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랜지션, 베이비』와 보이지 않는 존재들

책이 불러낸 생각과 감정을 따라가는 글

by 순간의 기록자

[메인 이미지 대체 텍스트: 『디트랜지션, 베이비』 한국어판 표지. 추상적인 얼굴 일러스트 위에 제목과 수상 이력, 인용문이 배치되어 있다. © 토리 피터 / 비채]






독서모임 선정 책으로 읽게 된 트랜스젠더 작가 토리 피터스의 『디트랜지션, 베이비』는 독서를 시작하는 순간부터 나에게 썩 유쾌하지 않은 기분을 안겨주었다. 노골적이고, 무례하며, 종종 외설적인 분위기를 풍겼기 때문이다. 이 책은 기존에 내가 접했던 '점잖은' 문학적 기준에도 맞지 않았다.


디트랜지션 이미지.png 『디트랜지션, 베이비』/ 토리 피터스 저 / 이진 역 / 출판 비채


읽다 말고 책에 대한 정보를 찾아봤다. 2022년 펜/헤밍웨이상을 수상했고, 2021년 뉴욕 타임스 ‘21세기 최고의 책 100권’에 선정되는 등 여러 크고 작은 작품상 후보에 오른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책의 이력을 확인했음에도 독서모임 책으로 선정되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도 중간에 읽기를 포기했을 것이다.


그래서 책을 다 읽은 지금도 읽은 걸 후회하는지 묻는다면 답은 ‘아니요’이다. 책을 보는 동안 간간이 불편함과 언짢은 기분을 느꼈던 것이 사실이지만, 이 불편함이야말로 ‘읽기를 잘했다’고 결론 내리게 만든 핵심이었다.



줄거리

트랜스젠더 여성 리즈와 그녀의 전 연인 에이미(현재는 디트랜지션 해서 태어날 때의 성별인 남성 에임스로 살고 있다), 그리고 에임스의 상사이면서 현재 연인관계인 시스젠더(태어날 때 지정받은 성별과 스스로 인식하는 성 정체성이 일치하는 사람) 여성 카트리나를 둘러싼 이야기다.


트랜지션 된 사람의 경우 장기간 호르몬 치료를 받은 터라 기존의 가졌던 신체적 특징이 약화되거나 변화한다. 에임스는 남성에서 여성으로 트랜지션을 했던 적이 있다. 그래서 생식기능의 완벽한 회복은 안되었기에 자신으로 인한 카트리나의 임신 가능성을 낮게 본다.


그런데 그에게 카트리나의 임신 소식을 전달받게 되면서 자신의 과거가 오픈됨과 동시에 리즈와 함께 ‘대안가족’을 만들자는 대담한 구상을 제안하게 된다.


이렇게 간단하게 줄거리만 나열해도 이게 무슨 ‘막장 이야기’인가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다. 나 또한 책을 읽으며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으니까.


앞서 말했듯 그 불편함을 통해 전해준 성별 정체성과 모성, 그리고 그들의 욕망과 사랑을 들여다보며 내가 가졌던 고정관념을 대면하고 질문하게 해 주었다.



추상적 원칙과 내면의 편견

이 소설은 내가 평소에 굳건히 믿고 있던 추상적인 가치와 구체적인 현실 간의 괴리를 직시하게 만들었다.

"모든 인간은 존엄하다"라고 말하고 성평등을 지향한다고 자부했지만, 이 책의 주인공인 리즈와 에임스의 '점잖지 못한' 일상과 욕망을 마주할 때 내 안에 올라오는 미묘한 거부감과 판단을 발견했다.


백 마디의 인권 선언보다, 당사자 작가가 솔직하게 펼쳐놓은 '낯선 삶의 패턴'이 내 안의 무의식적인 편견을 되돌아보게 하는 강렬한 반성의 지점이 되어주었다.



가시성의 힘

책을 읽으며 가장 주요하게 느꼈던 통찰은 '가시성'에 대한 것이었다. 단순히 "트랜스젠더가 우리 주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을 넘어, 그들이 나의 이웃으로서 복잡하고, 이기적이며, 때로는 비호감일 수 있는 '인간'으로서 부대끼며 공존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 생각이 떠오르자 나는 자연스레 장애인 이동권 투쟁도 함께 떠올랐다.

우리는 장애인과 함께 살고 있지만 좀처럼 장애인을 일상에서 만날 수가 없다. 왜 그럴까?

이유는 우리 사회가 장애인의 이동권을 존중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 지하철에서 장애인이 계단을 오르내리기 위해 계단형 휠체어 리프트를 타고 이동하던 걸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리프트에 장애인을 태운채 요란한 벨소리와 함께 천천히 움직이는 그 모습 말이다.

