴욕적이었다.” 는 명주의 말처럼, 그럼에도 그는 살기 위해 그 굴욕을 감내하며 아픔을 증명하려 했지만 끝내 증명받지 못한다.
그는 돌봄을 제공하는 동시에 돌봄을 받아야 하는 위치에 있었지만, 사회제도는 그를 모질게 비켜간다. 그저 생존본능과 독박 돌봄, 무력감만이 명주를 맴돌 뿐이었다.
의지 할 곳 없는 준성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는 아버지를 돌보느라 학업을 중단해야 했고, 청년으로서 스스로의 미래를 개척할 권리와 기회를 상실한다. 낮에는 아버지를 돌보고 밤에는 대리운전을 하는 일상 속에서, 그의 하루는 소진되어 갔다.
소설을 읽고 준성의 삶이 애달퍼 "준성아 지금 상태론 답이 없어, 힘들겠지만 미래를 위해 좀 더 영혼을 갈아 넣어 공부를 계속해야 해. 포기하지 마."라고 말하는 독자가 있을까? 단언컨대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독자들은, 준성의 현실을 외면한 이상적인 조언을 건네는 그 행위가 얼마나 기만적이고 무책임하며 무의미한 것인지를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에이~ 설마 이런 말을 하는 이가 있으려고."라는 말을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있다.'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놓고 어떤 이들에게는 당신이 진짜 가난한지를 증명해 보라고 하고, 또 어떤 이들에게는 진짜 아픈지를 증명해 보라고 한다. 그뿐인가 최소한의 범위를 넘어 살고 있는 사람들 또한 예기치 않은 불행이 다가왔을 때 그는 다시 이렇게 얘기한다. "당신의 불안정한 삶?, 미래? 돌봄? 간병? 그 딴 거 모르겠고, 영혼을 갈아넣든, 시간을 갈아넣든, 아니면 그 둘 다를 갈아 넣던 지 간에 맞닥뜨린 문제는 개인과 가족이 알아서 해결해"라고 말하는 그는 바로 국가다. 비약이 심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좀 더 구체적으로 접근해 보자. ‘간병’은 왜 이렇게 개인과 가족의 삶을 무너트릴까. 정신적 고통은 차치하더라도 이유는 단순하다. 비용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개인 간병인을 고용하려면 하루 평균 12만~15만 원이 필요하다. 여기에 간병인을 위한 식사 제공, 야간·주말 수당까지 포함하면 한 달에 400만 원이 훌쩍 넘는다. 이는 최저임금(2,096,270원)을 받는 노동자의 월급을 훨씬 넘어서는 금액이다.
형편이 어려운 가정은 공동간병이라는 방식을 선택한다. 여러 환자가 간병인 한 명을 나누어 쓰는 구조다. 개인 간병비 보다 비용이 줄어들긴 하지만 하루 평균 3만~10만 원 꼴이기에 부담이 되는 건 매한가지다. 또한 한 명이 여러 환자를 동시에 돌보기에 개별 환자가 받을 수 있는 돌봄의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물론 국가가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일부 병동에서 시행하고 있지만, 전체 병상 대비 비율은 아직 턱없이 부족하다. 대기 없이 이용하기는 쉽지 않고, 농어촌이나 작은 도시로 갈수록 이런 제도적 지원은 더 닿지 않는다.
결국 명주 같은 가정에는 외부 간병인을 고용할 선택지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준성 역시 자기 삶을 꾸려나갈 수 있는 기회 대신, 아버지를 돌보는 데 모든 시간을 소진해야 한다. 이처럼 사각지대로 내몰린 독박 돌봄은 개인과 가족의 평온한 일상을 송두리째 뒤 흔든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종종 신문에서 ‘간병살인’이라는 단어를 너무 자주 마주한다. 아픈 가족을 오랫동안 돌보다 더는 버티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건들이다.
얼마 전에는 중증을 앓는 80대 아내를 80대 남편과 50대 아들이 공모하여 살해하고 본인들도 자살하려다 미수에 거친 사건이 있었다. 생활고와 돌봄의 무게에 짓눌려 더는 길을 찾지 못한 채 마지막 순간 파국을 선택한 것이다.
또 다른 사례에서는 20대 아들이 중병에 걸린 아버지를 돌보던 끝에 생활비조차 마련하지 못해 아버지를 방치했고, 결국 아버지는 숨졌다. 이 사건 역시 ‘간병 살인’으로 불렸지만, 실은 제도의 손길이 닿지 않았기에 가족이 무너진 결과였다.
이처럼 간병이 삶을 짓누르는 상황은 고령부부, 돌봄 청년 그 누구라도 비켜가지 못한다. 벼랑 끝에 내몰린 이들의 선택은 서로 다른 연령과 형편 속에서도 도돌이표 마냥 반복된다.
실제 통계는 더 냉정하다. SBS 뉴스는 한 해 13건의 간병 살인이 발생했다고 보도했고, 동아일보는 지난 20년 사이 간병 살인이 세 배 이상 늘어 현재는 매년 19건 안팎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 사건들 속 인물들은 범죄자이기 이전에, 제도의 바깥에서 돌봄을 떠맡다 무너진 사람들이었다. 오로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간병을 감당하다가 마지막 순간 파국으로 내몰린 것이다.
간병살인은 단순히 한 가정의 불행이 아니라, 돌봄을 사회화하지 않은 채 가족에게만 맡겨둔 구조가 낳은 전 사회적인 비극이다. 여전히 국가가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는 이 말이 과한 주장으로 들리는지,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은 단지 명주와 준성의 이야기가 아니다. 돌봄이 개인과 가족에게만 맡겨졌을 때, 삶이 어떻게 파괴되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다. 국가는 한 발 물러나 있고, 제도는 ‘증명하라’는 말만 되풀이한다.
그러나 돌봄은 "증명"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돌봄이 제도 바깥으로 밀려나는 순간, 그 무게는 누군가의 생을 짓누르고 다른 누군가의 미래를 앗아간다.
국가가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는다면, 돌봄은 결국 개인의 삶을 파괴하는 방식으로만 작동할 것이다. 명주와 준성의 겨울은 바로 그 사실을 우리에게 절실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품위 있는 삶까지는 바라지도 않아. 생존은 가능해야 하지 않겠어? 나라가 못 해주니 우리라도 하는 거지. 살아서, 끝까지 살아서, 세상이 우리를 어떻게 하는지 보자고. 그때까진 법이고 나발이고 없는 거야.
본문 마지막 단락의 구절은 명주가 생존을 위해 죽은 어머니와 함께 집에 살기로 선택 한 뒤, 이후 어떤 사건으로 무너지려 한 준성을 향해 건넸던 말입니다.
여러분도 책의 재미를 직접 느껴보시길 바라는 마음에 최대한 책의 상세 내용은 피하며 글을 쓰고자 노력했습니다.
돌봄을 여전히 개인, 가족의 몫으로만 남겨두는 사회를 어떻게 보시나요? 과연 우리는 그 사회에서 그 누구도 무너지지 않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