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불러낸 생각과 감정을 따라가는 글
[메인 이미지 대체 텍스트: 최진영 장편소설 『내가 되는 꿈』 책 표지. 여러 개의 마트료시카 인형이 놓여있다. 중앙에는 하얀 드레스를 입은 여성이 의자에 앉아 있고, 붉은 구두가 신겨져 있다. - ⓒ 최진영 / 현대문학
오늘의 풍경은 바람이 일렁이는 넓은 대지 위, 청보리가 출렁이는 그 어딘가로 나를 데려다 놓은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 준 책, 최진영 작가의 『내가 되는 꿈』이다.
주인공 태희는 어른이 되었지만 '내가 되는 꿈'을 이루지 못한 채 무기력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러던 중, 어린 시절부터 함께 지내온 할머니의 죽음을 계기로 그동안 외면해 왔던 자신의 과거와 삶을 되돌아보게 되는 이야기다.
『내가 되는 꿈』을 읽고는 무심히 베란다 창 너머, 짙어가는 가을. 형형 색깔로 물드는 숲 속 나무들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크게 요동치는 감정도 아니었고, 눈물이 차오르거나 벅찬 감동이 밀려온 것도 아니었다.
그 대신 태희처럼 질문 하나가 남았다.
‘나는 오늘을 어떤 나로 살고 있을까. 그리고 나는 정말 ’나‘가 되어가고 있는 걸까.’
앞서 말했듯 이 책은 태희라는 인물이 자신의 과거와 마주하며, “내가 되는 꿈”을 향해 나아가는 이야기다. 그 여정은 녹록하지 않다. 어린 시절의 태희는 학교에선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선생님과 만난다. 또한 이유를 모른 채 부모의 별거 결정으로 할머니 집에 맡겨지게 된다. 태희가 접한 어른들은 이기적이었고, 어느 시기에서든 상처를 주는 존재였다. 물과 바람, 돌에 깎여 형태를 갖춘 조약돌처럼 태희는 그 무기력하고 무책임한 환경에 지지 않는다. 대신 소녀는 그 불합리함에 맞서 원망과 불만을 담아 솔직하게 일기를 쓰고 편지를 썼다.
“나는 일기를 썼다. 선생님이 뽀뽀하라고 해서 뽀뽀했다고, 담임은 일기 검사를 하다가 내 일기를 찢었다. 그래서 깨달았다. 담임이 우리에게 뽀뽀하라고 시키는 건 감춰야 하는 일이란 걸. 나는 계속 썼다. (중략) 담임은 일기장을 몇 번 더 찢다가 (중략) 일기 쓰기 숙제를 없애 버렸다. “ - 『내가 되는 꿈』中.
"- 아빠 너무 미워하지 마. (중략) 그리고 나도 너무 미워하지 마. 부탁하는 거야.
그런 부탁이 가능한가 생각했다.
- 미워하는 건 엄마랑 아빠가 많이 했어. 너는 하지 않아도 될 만큼 많이. (중략)...... 노력 중이야. 네 생각을 해서라도 잘 지내보려고.
자기들은 원치 않지만 나 때문에 잘 지내보겠다는 말로 들렸다. 둘은 서로 마음껏 미워했으면서 그래서 내게도 미움을 옮겼으면서, 이제 와서 미워하지 말라니. 너무 이기적인 거 아닌가? 내 핑계 대지 마. 난 엄마 아빠 생각해서 뭘 어쩌지 않거든. 내 생각해서 잘 지낼 필요 없어. 그게 제일 나빠. “- 『내가 되는 꿈』中.
어른이 된 태희는 어떨까. 그는 융통성 없고 수직적인 조직 생활을 힘들어한다. 바람피운 남자 친구와의 관계 또한 쉽게 끝내지 못한다. 태희는 어른이 되었지만 여전히 상처받는 존재로, 내가 아닌 나로 살아갈 뻔한다. 그러나 할머니의 죽음을 계기로, 시간을 초월한 어린 ‘나’와의 편지를 주고받음으로써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애썼던 유년기의 나를 다시 떠올린다. 상처에 회피하지 않고 정직한 마주 보기를 시작한다. 그렇게 ‘내가 되는 꿈’을 다시 고민하며 스스로의 삶을 변화시킬 동력을 얻는다.
“최 차장은 애가 둘이어서 승진하는데 김 과장도 애가 둘인데 왜 아직도 김 과장입니까? 저는 솔로니까 안 되고, 김 과장은 결혼했으니까 안 되는 거 아닙니까? 월등하게 잘해야 승진한다는 룰은 왜 여자에게만 적용되는 겁니까? 제가 이대로 퇴사하면 여자라서 책임감이 없고 가정이 없어서 막 나간고 말들 하겠죠. 제가 퇴사를 번복하면 여자라서 책임감이 없고 가정이 없어서 막 나간다고 말들 하겠죠.”- 『내가 되는 꿈』中.
“- 내가 잠깐 실수였다고 말했잖아. 다시는 그런 일 없을 거라고.
이미 일어난 일은 어쩌고?
- 그건 다 정리 됐다니까.
너만 정리되면 되는 문제야?
- 그쪽도 인정했어. 우리 둘 다 실수고 착각이었다고.
