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장소, 환대』를 통해 다시 묻는 사람됨의 조건

책이 불러낸 생각과 감정을 따라가는 글

by 순간의 기록자

[메인 이미지 대체 텍스트: 『사람, 장소, 환대』책 표지. 흰색 바탕과 갈색 점선으로 이루어진 공간 위에 여러 사람이 다양한 모습으로 배치되어 있다. © 문학과 지성사 / 김현경 저.]






사람을 구성하는 조건

오래전, 『사람, 장소, 환대』를 대충 읽는 듯 마는 듯 읽었던 적이 있다. 내용이 좋은 건 알겠는데 각 장이 서로 맞물려 이어지는 구조라 자칫 흐름을 놓치기 쉬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번에 다시 독서모임 책으로 선정되어 읽게 되었다. 여전히 읽는 속도는 더뎠지만 읽을수록 왜 이 책이 지금의 나에게 필요했는지가 분명해졌다.


사람장소환대.png 『사람, 장소, 환대』/ 김현경 저 / 문학과 지성사


책에서 ‘인간’은 태어나면서 가지는 자연적 사실이지만, ‘사람’이 된다는 것은 타인의 인정을 필요로 하는 사회적 성원권의 문제라고 말한다.


“어떤 개체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사회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사회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어야 하며, 그에게 자리를 만들어주어야 한다.” 31p.


나는 이 문장을 읽으며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나는 무엇을 하지 않아도 인간이었고, 부모님의 사랑 속에서 사람으로 존재했다. 학교에서는 천진난만했고, 호기심 가득한 아이였다. 그렇게 나의 자리는 자연스레 만들어져 존중되었고, 이름을 불렸고 그렇게 사회의 일부였다.


사회가 불러주는 이름, 사회가 만들어주는 자리

그러나 이유도 모른 채 형제복지원으로 끌려갔던 그 시절, 그 모든 것이 한순간에 완전히 사라지며 책에서 말하는 “사람을 인정하는 사회적 장소”에서 삭제됐다. 막연한 추상적 개념이 아닌, 실제의 배제와 낙인의 의례가 3년이란 시간 동안 나를 관통했다.


그곳에서 나는 더 이상 사람이 아니었다. 이름은 지워지고, 번호가 부여되었으며, 입고 있던 옷은 몰수되어 온 데 간데 없이 사라진 뒤 파란색 운동복을 받았다. 몸은 소독당했고, 긴 머리카락은 싹둑 잘려 바가지가 되었다. 규율은 끊임없이 주입되었고, 그 규율을 핑계 삼은 쉼 없는 단체 기합과 폭력이 뒤따랐다.


난생처음 보는 어른들의 험상궂은 얼굴들 속에서 두려움은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그렇게 맞는데도 폭력은 익숙해지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선명해지는 것은, 그들의 지시를 따르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다는 것. 그 공포 속에서 나는 살기 위해 복종해야 했다. 밝고 호기심 많던 아이는 표정을 잃었고, 눈치 빠르고 순응적인 존재로 변해갔다.



성원권이 박탈된 공간의 실체

무엇도 모를 어릴 때였지만 기억 언저리에 남아있던 장면은 ‘바깥사람들(관공서, 외국 입양기관)’이 지위 높은 관리자의 안내를 받아 우리를 훑으며 지나가는 눈초리였다.


이유도 모른 채 그런 날은 하급 관리자들에 의해 특별히 복장 및 주변 청소와 억지 미소를 강요당했다. 어린아이였던 터라 예민해진 관리자의 눈치를 보며 빨리 이 순간이 지나가길 바랄 뿐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은 모멸감이었다. 인간이 아니라 어떤 목적과 그에 맞는 가치를 위해 배치된 전시품이었다.


책에서 말하는 모욕, 낙인, 배제, 사람됨의 박탈이 바로 이런 방식으로 실현된다는 것을 나는 몸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배제·낙인·모욕의 구조

부모님의 천신만고 끝의 노력으로 집에 돌아올 수 있었지만, 내 부모님은 나를 그 낙인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 내 과거를 사람들 앞에서 들추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그곳을 비호해 주던 권력자는 여전히 권력자였고, 그 권력자를 믿고 비리를 저질렀던 관리자는 법망을 피해 죄 값을 제대로 치르지도 않았다.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기 전까지 그곳은 오래도록 '사회 부적응 자를 수용하는 곳'으로 낙인이 찍혀 있었다.


이는 나와 내 부모님의 자의적 침묵이라기보다 타의에 의한 강요된 침묵이었다. 사람이 사람으로 존재하지 못하는 상태. 사회적 연대와 환대가 단절된 자리였다.



