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스』 불안의 시대를 건너는 법

책이 불러낸 생각과 감정을 따라가는 글

by 순간의 기록자

[메인 이미지 대체 텍스트: 『액스(The Ax) 표지. 피가 묻은 도끼가 이력서 위에 놓여 있는 모습. 이력서에는 한 남성의 증명사진이 보인다. - © 도널드 E. 웨스트레이크 저, 최필원 역, 오픈하우스.]






한 사람의 절박함에서 시작된 이야기

박찬욱 감독 <어쩔 수가 없다> 영화의 원작이라는 말에 호기심을 생겨 책을 읽기 시작했다. 흥미롭게 읽은 터라 어떻게 각색이 되었는지, 조만간 영화관을 찾을 생각이다.


소설 『액스』는 한때 안정된 삶을 살던 중년 남성 버크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액스』/ 도널드 E. 웨스트레이크 저/최필원 역 / 오픈하우스 출판


특수 제지 공장의 관리자로 23년간 성실히 일하던 그는 산업의 자동화와 구조조정 속에서 하루아침에 해고된다. 그가 누렸던 안정은 모래 위에 집처럼 무너졌다. 2년 넘게 재취업에 실패하면서 “행복한 우리 집”은 균열을 드러낸다. 아내의 외도, 아들의 절도에 절망하며 “다시 제지공장 관리자로 돌아가는 것만이 모든 것을 되돌릴 길”이라 믿는다. 그렇게 버크는 아버지의 유품으로 50년간 간직했던 총을 꺼내, 자신에게 위협이 될 만한 제지 업계 종사자를 하나둘 제거하기 시작한다.


재취업을 위해 경쟁 상태를 죽인다는 설정은 비현실적이고 엉뚱하게 들리지만, 그가 느꼈을 절박함만큼은 전혀 낯설지 않았다.


버크는 보수적인 50대 가장으로 아내는 집안일만 하기를 바라는 ‘가정의 생계는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신념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런데 자신의 해고로 아내는 치과에서 접수와 영화티켓 수납원 파트타임 일을 하며 “푼돈”을 벌고 있고, 거기다 외도까지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또한 아들은 기울어진 가정형편에 적응하지 못해 절도죄로 감옥에 가게 될 위기에 처한다. ‘성실하게 일하면 보답받는다.’ 던 믿음이 무너지는 순간, 자신이 쌓아온 커리어와 자존심이 물거품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그가 묘사하는 1990년대 후반기의 풍경은 어딘지 모르게 지금 2025년과 닮은 것 같다.

그 생각이 스치자, 이 책은 더 이상 범죄소설로 읽히지 않았다.


한 시대가 인간의 정신을 어떻게 압박하고 무너뜨리는가를 보여주는 시대의 초상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이것은 과거의 이야기일까, 아니면 이미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한 단면일까.



버크의 절박함 ― 자동화 정착기에 무너진 인간

“컴퓨터가 도입된 후로는 중간 관리직이 필요하지 않게 됐다. 물론 그 단계에 약간의 인력이 필요하긴 하다. 컴퓨터를 다루고, 특정 작업을 맡아 처리해 줄 사람들. 하지만 수백, 수천 명의 관리자는 너무 많다.

나 같은 사람들. “ - 액스 12장.


버크는 23년간 제지 공장의 관리자로 일해 왔다. 그가 믿은 세계는 단단했을 것이다.

아버지 세대가 몸소 보여준 질서, “묵묵히 일하면 정년은 보장된다.”는 확신.

그 믿음 속에서 성실은 곧 안전이었고, 일은 곧 존재의 증명이었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 자동화 정착기의 가속화 물결은 그 질서를 무너뜨렸다.

공장은 효율성을 이유로 인력을 줄였고, 노동의 가치는 점차 비용 절감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버크는 일자리를 잃는 순간, 자신의 존재 이유까지 잃어버렸을 것이다. 그에게 실직은 단순한 경제적 타격이 아니라, 존엄의 붕괴이지 않았을까.


여기서 더 큰 비극이라 여기지는 것은 그는 제지 공장 이외의 세상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라, 세상을 단 한 가지 방식으로만 살아도 되었던 세대의 끈을 놓지 못한 한계였다. 그런 그에게 ‘다른 일’을 한다는 것은, 자신의 인생 전체를 부정하는 것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래서 “다시 필요한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예전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라고 굳게 믿지 않았을까.

결국 이 비극은 사라진 세계의 법칙을 끝내 놓지 못한 확증편향 사고를 가진 한 인간과

냉혹한 사회가 만났을 때 그 인간성이 어떻게 말살되는지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듯했다.



변화의 인식 ― 자동화에서 AI로 이어지는 전환기의 불안

"사실 모든 업계가 대량 해고 바람에 몸살을 앓고 있다. 한 번 정리해고 바람이 불고 지나간 자동차 업계는 아직 잠잠하다. 얼마 전 대규모 인력 삭감을 밀어붙인 통신회사들도 숨을 죽인 채 모처럼 찾아든 평화를 만끽하고 있다. 소문에 의하면, 다음은 컴퓨터 업계 차례라고 한다. 그렇게 나머지 업계들에도 차례로 구조조정의 칼바람이 불어 닥칠 것이다." - 액스 9장.