미친 새끼야 정신 차려. 너희 둘이 정리하든 말든 난 관심 없어. 근데 나도 인간이야. 네 부속품이 아니라 감정과 생각이 있는 인간이라고. 넌 괜찮겠지만 난 전혀 괜찮지 않다고.
(중략) 나는 너를 용서할 수 없어. 너는 내 인생에서 끝이야.”- 『내가 되는 꿈』中.
그를 따라가며 나 역시 내 안의 여러 나와 조우했다. 흔들리는 나, 단단한 나, 불안한 나, 그리고 여전히 믿고자 하는 나. 그들이 서로에게,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돌아보면, 내 감정도 예전과는 달라졌다. 누군가의 이야기에 쉽게 상처받고, 흔들리던 시절이 있었다.
부당함에 분노하고, 상실 앞에서 쉽게 무너졌던 적도 있었다. 그런데 요즘의 나는 완전히 달라진 건 아니지만, 분명히 미묘한 변화를 체감한다.
여전히 격한 마음을 적시는 음악에는 눈물 흘리고, 불의와 부정의 앞에서는 분노한다. 다만 그 감정에 바로 반응하기보다는 요란스럽지 않게, 그 감정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위치로 이동한 듯하다.
『스토너』를 읽었을 때,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를 읽었을 때 담담한 긍정을 느꼈다. 책의 담백한 문채들처럼 숱한 삶의 굴곡에도 묵묵히 그 삶을 감내하며 살아가는 책 속 주인공들의 모습은, 오늘을 살아가는 보통의 너와 나의 모습이었다. 그랬기에 격한 반응보다는 소란스럽지 않은 긍정을 해 보이듯,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태희가 과거의 자신에게 말을 걸었듯, 나 또한 지금의 내가 되기 위해 분투하고 있는 내 안의 여러 '나'에게 말을 걸었다. 그중 안식년을 마감하고 12월 복귀를 앞둔 '나'가 설렘과 긴장, 불안을 안고 있는 얼굴을 한 채 말을 걸어왔다.
휴식기 동안 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한 걸음 물러나 있었다. 그 시간 동안 자연으로, 마음으로 더 눈길을 돌리고 귀를 기울였다. 글을 쓰고 책을 더 긴 호흡으로 들여다봤으며, 잎사귀의 흔들림, 흙과 돌의 질감, 새소리의 결까지 세밀하게 느끼려 했다. 처음엔 정신없던 생활 반경을 떠나 홀로 외롭지 않을까, 우울하진 않을까 염려했다. 그러나 그 고요한 시간들이 낯설지 않았다. 오히려 충만했다. 그 자연스러운 평온함에 나는 어느덧 어제의 나와는 다른 내가 될 수 있었다. 이제는 감정이 외부의 자극으로 분절되어 파편처럼 흩어지기보다는, 내면 깊이 스며드는 것을 느낀다.
이제 그 고요한 시간을 벗어나 다시 생동감 넘치는 세상 속으로 돌아갈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안식년으로 소원해진 동료들과의 관계 맺기에 정성을 쏟아야 하고, 소통으로 합을 맞추어 일을 해나가야 한다. 10년을 함께한 공간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니 설레고 기쁘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다시 신입이 된 것 마냥 잘 해날 수 있을까 긴장되고 두려운 마음도 든다. 떨어져 있는 동안 내가 변했듯, 내 동료들 또한 변했을 것이다. 그 모습은 맞닥뜨려 확인할 수밖에 없다. 그저 지금 내가 바라는 건 다시 돌아가서도 내면의 쌓인 이 고요함의 감각을 잃지 않고 녹여낼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태희가 과거의 자신에게 편지를 쓰며 “내가 되는 꿈”을 이어갔듯, 나 또한 지금의 나로부터 미래의 나에게 이어지길 바라며 편지를 썼다.
내 안의 여러 ‘나’ 중에 어떤 내가 지금의 나와 함께 살아가는지 알 수 없지만, 흔들려도 '나'를 잃어버리진 않기를. 미래의 어떤 내가 다시 바통을 이을지 모르지만, 건강한 정신과 육체로 이어질 수 있기를. 그러기 위해 현재의 나를 더욱 아끼고, 몸과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기를. 알 수 없는 일들에 지레 겁먹고 의기소침 져서는 웅크리고만 있지는 않기를. 항상 더 나은 나로 오늘을, 그리고 내일을 살아갈 수 있도록 그 노력하는 마음을 놓지 않기를.
너의 안녕을 바라며 따뜻한 응원의 마음을 함께 담아 보낸다.
‘내가 된다’는 건 삶을 다하는 그 순간까지 완성형이 아니라 여전히 진행 중인 이야기다.
그러니 매 순간 매 시기 나에게 말을 건네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 대화가 이어지는 한, 나는 여전히 ‘되어가는 나’로 있을 수 있다.
“아무도 내가 될 수 없고 나도 남이 될 수 없다.
내가 될 수 있는 건 나뿐이다. 자칫하면 나조차 될 수 없다.”
-
『내가 되는 꿈』中.
여러분은 지금 어떤 ‘나’로 살아가고 있으신가요?
제가 그러하듯, 여러 흔들림 속에서도 자신을 다시 세우며 살아가고 계시겠지요.
그 모든 시간이 여러분의 ‘되어가는 꿈’의 일부이길 바라봅니다.
날씨가 춥습니다. 부디 마음과 몸 모두 따뜻하게 지내시길 바랍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