침묵의 정치학

형제복지원에서 돌아온 뒤, 나는 다시 가족의 따듯함 속으로 돌아왔다. 다시 학교를 가고 친구를 사귀고 웃음을 되찾는 나날 속에 1년이라는 시간이 되던 어느 날, 내 키가 9센티미터나 자랐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곳에서 제대로 입지도 먹지도 못했던 몸이, 다시 사람들 속에서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과거비인간적인 공간의 경험이 축적된 몸의 허물을 벗어, 다시 사람으로 되돌아오는 순간으로 느껴진다.



연대와 환대가 회복되는 자리

이번에 『사람, 장소, 환대』를 다시 읽으며 7장의 마지막 구절이 묵직하게 가슴에 남았다.


“어떤 사람으로부터 사람의 지위를 박탈하는 일은 법의 제정과 집행만으로 가능하지 않다. 그 이전에, 그가 어떤 일을 당하건 그를 위해서 나서주는 사람이 한 명도 없도록, 그를 둘러싼 사회적 연대 자체를 해체해야 한다. 만일 어떤 사회에서 구성원들이 아무 때나 주권자의 명령만으로 벌거벗은 생명의 상태로 떨어질 수 있다면, 그 사회는 이미 사회가 아니며, 구성원들은 사람이 아니다. 그들이 법적으로 어떤 지위를 가지고 있건 - 시민권자이건 등록 외국인이건 - 그들 사이의 연대가 모두 파괴되어 그들이 다만 인구로서 존재함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 277p.


이 문장을 읽으며 어린 시절의 내가 경험한 것은 바로 사회적 연대의 해체였고, 그 결과로 사람이 아닌 존재로 떨어지는 경험을 했다. 피해자를 위해 나설 수 없는 구조, 목소리가 지워진 자리, 환대가 철회된 공간이었기에, 그 당시 나는 인구로 존재했을 뿐 사람으로 존재하지 못했다.



서사의 편집권을 되찾다

그리고 책이 얘기하는 또 다른 구절이 있다.


“자기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자기뿐이다." 214p.
정체성에 대한 인정은 특정한 서사의 내용이 아니라, 그 서사를 말할 수 있는 권리에 대한 인정이다.” 215p.


과거의 나는 내 부모님이 그러했던 것처럼 나를 지키기 위해선, 그 기억을 감추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믿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일련의 내 과거의 그 기억은 모든 것이 모욕이었다. 내 사람됨과 성원권을 박탈하는 행위였다는 것을.


책이 말하는 것처럼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나 자신뿐이다.’ 비록 작은 글쓰기로 보일지 모르지만 이 서사의 편집권은 오직 나에게 있다. 내가 내 이야기를 말하는 순간, 나는 더 이상 모욕과 침묵 속에 갇혀 있는 아이가 아닌 사람으로 존재한다.



말을 되찾는 사람이 되는 일

지금 적는 이 글이 누구에게 가 닿았으면 좋겠는지를 상상해 봤다.


나와 같은 경험을 한 누군가 이기보다. 나와 같은 경험을 한 이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우리 사회 구성원 전체에게 가 닿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말을, 장소를 빼앗긴 사람들의 권리를 인정하고, 그 누군가에게 말을 건네는 한 사람이 되기를 마다하지 않는 사람에게 가 닿았으면 좋겠다.


어떤 사회가 환대를 선택할 수 있다면 그 사회는 물건에 빗대는 가치를 넘어, 사람을 사람으로 남겨두려는 의지를 가진 사회일 것이다.



사람으로 서로를 지켜내는 사회를 위하여

어느 날 갑자기 누구든 '인구'로 떨어질 수 있는 사회가 아니라, 서로의 '사람'됨을 인정하고, 연대와 환대가 공존하며, 설령 말을 빼앗긴 이들의 있다 한들 그 목소리가 사라지지 않는 그런 사회.


나는 그런 사회를 희망한다.

그래서 나는 '사람'으로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일, 내 서사 말하기를 하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는, 이름이 지워지고,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존재로 취급받으며 오늘을 살아가는 분들이 여전히 많습니다. 우리는 지금 누구의 목소리를 놓치고 있을까요. 그 질문을 확장하여, 어떻게 절대적 환대로 이어지게 할 수 있을까요.


책의 두께보다 내용이 더 깊다 보니, 여러분께 드리는 질문의 무게 또한 가볍지 않은 듯합니다. 어느덧 초겨울로 접어드는 것 같습니다. 어제 문득 크리스마스 캐럴을 찾아들으며, '나는 언제부터 겨울을 받아들이나' 생각해 보았는데요. 크리스마스 앨범을 찾아 듣는 그 순간을 겨울의 첫날로 느껴왔던 것 같습니다. 여러분의 겨울 첫날은 언제인지도 궁금해집니다.


독감이 많이 확산되고 있다고 합니다. 건강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