버크의 시대에도 대량해고 바람이 불었다.

사람들은 ‘이번만 넘기면 된다’는 마음으로 버텼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변화는 다르다.

AI의 물결은 산업의 구분을 지우며 모든 영역에서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

노동의 형태뿐 아니라, 지식과 사고의 방식마저 부지불식간에 변하고 있다.


우리는 버크와 달리 변화를 모르는 세대가 아니다.

원하면 언제든 전 세계의 소식을 내 손바닥 안에서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AGI(인간 수준의 지능), ASI(인간의 지능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 같은 단어들이 현실의 언어가 되어가고 있으며, 그리 멀지 않은 시간에 AI가 인간의 지능을 초월할 거라는 얘기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오히려 더 명확히 인식하기에, 불안과 두려움은 더욱 깊어진다.

버크가 시대적 변화의 흐름을 읽지 못해 무너졌다면,

우리는 변화를 인식하면서도 아무도 가보지 않았기에 알 수가 없다.

다만 예측만 무성할 뿐, 그 불확실 성 속에서 우리는 다시 한번 문명의 전환점을 통과하고 있을 뿐이다.


낀 세대의 위치 ― 두 세계를 모두 기억하는 세대의 혼란

40대 이전 세대는 어릴 때부터 컴퓨터와 휴대폰으로 세상을 보는 게 당연했다.

앱에서 AI로의 전환은 도구의 변주처럼 40대 이후 세대보다는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그러나 40~50 세대들은 다르다. 이 세대는 두 개의 세계를 동시에 기억한다.

아날로그 시대의 질서를 교육받다, 고등학교와 대학 시절 거치며 컴퓨터와 인터넷이라는 새 문명을 직접 경험했다. 그렇게 아날로의 잔재와 디지털의 병합된 시간을 거친다. 버크의 공포를 이해하면서도, 시간은 흘러 이제 그들은 2025년 시대가 요구하는 유연함을 따라가기에도 힘이 부친다.


청년 시절 한 번의 전환기를 통과했지만,

중·장년이 되어 다시 맞이한 AI시대의 대전환은 훨씬 더 거대하고 낯설다.


기존의 학습된 경험들을 내려놓고 다시 시작해야 하는 이 과제 앞에서, 이 세대는 두 세계 사이에 서 있다.


과거의 언어로는 현재를 설명할 수 없고, 현재의 언어로는 자신을 설명할 수 없는 세대.


그렇기에 나는 지금,

나만의 언어를 다시 찾아야 하는 기로에 서 있다.


불안의 시대를 사유하는 법 ― 희망은 가만히 있는다고 생기지 않는다

“컴퓨터가 우리 자리를 위협하고 있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아직도 그 이유를 모르고 있는 듯하다. 회사가 기록적인 흑자를 내고 있는데 내가 왜 해고당해야 하지? 다들 그렇게 묻는다. 답은 간단하다. 컴퓨터는 우리를 불필요한 존재로 만들어놓았고, 부담 없는 합병을 가능하게 해 주었다.” - 액스 12장.


이제 질문은 하나로 모인다.
이 거대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존재할 것인가.



AI 시대는 이미 시작되었다.

AI는 인간보다 방대한 데이터를 더 많이, 빠르고 효율적으로 학습한다.

정보를 다루는 능력은 이미 인간을 넘어섰다.


우리는 지금 태풍이 오기 전의 새벽 속에 있거나, 이미 태풍의 눈 속에 있다.

어느 쪽이든, 세상은 이전과 같을 수 없다.


불확실한 시대에 인간의 불안은 피할 수 없는 감정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경험으로 알고 있다.

불안하다고 멈춰 있으면, 불안은 사라지지 않는다.


희망은 기다림의 결과가 아니라, 행동과 사유의 산물이다.

무엇이라도 시도하는 과정 속에서만 다음을 기약하는 마음이 생긴다.

앞으로 어떤 시대가 도래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AI시대에 변화의 흐름을 타되,

생각하는 능력, 의미를 만들어 내는 힘을 잃지 않는 한

우리는 각자의 언어를 찾아 다시 새로운 길을 찾아내리라는 것을.



추석 연휴 즈음, 친구와 짧은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여행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불현듯 밀려와 한동안 마음이 스산했습니다.


그러던 중, 생각지도 않게 이 책을 읽으며

버크의 절박한 마음속에서

어느새 제 모습과 맞닿아 있는 한 지점을 발견했습니다.


그의 절박함을 따라가다 보니,

무엇이라도 시도하는 과정 속에서

비로소 ‘다음을 기약할 수 있는 마음’이 생긴다는 사실을 조용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불안에서 조금은 거리를 둘 수 있는 저 자신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밀려올 때

어떤 방식으로 마음을 다스리시나요?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오늘 업로드한 글은 원래 다음 주 10월 30일(목)에 게재할 예정이었으나,

개인 사정으로 인해 일찍 올리게 되었습니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양해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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