그 모습이 존엄한 이동권 인가?


그나마 그 위험한 리프트도 있는 역사가 많지 않았었다. 2001년 그 리프트를 타고 오이역을 이용하던 장애인이 추락하는 참사가 일어났다. 사고 직후 정부와 서울시는 점진적으로 리프트를 없애고, 모든 지하철 1 역사에 1 동선의 엘리베이터 설치를 약속했다.


그러나 참사 이후 24년이 지난 지금도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우리가 출근길 지하철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이동권 투쟁 집회를 만나게 된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다.


*1 역사 1 동선: 교통약자가 지하철역 출구(지상)에서부터 대합실을 거쳐 승강장까지 타인의 도움 없이 오직 엘리베이터만을 이용해 이동할 수 있는 동선을 의미함.


사회 구성원 모두가 어떤 상황에 위치해 있더라도 자유롭고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가 아닐까. 장애인 이동권 투쟁을 통해 '가시성'의 부재가 곧 배제와 차별임을 깨달았듯이, 트랜스젠더의 경우에도 그들을 '혐오의 대상'이 아닌 '우리 이웃'으로 자연스레 인식되게 하는 가시성이 더없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다시 한번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이 가시성이 부족할 때 우리 사회가 어떤 막연한 두려움과 공포에 사로잡히는지 트랜스젠더의 혐오 문제를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 사회의 트랜스젠더의 혐오

트랜스젠더 이야기가 나올라 치면 언제나 이어지는 불안의 말들이 있다. 공중 화장실과 목욕탕 사용에 대한 사회의 막연한 두려움이 성범죄 우려라는 근거 없는 공포와 성별 이분법적인 사고가 그것이다.


UCLA 로스쿨 윌리엄스 연구소에서 발표한 성중립 화장실과 성범죄율 관련 보고서(Sexual Assault Incidents in Public Restrooms: Identifying the Impact of Gender Identity Policies)에 따르면 성중립 화장실 도입에 따른 성폭행이나 기타 공공 안전 사건의 증감에는 아무런 변화를 일으키지 않았다.


그보다 트랜스젠더가 일반 개인에 비해 혐오·증오 범죄로 인해 강간, 성폭행등 강력 범죄의 피해자가 될 확률이 4배 이상 더 높다는 결과가 나왔다.


보고서와 책은 트랜스젠더의 삶을 보여주며 성전환 수술 여부에 따라 정체성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자연스레 알려주었다.


한국 사회에서 요구하는 '수술을 통한 정체성의 완성'이라는 강박과 달리, 소설 속 인물들이 수술과 관계없이 자신의 젠더 정체성을 주장하며 살아가는 모습은, 정체성이 몸의 상태가 아닌 주체적인 자기 인식임을 명확히 보여주었다.



호르몬 치료가 가져오는 현실의 무게

소설을 통해 트랜스젠더의 일상에 깊이 들어가면서, 호르몬 치료라는 현실의 무게도 알게 되었다. 트랜스젠더가 자신의 정체성에 맞는 신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평생 호르몬 치료를 지속해야 하며, 이 치료는 원래의 성기능을 감소 또는 상실시킨다.


호르몬 치료 자체가 수명을 급격히 단축시키는 것은 아니지만, 사회적 낙인, 차별, 그리고 이로 인한 의료 접근성의 부족이 트랜스젠더의 기대 수명에 더 큰 위협이 된다는 사실 또한 알 수 있었다.


이처럼 『디트랜지션, 베이비』는 나에게 불편함을 주었기에 그 불편함을 쫒으며 내가 미처 몰랐던 세상의 진실과 나 자신의 숨겨진 편견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낯설었지만, 이 책을 읽음으로써 트랜스젠더의 복잡하고 치열한 일상과 그들이 감수해야 하는 현실의 무게를 깊이 있게 이해하고 진정한 공존을 고민하게 되었다.


길에서 더 많은 트랜스젠더와 장애인을, 더 많은 임산부와 영유아를, 더 많은 노인과 사회적 약자들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다름이 존중되는 사회, 그것이 진정한 공존의 시작이지 않을까.



우리는 일상에서 누구를 ‘보지 않고’ 살아가고 있을까요?

우리가 서로의 존재를 볼 수 있는 사회란 어떤 모습일까요?


설거지를 하는데 이제는 자연스레 따뜻한 온수를 찾는 걸 보면 이젠 정말 겨울로 다가가고 있나 봅니다.

독감이 유행이라네요. 모두들 건강 유의하시고 따뜻하게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이전 11화『내가 되는 꿈』: 흔들려도 ‘나’를 잊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